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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 숭현 법원의 청렴한 법관, 15년 동안 박해당하다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보도) 70여 세인 파룬궁수련생 바이윈(白雲) 여사는 생전에 허베이(河北) 슝현(雄縣)법원의 법관이었다. 그녀는 2013년 12월 17일에 슝현 경찰에게 납치당했는데, 이튿날 감금한 곳을 벗어난 뒤 경찰에게 추포 당했다. 결국 2014년 3월 15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날, 국가보안경찰은 그녀의 집 주위에 사복 경찰을 배치해 감시했으며, 또 각 기관 단위에 통지를 내려 당직을 세워 지키게 했다.

소식에 따르면, 바이윈 노인이 슝현 청관 형사경찰대를 벗어나기 전, 경찰은 꼬박 하루 동안 그녀를 굶겼다. 엄동설한인데 그녀는 추위를 막을만한 옷이 없었다. 경찰 측은 대량의 경찰력, 경찰견을 동원해 추포했다. 칠순 노인은 도처를 떠돌아다니는 고달픈 생활을 하는 중 불행히 병에 걸렸다. 경찰은 여전히 병원, 집에 들이닥쳐 소란을 피웠다. 이로 인해 병세가 끊임없이 가중되었고 결국 불치병을 얻었다.

잘 아는 한 친구는 의혹을 제기했다. 바이윈은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건강이 그렇게 좋았는데, 왜 사망했는가?

바이윈 노인은 퇴직 전, 슝현 법원에서 늘 재판장 직무를 맡았다. 바이윈 노인은 생전에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녀는 1996년 정월부터 정식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했는데, 그 후로 수년간 피우던 담배와 도박을 아주 빨리 끊어버렸다. 수련하고 1개월 만에 신경성 두통, 골반내염, 유선 증식 등 고질병도 모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의 일언일행을 규범화했고, 업무 중에 식사 초대나 뇌물을 거부했으며, 집을 찾아와 선물을 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모두 완곡히 사절했다.

바이윈 노인은 예전에 슝현 파룬궁 보도소의 보도원이었다.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바이윈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가 슝현 경찰에게 납치, 감금을 당했고, 강제로 카메라에 찍혀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다. 2002년, 그녀는 스자좡(石家莊)의 딸 집에 갔다가 슝현 국가보안경찰에게 납치돼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바오딩(保定) 노동교양소에서는 교도관 및 교도관이 교사한 형사 죄수에게 구타를 당했고, 또 엄관반에 갇혀 시달림을 당했다. 2003년 4월 24일, 또 가오양(高陽) 노동교양소로 옮겨져 가중된 박해를 당했다.

노동교양소에서 출소한 뒤, 바이윈 노인은 또 편한 나날을 보내지 못했다. 매번 이른바 중공의 민감일이면 그녀와 가족은 슝현 ‘610’, 공안국 경찰, 전 단위 슝현법원 인원에게 교란을 당했다. 이로 인해 그녀와 가족은 늘 충격과 두려움 속에서 불안한 생활을 해야 했다.

2013년 12월 17일 아침 6시 경, 스자좡 국가보안특무, 바오딩 공안 국가보안, 특수 경찰, 슝현 공안국가보안, 형사경찰대 및 관련 파출소 경찰 수십 명이 바이윈의 집에 들이닥쳐 그녀를 납치했다.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해 덕을 쌓도록 권고한 춘련을 만들었다는 게 납치의 구실이었다. 경찰은 날뛰면서 방 전부를 샅샅이 뒤졌는데, 그녀가 소파 속에 넣어둔 9백 위안마저 훔쳐갔다.

때는 엄동설한이었다. 경찰은 바이윈을 청관 경찰대에 감금해 불법 심문을 하며, 꼬박 하루 동안 먹이지 않았다. 노인은 대략 새벽 1시가 넘어 간수를 피해 감금한 곳을 벗어났다.

바이윈이 벗어난 뒤, 경찰은 거의 전 현의 경찰력을 동원해 그녀를 추적했다. 바이윈의 사진을 들고 파룬궁수련생의 집에 가서 가택 수색을 감행했고, 각 가도에 검문소를 설치해 지나가는 차량을 가로막았으며, 또 경찰견을 동원해 추적했다. 경찰은 바이윈의 집에서 감시하며 그 가족 휴대폰을 감시했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70여 세인 바이윈 노인은 어쩔 수 없이 한 번 또 한 번씩 잠시 머물 곳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한 달 가까이 떠돌아다니며 고달픈 생활을 하던 중, 바이윈 노인은 불행하게 병에 걸려 기절했다. 가족이 소식을 듣고 제때 그녀를 베이징 병원으로 보내 응급처지를 한 덕에 잠시 위험에서 벗어났다. 경찰은 소식을 듣고 바로 병원에 들이닥쳤다가 바이윈이 이미 생명이 위험해진 것을 보고서야 추적을 멈췄다. 바이윈은 퇴원했으나 줄곧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2014년 3월 15일에 영원히 두 눈을 감았다.

바이윈 노인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자 가족과 친구는 매우 비분했다. 그러나 그 경찰들은 여전히 바이윈 노인의 관 앞에 있었고, 마치 강한 적과 맞서듯 많은 국가보안 사복경찰을 배치해 감시했으며, 각 기관 단위에 당직을 서서 지키라는 통지를 내려 장례에 참가한 사람을 감시했다.

박해에 참여한 주요 책임자:

슝현 공안국:

부국장 수스량(蘇士亮)13831284666, 5811041

국가보안대 대장 궈쥔쉐(郭軍學)13903226585, 13663326066, 0312-5820300

청관 형사경찰대(城關刑警隊):덩사오양(鄧少洋)

문장발표: 2014년 5월 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5/4/2909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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