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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는 병보석 불허, 사망 후에는 시신 돌려줌도 거부

——산둥성 감옥에서 파룬궁수련생 우자쥔을 살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 보도) 산둥성(山東省) 옌타이(煙台) 라이저우시(萊州市) 파룬궁(法輪功)수련생 우자쥔(吳加俊.吳家俊,男.60대)은 2014년 11월 27일 지난(濟南)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그러나 감옥의 교도관들은 가족이 시신을 집으로 운구하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그는 우리의 사람임으로 시신을 가족에게 내줄 수 없습니다.”라고 뜻밖의 말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감옥에서 책임지고 화장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가족은, 우자쥔이 생전에 감옥의 박해로 병세가 위독하여 병보석을 요청한 바 있으나, 당시 감옥 측은, “생명에 위험이 있어야 석방할 수 있다.”라고 하며 거부했었다.

吴加俊
우자쥔(吳加俊)

우자쥔은 라이저우시 시유진(西由鎮) 우자좡쯔촌(吳家莊子村) 사람으로, 일 년 내내 전기제품 수리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1999년에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면서 대법의 ‘진선인(眞善忍)’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본분을 지키는 좋은 사람으로 되려고 노력했다. 그는 늘 다른 사람 돕기를 즐겨하여 컴퓨터와 프린터기 등은 무료로 수리해 주었다.

吴加俊和妻子儿子
우자쥔과 아내 그리고 아들

우자쥔은 2012년 3월 6일 라이저우 ‘610’ 두목 류징빈(劉景兵), 국가보안대대 경찰관 위즈빈(於智濱), 싼다오(三島) 파출소 경찰관 등 10여 명으로부터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당한 후 납치되어, 싼다오 파출소를 거쳐 뎬쯔(店子) 세뇌반에 감금됐다가 다시 라이저우(萊州) 구치소에 감금됐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가 납치당한 지 6개월이 지난 2012년 12월 말경에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원래 체중이 75kg이 넘는 건장한 체구였으나, 그동안 고문과 박해로 40~45kg밖에 되지 않는 허약한 모습이었다.

그는 2012년 12월 말, 라이저우(萊州) 법원의 불법적인 비밀재판에서 3년 형을 선고 받고, 2013년 1월 9일 산둥성(山東省) 감옥에 감금됐다. 소위 그를 감금한 체포영장에는 사건 담당자의 서명과 집행일시가 없었으며, 법원의 심리를 위한 재판개정장소와 날짜조차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았으며, 판결 결과까지도 통지하지 않았다. 또 사람을 언제 어디로 이송했는지도 가족에게 알려주지 않았으므로 알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여러 경로로 수소문하여 2013년 5월에 이르러서야, 우자쥔이 감옥에 감금된 지 20일 만에 건강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지난 경관병원으로 후송됐음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이 병문안하려고 했으나, 감시하고 있는 감옥 측에서 수차례나 난색을 보이며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우자쥔의 집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라, 지난으로 한 번 가려면 500위안(약 9만 원)의 여비가 소요됨으로 큰 부담이 되었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여러 차례 헛걸음하고 나서야 겨우 7월에 면회를 할 수 있었는데, 그때 이미 우자쥔은 감옥 측의 혹독한 고문박해로 심각한 심장병 발작으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다.

2014년 11월 18일은 산둥 감옥의 정식 면회일이었다. 우자쥔의 아내와 아들은 당일 일찍 면회를 신청하고 기다렸으나 오전 내내 면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면회가 다 끝나도록기다린 후에, 11감구역의 교도관 ‘정(鄭)’ 모가 하는 말이, “우자쥔은 심장이 좋지 않아 주사를 맞기 때문에 가족의 면회는 오후로 미루어졌다.”라고 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우자쥔이 무장경찰병원에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 씨의 아내가 감옥 측에 “병보석절차”를 수행해 달라.“라고 요청했으나 그 정 모라는 교도관은 “안 된다.”라고 거부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거의 죽게 될 위험한 상태가 아니라면 보석은 안 됩니다.”라고 했으며, “내가 전화를 걸어주면 당신들은 수시로 병원에 가서 면회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 씨 아내와 아들은 할 수 없이 날이 거의 어두워질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병원을 찾아가 면회를 하고자 했어도, 그들의 말로는 “반드시 감옥이 허락한다는 증명이 있어야만 된다.”라며 면회를 거부했다. 가족은 어찌할 방도가 없어서 다시 감옥으로가서 오후 3시 넘을 때까지 기다렸는데, 그들은 또 난색을 보이더니 단지 우자쥔의 아내에게만 면회를 허락한다는 증명서을 발급해줬다.

아내가 우자쥔을 면회하여 만났을 때, 우자쥔의 몸은 매우 허약했으며, 정신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다.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했는데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어서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우자쥔은 “감옥에서 거의 식사를 하지 못했으며, 간간이 식사한다고 했어도 식사량은 극히 소량이었다.”라고 했다. 가족은 우자쥔의 건강상태가 극히 위험함을 보고 “즉시 석방하거나 그것이 안 된다면 병보석절차라도 수행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감옥 측은, “사람이 죽게 되지 않는 한 석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11월 27일 지난에는 하루 내내 비가 그치질 않았다. 9시가 넘어서 우자쥔의 가족은 감옥의 전화연락을 받고 라이저우에서 지난으로 서둘러 갔으나 이미 오후가 되었다. 아내와 아들 그리고 친척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우자쥔은 사망하여 시신은 냉동고에 보관된 후였는데,여전히 죄수복을 입은 상태였다. 경찰 측에서는, 우자쥔이 2014년 11월 27일 오전 5시경 경관 총병원에서 사망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가족은 시신을 고향으로 운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관(官) 모라는 교도관에게 거부당했다. 그는 즉시 화장하겠다면서 “당신(가족)이 대답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강제로 화장처리 하겠습니다. 당신들은 일요일(30일)에 명세서를 가져와 골분을 받으시오.”라고 했다. 가족이 시신의 죄수복이라도 바꿔 입히라고 요구하자, 돈을 내서 사라고 했다. 11월 28일, 우자쥔의 시신은 (강제로)화장됐다. 성 감옥의 과장 가이(蓋) 모라는 자는 가족의 시신 운구를 거부하면서 뜻밖의 말을 했다. “그는 우리의 사람임으로 그의 시신을 가족이 운구해감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다만 감옥에서 책임지고 화장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자쥔은 과거 고질적인 위장병으로 여러 해 동안 심한 고통을 받았었다. 그러나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한 뒤부터는 정상으로 회복됐으며 모든 신체는 건강했다. 그는 악인들에게 납치되어 박해당하기 전에는 심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감옥 측은 “우자쥔이 심장병으로 사망했다.”라고 말했다. 바라 건데 정의로운 인사가 진상을 알려주기 희망한다.

문장발표: 2014년 11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30/3009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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