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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을 뉘우치고 선행한 탕아, 억울한 옥살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성 보도) 중국인에게는 ‘탕아의 뉘우침은 돈으로도 바꿀 수 없다(浪子回頭金不換)’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첫째, 탕아는 뉘우치기가 어렵다는 뜻이고, 둘째로는 탕아를 뉘우치게는 할 수는 있으나 진정으로 선행을 하게 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뜻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한 국가의 정권이 뉘우치고 선행을 하는 탕아에게 뜻밖에 좋은 사람이 됨을 허락하지 않고 심지어 감금 박해로 살해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지린성 화뎬(樺甸)시 훙스진(紅石鎭)에 살았던 바이징즈(白晶志)의 가족은 바이징즈가 2014년 5월 말에 궁주링(公主嶺)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는 확실한 소식을 들었다.

수년 간 바이징즈의 80여 세 노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들은 예전에 바른 일은 하지 않고 생활을 의지할 곳이 없었다. ‘아들이 나쁜 사람이었을 때에는 상관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지금은 대법을 수련해 좋은 사람으로 되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경찰에게 붙잡히다니?’

탕아가 뉘우쳐 선행을 하다

바이징즈를 언급하면 화뎬시 훙스 임업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예전에는 현지에서 유명한 탕아였다. 그는 큰돈을 벌기 위해 형제자매의 돈까지 빌려갔다. 하지만 곧 완전히 밑지고 마지막에는 출근도 하지 않고 빈둥거렸다. 성격도 아주 거칠고 급했으며 빚진 돈을 갚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말도 못하게 했다. 말만 하면 노발대발했고 심지어 듣기 거북한 말이나 욕설도 했다. 이 일 때문에 제수는 화가 나서 그의 집 가구, 유리창 등을 부서 버렸다. 이로 인해 가정 모순이 격화됐고 가정 가족 관계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이징즈는 아내에 대해서도 매우 각박했는데 심지어 자신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결정해버렸다. 늘 아내에게 손찌검을 했으며 집안 경제력도 곤경에 처했다.

1997년. 생각지도 못하게 바이징즈가 변했다. 출근하러 갔을 뿐만 아니라 또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근무했으며 어려운 일, 힘든 일마저 빼앗아 앞 다투어 했다. 집안 형제자매에 대해서도 예전처럼 대하지 않았고 또 아내를 관심하고 사랑할 줄 알았다. 어떤 때는 자신의 빚이 떠올라 눈물을 줄줄 흘렸다. 빚을 갚고 딸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그는 명예퇴직(근무 연한을 돈으로 계산해 한 번에 지불받고 퇴직함)을 해서 빚을 갚았다. 그리고 스스로 유타오(油条), 마화(麻花) 튀김을 배워 아내와 함께 아침식당을 차렸다. 그는 밤중에 일어나 일을 했으나 아내에게는 늦게 일어나게 했고 힘든 일은 모두 자신이 맡았다.

이 일체 개변은 모두 그가 파룬궁 수련을 시작해 ‘진선인(眞ㆍ善ㆍ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했기 때문이다. 직장 책임자와 동료는 그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안팎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을 보았다. 주변의 사람들마저 “바이징즈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의 변화는 ‘탕아가 뉘우쳤다’는 말로 형용하면 가장 적절하죠”라고 말했다.

파룬궁 수련은 ‘진선인’을 표준으로 한다. 무릇 진정한 수련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또 어느 국가나 민족 출신이든지 막론하고 신체와 정신적 경지에서 모두 큰 변화가 발생한다. 파룬따파는 수련자의 인생을 개변해 악한 자를 선량하게 변하게 하고 선한 자는 더욱 선량해지게 하며 도덕성을 향상시키고 선량한 마음을 지니게 한다. 수련자는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인식하고 내심에서 자신을 되도록 좋은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며 각자의 직책 중에서 이기적이지 않아 보편적으로 사회도덕을 이끌어 나간다.

납치돼 8년 판결을 당하다

불행하게도 그가 ‘진선인’을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 좋은 사람이 되려 하자 중국공산당(중공)은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시작했고 그는 3년 노동교양 박해를 당했다. 게다가 예전에 지린시 노동교양소 경찰에 의해 혹독한 구타를 당했으며 이로 인해 오른쪽 늑골이 부러졌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믿음을 개변시키지 못했다.

2010년 1월 11일, 얼다오(二道) 뎬쯔진(甸子鎭) 우자뎬(吳家店)의 중공 사당 촌서기 가오옌궈(高顔國)는 바이징즈 등 파룬궁수련생이 터우다오거우(頭道溝)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고 곧 터우다오거우툰 부녀회 주임 중펑잉(仲鳳英)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에게 이 사람들을 ‘진정시키라’고 말한 후, 얼다오 뎬쯔진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파룬궁수련생을 신고했다.

곧 얼다오 뎬쯔진 종합치안관리 사무실 추이광옌(崔廣顔)과 현지 파출소 소장 쑨이만(孫義滿)은 공모해 바이징즈 등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해 화뎬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했다. 바이징즈의 장사는 핍박에 못 이겨 중단됐고 수입원이 끊겨 생활은 다시 곤경에 빠졌다. 바이징즈의 80세인 노모는 “이것이 무슨 세상이지? 바른 것과 사악한 것을 구분하지 않는구나!”라고 말하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했다. 노인은 매일 추위를 무릅쓰고 시 공안국, ‘610’(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기구) 등으로 가서 아들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이유 없이 공갈 협박과 욕설을 들었다.

바이징즈의 가족은 변호사를 선임했다. 변호사는 법률에 근거해 자신의 직책을 행사하는 과정 중에서 국가보안대대의 무리한 방해를 받았다. 그들은 변호사의 문의에 대해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했다. 또 난폭하게 대하거나 불손하게 말하거나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화뎬시 국가보안대대에서는 변호사의 면회 요청을 거부했으며 이들은 또 터우다오거우로 가서 위증을 만들기 위해 대법자료를 문 위에 걸고 며칠 후 가짜 현장 사진을 찍다가 주민에게 발각되기도 했다.

2010년 5월 25~26일, 화뎬시 610과 지린시 610의 공모 하에 화뎬시 법원은 연속 2일 동안 비밀리에 재판을 열어 파룬궁수련생 4명에 대해 불법적인 판결을 내렸다. 중공 경찰은 파룬궁수련생의 변호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파룬궁수련생의 가족은 법원으로 상황을 문의하러 갔다가 경찰에게 불법 체포와 가택수색을 당했다. 재판 후에도 파룬궁수련생의 가족과 변호사에게 통지하지 않았다.

25일 오전, 바이징즈의 여동생은 불법 재판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법원에서 가족과 변호사에게 통지하지 않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이것은 분명한 위법임). 그녀는 법원으로 가서 자초지종을 물으려 했는데 법원 밖에는 각종 차량이 수 십대 있었고 많은 공안국 사람이 있었다. 또 문의할 방법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전혀 출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외부적인 사무를 처리하지 않는다며 그녀를 쫓아버렸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아무런 답변도 얻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인 26일, 바이징즈의 두 여동생은 함께 법원으로 갔다. 법원 밖 불법적인 무리들의 저지에 직면해 그녀 둘은 이치에 근거해 강력히 논쟁했다. 당시 그들과 대치한 사람은 국가보안과 610의 일부 사람이다. 그 후 이 사람들은 이 일을 분명하게 해석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 20여 명 경찰을 불러다가 강제로 그녀 두 사람을 밍화(明華) 파출소로 보냈다. 잇달아 이 불법적인 무리들은 또 이 두 여동생의 가족을 대상으로 불법 가택수색을 진행해 개인 물품을 강탈했다. 깊은 밤중이 되어서야 그 중 한 여동생이 풀려났다. 다른 한 여동생은 훙스 공안국 국가보안에게 훙스 구치소로 끌려가서 불법 구금을 당했다.

바이징즈는 8년 불법 판결을 당해 강제로 감옥으로 보내졌다. 감옥 측에서 수감을 거부했지만 석방하지 않고 계속 화뎬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했다.

억울한 옥살이 박해로 사망

2010년 말, 바이징즈는 궁주링 감옥 입감대에 불법 감금당해 매일 작은 걸상에 앉아 ‘학습’했다. 몸은 시달림을 당해 밤낮 모두 호흡이 잘 되지 않았다. 악독한 경찰 리웨이(李巍)는 책임이 두려워 바이징즈를 입원시켰다. 일을 관리하는 죄수 천쥔이(陳君義)는 암암리에 병원에서 다른 죄수에게 부탁해 바이징즈의 입원을 허락하지 않고 그날 입감대로 급히 돌아오게 했다. 천쥔이는 리웨이에게 되도록 빨리 바이징즈를 다른 곳으로 배치해 의외의 사태가 발생함을 피하도록 계책을 내놨다. 바이징즈는 캉푸(康復) 감금구역으로 배치돼 계속 박해를 당했다.

长时间罚坐小凳子
장시간 작은 의자에 앉히기고문을 가하다

궁주링 감옥 각 감금구역은 대대장, 교도원은 파룬궁수련생에게 층층이 보증책임제(管包負責制)를 실시해 각 과에 배치하고, 최종적으로 3~5명 죄수 바오자(包夾: 밀착감시원)가 한 수련생을 밀착감시를 하게 했는데, 어느 시간이나 장소를 막론하고 죄수 몇 명은 24시간 동안 엄밀히 한 수련생을 감시했다. 그리고 어떤 죄수는 암암리에 일거일동을 감시했는데 정말로 삼엄하고 공포적이었다. 감옥에서는 궁주링 감옥에 불법 감금돼 있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세뇌 ‘전향’을 진행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교육과에 ‘공견사무실(攻堅辦)’을 설립해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감시, 공갈 협박, 위협, 밀착감시, 구타와 욕설, 세워두기 고문, 전기 충격, 독방에 가두기, 고정침대에 올리기 등 일련의 박해 수단을 진행했는데 극히 잔인했다.

‘공견사무실’은 교육과 사무실 1층 서쪽 편 가장 안쪽에 있다. 복도 양측 벽에는 대법을 공격하는 각종 사악한 만화가 가득 걸려있었다. ‘공견사무실’의 문과 창문은 검푸른 천으로 엄밀하게 봉쇄됐고 실내 벽에도 대법을 공격하는 사악한 만화가 있었고, 칠판 게시판에도 대법을 공격하는 각종 선전용품이 가득 걸려 있었다. 땅바닥에는 20cm도 되지 않는 작은 의자가 놓여 있었으며 매일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대법과 대법 사부님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동영상을 방송해 강제로 파룬궁수련생을 세뇌시켰다.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해서는 강제로 세뇌를 진행했다.

中共酷刑示意图:吊铐
중공 고문 설명도: 매달기 고문

2012년 5월부터 8월까지 궁주링 감옥에서는 3개월 기한의 ‘공견사무실’을 조직해 폭력적인 전향을 진행했으며 바이징즈, 자오궈싱(趙國星), 푸훙웨이(付洪偉), 천롄둥(陳連東) 등 ‘5서(五書-수련포기 각서 따위: 역주)’에 서명을 거부한 파룬궁수련생 16명에 대해 광적인 박해를 진행했다. ‘전향반’은 교육과 2층에 설치되어 있었다. 교도관은 파룬수련생을 묶어 매달아 놓고 무차별 폭력 가하기, ‘고정 침대’에 묶어 전기봉으로 충격 가하기, 수면을 허락하지 않기, 24시간 동안 바싹 뒤따르며 감시하기, 일체 소식 봉쇄하기, 위협, 공갈 협박, 속임수, 구타와 잡아당기기를 결합하는 등 사악한 수단으로 잔혹하게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그중 사용한 일종 고문은 쇠로 용접한 4평방미터 우리를 사용했다. 철제 우리의 철근 사이 거리는 15cm정도로 사람이 윗면에 앉은 후 잠시 후면 곧 배겨서 매우 괴롭게 된다. 파룬궁수련생은 강요에 못 이겨 장시간 윗면에 앉았는데 또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움직이기만 하면 악도는 곧 무차별 폭력을 가하고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했는데, 전기봉의 길이는 50여 센티미터, 직경은 3~4센티미터다. 통상적으로 5~6개의 전기봉을 함께 사용했다.

 中共酷刑示意图:长期绑床并电击
중공 고문 설명도: 장시기 침대에 묶은 동시에 전기 충격을 가하기

‘전향반’의 주요 부하들은 감옥장 뉴궈성(牛國生), 개조 감옥장 류샹우(劉向武), 교육과장 리만장(李萬江), 부과장 선쉐빈(沈雪斌), 교도관 뤼촨바오(呂傳寶), 리징양(李景陽), 왕(王)모 씨, 위(余)모 씨(입감대 교도원) 및 죄수 5명 등이다. 뉴궈성, 류샹우는 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하면 3천 위안의 상금을 준다며 교도관들을 자극해 광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게 했다.최근 바이징즈의 가족은 바이징즈가 2014년 5월 말에 궁주링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는 확실한 소식을 들었다. 구체적인 상황은 이후 검증해야 한다.

문장발표: 2014년 10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0/12/2988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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