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성 보도) 2014년 9월 2일, 지린성 퉁화(通化)시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와 ‘610’(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기구)은 시산(西山) 세뇌반을 조직하고 각 구역 경찰에 지시를 내려 30여 명 파룬궁수련생 및 가족을 납치했다.
납치에 참여한 사람은 퉁화시 정법위, ‘610’, 공안국 국가보안, 둥창구(東昌區) 정법위, 국가안전국, 둥창 공안분국 형사경찰대, 특수경찰대, 얼다오장(二道江)분국 및 라오잔(老站), 퇀제(團結), 신잔(新站), 둥창(東昌), 광밍(光明), 환퉁(環通), 룽취안(龍泉) 등 각 구역 파출소 경찰들이다. 그들은 이른 새벽 3시가 넘어서부터 잠복 감시를 진행했는데 아침 6시경에 납치를 시작했다. 각 지역사회 직원들은 사전에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감시 및 납치에 참여한 후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
이번 세뇌반은 9월 2일부터 10월 18일까지 모두 3차로 나눠 진행됐다. 제1기는 9월 2일부터 9월 25일까지였는데 지린성 ‘610’과 퉁화시 창둥구 ‘610’에서 연합해 조직했고, 제2기는 둥창구 ‘610’에서 주최했는데 9월 26일에 시작해 10월 15일에 끝났다. 15일에 이르러 퉁화시 ‘610’에서 주관해 세뇌반을 해체했다.
9월 2일에 납치된 30여 명 파룬궁수련생 및 가족 중에서 13명 파룬궁수련생이 창류(長流) 구치소에 감금당했는데 그들은 자오리화(趙麗華), 장수화(張淑華), 리슈잉(李秀英), 딩리나(丁麗娜), 류샤오나(劉曉娜), 리슈훙(李秀紅), 인구이춘(尹桂春), 주야셴(朱亞先), 장차오빈(張朝彬), 두궈린(杜國林), 팡쩡더(逄增德), 산광둥(單廣東)이다.
그날 시산 세뇌반으로 납치된 파룬궁수련생들은 친슈리(秦秀麗), 허우칭화(侯慶華), 리잔우(李佔武), 리웨화(李月華), 자오구이화(趙桂花), 양번린(楊本林), 쉬훙쥔(徐洪軍), 취샤오페이(曲曉飛), 왕위수(王玉書), 왕리쥔(王麗君), 양위샤(楊玉霞), 왕수메이(王淑梅) 등 12명이다.
9월 2일 저녁, 왕위수는 몸이 좋지 않은 이유로 집으로 돌아갔다.
취샤오페이는 셋째 날에 벗어났다. 그 후 건물 동서 양측에 경보 장치를 설치했는데 사람이 드나들면 곧 경보 신호를 보낼 수 있었다. 세뇌반 주요 두목 쉐위량(薛玉亮), 먀오잉(苗英) 등은 허세를 부리며 취샤오페이를 다시 체포하겠다고 했다.
대략 보름이 됐을 때 두 명이 ‘전향’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성 ‘610’의 탕(湯)씨가 와서 검사했는데 이 두 사람은 또 세뇌반으로 끌려가 ‘검수’를 받았다. 이때 퉁화현 ‘610’은 퉁화현 잉터우부(英額布) 칭성촌(慶生村) 파룬궁수련생 장샤(薑霞)를 세뇌반으로 납치했다. 류허현(柳河縣) ‘610’은 일찍이 수련하지 않은 왕춘옌을 또 시산 세뇌반으로 끌어다가 3일간 가뒀다.
9월 27일, 류샤오나, 딩리나, 자오리화, 주야핑 네 명의 파룬궁수련생은 구치소에서 세뇌반으로 옮겨졌다. 9월 30일 두궈린, 인구이춘도 구치소에서 세뇌반으로 옮겨졌다.
10월 9일, 리슈잉이 구치소에서 세뇌반으로 옮겨졌다. 그는 건강 문제 때문에 몇 시간 후 가족이 데려갔다.
10월 18일, 가장 마지막 파룬궁수련생이 정정당당하게 정념으로 세뇌반을 떠났고 시산 세뇌반은 문을 닫았다.
이번 세뇌반에는 모두 20명 파룬궁수련생 및 일찍이 수련하지 않은 왕춘옌을 감금했는데 총 21명이다.
이른바 ‘610사무실’은 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1999년 6월 10일에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설립한 불법 기구로 나치의 게슈타포와 흡사하다. 각지 610 불법 인원은 ‘법제 교육’의 허울을 쓰고 불법 세뇌반을 사적으로 개설해 현지 파룬궁수련생과 노동교양소, 감옥에서 불법 감금돼 형기가 만료된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해 강제로 그들에게 마음을 어기고 믿음을 포기시키려고 시도했는데 이른바 ‘전향’이라고 한다.
시산 세뇌반 내외의 대체적인 상황
이 ‘610’세뇌반은 퉁화시 시산 샤오빈관산(小賓館山)에 위치했는데 전 시산 노동교양소(지금은 마약중독자 재활원으로 고쳤음) 동쪽의 한 주홍색 작은 건물로 건물 받침돌은 회색이고 그곳 동쪽은 훙치(紅旗) 초등학교다. 세뇌반 대문은 남쪽으로 열려 있었는데 붉은 철판을 밑에 받쳤고 검은 쇠창살로 된 양쪽으로 닫는 큰 철문이다. 서쪽 문에는 작은 철문이 열려 있는데 사람이 단독적으로 출입할 수 있다. 그리고 작은 문 근처 자물쇠에 가까운 위치에 감시하는 입구가 있다. 대문 양측에 세운 돌기둥 두 개에는 모두 감시카메라가 있었다. 그중 동쪽 문 양측에 세운 돌기둥 두 개에는 감시카메라가 있었는데 하나는 대문 밖을 향했고 하나는 대문 안 정원을 향했다. 그리고 서쪽 양측 돌기둥에도 감시카메라 한 대가 있었는데 작은 정원 안을 향하고 있다. 작은 정원 서쪽 쇠창살 양측에도 또 감시카메라가 작은 건물을 마주하고 있었다.
큰 철문에 들어서면 바로 정원을 마주한다. 정원은 길이가 대략 30미터, 너비는 대략 11~12미터였는데 정원 안은 마룻바닥용 타일로 깔았다. 정원 북쪽은 바로 대문과 함께 연결된 방이 4~5개 되는 작은 단층집을 마주하고 있다. 그 중 동쪽 벽 가까이에 있는 방은 다른 작은 방과 비교하면 특별했는데 야간 경비를 서는 직원 후(胡)씨가 거주하고 있었다. 방안에는 침대 하나, 책상 하나가 있었고 책상 위에는 감시카메라의 모니터가 있었는데 정원 안 구석과 건물 안 복도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액정 TV가 있었다. 이 작은 방 남쪽에는 작은 문 하나와 작은 창문 하나가 있고 서쪽에는 큰 창문이 하나 있다. 이 작은 방과 연결된 서쪽 단층집의 바로 중간에는 서로 붙은 두 개의 방문이 있는데 각각 주방과 요리사 휴식실이다. 문 가까이에는 각각 창문 하나가 있었는데 모두 비닐 창문이다. 이 단층집은 건물과 함께 연결되어 있고 서로 통해 있었다. 주방을 거쳐 직접 1층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주방의 뒤쪽 벽 위에는 또 작은 정원을 마주한 감시카메라가 있다.
세뇌반 본관은 바로 이 작은 정원 서쪽에 있다. 이 작은 건물은 마약 중독자 재활원의 낡은 건물로 모두 4층이었다. 1층은 절반이 지면 밑에 있다. 소식에 의하면 퉁화시 ‘610’은 이 세뇌반을 건설하기 위해 대략 70만 위안을 썼다.
이 작은 건물의 남쪽 양측은 높은 담장이었고 담벽 꼭대기에는 유리 조각을 꽂아 놨다. 서북쪽과 마약 중독자 재활원 사이에는 쇠창살이 있었는데 건물 북쪽은 마약중독자 재활원과 서로 맞닿아 있었다.
세뇌반 정원 서쪽의 쇠창살 중간에는 작은 쇠창살문이 있었고, 하나의 작은 통로가 있었는데 마약 중독자 재활원에서 세뇌반 건물 서쪽 문과 통했다. 정원 가까이에 있는 이 한쪽의 1층에는 3개의 창문이 있었고, 남쪽에서 북으로 가면 두 번째와 세 번째 창문 중간에 작은 문 하나가 있었는데, 이 작은 문은 1층 식당과 관통되어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작은 건물 남쪽에는 계단이 있었고 계단을 올라가면 너비가 2미터인 통로가 있었다. 통로에 들어가 대략 10미터를 가서 곧 북으로 굽어들어 다시 7~8미터를 가면 곧 이 작은 건물의 서쪽 문인데 역시 이 작은 건물의 정문이다.
서쪽 문에 들어가서 오른 편은 1층 식당으로 내려가는 복도였고, 왼쪽 편은 2층과 통하는 통로인데 통로 오른쪽은 흰색 강철로 만든 손잡이 난간이 있었다. 통로는 대략 길이가 4~5미터였고 그 다음은 몇 개 계단이 있다. 이 계단 입구를 마주한 벽 끝에는 감시카메라가 하나 있었다. 계단에 오르면 곧 2층 복도였고 복도에 들어서면 왼쪽 편은 연속 방 3개가 있었는데 첫 번째 방이 보위 인원이 있는 방이었다. 실내에는 카메라를 감시하는 감시기가 있었는데 야간 경비를 서는 작은 방 감시기와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세 번째 방에는 이번 세뇌반 주요 책임자이자 퉁화시 둥창구 ‘610’인원이 머물렀다. 그 후에 두 번째 방에는 중점적으로 감시 대상을 감금했다. 복도 끝에는 큰 방이 있었다. 계단에 올라 오른쪽으로 돌면 3층 계단에 오르는데, 계단 남쪽 편은 공공 화장실이다. 화장실 안에는 대걸레를 씻는 수조, 위생 설비, 세탁기가 있었고 안에 방에는 또 샤워기 헤드가 있고 또 그 안은 화장실이었다. 복도 끝은 큰 방 하나가 있는데 복도 양측 방문 위에는 각각 감시카메라가 전체 복도를 감시하고 있어 사각이 없었다.
3층 방 개수는 2층과 같았다. 단지 층계 남쪽 방이 침실이었을 뿐이다. 3층 맞은 편 계단
입구 벽 끝에는 마찬가지로 감시카메라가 있고 복도 양끝 방문 위에도 역시 서로 응시하는 감시카메라가 있었는데 2층과 다른 것은 3층 양쪽 끝 방 두 개가 모두 한 객실로 격리된 것이다. 객실 안에는 원형 모양의 작은 찻상이 놓여 있고 찻상을 에워싸고 의자 4개가 놓여 있는데 방문에 들어서면 윗부분에도 감시카메라가 하나 있었다. 3층 복도 북쪽 끝 방은 고급스러운 방인데 벽 위마저 스티로폼으로 감쌌다. 이 방안에도 모두 단독 화장실이 있었는데 단독적으로 전향시킴은 모두 이 방안에서 진행됐다. 공안이 불법적인 기록을 하는 것도 이 방안에서 했다. 2층에 3개 단칸방과 3층의 4개 단칸방의 배치는 기본적으로 마찬가지였다. 실내에는 침대 2개와 의자 2개가 있었고 또 작은 책상 하나, 옷장이 하나 있었다. 또 실내에 화장실이 있는데 침대 벽 위에 걸어놓은 액정 TV를 마주하고 있다.
4층의 배치는 2. 3층과는 같지 않았다. 층계에 오르면 왼쪽에 방 두 개가 있는데 첫 번째 방 화장실 안에는 목욕 시설이 있었으나 2, 3층의 작은 화장실 안에는 목욕 시설이 없었다. 4층 복도 양측은 큰 회의실 두 개가 있는데 회의실 방문 위에도 마찬가지로 서로 응시하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계단 입구를 마주하고 있는 벽 위에도 감시카메라가 있었다. 모든 계단 손잡이 위에는 모두 직접 천정과 통하는 흰색 철관으로 용접됐다. 열 수 있는 모든 비닐 창문은 밖으로 모두 흰색 철관으로 용접됐다. 건물 내 복도와 지하 1층 식당을 통하는 계단 위에 모두 합성수지를 깔았고 방안 내는 모두 복합재 마루였다. 1층 식당으로 들어가는 문과 건물 문이 철문인 외에 건물 내 방문은 기본적으로 짙은 갈색 나무문이다.
시산 세뇌반의 주요 박해 책임 부서 및 인원
퉁화시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부서기 겸 ‘610’ 주임 차오주청(喬九成)
퉁화시 전 ‘610’ 부주임 쉐위량(薛玉亮)
과장 자오수쥔(趙樹軍)
한 여성의 이름은 상세하지 않음
퉁화시 둥창구(東昌區) ‘610’ 직원:
주임 먀오잉(苗英)
직원: 징원(荊文), 장지원(張紀文), 류자오위(劉兆宇), 한 여성의 이름은 상세하지 않음
세뇌반 보위 인원: 둥창구 민원사무실의 쑤(蘇)씨, 차오(曹)씨, 친(秦씨모, 왕(王)씨 등 4명
기술 감청: 선쉐펑(沈雪峰)
문장발표: 2014년 10월 3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0/31/2996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