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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에 갈취까지, 라이저우시 뎬쯔 세뇌반 연간 1천 명 납치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성 보도) 현재 대량의 노동교양소가 잇달아 해체됐다. 그러나 중공은 여전히 세뇌반, 불법 판결 등 수단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고 있는데 산둥성 라이저우(萊州)시 ‘뎬쯔(店子)세뇌반’이 바로 그중 하나다. 그것은 ‘법제센터’의 이름을 갖고 있으나 실제로는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불법 감옥이다.

10여 년간 이곳에 불법 감금당해 있었던 라이저우 파룬궁수련생은 연간 1천여 명이나 된다. 파룬궁수련생에게 믿음을 포기시키고 강제로 전향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뎬쯔 세뇌반에서는 불법 구금, 강제 세뇌를 제외한 외, 또 ‘큰 괘에 올리기’, 세워두기, 눈밭에서 추위에 떨게 하기, 강렬한 햇볕에 쬐기, 모욕, 공갈 협박, 구타, 아오잉(熬鷹, 오랜 시간 수면 박탈) 고문 등 각종 폭력 수단을 포함했다.

세뇌반에서는 노동교양소와 달리 또 파룬궁수련생이나 가족의 재물을 갈취했다. 어떤 이는 심지어 5천 위안(약 81만 8천 원)이나 1만 위안(약 163만 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 당했다. 박해 방식은 중공이 지난 매번 정치운동에서 다듬고 농축한 것이었다. 이 이른바 ‘법제교육 배양센터’는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세뇌, 고문, 폭력을 이용해 강제로 전향함에 사용하는 사악한 소굴로 많은 파룬궁수련생의 심신 및 가족, 가정에 모두 극심한 상처를 주었다. 아래에 몇 가지 사례를 들겠다.

1. 고문 학대

톈쯔 세뇌반은 2001년 3월부터 위협, 강제 납치, 금전으로 유인하는 등 각종 비열한 깡패 수단을 이용해 대량의 라이저우시 파룬궁수련생을 강제로 세뇌하고 전향시켜 파룬궁수련생에게 믿음을 포기하도록 했다. 다수 파룬궁수련생은 같지 않은 정도의 고문 학대를 입었다.

라이저우시 신화서점 직원 왕핑은 직접 자신의 경험을 진술할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1년 3월과 10월, 나는 두 차례나 뎬쯔 세뇌반으로 납치돼 모두 3개월 동안 세뇌를 받았다. 특히 두 번째, 즉10월 1일저녁, 체중이 겨우 45kg밖에 안 되는 연약한 여자였던 나는 왕쩡원(王増文) 등 6, 7명 악독한 경찰에 의해 단독으로 외진 고문실 안에서 구타, 세워두기, 선풍기로 추위에 떨게 하기 등 고문으로 8시간 반 동안 시달렸다. 그런 다음 연속 14일 동안 구금당한 모든 파룬궁수련생을 모두 의자 위에 앉혀놓고,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어떠한 동작도 허락하지 않았다(밥을 먹고 보고를 올려 화장실로 가는 것을 제외한 외). 단독으로 격리당한 나와 몸이 좋지 않은 한 노년 수련생을 제외한 외 모두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아오잉(熬鷹)’ 고문이라 불렀음]. 10여 일 동안의 시달림으로 파룬궁수련생의 다리와 발은 모두 매우 크게 부어 신발을 신을 수 없었다.”

“2006년 5월 8일, 나는 뎬쯔 세뇌반으로 가서 안에 무고하게 감금당해 있는 수련생 가족을 면회했다. 돌아오는 도중에 국가보안중대장 류징빙(劉京兵), 사무실 주임 쉬칭화(徐清華, 여), 스빙타오(史炳濤) 등 5, 6명 경찰은 강제로 차를 막고 나를 재차 뎬쯔 소굴로 납치했다. 그들은 집안 열쇠를 빼앗아 컴퓨터와 프린터 등 개인 물품을 불법 수색해 빼앗았다. 가택을 다 수색한 후 이 악독한 경찰은 기세등등하게 뎬쯔로 돌아와 나에 대해 극히 광적인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당시 또 시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부서기(이름을 모름)도 현장에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협력하지 않았던 이유로 나에게 세워 두는 고문을 가했다. 내가 한 글자도 대답하지 않자 쉬칭화는 곧 무척 화가 나서 일찍이 준비해 두었던 매우 굵은 플라스틱관으로 내 허벅지 부위를 사납게 후려쳤다. 게다가 또 매우 건장한 젊은 경찰을 불러서 한쪽에 한 사람씩 나의 팔을 잡아당겨 움직이지 못하게 했고 나머지 5, 6명 경찰은 교대로 나를 후려쳤다. 그들은 뒷면에서 나를 때리고 스빙타오는 앞면에서 내 뺨을 때렸는데 때리면서 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줄곧 나를 구타해 눈앞이 번쩍거리고 심장이 갑자기 멈추는 현상이 나타나서야 그들은 손을 멈췄다. 당시 나는 구타로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둔부의 피부가 찢기고 살이 하마터면 터질 뻔했기 때문이다.”

2006년 2월 19일에 밍후이왕에서 보도했는데, 산둥라이 라이저우 610은 2005년 말 30여 명 파룬궁수련생을 세뇌반으로 납치해 박해를 가한 후, 또 2006년 설날 전야에 그중 4명 여성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내렸다.

샤추진(夏邱鎭) 커우자촌(寇家村) 파룬궁수련생 장슈친(張秀芹)은 구타당해 몸이 온통 상처투성이 되어 시퍼렇게 멍들었고 7, 8일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구타 과정 중 3명의 악독한 경찰은 그녀에게 사부님의 법상을 밟고 앉도록 핍박했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비열한 악독한 경찰이 그녀를 구타해 사경에 이르게 한 후 3명의 악독한 경찰은 그녀의 발을 사부님의 법상 위에 눌렀다. 커우자촌의 파룬궁수련생 류웨샹(劉月香)은 본래 심장병 등 각종 질병 증상이 있었다. 그러나 악독한 경찰은 여전히 경찰봉, 수갑 등 도구로 폭력을 가했다. 류웨샹은 20여 일 동안 구타당해 입을 벌려 밥 먹는 것도 어려웠다.

악독한 경찰은 사허진(沙河鎭) 신타이(幸台) 우자촌(武家)촌 파룬궁수련생 왕웨화(王月華)에 대해 먼저 3일 동안 밥을 먹이지 않았다. 그런 다음 그녀를 무차별 구타했고 뺨을 때렸으며 고무관으로 그녀를 구타했다. 그 후 또 왕춘(王村) 노동교양소로 납치해 계속 박해했다.

특히 2008년 올림픽 기간은 라이저우시 파룬궁수련생에게 있어서 먹구름이 머리를 내리누르고 피비린내가 코를 찌른 날이었다. 뎬쯔 세뇌반은 610 졸개들이 폭행을 나타내는 소굴이었다. 그 해 불완전한 통계로는 바로 76명 파룬궁수련생이 세뇌반으로 붙잡혀 들어갔다. 대략 30명 파룬궁수련생이 불법 노동교양처분과 판결을 당했다. 그들 어떤 이는 햇볕에 쬈고, 어떤 이는 장시간 동안 수면을 허락받지 못했으며, 또 어떤 이는 혹독한 구타, 쭈그려 앉게 하여 나무 몽둥이를 끼우기, 큰 괘에 올리기 등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고, 어떤 이는 재물을 갈취당하고 여러 차례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당했다. 불완전한 통계로는 이 기간에 ‘큰 괘에 올리기’ 시달림을 당한 수련생은 판위쥔(泮玉軍), 리위푸(李玉富), 디치어(翟啟娥), 우슈리(吳秀麗), 장바오환(張寶環), 루슈민(劉振鐸), 류전둬(劉振鐸), 자오후이쥐(趙慧菊), 류메이샤(劉美霞) 등이다.

2. 재물을 갈취

위안쩌슈(原澤秀, 여, 사망 시 58세)는 산둥 라이저우시 이다오진(驛道鎭) 이다오촌 사람이다. 그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라이저우 악독한 경찰에 의해 시내에서 극히 악명이 높은 ‘뎬쯔 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당한 적이 있다. 세뇌반에 있던 기간, 그의 가족은 5천 위안을 갈취당했는데 어떠한 영수증도 발급하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후 악독한 경찰 구뎬량(賈殿良), 양뎬신(楊殿新)과 류웨이빈(劉維斌) 3명은 돈을 사사로이 나눠 가졌다.

뎬쯔 세뇌반은 2001년부터 2002년 기간에 연속 10여 회 세뇌반을 조직했다. 매회 인원은 같지 않았는데 최소 10명이었고 매회 한두 달이 걸렸으며 대략 연간 인원은 1~2백 명이다. 감금당한 모든 사람에 대해 세뇌반에서는 모두 직장에서 500위안, 개인에게서 1,200위안 정도를 갈취했는데 금액은 다양할 것으로 추정된다.

예컨대 2012년 라이저우 주유진(朱由鎭) 파룬궁수련생 취뤄푸(曲若璞), 리전첸(李振倩)은 세뇌반에서 박해당해 각각 5천 위안의 이른바 벌금을 갈취당했다. 리전첸은 또 집에서 6백 위안을 빼앗겼다.

2013년 후이취안(匯泉)학교 교사 짱쿠이둥(臧奎東)은 세뇌반에서 박해당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세뇌반에서 집에 돌아온 후 610은 학교에서 5,000위안을 갈취했고 다른 3명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소재한 진 정부에 5,000위안을 냈음을 알게 됐다. 보름 동안에 세뇌반 610은 모두 2만 위안을 갈취했다. 그들은 갈취한 돈으로 매일 세 사람을 고용했고 경찰, 610 등 사람이 우리 4명을 지켰는데 또 2급 요리사까지 청했다. 그들은 끼니마다 진수성찬을 먹었으나 우리 4명은 어떤 때에 반찬 한 그릇 먹는 것마저 서로 사양하며 먹어야 했다.”

악독한 경찰은 투산진(土山鎭) 롼자촌(欒家村) 파룬궁수련생 왕유칭(王友慶)을 연속 꼬집고 비틀어 괴롭혔으며 몇 번이나 목을 졸라 숨을 쉬지 못하게 했다. 왕유칭이 가택수색을 당할 때 20여 명의 악독한 경찰이 가서 2시간 넘게 괴롭혔으며 수색하느라 집안 천장마저 쪼개졌다. 악독한 경찰은 벽돌 틈과 벽 틈마저 후볐으나 ‘수확’을 얻지 못했다. 악독한 경찰은 곧 그녀와 그녀 남편 롼스하이(欒世海, 파룬궁수련생)를 함께 뎬쯔 세뇌반으로 납치했다. 롼스하이가 하룻밤 동안 혹독한 구타를 당한 뒤 610의 악독한 경찰은 또 그를 라이저우시 유치장으로 납치했다. 유치장에서 또 그를 매달아 4박 4일 동안 혹독하게 구타했다. 악독한 경찰은 그의 입에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게 되자 곧 그에게 1만 위안을 갈취한 뒤에 석방했다.

재물을 갈취함에 관해 이상 몇 가지 사례만 들었다. 십여 년 동안 뎬쯔 세뇌반을 얼마나 많이 조직했는지 모르며 또 라이저우 610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파룬궁수련생에게 피땀으로 번 돈을 갈취했는지 헤아릴 수 없다. 이 돈들은 이 폭도들이 주색에 빠진 방탕한 생활을 함에 사용한 후 대부분 모두 그들의 개인 허리춤에 들어갔다.

문장발표: 2014년 5월 2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5/27/2926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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