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충칭 보도) 2014년 9월 16일 오후, 충칭(重慶) 사핑바구(沙坪壩區)법원은 세 번째로 민영기업가 류다오취안(劉道權)에 대해 불법 법정 심리를 진행해, 그에게 8년의 불법 판결을 내렸다. 지금 류다오취안의 가족은 상소를 제출하려 한다.
올해 44세인 류다오취안은 2013년 4월 9일, 사핑바구 국가보안지대장 리더밍(李德明) 등의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충칭 사핑바 법원은 11월 6일과 11월 15일에 두 차례나 류다오취안에 대해 불법으로 개정했다. 류다오취안의 가족은 베이징에서 정의로운 변호사 두 명을 선임해 이치에 맞고 근거가 있는 무죄변호를 했다. 당시, 불법 재판에 참여한 법정 심리 인원은 대답할 말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휴정을 선포했다. 당국에서는 줄곧 석방해 주지 않으려 하며, 거의 1년 가까운 사이에 세 차례나 재판을 열었다.
류다오취안은 학자 가문에서 출생했다. 올해 98세인 연로하신 외할아버지는 높은 학식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덕망이 높으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신봉하는 서당의 훈장이었다. 70세인 부친은 퇴직 교사이고 모친은 선량하고 정숙하다. 류다오취안은 1991년에 중등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전 충칭 무선전9공장(無線電九廠)에 배치받았는데, 근무한 지 근 3년 만에 공장이 도산돼 실업자가 됐다. 1998년에 그와 몇 명 동창은 동업해 ‘충칭 스카이 주형 유한회사(重慶思凱模具有限公司)’를 창립해 제1 책임자가 되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뒤, 그는 ‘진선인(眞真善忍)’의 법리에 따라 행동했다. 그는 신용을 지키면서 일부 외자 대형 합작기업과 합작하여 자동차 부속품, 오토바이 부속품 등을 만들었는데, 합작기업으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아 그의 회사는 믿음직한 기업으로 불렸다. 직원 몇 명으로 시작해 오늘날 백여 명인 중형 기업으로 발전하기까지 짧은 몇 년 사이에 억만 위안이 넘는 세금을 냈고, 또 사회를 위해 일자리까지 해결해 주었다. 그는 직원에게 관심을 두고 도와주었으며, 직원의 월급 지급을 질질 끈 적도 없다. 직원들은 자신들의 속마음을 그와 얘기하고 싶어 했다. 그는 개인의 득실을 전혀 따지지 않았고 무슨 이익이 있으면 먼저 다른 사람을 고려해 주주들로부터 깊은 존중을 받았다.
2013년 4월 9일 오후, 류다오취안은 사허바 란시 구디(蘭溪谷地) 주택단지에서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사허바구 공안분국 국가보안지대장 리더밍(李德明) 등에게 불법 체포를 당했고, 그 후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당했다. 5월, 가족은 사허바구 검찰원에서 류다오취안에 대한 불법 체포령을 받았다. 가족은 두 명 베이징 변호사를 선임했다. 변호사와 가족의 노력을 거쳐 지금 검찰원은 이미 기소를 철회했다. 그러나 국가보안지대의 리더밍은 오히려 늦도록 석방해 주지 않고 있다.
2013년 11월 6일과 15일, 충칭 사핑바 법원은 두 차례나 류다오취안에 대해 불법으로 개정했다. 류다오취안의 가족은 베이징에서 정의로운 변호사 두 명을 선임해 이치에 맞고 근거가 있는 무죄변호를 했다. 2013년 11월 15일에 두 번째 불법 법정 심리 과정 중, 판사 류치(劉琪), 셰촨장(謝傳江)은 단지 검찰관 왕광밍(王光明)이 발언하는 것만 허락했다. 그리고 변호사가 발언할 때 여러 차례 저지했는데, 심지어 변호사를 법정에서 쫓아내려 했다. 변호사는 판사의 행위가 위법한 범죄행위임을 지적하며, 또 만약 판사가 그들을 쫓아버리면 그들은 즉시 고소하겠다고 경고했다.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15년 동안, 그것은 손에 통제하고 있는 공검법사(공안, 검찰, 법원, 사법)계통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억울한 사건을 만들었는지, 이 숫자는 방대하여 통계하기 어렵다. 파룬궁수련생 사건에 대한 심리를 책임진 많은 판사는, 변호사가 빈틈없는 무죄변호를 진행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나는 공산당의 말을 듣는다’고 하거나 혹은 ‘파룬궁 사건은 우리에게 결정권이 없고,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조직임)에 결정권이 있다.’ 등의 말을 하며 둘러댔다. 이를테면, 판사는 파룬궁수련생에게 형기를 판결하는 것이 위법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중공의 폭정 하에 어쩔 수 없이 그것의 도구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음은 천리이다. 악보는 이미 시작되었다. 왕리쥔(王立軍), 보시라이(薄熙來), 리둥성(李東生), 저우융캉(周永康) 등 박해 원흉은 이미 악보를 입었다. 그들은 모두 직접적이거나간접적으로 파룬궁에 대한 박해에 참여해 손에는 모두 파룬궁수련생의 선혈이 가득 묻어 있다. 중공이 힘껏 체제 내의 인원들이 악보를 입은 소식을 봉쇄했을지라도, 해외 매체에 기록된 것만 해도 파룬궁을 박해한 것으로 인해 악보를 입은 사례가 2만여 건이나 된다. 판결 당해 감옥에 들어간 사람, 급병에 걸려 사망한 사람, 벼락에 맞아 죽은 사람, 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 그리고 암에 걸리고, 관직을 잃고, 감옥에 들어가고, 또 병고에 시달리고 집과 가족을 다 잃었는데, 악보를 입은 자는 고통 속에서 자신이 파룬궁을 박해해 가져온 악과를 감당하고 있다. 이 한 장면 한 장면의 악보는 사실 미혹 속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생각해 보도록 충분히 깨우쳐 준다.
수련생에 대한 모든 박해가 얼마나 암울하고 잔인했던지 막론하고, 언젠가는 끝나는 날이 있다. 막을 내리고 진상이 세상에 드러날 때, 일체 죄악은 모두 정의, 도덕, 양심의 판결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발급한 수색영장, 체포증, 판결서 등 위에 서명한 것이 바로 박해 참여자가 범죄를 저지른 증거이다.
문장발표: 2014년 10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0/3/2984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