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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에게 계획 살해된 여성 파룬궁수련생들(1)

글/ 페이푸(飛瀑)

[밍후이왕] 중국공산당은 얼마나 많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해 살해했는가? 그 숫자는 통계하기 어렵다. 우리는 폭로된 사건 중에서 일부 파룬궁수련생은 중국공산당이 계획적으로 살해했음을 발견했다. 이 중에는 여성 파룬궁수련생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입을 막기 위해 감행한 계획살인

李淑花
리수화

2003년 9월 24일,지린성 위수(榆樹)시 페이잉가(培英街) 파룬궁수련생 리수화(李淑花)는 불법 감금된 남편에게 밍후이왕 자료 두 장을 보냈다는 이유로 납치됐다. 위수시 구치소 경찰 한 무리는 그녀 머리에 비닐 주머니를 씌우고 큰 바늘로 손가락 끝, 팔, 등, 앞가슴을 찔렀는데 그녀는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한 악독한 경찰은 리수화에게 “당신이 누구와 연락하며 자료 출처가 어디인지를 반드시 말하게 하겠어”라고 말했다. 리수화가 마음을 움직이지 않자 이 악독한 경찰은 주먹으로 미친 듯이 때려 안구가 튀어나오게 했다. 리수화는 폐부가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악인들은 두려워 급히 상부에 보고해 지시를 기다렸다. 상부에서는 입을 막기로 했다. 소식에 의하면 리수화는 결국 악인이 머리에 검은 비닐 주머니를 씌워 질식해 사망했다. 사정을 아는 한 공안 간부는 만약 그녀의 안구가 튀어나오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질식시켜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폭로했다.

리수화가 사망한 것은 악독한 경찰이 그녀를 심하게 구타해 초래된 것임이 분명하다. 만약 관례대로 처리한다면 그녀의 의료비는 어떻게 내겠는가? 한쪽 눈이 멀면 사회와 가족에게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들은 그녀를 계획적으로 살해하면 모든 일이 끝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구타로 죽으면 자살한 것으로 간주하라”는 장쩌민(江澤民)의 지령이 있었으니까.

죄악을 덮어 감추려고 수련생을 불태워 증거를 없애다

王华君
왕화쥔

2001년 4월, 후베이(湖北) 마청(麻城)시 바이궈진(白果鎭) 파룬궁수련생 왕화쥔(王華君)은 악도에게 연행돼 마청시 공안국으로 끌려갔다. 공안국에서 그녀는 구타 등 온갖 학대로 사경을 헤매게 됐다. 깊은 밤 경찰은 기절한 왕화쥔을 시청 옆 진차오(金橋) 광장으로 들고 가 불태웠다. 사실 그녀를 불태운 날 오후 1시 30분경 마청시는 이미 전 시에 계엄령을 내리고 차량을 통제했다. 이튿날, 시청 앞에서 한 파룬궁수련생이 분신자살했는데 얼굴이 전부 불타 신원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뉴스가 전 시내에 신속히 전해졌다. 그러나 한 목격자는 불이 막 붙었을 때 땅에 눕혀진 왕화쥔이 일어나려 몸부림쳤다고 말했다. 현장 경찰들은 그녀가 진상을 외칠까 극히 두려웠다. 그러나 당시 왕화쥔은 고문 학대로 사경을 헤맸기에 일어날 힘이 없었다. 불이 완전히 꺼진 후 사람들은 그녀의 몸 앞면은 불탔지만 뒷면은 불탄 흔적이 전혀 없으며, 게다가 그녀의 목 앞 부위와 뒷머리 아래 부위에 깊은 칼자국이 있음을 발견했다!

중국공산당 경찰은 왕화쥔을 불태워 죽이고도 분신자살이라고 주장했다. 불에 탄 왕화쥔의 깊은 칼자국을 보면 그녀가 치명적인 박해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후베이성 마청시와 지린성 위수시의 악독한 경찰들의 생각은 상당히 일치했는데, 모두 자신의 죄악을 덮어 감추기 위해 무고한 파룬궁수련생을 살해했다. 단지 마청시 경찰이 더욱 악랄해 수련생을 불태워 증거를 없애려 했을 뿐이다. 사실 목격자가 왕화쥔을 불태워 죽인 현장에 없었을지라도 중국공산당의 악독한 경찰은 둘러대기 어렵다. 왕화쥔은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게 납치된 그날 밤에 광장에서 불에 타 사망했는데 그녀가 어떻게 다시 광장에 갈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탈옥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히 경찰들에게 학대 받아 상처를 입은 후 불에 타 죽은 것이다!

농촌의 노년 부녀자가 계획적으로 살해되다

후베이 츠비(赤壁)시 츠비진 바바오다오촌(八寶刀村)의 농촌 노년 부녀자 류샤오롄(劉曉蓮)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국공산당 당국에 네 차례나 납치됐다. 2002년 6월 28일에는 큰비가 내렸는데, 츠비가오(赤壁高) 제1구치소 정보과장 차이진핑(蔡金平), 구치소 부소장 덩딩성(鄧定生)과 첸위란(錢玉蘭), 여성 감방의 교도관 쑹위전(宋玉珍)과 두 명의 죄수는 류 노인을 시 인민병원으로 납치했다. 경찰들은 족쇄와 수갑으로 그녀의 사지를 병상 네 귀퉁이에 채우고는 그녀에게 독극물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류 노인은 이목구비 7개의 구멍에서 출혈했고 두 귀는 폭발하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으며 입에서 내장을 토할 것 같았다. 소변은 핏덩이였다. 이후 악독한 경찰은 그녀가 틀림없이 죽을 것이라고 여겨 석방했다.

刘晓莲
류샤오롄

그러나 류샤오롄은 죽지 않고 사력을 다해 기어 일어나 밖에 나가 그녀에 대한 악인의 박해를 폭로했다. 소식이 공안 그곳까지 전해지자 그녀가 기어 일어난 이튿날 또 그녀를 납치했다.

2002년 12월 6일, 츠비시 제1구치소의 덩딩성을 우두머리로 한 경찰 여러 명과 죄수 네 명 등 18명이 함께 그녀를 잔인하게 괴롭혔다. 덩딩성은 오마분시(五馬分屍: 죄인의 사지와 머리를 다섯 마리의 말에 묶은 후 말을 몰아 잔혹하게 죽임)란 형벌을 생각해 냈다. 죄수 네 명이 노인의 사지를 붙잡고 덩딩성이 그녀의 머리를 붙잡았는데 이런 식으로 다섯 명이 다섯 마리의 말이 됐다. 다섯 명은 그녀의 몸을 세게 잡아당겼는데 노인의 음부가 찢기고 온몸의 골격은 소리를 내며 전부 탈구됐다. 악도들은 이런 식으로 노인을 괴롭혔다. 처음에는 허약한 그녀 몸에 무게가 25kg이나 되는 쇠고랑과 족쇄를 채워 허공에 매달아 놓고 구타했다. 거의 온종일 때려 노인은 기절했다. 노인이 정신을 차리자 덩딩성은 그녀의 목이 너무 길어 보기 좋지 않다며 그녀의 머리를 잡고 힘껏 밀어 넣었다. 그녀는 또 기절했다. 그래도 노인이 사망하지 않자 덩딩성은 무게가 25kg이나 되는 족쇄를 일주일간 채웠다.

2003년 4월 29일, 덩딩성은 또 악독한 경찰 한 무리와 함께 그녀를 혹독하게 구타했다. 그녀는 피범벅이 됐으며 사지, 발 복사뼈, 손목뼈, 가슴뼈, 꼬리뼈가 전부 부러졌다. 흉수는 그녀가 죽은 줄로 여기고 그녀를 화원 연못 가로 끌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또 완강하게 살아났다. 이성을 잃은 흉수들은 구둣발로 그녀의 사지를 밟고 비벼 관절을 전부 부러뜨렸다. 그녀의 손발은 살이 떨어져 뼈가 드러났으며 부러진 뼈는 밖으로 튀어 나왔다. 하지만 노인은 여전히 죽지 않고 또 살아났다.

酷刑演示:踩膝盖骨
고문 재연: 무릎 뼈를 밟다

류샤오롄이 박해받은 사실은 해외까지 보도돼 큰 파문을 일으켰다. 2004년 2월 4일, 유엔의 고문문제 특별조사관 테오 판 보번(Theo van Boven)은 류 노인을 위해 긴급 호소문을 발표했으며 유엔의 언론자유 특별보고관에게 긴급 연합호소문을 보내기도 했다.

2004년 2월 19일, 구치소 부소장 첸위란은 가죽 장화로 류샤오롄의 머리를 미친 듯 구타했다. 그녀의 두 눈과 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피가 마치 수돗물처럼 코와 입에서 뿜어져 나와 그녀의 온몸과 감방 솜이불을 적셨다.

해외 언론 보도와 호소는 악독한 경찰들에게는 극심한 두려움의 대상이다. 2004년 5월 29일, 류샤오롄이 구치소에서 들려 나갈 때, 한 악독한 경찰은 “만약 그녀가 죽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폭탄을 내보내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결국 병보석된 류샤오롄이 박해받은 사실은 계속 폭로됐다. 그녀가 감당한 박해가 너무 잔혹했기에 박해했던 악독한 경찰과 박해 지시자는 질겁했으며 그녀를 살해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츠비진의 악독한 경찰은 그녀가 진상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또 그녀를 츠비시 푸팡(蒲紡) 정신병원으로 납치했다. 류샤오롄은 납치 기간 동안 방법을 찾아 그녀가 정신병원에서 받은 박해를 전해왔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류샤오롄이며 67세다. 2006년 4월 26일 소굴에 갇혀 지금까지 3개월이 지났다. 악인들은 몇 차례나 내 몸에 상처를 입혔으며 그들에게 협력해 박해를 받지 말라고 했다. 나는 거부하면서 ‘정도(正道)는 절대 사도(邪道)에 협력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악독한 의사 장(張) 주임과 츠비진 정부 그리고 파출소에서는 거래를 했는데, 츠비진에서 6천 위안을 써서 나를 살해하려 했다. 악독한 경찰 장주임과 공범자는 고압 전기봉과 전기침으로 나에게 4시간 동안 전기충격을 가했으며, 아울러 젊은 남자 정신병자를 시켜 나를 모욕하고 침범하며 구타하고 욕했다. 그리고 독약을 넣은 음식물을 주입하고 링거를 맞혔는데 꼬박 하루 동안 5리터 가량의 독약을 주사해 내 생명을 해쳤다. 나는 이번 독주사로 온몸이 흑인처럼 검게 됐으며 꼬박 이틀 동안 기절했다. 나는 정신을 차린 후 갑자기 말을 할 수 없는 벙어리가 됐다.”

中共酷刑示意图:用电针电击
중국공산당의 고문 재연: 전기침으로 전기충격 주기

류샤오롄이 자술한 내용에서 그 악독한 의사 장주임이 왜 츠비진 정부 및 파출소와 거래해 6천 위안으로 그녀의 생명을 끝장내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의사는 츠비진 정부의 지시를 받았음이 분명했다.

류샤오롄 노인은 사망에 이를 정도의 박해를 여러 번 받았으나 그녀는 강인하게 살아났다. 츠비진 파출소의 경찰 허(何)씨는 예전에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치에 따른다면 류샤오롄은 벌써 몇 번이나 죽었어야 하는데 뜻밖에도 멀쩡하게 살아 있어. 이것은 정말 기적이야!”

류샤오롄이 오마분시 고문을 당한 사실은 해외 밍후이왕 등 언론에 보도됐다. 게다가 류샤오롄을 ‘영원히 지지 않는 연꽃’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중국공산당을 극히 두렵게 했다. 그래서 노인에 대해 음흉하고 악독한 계획살인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이와 거의 동시에 츠비진 위원회 부서기 저우신화(周新華)는 류샤오롄의 남편을 찾아 상의했는데 “영원히 지지 않는 연꽃이 이번에는 꼭 시들어 떨어질 겁니다. 만약 그녀를 죽여버리면 당신은 우리에게 장례비를 얼마나 요구할 겁니까?”라고 했다. 츠비진 정부가 류샤오롄 노인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작용을 했음이 분명했다. 그러니 정신병원 의사가 그들을 찾아 살인 가격을 상의한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후 2년 동안 류샤오렌은 푸이(蒲沂) 정신병원에서 몸에 손상을 심하게 입었다. 그녀는 주기적인 음식물 주입, 독극물 주입, 전기충격 등으로 전신 부종이 나타나 사경을 헤맸다. 악도는 그녀가 20여 일밖에 살지 못한다고 확신하고 2008년 9월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8년 10월 26일 오후, 류샤오롄은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68세였다.

노인이 막 세상을 떠나자 츠비시 610에서는 전화를 걸어 츠비진이 마침내 성공했다고 축하했으며 뻔뻔스럽게도 가족에게 “당신들 집은 다시 좋아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츠비시 610의 전화 축하는 무엇을 설명하는가? 바로 류샤오롄을 계획살인하는 과정에서 지도하고 독촉하는 작용을 그들이 했음을 스스로 폭로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계획살인이 중국공산당의 더욱 높은 부서인 610이 지령을 내린 사실을 배제하지 않는다. 류샤오롄 살해에 적어도 츠비시 610, 츠비시 제1구치소, 츠비진 정부, 츠비진 파출소, 츠비시 푸팡 정신병원 등의 기관이 참여했다.

(계속)

문장발표: 2014년 10월 2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0/25/2992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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