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성 보도) 9월 29일은 다롄(大連) 중산구(中山區) 법원이 재판으로 류신잉(劉新穎)을 박해한 날이다. 법원은 불법적인 재판을 10시가 넘을 때까지 지속했다. 아침에 날씨가 아주 좋았는데 10시가 넘어서자 갑자기 광풍이 세차게 불고 온 하늘에 안개가 자욱했으며 기온은 10여 도로 떨어졌다. 중국공산당(중공)이 횡포를 부리니 천지도 진노했다.
류신잉은 몸이 매우 허약해 걸을 수 없었는데 수갑과 족쇄를 차고 210병원에서 법정까지 경찰에게 직접 끌려 들어갔다. 그녀의 부친, 딸은 모두 방청을 금지 당했는데 말로는 한 사람은 연세가 많고 한 사람은 미성년자라며 그녀 남동생의 아내가 들어가는 것만 허락했을 뿐이다. 안에 앉은 것은 전부 그들의 사람이었고 주심 판사는 량융궈(梁永國)였다. 검찰관은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위성접시[신탕런(新唐人) 접수기]를 설치했고 몇 개를 설치했다는 증거를 낭독했다. 류신잉은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맨 마지막에 진술할 때 그녀는 자신과 남편 취후이(曲輝)가 수련한 경험과 변화, 요 몇 년 동안 감당한 박해, 가정에서 감당한 고난, 남편이 얼마 전 사망한 사실을 진술했다. 말은 짧지만 힘이 있어 눈물 나도록 감동적이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감동을 받았다.
류신잉은 다롄 산부인과 병원의 간호사로 다만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고 진실한 말을 했을 뿐인데 박해로 집과 가족을 전부 잃었다. 무엇 때문에 유죄라고 말하는가? 결국 재판은 대충대충 마치게 됐다. 류신잉의 건강 상황은 극히 나빴다. 혈압이 240인 상황에서 경찰차에 밀어 넣어져 야오자(姚家) 구치소로 납치돼 계속 불법 감금됐다.
류신잉은 예전에 행복한 가정, 남편과 딸이 있었다. 이 행복한 가정은 매우 빨리 중공의 폭력에 의해 파괴되고 가족이 사망했다. 2000년 1월, 남편 취후이와 그녀는 베이징으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러 갔다가 경찰에게 납치와 구타를 당했고 9천 7백 위안의 벌금을 부과 당했으며 또 두 부부 모두 3년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당시 딸은 겨우 한 살이었다. 남편 취후이는 다롄 교양원의 악독한 경찰에게 폭력적인 구타를 당해 사지가 마비되고 경추가 부러졌다. 그는 몸져누웠으며 13년 후인 2014년 2월 19일에 세상을 떠났다.
류신잉의 행복했던 가정
박해로 사지가 마비된 남편 취후이
남편이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공 불법 요원은 또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두 차례나 류신잉을 납치했고 그녀에 대해 판결을 내려 감옥에 넣으려 시도했다.
1. 남편 사망 후 재차 납치, 가택 수색, 강탈을 당하다
남편 취후이가 세상을 떠난 지 1개월이 지나 시신이 아직 식기도 전에 류신잉은 2014년 3월 21일에 거듭 경찰에게 납치, 가택수색과 강탈을 당했다.
중공 고문 설명도: 뒷짐결박(背銬)
3월 21일 아침 8시경, 류신잉은 외출하다가 건물 아래에서 지키고 있던 다롄시 중산구 슈웨가(秀月街)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 위양(于洋)은 이웃들 앞에서 흉악하게 류신잉에게 뒷짐결박을 채웠다. 4명 경찰과 2명의 협조 경찰은 류신잉을 다롄 구치로소 보냈다.
구치소에서는 류신잉이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했다는 이유로 수감을 거부했다. 경찰들은 류신잉을 들여보내기 위해 구치소에서 2시간 넘게 끌었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점심 후 그들은 류신잉을 다롄시 중산구 법원으로 끌고 갔다. 판사 량융궈는 류신잉에게 거주지 감시 수속을 밟으려 했으나 류신잉은 서명을 거부했다. 경찰들은 또 류신잉을 슈웨가 파출소로 끌고 갔다.
오후에 슈웨가 파출소 경찰은 류신잉을 집으로 끌고 가서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 가택 수색에 참여한 사람은 또 중산구 국가보안 쑨톄(孫鐵) 등 3명과 다롄시 국가보안 몇 명 등 모두 10여 명이다. 노트북 컴퓨터 3대(아이가 학습에 쓰는 것 포함), 핸드폰, USB, 대법서적 등 대량의 개인 물품을 강탈했다.
이번 납치는 류신잉이 ‘다롄 위성접시 설치 사건’(신탕런 위성접수기를 설치한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당한 법정 심리사건) 소송에 참여해 변호사와 접촉한 것 때문에 경찰들이 실시한 보복 행위다. 하지만 결국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해 류신잉을 납치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2. 판결 받아 감금됨에 직면
2014년 9월 23일 저녁 무렵, 류신잉의 15세인 딸은 하교해 집으로 돌아와서 집안이 온통 어질러지고 컴퓨터, 대법책, 법상 그리고 다른 물품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엄마도 어디로 갔는지를 몰랐다. 아이는 즉시 경찰이 가택 수색을 진행했음을 알아채고 저도 모르게 엄마가 또 붙잡혔다고 통곡했다. 아이는 사방으로 가서 문의해서야 엄마가 경찰에게 210병원으로 납치돼 보내졌음을 알게 됐다.
‘다롄 위성접시 설치 사건’이 국제 사회에서 폭로된 후 중공 다롄 당국은 몹시 두려워하며 되도록 빨리 사건을 종결하고 불법 판결을 내려 파룬궁수련생을 감옥에 보내려 했다. 베이징 변호사단이 사법에 개입한 후 이 사건은 각 방면에서 증거가 가짜고 고문으로 박해했으며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한 것 등 법률을 위반함이 있음을 발견했다. 중산구 법원은 공개적으로 이 사건을 심리했으나 각 방면에서 온갖 방법을 다해 저지하고 탄압했으며 친척과 변호사에 대해 보복했다.
다롄 경찰에게 구타로 부상을 입은 청하이(程海) 변호사, 청하이 변호사가 다롄 검찰원에 고소하다.
중산구 법원은 2013년 4월 12일 이후 차례로 적어도 열한차례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12명 베이징 정의로운 변호사가 차례로 변호에 참여했다. 변호사가 전체 사건의 사법 절차가 위법임을 지적하자 법정은 변호사를 쫓아냈다. 청하이 변호사는 법정 경찰에게 구타당해 부상을 입었다.
마지막에 중산구 법원은 불법적으로 베이징 변호사를 전부 사퇴시켰다. 게다가 다롄의 변호사에게 압력을 가해 그들이 파룬궁수련생을 위해 무죄변호를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외지 변호사를 마중하고 보내준 둥쉬안(董選)을 납치했는데 억울한 사건과 허위 사건 및 조작된 사건을 만들기 위해 길을 닦은 것이었다. 중산구 법원은 이미 11명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불법 판결을 내렸다.
류신잉이 불법 감금된 파룬궁수련생의 친척을 도와주고 변호사를 마중하고 보내주었다는 이유로 법원 측은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중산 국가보안, 슈웨가 파출소에 시켜 소송에 참여한 류신잉을 납치했다. 다롄 중산 법원은 9월 29일 오전 9시 반에 류신잉에 대해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류신잉의 남편 취후이는 전 다롄 하이강(海港) 검수인이었다. 2000년 1월, 취후이와 아내 류신잉은 베이징으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러 갔다가 천안문 광장에서 경찰에게 폭행당한 후 다롄강(大連港) 구치소, 푸란뎬시(普蘭店市) 정신병원에 갇혀 박해를 당했다. 2000년 4월 13일, 당시 31세인 취후이는 다롄시 노동교양원에 갇혀 고생스러운 노역, 고문을 당했다. 그 기간 고생스러운 노동, 고문을 당했고, 반복적으로 구타당해 사지가 마비됐으며 경추가 부러졌다. 그리고 생식기는 전기 충격으로 문드러지고 전신이 마비됐으며(얼굴 오관을 움직이는 외에 어디도 움직일 수 없었음), 전신이 크게 붓고 여러 곳의 피부가 갈라 터졌다. 호흡할 수 없어 기관을 절개해 호흡기를 꽂았고 오줌을 배출할 수 없어 배뇨관을 꽂았으며 대변을 가리지 못하고 전신 여러 곳에 욕창이 생겨 사경을 헤맸다. 이로부터 집에서 몸져 누워있으면서 13년 동안 아픈 고통과 항쟁했다. 류신잉은 매일 단지 2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으며 줄곧 취후이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성들여 간호하고 함께 했다.
류신잉의 15세 딸은 지금 날마다 텅 빈 집을 지키고 있는데 언제쯤에나 어머니와 모일 수 있을지를 모르고 있다.
3. 다롄 주민이 큰 소리로 외치다, “다롄 판사, 당신은 죽고 싶은가?”
2014년 1월부터 8월까지 다롄시에서 이미 34명 파룬궁수련생이 불법 판결을 당했다. 올해 중산구 법원의 사악한 판사 량융궈는 이미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한 11명 파룬궁수련생을 판결해 감옥에 보냈다. 이번에 중공 판사는 또 독수를 류신잉에게 뻗쳤다. 다롄시의 한 여성은 분개해서 “다롄 판사, 당신은 죽고 싶은가? 공산당이 당신에게 돈을 얼마나 주는가? 언젠가 당신들은 파룬궁을 박해한 그 악행들을 똑똑히 말해야 할 것이다. 이 날이 곧 다가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1) 정법위 서기 후자겅 급사하다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음은 천리다. 판사 량융궈의 두목, 류신잉을 박해함을 주모한 다롄시 중산구 정법위 서기 후자겅(胡家耿)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것 때문에 2014년 7월 25일에 병으로 급사했다. 당시 나이 겨우 52세였다.
후자겅
2) 다롄시 중급인민법원 원장 리웨이가 보응을 받아 조사를 받다
다롄시 중급인민법원 원장 리웨이(李威)가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의 재산을 점유하고 인위적으로 억울한 재판 등 악행을 저지른 사실이 언론에 폭로됐다.
2014년 7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다롄시 중급인민법원 원장 리웨이는 심각하게 위법행위를 한 혐의를 받아 현재 조직의 조사를 받고 있는데, 이것도 역시 리웨이가 파룬궁을 박해한 악행의 결과다. 리웨이는 임직 기간에 적극적으로 파룬궁수련생 박해에 참여했다. 2014년 1월부터 7월까지만 해도 다롄 법원은 파룬궁수련생 31명에 대해 판결을 내리고 감옥에 보냈다.
3) 판사, 검찰관이 번갈아 가며 사망
2009년 7월, 다롄시 간징쯔구(甘井子區) 검찰원의 검찰관 2명이 파룬궁 박해에 참여해 보응을 입어 백혈병에 걸렸음이 밍후이왕에 폭로됐다. 한 검찰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디 두 사람뿐인가요, 몇 사람이나 됩니다. 백혈병뿐이 아니라 간암이 가장 많습니다. 검찰원에서 한 사람이 죽으면 법원에서 한 사람이 죽고, 또 법원에서 한 사람이 죽으면 검찰원에서 한 사람이 죽습니다. 게다가 매우 정확합니다.”
선행과 악행은 각각 응분의 보답과 대가가 있다. 누가 악행을 저질렀으면 그가 갚아야 하는데 이것은 천리다! 누가 벗어날 수 있는가?
문장발표: 2014년 10월 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0/4/2985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