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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이 사람 찾음은 가짜, 지명 수배는 진실, 신장 바이완전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신장 보도) 신장(新疆) 창지시(昌吉市) 파룬궁수련생 바이완전(白萬珍)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14년 동안, 줄곧 현지 공안(경찰)이 집중하여 감시 박해를 진행하는 대상이었다. 중공(중국공산당) 인원에게 장기간 지명 수배, 공갈 협박, 유랑생활, 생존하는 권리를 박탈당했는데, 결국 2014년 12월 4일 사망, 당시 나이 63세였다. 이때에 이르러, 바이완전 일가족 다섯 식구(부모와 그들의 세 딸)는 중공의 박해 중 연이어 사망했다.

전 가족이 대법 중에서 이로움을 얻고, 덕을 중히 여기고 선을 행하다

바이완전의 고향은 신장 창지 회족자치주 푸캉시(阜康市) 주롄제향(九運街鄉)이다. 1998년,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주롄제향에 전해졌을 때, 그녀 부친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은 생기가 넘치고 몸이 건강해져 여러 해 동안의 ‘약 광주리’를 던져버렸는데, 정말 혈색이 좋고 건강했으며 걸음걸이가 홀가분했다.

이때 아들딸들도 연이어서 대법 중에 들어서서 수련했는데, 일가족의 생활은 행복하고 희망이 있었다. 이로움을 얻은 그들은 이 아름다운 대법을 친척과 친구, 한 고향 사람에게 전해, 많은 사람이 대법 중에서 이로움을 얻었고 도덕을 중히 여겨 선을 행하여 심성이 매우 크게 제고되었다.

바이완전이 중공에 지명 수배, 10여 년의 간난신고와 충격을 경험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의 탄압은 하늘땅을 뒤엎을 듯이 중공은 파룬궁 연마를 금지하고 대법 책을 몰수했으며 대법을 모독하고 사부님을 비난했다. 대법에 대한 무리한 탄압과 사부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함에 직면해, 바이완전과 그녀 자매는 전국 파룬궁수련생과 마찬가지로,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는 열차에 올랐다. 단지 정부에 대하여 속으로 우러난 진심의 말 한마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사부님께서 결백하심을 돌리시오! 수련자에게 수련의 환경을 주시오.”라는 말을 하려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이 때문에 현지 파출소로 보내져 구류되었다. 이로부터 현지 610, 공안은 끊임없이 교란, 구금을 진행했고 이 선량한 가정을 박해해 집과 가족을 다 잃게 했다.

바이완전은 둘째 딸이고 창지시 물자국에서 근무했다. 중공이 박해한 초기, 바이완전은 파룬따파를 위해 청원하러 베이징으로 갔다. 불법 구류당하고 석방된 뒤, 중공의 교란과 감시를 피하고자 유랑생활을 했다. 황당한 것은, 2001년 가을, 중공 악당은 ‘국가정권을 전복한 죄’로 ‘조간신문’에서 5,000위안의 상을 걸고 바이완전을 수명 지배했다. 50여 세로 손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여자가 ‘쇠로 만든 홍색 정권’을 전복할 수 있겠는가?

바이완전을 납치하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2012년 7월 6일, 지창주 푸캉시 공안국에서는 또 사진이 나온 지명수배령을 내렸다. 게다가 5,000위안의 ‘상을 걸고’ 사람을 신고하게 했다. 동시에 창지시 공안국에서는 여러 사람을 출동시켜 바이완전의 집으로 납치하러 갔다. 바이완전은 거듭 박해당함을 피하기 위해 줄곧 유랑 생활했다.

경찰은 집안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또 친척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또 친척 집 아이의 직장으로 가서 속이면서 가족에게 정보를 제공하라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근무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더욱 비열한 것은 창지시, 610, 공안에서 우루무치 매체에서 구인 광고를 게재해 바이완전의 신분증번호 및 개인 정보, 특징을 공포했으며, 5,000위안의 ‘상을 걸고’ 사람을 신고하게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지명 수배하며 감시한 상황에서, 바이완전에게 정신적으로 조성한 압력과 학대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었고 월급 지급을 중지당해 일체 경제 내원이 끊겼다. 원래는 2008년 퇴직 연령이 되어 양로 월급을 누려야 했으나 양로금을 가질 수 없었다. 또 신분증을 사용할 수 없는 데다 연령도 많아 직업을 찾기 어려워, 파룬궁수련생의 도움으로 몇 집의 보모 일을 맡아 생활을 유지했다.

바이완전은 장기간 유랑생활을 하며 아들을 내려놓지 못해, 2년 전에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문안했는데 아들 집의 전화가 여전히 감시당할 것은 생각지 못했다. 악인은 아들 집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또 전화 박스까지 미행해 가서 이 사람을 조사했다.

10여 년 동안, 바이완전은 현지 공안의 장기간의 교란, 감시, 미행, 정신적으로 당한 극심한 시달림과 학대로 인해, 2014년 12월 4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임종 전에도 친아들과 가족을 한 번 만나지 못했다.

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당해, 전 가족 5식구가 연이어 사망하다

2000년, 막내 여동생 바이완링(白萬玲)은 세인에게 진상자료를 나눠주다가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돼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는데, 노동기간에 바이완링은 각종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했다. 단식으로 항의했던 이유로 강제로 위 속에 꽂고 음식물주입을 당했는데, 위 호스가 폐장에 꽂혀 손상을 입어 맨 마지막에 심각한 폐 공동 증상이 나타나 호흡하기 어려웠고 사람 모습이 아니었다. 노동교양소에서는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가족에게, 집으로 마중 나가서 자매들이 보살피도록 통지를 내렸다. 몸이 상해를 너무 심각하게 입었던 이유로, 결국 2004년 5월 31일 사망했다. 나이 겨우 39세였다.

酷刑演示:野蛮灌食(绘画)

고문 재연: 야만적인 음식물주입 (그림)

부모 집에서 푸캉시 공안국, 610, 향 정부, 향 파출소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번갈아 가며 그녀들의 부모 집을 교란했다. 특별히 밤에 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드렸는데 조금만 늦게 문을 열면 악인은 곧 담장을 뛰어넘어 집안에 들이닥쳐 이웃들을 소란스럽고 불안하게 했다. 당시 향 정부에서는 또 200여 명의 불법 인원을 배치해 팀을 나눠 감시하게 했는데, 이웃들은 놀라서 모두 감히 집으로 문안하러 찾아오지도 못했다.

바이완전의 부모는 박해를 심하게 받아 고난을 감당한 기간에 또 인내심이 있게 세인에게 공안, 정부 근무 인원을 포함해서 자신이 대법수련을 한 뒤 심신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몸이 불편하거나 혹은 병이 있는 사람에게 대법을 배워 연공하도록 건의하여, 이 대법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실증했다.

그러나 현지 공안은 끊임없이 교란했는데, 더군다나 부모는 밤낮으로 거듭 외지로 청원하러 간 큰 딸, 둘째 딸의 안위와 아직도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당하고 있는 사랑하는 막내딸을 그리워했다. 연세가 69세인 이 어머니 리칭팡(李清芳)은 이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 쓰러졌다.

의지하고 부축하며 살던 아내가 사망함은 부친 바이인산 노인에 대해 설상가상으로 그는 지탱하지 못한 채, 결국 2002년 10월, 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0세였다.

부모의 사망은 이 가정에 극심한 상해를 조성해 그들의 자녀들은 극도로 비통했다. 큰딸도 비통 속에서 또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선량하고 행복하던 가정은 짧은 몇 해 사이에 중공의 박해로 집안이 참혹하게 불행을 당해 4명의 가족이 생명을 빼앗겼다.

오늘날 단지 둘째 딸 바이완전만이 남았었는데 역시 장기간의 박해 중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4년 12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2/17/3016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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