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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형을 선고받았던 대학 강사, 또 불법 체포령 받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보도) 파룬궁(法輪功) 수련생 멍판취안(孟凡全)은 2014년 3월 13일 출근 중에 악경(사악한 경찰)에게 불법적으로 납치된 후 4월 18일 탕산(唐山) 루베이(路北)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멍판취안은 이미 2006년에도 불법적으로 7년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는데, 당시 재판을 담당했던 법관은 “정권이 바로 법이다!”라고 광적으로 소리를 질러댔었다. 멍판취안은 출소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또다시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의 시도로 불법적인 재판을 받게 될 처지에 놓여 있다.

멍판취안은 원래 허베이(河北) 이공대학 경공업학원의 교수로, 1994년 말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책임감 있게 성실히 근무하였으므로 학생들로부터 호감을 받고 있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학교직원의 전언임)에게 학비를 도와주기도 하여 교직원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사람, 좋은 교수로 평이 나 있다. 중공(중국공산당) 사당이 1999년 7·20에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으나, 그는 (대법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며 중공과 타협함을 거부함에 따라 중공으로부터 거듭 박해당하여, 여러 차례 납치, 감금,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2006년에는 불법적인 재판으로 7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러므로 멍판취안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공산당에게 박해당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깊은 동정을 표시화면서, 사당이 좋은 사람을 박해함에 대해 격분하고는 있지만, 감히 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불법적인 구류, 노동교양처분, 폭력적인 ‘전향’

1999년 9월, 베이징으로 가서 파룬궁의 진상을 위한 청원을 했다는 이유로 중공에 납치되어 보름 동안 구류처분을 당했고, 구류기한이 끝나자 다시 형사처분으로 사건을 이첩, 10월에 탕산시(唐山市) 제1구치소로 옮겨졌다. 구치소에 감금된 후 온갖 박해를 받았는데, 감금되자마자 전신에 10여 대야의 냉수를 끼얹고, 식사량도 제한하여 배를 골리게 했다. 또 그들은 믿음을 포기시키려고 온갖 핍박을 가했는데, 교도관은 10여 명의 죄수에게 지시하여 8, 9시간 동안이나 혹독하게 구타하여 사경을 헤매게 했다. 그런 후 탕산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는 2천 위안의 금품을 갈취하고, 3개월 동안의 월급지급을 중지시켰으며, 3개월 이상 감금시켰다.

멍판취안은 2000년 10월 납치돼 탕산시 제1구치소에 감금됐는데, 20여 일 동안 10kg이나 되는 족쇄에 채워졌고, 2001년 1월 불법적인 1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탕산시 허화캉(荷花坑) 노동교양소에 감금되어 폭력적으로 ‘전향’을 강요하는 강제세뇌를 당했다.

세뇌반에 감금당한 18개월 동안, 아이는 이웃이 돌봐주는 형편이었다

2002년 7월, 허베이 이공대학 경공업학원의 선량하지 못한 직원이 허베이로(河北路) 파출소 경찰관과 결탁하여, 멍판취안을 불법적으로 납치하여 세뇌반에 감금시켜 18개월 동안 박해를 가했다. 그 기간 멍판취안의 월급지급을 중지시켰는데, 세뇌반 감금 중의 생활비로 쓴다는 명목으로 강탈한 것이다. 당시 멍판취안의 아내도 노동교양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당해 있는 상태였으므로 돌볼 사람이 없는 그들의 9세 된 아이는 이웃이 돌봐줄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였다.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하고, 변호사는 압력을 받아 수임을 포기하다

2006년 4월 18일, 천훙(陳紅)을 우두머리로 한 루베이 분국에서는 허베이 이공대학 경공업학원에 들이닥쳐 멍판취안을 납치했다. 그런 후 가택수색을 감행하여 2만 위안(350만 원 상당) 이상의 금품을 강탈해 갔다. 펑룬구 국가보안대대 경찰관은 멍판취안에게 고문을 가하며 자백을 강요했는데, 쇠의자 위에 묶어놓고, 비닐 주머니를 씌워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고문을 수차례씩 반복했다. 더구나 그의 아내를 납치하겠다고 공갈·협박까지 했다. 또한, 멍판취안의 가족은 탕산의 변호사를 선임하여 사건을 맡겼는데, 변호사는 가족 앞에서 탕산사법국에 전화를 걸어 통화하더니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변호사 수임료를 가족에게 돌려주며 사건을 맡을 수 없다고 했다. 변호사가 어떤 압력을 받았는지를 가족은 알 수 없었다.

법관의 광적인 외침, 정권이 바로 법이다!

루베이구 검찰원 류수리(劉樹利)는 법정에서, ‘‘×교를 이용해 법률실시를 파괴한 죄’로 멍판취안을 기소했다.”라는 요지의 기소 의견을 밝혔다. 그러자 멍판취안이 주심 법관 류위만(劉鈺滿)을 향해 “내가 어느 법률 조항의 법률 실시를 파괴했습니까?” 하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 법관은, “뭐가 법인가? 정권이 바로 법이다!”라고 말했다. 류위만은 또 괴상망측하게 멍판취안의 변호사를 향해 “당신도 그와 마찬가지입니까? (즉 파룬궁수련생을 가리킴)” 하고 위협조로 물었다. 그 후에 루베이 법원은 멍판취안에게 불법적으로 7년형을 선고했다.

7년의 억울한 옥살이, 사경을 헤매며 요행히 살아남다

2006년 10월 말, 멍판취안은 지둥(冀東)감옥 2지대(二支隊)로 이송되어 우선 독방에 갇혔다. 독방은 가로 2m, 세로 1m, 높이가 5, 6m인 작은 방으로, 천장에 작은 창이 하나 나 있는데 위에서 사람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구멍이었다. 그 구멍으로 무슨 물건을 넣어주는 통로로 사용했다. 바닥에는 습기로 축축한 이불이 있었다. 처음 감옥으로 이송돼 온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이런 독방에 가두고 먼저 소위 ‘5서(五書)’라는 것을 쓰라고 강요했다. 만약 즉시 쓰지 않으면 고문을 가했는데 벽을 향해 세워두고 잠 안 재우기를 하면서 혹독한 구타를 가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사람의 의지가 무너지게 한 후 강제로 전향하도록 하는, 즉 믿음을 포기하도록 하는 목적을 달성시키려는 것이다. 멍판취안은 이런 고문박해를 당하면서 한때 정신이 흐리멍덩해지기도 했다. ‘연공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써야 독방을 나올 수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3개월 동안을 버티었었다. 독방을 나온 후 강제 노역에 투입됐는데 엄청난 체력소모를 감당해야 하는 중노동이었다.

멍판취안은 정신을 차린 뒤에 자신이 잘못했음을 의식하고, 이른바 “자신이 써낸 모든 것을 폐기한다.”고 성명했다. 그러므로 다시 교도관에 의해 독방에 갇혔다. 이번 고문은 좀 특이했는데 모기와 이에게 물리게 하는 고문을 가하기도 했는데, 뙤약볕에 쪼이기, 연속 나흘 동안 의자 위에 묶이기 등등이었다. 마침 계절은 7월의 무더운 여름 날씨라 낮에는 운동장 뙤약볕을 쪼이고, 저녁에는 포도 넝쿨 틀 아래에서 모기에게 물리는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2006년 10월 말부터 2개월 넘는 동안에 세 차례나 그런 독방에 갇혀 고문 박해당했다. 7년형의 억울한 옥살이로 머리칼은 희어지고 치아는 흔들렸으며 체력은 쇠진해서 몸을 지탱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무도하게 공직에서 해고, 파출소는 위협과 공갈로 교란하다

2013년 4월, 출소 후 직장(전 허베이 이공대학 경공업학원 – 현재는 허베이 연합대학 경공업학원으로 개칭됨)에 도착 복귀보고를 했다. 그러자 학교 측은, 2006년 12월에 이미 공직에서 해고됐음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해고 결정서가 본인에게 전달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해고 결정을 집행한 것이다. 그는 수차례 학교 책임자 허우둥시(侯東喜)를 찾아가 복직을 요구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1999년 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할 때 경공업학원에서도 여러 차례 멍판취안(孟凡全)을 박해하는 데 참여했다. 그에게, 믿음을 포기하지 않으면 귀가시키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여러 사람이 에워싸고 공격하며 세뇌하려고 했고 또 협박하거나 이익을 내세워 회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수업권을 박탈하고 목욕실의 청소, 도서관의 잡일 등을 시키면서 월급을 삭감시켰다. 결국, 세뇌반과 박해를 위한 연합작전을 감행하면서 월급지급을 중지시켰다.

멍판취안은 출소 후 귀가한 뒤 파출소에서 신분증 발급을 위한절차를 밟다가 또 공갈·협박 등 난감한 상황을 맞게 됐는데, 구역담당 경찰관 추이위(崔宇)는 ‘보증서’를 쓰도록 핍박하는 한편 답방하러 가겠다고 위협했다. 2013년 5월 23일, 루베이분국, 룽둥(龍東) 파출소 악경은 멍판취안의 집을 급습하여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감행했는데, 가족이 이유를 물었을 때 이 무리는 “답방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멍판취안이 1999년 7월 이후 불법적으로 중공에 감금당한 누계 기간은 10년이 넘는다. 그런데 지금 또 한 차례 불법적인 형사재판을 받게 될 처지에 놓여 있다.

허베이 이공대학에서 멍판취안을 박해하는 데 참여한 사람은 학교 총부(總校)서기 류윈정(劉允正), 교장 가오야춘(高雅春), 서기 천즈민(陳志敏), 장광원(張廣文), 사무실 주임 장샹쉰(張向勛), 보위과장, 현임 서기 허우둥시(侯東喜) 등이다.

룽둥 파출소에서 멍판취안을 납치하는 데 참여한 경찰관은 자오젠난(趙劍南), 추이위(崔宇) 등이다.

문장발표: 2014년 7월 1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7/19/2948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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