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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고문 수갑이 형구로 되다

글/운검(雲劍)

[밍후이왕] 수갑은 수갑 고리, 쇄량(鎖梁), 련주(鏈柱,), 열쇠 구멍, 연접련(連接鏈) 5개 부분으로 조성된, 본래는 사람의 인신자유를 제한하는 보통 기구로, 이 외에는 너무 많은 용도가 없다. 그러나 중공(중국공산당)의 악독한 경찰은 오히려 진정한 좋은 사람을 박해할 때, 수갑을 잔혹하게 좋은 사람을 학대하는 형구로 여겼다.

手铐

수갑

법률은 경찰에게, 법에 따라 경찰 기구를 사용하며 고의적으로 인신 상해를 조성하면 안 된다고 요구했다. 경찰들도 모두, ‘수갑을 너무 꽉 채우면 안 된다. 너무 꽉 채우면 손목 부위 혈액이 막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갑을 채움은 느슨하고 알맞아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훈련’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중공의 법률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는 것인데, 법률을 짓밟는 것은 그 사악한 본성이 결정한 것이다.

중공의 악독한 경찰이 수갑을 형구로 삼을 때, 수갑을 채우는 방식이 같지 않은 것으로 인해 형식이 다양하고, 고통의 정도가 같지 않은 학대 수법이 파생되었다. 예컨대 수갑으로 사람의 두 손을 등 뒤에 짊어진 것을 뒷짐결박(背銬)이라고 부르는데, 등에 짊어진 정도와 수갑을 채운 방법이 같지 않음으로 또 다베이카오(大背銬), 솽베이카오(雙背銬) 등 일반적인 뒷짐결박에 비해 고통이 몇 배인 학대 수단으로 변화되었다.

본문 이곳에서 주요하게 말하는 것은, 악인이 힘을 쓰거나 외력을 사용함을 통해 수갑을 점점 꽉 채우는 것인데, 금속의 쇠고랑이와 수갑에 채워진 사람의 피부와 살, 골격이 마찰되고, 조여져 눌리고 잡아당겨진다. 그 후과는 피부와 살에서 피가 나고 피범벅이 되거나, 혹은 혈액 유통이 막혀 손가락이 검어지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픈데, 이것으로 수련생의 몸에 상해를 입혀 매우 고통스러운 지경에 처하게 했고, 또 후유증을 남겼다. 이런 고문은 주요하게 수갑 흔들기, 수갑 밟기, 수갑 잡아당기기(들어 올리기, 늘이기), 수갑 집기(조이기), 수갑 매달기(걸기)를 포함한다.

수갑 흔들기: 수갑을 채운 기초에서 끊임없이 수갑을 흔들다

수갑은 흔들수록 꽉 채워져 살 속까지 깊이 파고 들어가며, 손목의 피부가 찢기고 살이 터져 피부와 살이 한데 뒤엉켜져 있다. 통상적으로 첫째는 손수건으로 수갑 중간을 감아 되돌아와서 손에 잡고 전신의 힘을 다해서 수갑을 흔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수갑으로 손목을 꽉 채워놓고, 손목뼈를 잡고 힘껏 돌리고, 왔다 갔다 흔드는 것이다.

2000년 10월 25일, 장자커우시(張家口市) 파룬궁수련생 장중리(張仲利, 여)는 거듭 대법을 실증하러 베이징으로 갔는데 도중에 가로 막혔다. 전 51로(五一路) 파출소 소장 덩젠민(鄧建民)은 장중리의 등을 발로 밟고 수건을 수갑 고리 위에 감아 잔인하게 수갑을 흔들었으며, 한쪽 발로 장중리가 수갑을 찬 손목 위에서 발을 굴렀다. 이어서 다른 한 손 위의 수갑을 위로 올려 잔인하게 발로 굴렀는데, 수갑은 전부 살속까지 파고 들어갔다……

허베이(河北) 화이라이현(懷來縣) 투무향(土木鄉) 투무촌 농민 옌하이(閆海)는 2002년 10월 30일에 납치당했다. 화이라이 공안국과 형사경찰대의 악독한 경찰들은 수갑을 흔드는 고문으로 옌하이를 괴롭혔다. 바로 끈을 수갑 위에 맨 다음, 악인들이 힘껏 뒤로 끈을 잡아당기고, 앞뒤에서 2명의 악인이 호랑이 의자를 흔들었는데 수갑은 흔들릴수록 점점 압박되어 옌하이의 살 속까지 깊이 파고 들어갔다. 동시에 악인이 끊임없이 그와 호랑이 의자를 흔들어놓아, 사람은 아픔으로 기절할 수 있었다. 이런 고문이 심각할 때면 사람의 골관절은 잡아당겨 져 불구로 된다. 옌하이는 두 손목이 잡아당겨 져 피부가 찢기고 살이 터져 한데 뒤엉켜졌다.

이 외에 변칙적인 수갑 떨기 고문은, 수갑을 관절 위에 채워 손가락을 비틀기, 수갑을 걷어차기, 수갑을 구타하기 등이다.

헤이룽장(黑龍江) 이란현(依蘭縣) 파룬궁수련생 장주후이(張久慧)는 손가락을 비틀린 고문을 당했다. 수갑을 관절 위에 채워 살 속까지 조여들었는데, 뼈가 배겨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악독한 경찰이 아래 위로 움직이며 함부로 손가락을 비틀 때면 몹시 고통스러웠다. 지금도 손 위에는 상처가 남아 있다.

手铐卡在关节胡乱掰手指
수갑을 관절에 채워 함부로 손가락을 비틀기

수갑을 밟은 결과는 수갑이 살 속에 파고 들어가 붉게 부어오르고 문드러졌다.

2002년 10월, 허난(河南) 쉬창시(許昌市) ‘610’ 악도 먀오중카이(苗中凱)는 혹독하게 수갑을 29세인 파룬궁수련생 자오젠잉(趙建營)의 발목 위에 채워, 수갑이 깊이 살 속까지 파고 들어가게 했다. 그런 다음 먀오 모는 또 발로 수갑 위를 사납게 밟았는데, 자오젠잉은 발목이 부러지는 듯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전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 공기 압축기 공장 엔지니어 장윈훙(蔣雲宏)은 2005년 7월 22일에 신진(新津) 세뇌반으로 납치당했다. 악인은 매우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그의 손을 뒤로 의자 위에 채워놓고는, 머리칼을 잡고 머리를 힘껏 뒤로 잡아당겼다. 게다가 발로 힘껏 그의 두 손에 채워진 수갑을 밟았는데, 그는 두 손이 간간이 극렬하게 아팠고, 손목은 매우 빨리 붉게 부어오르고 문드러졌다.

2000년 2월, 펑둥쥔(彭棟君)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베이징의 공안인원에 의해 불법 체포를 당해 퉁량(銅梁) 구치소로 돌려 보내져 37일 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그 기간, 펑둥쥔은 ‘진선인(眞善忍)’의 믿음에 대해 견지했다는 이유로, 파룬궁을 박해함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전 퉁량 공안국 국장 천원(陳文, 이미 악보를 받았음), 과장 천밍하이(陳明海, 이미 악보를 받았음) 등은 몹시 화가 났다. 그들은 20여 명 공안인원을 핍박해 펑둥쥔에 대해 모진 고문을 가했다. 게다가 그의 두 손을 뒤로 채우고, 머리 큰 가죽 구두로 잔인하게 두 손을 밟았는데, 그녀는 두 손에 후유증이 남게 되어 일 년이 넘어도 힘을 쓰지 못했다. 동시에 그들은 또 펑둥쥔의 집에 대해 샅샅이 뒤지며 철저하게 조사하여, 모든 개인 재물을 깡그리 강탈했다.

酷刑演示:踩铐
고문 시연
수갑을 밟기(수갑을 채운 기초에서 발로 수갑을 밟는다)

수갑 잡아당기기, 수갑 들어 올리기, 수갑 늘이기: 수갑을 채운 기초에서 힘껏 잡아당기거나 수갑을 들어 올리거나, 혹은 외력을 빌어 늘이기

이런 고문의 결과는 두 손이 수갑에 조여져 마비되어 검은 자색을 띠거나 혹은, 수갑을 잡아당길수록 압박되어 피부가 벗어지고 피가 나며 살 속까지 파고 들어갔다.

2012년 9월 5일, 헤이룽장 훙싱룽(紅興隆) 관리국 장촨(江川) 농장 파룬궁수련생 멍판리(孟繁荔)는 집에서 갑자기 칭룽산(青龍山) 세뇌반으로 납치당했다. 세뇌반에서 두 명의 졸개는 그녀를 사람이 없는 대청으로 납치해서 그녀의 두 손에 수갑을 채워 따로따로 두 개의 의자 위에 묶어놓았다. 의자 위에는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의자를 힘껏 극한까지 늘이여 강제로 그녀를 쭈그려 앉혔다. 졸개들은 그녀를 책상 밑에 밀어 넣었다가 또 끌어냈으며, 또 수시로 그녀의 두 손을 움직여 수갑이 더욱 꽉 조여지게 했다. 멍판리는 심장이 마치 찢어질 듯이 아프고, 두 손은 수갑에 조여져 마비되고 심한 고통을 느꼈으며, 혈압이 급격히 올라가고 두 다리가 시큰시큰 쑤시고 아팠다. 고문은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2000년 7월 14일, 상하이(上海) 파룬궁수련생 저우룽뱌오(周榮彪)는 베이징에 들어가서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러 청원하러 갔다가, 베이징 톈안먼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에게 야만적인 구타를 당하고 납치돼 베이징 주재 상하이 사무실로 보내졌다. 이튿날, 상하이 ‘610’ 요원에 의해 납치돼 돌아가 쉬후이구(徐匯區) 구치소에 30일 동안 갇혔다. 구치소에서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악독한 경찰 딩쥐안(丁雋)은 바닥에 눌러놓고 두 손을 뒷짐결박으로 채웠으며, 또 발로 등을 밟은 동시에 수갑을 위로 들어 올렸다. 두 손은 조여져 검은 자색을 띠었고 엄지손가락은 1년 동안 마비되었다.

酷刑演示:踩腿挑铐子

고문 시연: 다리를 밟고 수갑을 들어 올리다

2011년 10월 10일, 우둥성(吳東升)은 칭룽산 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두 명의 졸개는 우둥성을 다른 한 방안으로 끌고 가서 우둥성의 두 손을 양편으로 곧게 늘였다. 그런 다음 수갑으로 양쪽의 쇠침대 가장자리 위에 채워놓고는, 또 양쪽으로 늘여 그로 하여금 서 있지도 쭈그려 앉을 수도 없게 했다. 이런 고문을 당한 모든 사람은 모두 감당해 낼 수 없었다. 시간이 길어지면 수갑은 잡아당길수록 조여져 살 속까지 파고 들어가, 피부가 벗어지고 피가 났으며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두 다리는 쭈그려 앉은 시간이 길면 부어오르고 마비되며, 위 속은 뒤집혀 구토가 나서 토할 것 같았는데, 심지어 어떤 사람은 여러 차례 기절했다.

酷刑演示:抻铐
고문 시연
수갑 늘이기

수갑 조이기, 수갑 집기: 수갑을 힘껏 손뼈까지 집어 채우기

2000년 겨울, 광둥성(廣東省) 잔장시(湛江市) 천줘이(陳卓頤)는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란 현수막을 펼쳤다는 이유로, 벌 떼처럼 몰려든 경찰에게 구타당했다. 그 후 베이징시 인근의 방산(房山)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그녀를 핍박해 이름과 주소를 말하게 하려고, 심문하는 기간에 두 손에 수갑을 채우는 고문을 가했다. 먼저 두 손을 교차해 뒤로 비틀어놓아 허리를 곧게 펴지 못하게 했다. 그런 다음 다시 수갑으로 힘껏 손뼈를 집었다(수갑을 조였는데, 그 후에 몇 사람이 한나절이나 열어도 열지 못했음). 그런 다음 또 다른 한 수갑으로 이 수갑을 잡아 들어 올려 쇠 의자 위에 걸어놓았다. 당시 팔과 손은 즉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으나, 악독한 경찰은 여전히 구두로 힘껏 수갑을 걷어찼고, 손저울 추로 수갑을 때렸는데, 순식간에 그녀는 참기 어렵게 아팠다. 이렇게 8시간 동안 채워져 있었다. 맨 마지막에 두 손의 모세혈관마저 파열되었고, 피는 이미 통하지 않아 두 손마저 검어졌으며(수갑을 열 때, 수갑을 찼던 부위는 이미 깊이 파고 들어갔음), 오른손 바닥은 이미 지각을 잃었다.

수갑 걸기, 수갑 매달기: 수갑을 채운 기초에서 다시 걸어놓거나 매달기

만약 수갑을 채운 뒤 다시 ‘걸어놓으면’, 고통이 무수한 배수로 증가된다.

수갑을 채우는 방식에서 말하면 등 뒤에 채워 매달기(背銬吊掛)와 똑바로 채워 매달기(正銬吊掛) 구별이 있고, 발끝이 땅에 닿는 방식에서 말하면 또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기(雙腳離地)와 발끝이 땅에 닿기는 구별이 있다. 그리고 등 뒤에 채워 매달기는 똑바로 채워 매달기에 비해 또 몇 배로 고통스럽고,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기는 발끝이 땅에 닿기에 비해 몇 배로 고통스럽다. 만약 매달 때 또 끊임없이 흔들면(매달고 그네뛰기(吊銬盪秋千)라고 부름), 곧 몇 배로 고통스럽다.

카이핑(開平) 노동교양소에서 허베이(河北) 첸시현(遷西縣) 상업국 퇴직 직원 장루이잉(張瑞英)은 농구대 위에 발은 땅 위에 닿지 못한 채 매달려 있었다. 수갑에 가시가 달려 있었는데, 잠깐 지나자 곧 살속에 박혀 들어가 움직일수록 더욱 조여져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그녀는 몇 시간 동안 채워졌다가 풀려났을 때, 손목은 피범벅이 되었고 손은 이미 지각이 없게 되어 잡아도 아픔을 몰랐다. 이러한 박해 속에서 그녀는 피골이 상접하게 되었고, 온 머리는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변했다. 손목의 피 흔적은 몇 년이 되어서야 사라졌다.

酷刑演示:抻铐
고문 시연
등 뒤에 채워 매달기 고문(背銬吊掛)

만약 두 손을 대자형으로 벌려 매달기를 진행하면 ‘큰 괘에 올리기(上大掛)’로 되며, 사람은 찢어질 듯이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매우 고통스럽다. 이런 ‘큰 괘에 올리기’는 매우 잔혹한 일종 고문으로, 수갑은 칼처럼 손목 살 속을 깎으며 들어가는데, 20분도 되지 않아 두 팔은 못 쓰게 된다.

酷刑演示:背铐吊挂
중공 고문 설명도
매달기 고문

예컨대 헤이룽장성 하얼빈시(哈爾濱市) 완자(萬家) 노동교양소에서는 파룬궁수련생의 두 손을 등 뒤에 채워 끈으로 묶은 뒤, 지면에서 3미터 높이로 떨어진 스팀 파이프 위에 매달았다. 파룬궁수련생의 두 팔은 등 뒤에서 곧게 펴지고 어깨 부위는 관절이 거꾸로 되어, 전신의 중량은 팔 부위와 손목 부위에 놓여져 두 팔은 찢어져 내리는 것처럼 극렬하게 아팠다. 수갑은 살 속에 박혀 들어가 근육을 끊어놓아 손목은 마치 칼로 끊는 것처럼 아팠다. 손가락 사이에서 어깨까지 전체 팔은 불 속에서 타는 듯이 극렬하게 아팠다. 팔은 검은 자색으로 변했다. 이 고문의 고통 정도는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고문당한 파룬궁수련생은 왕왕 7~8개월 동안 지각이 없으며, 팔은 2년이 넘어도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없다.

2008년, 뎬쯔(店子) 세뇌반에서 악독한 경찰은 산둥성(山東省) 라이저우시(萊州市) 투산진(土山鎮) 베이좡촌(北莊村) 파룬궁수련생 판위쥔(泮玉軍)을 대자형으로 벽 위에 매달았다. 악독한 경찰들은 판위쥔의 두 다리는 묶고 두 손은 따로따로 채워놓아 전신의 중량이 두 팔의 손목 부위에 놓이게 하고는, 마치 그네를 뛰는 것처럼 이러저리 밀었다. 이 때문에 위쥔은 손목 피부가 찢기고 살이 터졌다……

본문에서는 단지 중공 고문인 수갑 흔들기, 수갑 밟기, 수갑 잡아당기기(들어 올리기, 늘이기), 수갑 집기(조이기), 수갑 매달기(걸기)에 대해 다듬고 귀납한 것이다. 선량한 사람들은 중공의 사악한 정도를 상상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중공은 선량한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이런 유형의 고문을 감행할 때, 왕왕 흔들고, 집기, 밟기, 잡아당기기 등은 연속적이다. 게다가 동시에 다른 고문 전기 충격, 폭력적 구타 등을 가했다.

문장발표: 2014년 7월 1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7/18/2946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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