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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 진저우 취웨이 여사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진저우시 구타구 러안리 73호에 살고있는 93세의 노인 쩡사오칭(曾昭清)은 자리에 누웠다. 온 얼굴에는 근심과 고뇌로 신세가 처량했다. 그는 문 여는 소리만 들리면 눈을 떠서 문어귀를 바라보았다. 노인은 효성 지극한 며느리 취웨이가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해 집으로 돌아와 자신을 보살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노인은 이렇게 좋은 며느리가 이미 영원히 인간 세상을 떠난 것을 모르고 있다.

曲伟

취웨이(曲偉)

2014년 8월 26일 이른 아침, 중공(중국공산당) 당국에 6차례나 납치를 당해 박해를 받은 진저우(錦州) 파룬궁수련생 취웨이는 진저우시 제1병원 내분비과 병실에서 두 눈을 감고 조용히 세상을 나갔다. 향년 57세였다. 병원 검사를 거쳐 취웨이가 세상을 떠날 때 혈당 지표는 17이었고 폐 부위는 이미 문드러졌으며, 신장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취웨이가 마지막으로 납치 박해를 당한 것은 1년 전이었다. 2013년 7월 22일 그녀는 수련생과 함께 사람들에게 중국전통문화를 널리 알리는 션윈CD를 배포할 때, 진저우시 공안국의 악독한 경찰 리메이산(李媚珊), 바이닝(白寧) 등에게 납치당했다. 진저우 구치소에서 감금당한 기간, 취웨이는 3일 동안 매달기 고문을 당했다. 이후 당뇨병 증상이 나타났다. 보름 뒤에 풀려날 때, 두 발은 이미 문드러지고 혈당 지수는 18.7이였다.

酷刑演示:吊铐

고문 재연: 매달기 고문

2014년 8월 21일, 취웨이는 당뇨 합병증 증세가 나타나 의식을 잃고 진저우시 중심병원에 입원했다. 친구가 그녀의 집으로 가서 그녀의 건강상태를 물었을 시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취웨이가 입원했다”고 했다. 말을 다 마친 다음 노인은 곧 통곡했다.

가족은 여태껏 노인에게 실제 정황을 알리지 못했고, 노인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다년간 줄곧 몸져누웠던 시아버지의 병 수발을 늘 취웨이가 들었기에, 노인은 조금만 불편하면 곧 ‘취웨이야, 취웨이야’라고 그녀를 불렀다. 아들이 집에 있어도 노인은 여전히 아들을 부르지 않았다. 취웨이는 시아버지가 그녀를 부르기만 하면 바로 노인에게 달려왔다. 그녀는 매일 노인에게 대소변을 받아주고 노인을 깨끗이 씻어드려 실내에는 어떤 불쾌한 냄새도 없었다.

취웨이는 국가 2급 요리사였다. 그녀가 만든 반찬은 맛이 있어 노인은 특별이 맛있게 먹었다. 취웨이의 정성스런 보살핌 하에 노인의 신체는 안정되고 정신은 맑아졌다. 몸져누워 스스로 처리할 수 없었지만 매우 즐겁게 살았다. 이렇게 좋은 며느리가 영원히 떠나갔다.

취웨이는 1958년에 출생했다. 생모가 병을 앓았기 때문에 어릴 적에 다른 사람에게 보내졌다. 그의 양모 야오구이펀(姚桂芬)은 진저우시 구타구(古塔區) 남쪽 거리에 살았다. 이 85세 고령인 노인은 일생 동안 출산을 하지 못해, 취웨이를 양녀로 키우는 수밖에 없었고, 남편 또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지금 노인은 나이도 많고 손발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평소에 모두 취웨이가 노인의 수발을 들었다. 취웨이는 또 늘 어머니에게 맛있는 것을 해드렸다. 현재 이 노 모친에게도 유일했던 착한 딸이 이미 영원히 그녀를 떠난 것을 모르고 있다. 이 고독한 노인은 어떻게 이 비참한 사실을 감당하겠는가!

취웨이는 1999년 3월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녀는 진저우시 원림(園林)관리처에 근무했었다. 그녀가 국가 2급 요리사였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시 직속기관 단위 식당에서 근무했다. 취웨이는 엄격하게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으로 자신을 엄격히 하여, 종래로 국가의 식품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았다. 아들이 무엇을 먹고 싶어 하면, 그녀는 모두 돈으로 샀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뒤, 당시 국내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국, 신문에서는 파룬궁에 대해 하늘땅을 뒤엎을 듯이 유언비어를 날조해 모함했다. 취웨이는 다른 2명의 수련생과 함께 택시를 타고 성(省)으로 청원하러 갔다. 1999년 9월, 그녀는 스스로 원래 단위로 돌아가겠다고 신청을 했다. 1999년 10월 11일, 그녀는 수련생과 함께 현지 공원으로 가서 연공을 했다가 시 유치장에 감금됐다. 취웨이는 단식을 하여, 셋 째 날에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대법과 사부님께서 비난을 받고 모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취웨이 자신은 파룬궁수련생으로, 파룬궁이 사회와 가정, 다른 사람에 대해 모두 매우 이롭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땅히 진상을 설명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녀는 수련생과 함께 청원 편지를 썼다. 2000년, 인민대표대회 기간에 그녀는 다른 3명의 수련생과 함께 헌법이 국민에게 부여한 권리에 따라, 베이징으로 가서 청원 편지를 건네려고 했다. 톈안먼에 막 도착했을 때 경찰차가 사이렌 소리를 내면서 그녀 네 사람을 에워싸고 톈안먼 파출소로 납치했다. 당일 베이징 주재 진저우시 사무실로 보냈다가, 다음날 바로 진저우시 유치장으로 이감시켰다. 45일 동안 불법 감금을 당한 뒤에야 취웨이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녀가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단위에서는 그녀에게 대법을 모독한 전시판을 보게 했고, 또 그녀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했으나 취웨이는 그들에게 협력하지 않았다. 단위 책임자는 “당신이 파룬궁을 수련한 이유로, 우리는 모두 선진 단위로 평가받을 자격이 없게 되었다”고 원망 섞인 어조로 말했다. 2000년 6월 1일, 진저우시 원림 관리처의 불법 관원은 개인 이익을 위해 취웨이를 공직에서 해고시켰다. 악독한 당의 경제적 박해에도 취웨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파룬궁 진상자료를 프린터 하여 속임을 당한 고향 어른들에게 배포했다.

중공 사당의 거짓말을 분명히 밝히고, 세인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기 위해, 취웨이는 2001년 10월 어느 날 다시 톈안먼 광장으로 갔다. 그날 오전 9시 경, 광장에서 한 관광단이 왔는데, 취웨이는 신속하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와 파룬 도형이 인쇄된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그리고는 머리 위에 높이 받쳐 들고 혼신의 힘을 다해 ‘파룬따파하오, 우리 사부님의 결백하심을 돌려주고, 대법의 결백함을 돌려주세요. 파룬따파는 천고의 억울함입니다!’라고 높이 외쳤다. 그녀는 마침내 그녀 마음속의 그 오랜 동안 기다렸던 마음속에서 우러난 말을 했다. 악독한 경찰들은 벌떼처럼 몰려들어 강제로 잡아당겨 그녀를 경찰차 안으로 끌어넣었다. 취웨이는 “저는 당신들을 따라 가지 않겠습니다. 저는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계속 외쳤다. 악독한 경찰은 다짜고짜 그녀를 첸먼(前門) 파출소로 보냈다. 경찰은 그녀를 심문하기 시작했으나 취웨이는 진술을 거부했다. 저녁 7시가 넘어 취웨이는 베이징에서 45km 떨어진 화이러우현(懷柔縣) 구치소로 보내졌다. 화이러우현 공안국에서 그녀에 대해 심문을 진행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녀는 구치소에서 연공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탕위민(唐玉民) 등 몇 명 악독한 경찰에게 구타당했다. 9일 뒤, 취웨이는 부정맥, 고혈압과 위장병 등 증상이 나타났다. 경찰들은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부득이 취웨이를 석방하는 수밖에 없었다.

2004년 여름, 취웨이는 다시 진저우시 링허구(凌河區)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됐다. 이후 시 구치소로 보내졌는데, 취웨이는 거듭 단식으로 불법 감금에 항의했다. 14일 뒤, 그녀는 리셰장(李協江) 등 악독한 경찰에 의해 노동교양소로 보내졌다. 그러나 몸 상황 때문에 선양(瀋陽) 마싼자(馬三家) 교양원에서는 수감을 거부해 그녀는 돌아왔다.

중공 사당의 광적인 탄압에 직면해 취웨이는 다른 파룬궁수련생과 마찬가지로 쓰러지지 않고 믿음을 굳건히 지켰으며 계속 정의와 양심을 외쳤다. 2010년 10월 26일, 취웨이는 거듭 진저우시 공안국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돼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선양 마싼자 노동교양원으로 보내졌다. 이 인간 지옥에서 취웨이는 심신에 극심한 손상을 입었다. 집으로 왔을 때에 사람은 이미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었다.

이때 취웨이의 90세인 시아버지는 이미 생활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었다. 건강이 조금 회복된 뒤, 취웨이는 시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노인을 시중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노인을 깨끗이 모셔서 이웃에게 칭찬을 받았다.

가정을 잘 돌보는 동시에, 취웨이는 계속 진상을 명백히 알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중공 사당의 죄악을 폭로했다. 2013년 7월 22일, 그녀는 다른 두 명의 수련생과 함께 션윈 CD를 배포했는데, 진저우시 구타구 공안분국의 악독한 경찰에게 발견되었다. 악독한 경찰은 시 국의 악독한 경찰에게 알려주어 신속히 세 사람을 납치했다. 구치소 안에서 교도관은 그녀에게 수갑을 채워 매달았다. 3일 동안 학대를 당한 뒤, 그녀는 당뇨병 증상이 나타났는데, 이 후 두 발이 문드러졌다. 보름 뒤, 취웨이는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두 명의 수련생 저우위전(周玉禎)과 왕옌추(王彥秋)는 모두 4년의 무고한 판결을 선고 받았다. 지금 두 사람은 모두 랴오닝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다.

당시 시아버지는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자 흥분되어 울었다.

이번에 취웨이는 영원히 세상을 떠나갔다. 지금까지도 노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며, 또 며느리가 여전히 병원에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는 다시는 효성이 지극한 좋은 며느리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문장발표: 2014년 9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9/3/2968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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