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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의 억울한 옥살이 당한 베이징 대학 석사, 다시 4년 6개월 판결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베이징 보도) 베이징 대학 석사 졸업생 쉬화취안(徐化全)은 파룬따파(法輪大法) ‘진선인(眞善忍)’ 수련을 견지했다가 3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과 8년의 불법 징역형을 당했다. 최근 입수한 소식에 따르면 또 4년 6개월의 불법 판결을 당했는데 현재 베이징 시청구(西城區) 구치소에 불법 감금되어 있다.

줄곧 그의 노모친은 쉬화취안이 박해당한 상황에 대해 경찰에게 속고 있는데 노인은 아직도 그가 미국에 있는 줄로 여기고 있다.

쉬화취안(남) 50세, 베이징 대학 석사, 예전에 베이징 중화인민공화국 국가발전과 개혁위원회에서 근무한 적이 있고 일본 기업 사장을 맡은 적도 있다. 99년 ‘7.20’ 후부터 파룬궁을 수련해 인생의 의의를 확연히 깨달았다.

쉬화취안은 2001년에 납치돼 1년의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당했다. 하이뎬(海澱)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은 쉬 씨에 대해 고문을 감행했다. 5~6명의 악독한 경찰은 그의 양팔을 끼고 그의 두 다리를 붙잡고는 라이터로 그의 왼쪽 가슴부위를 태웠는데 손바닥 크기인 흉터가 생겼고 유두 부위마저 이미 타서 없어졌다.

中共酷刑示意图:火烧炮烙

중국공산당 고문 설명도: 불에 달군 쇠로 살 지지기 고문(火燒炮烙)

퇀허(團河) 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된 기간, 쉬화취안은 강제로 옷이 완전히 벗겨진 채 뙤약볕에 놓여 졌는데 온몸에 물집이 생겼다. 퇀허 노동교양소 2중대의 악독한 경찰 저우(周)는 전기봉 3개로 쉬화취안에게 전기 충격을 가했다. 그리고 또 쉬 씨를 24시간 동안 침대판 위에 묶어놓고 바오자(包夾: 수감자로 이뤄진 내부감시자)에게 명령을 내려 그가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것으로 검토문을 쓰도록 강요했다. 구치소에서 쉬화취안을 담당한 죄수는 악독한 경찰이 지지하는 특수 허가를 받은 후 배후에서 특혜를 받았는데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욕설을 퍼붓고 모욕하며 쉬 씨를 괴롭혔다. 쉬 씨가 눈을 붙이는 것을 불허하기 위해 죄수들은 고무줄로 사납게 그의 눈, 얼굴 부위를 튕겼다.

酷刑演示:电棍电击

고문 재연: 전기봉으로 전기충격 가하기

2002년 11월 7일 오후, 타이양궁(太陽宮)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 예자청(葉嘉誠)은 형사경찰대를 거느리고 난방설비를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사오야오쥐싼(芍藥居三) 1층 9501호의 쉬화취안 집에 들이닥쳐 쉬화취안과 그의 전처 왕레이(王雷)를 차오양(朝陽) 구치소로 납치했다. 집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악독한 경찰은 인민폐 현금 5천 위안(한화 약 90만원), 가치가 150위안(약 3만원) 되는 우표를 가져갔다. 동시에 컴퓨터, 프린터와 외국어 학습용 라디오를 훔쳐갔다.

쉬화취안은 2002년 11월 6일에 8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 받았다. 사악한 공산당은 세뇌반을 조직해 쉬화취안의 아내 및 아들에 대해 세뇌를 진행했고 그의 아내 왕레이와 아들에게 극심한 압력을 조성해 결국 아내는 그와 이혼했다.

베이징 첸진 감옥에서 쉬화취안이 12분감금구역에 불법 감금된 후, 악독한 경찰 천쥔(陳俊)은 허위로 그에게 이 후베이(湖北)의 고향 친구를 인정하게 하겠다며 말로는 그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쉬화취안이 협력하지 않자 곧 ‘작은 방안’에 가두겠다고 위협하기 시작했다. 쉬화취안은 마음에 원한을 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진상 알리는 것을 통해 천쥔을 깨우쳐 주려고 생각했다. 그 후 쉬화취안은 여전히 천쥔에게 ‘작은 방안’에 갇혀 박해를 당했다. 2006년 1월, 쉬화취안은 신문에서의 별에 대한 한 뉴스에 관해 ‘과학자가 말한 것은 맞지 않다’는 말을 한 것 때문에 ‘바오자’에게 신고를 당한 후 ‘엄혹한 관리’ 박해를 당했다.

어느 한 번은 일하러 갔는데, 다들 모두 지쳐서 기진맥진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악독한 경찰 천훙빈(陳紅賓)은 또 엄한 소리로 쉬화취안이 일을 늦게 하고 또 잘하지 못한다며 그를 나무라며 훈계했다. 이때 쉬화취안은 일종 기분이 북받쳐 올라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됐다. 모두는 그가 지쳐서 운 줄로 알았는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이 무지하고 불쌍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악독한 경찰은 이렇게 오직 어느 수련생이 그들 안중에서 이른바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면 그들은 큰 처분, 작은 처분 등 온갖 방법으로 괴롭혔다. 게다가 또 그가 누구와도 말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또 누구도 그와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바로 이렇게 사악했다.

쉬화취안은 2010년 11월 6일에 출소한 후 어떠한 경제적 내원도, 거주할 집 도 없었다. 잇달아 얼마 되지 않아 쉬화취안은 2011년 3월 초에 베이징 지하철에서 납치돼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신안(新安) 노동교양소 안에서 쉬화취안은 장시간 단독으로 바오자에 의해 감금박해를 당했다. 2013년에 노동교양소가 해체됐다. 8월 8일, 쉬화취안은 신안 노동교양소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석방된 파룬궁수련생이다.

막 입수한 최신 소식에 따르면 쉬화취안이 재차 납치박해를 당해 4년 6개월의 불법 판결을 선고 받았다고 한다. 현재 날씨가 이미 추워졌는데 베이징 시청구 구치소에서 그는 단지 홑옷만 입고 있으며 수갑 족쇄를 차고 있다.

문장발표: 2014년 11월 1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11/3001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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