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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직원 11년의 억울한 옥살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 보도) 2012년 12월 19일, 허베이(河北) 한단시(邯鄲市) 파룬궁수련생 리밍타오(李明濤, 43)는 마침내 11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리밍타오는 한단 건설은행 직원으로, 2003년에 중공(중국공산당)에 의해 불법으로 11년의 중형 판결을 당했다. 그가 스자좡(石家莊) 제4감옥에 불법 감금당한 기간, 아내는 핍박에 못 이겨 그와 이혼했고 부친 리자궁(李家功)은 박해 중에 사망했으며, 두 여동생도 연루됐다. 또 그 본인은 감옥에서 참혹하여 차마 볼 수 없는 고문 학대를 당했는데 다음은 그가 감옥에서 당한 경험이다.

2001년 8월 25일, 한단시 한산구(邯山區) 공안분국 경찰은 당시 31세인 리밍카오를 납치했고, 동시에 그의 집의 모든 대법 서적, 현금, 저축과 값진 물건을 깡그리 강탈해 갔다. 한산구 경찰은 리밍타오에 대해 20여 일 동안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는데, 고압 전기봉으로 전신에 전기 충격 가하기, 버드나무 가지로 발바닥 때리기, 장기간 매달기, 잠재우지 않기 등을 포함해 정신과 육체적인 학대를 감행했다. 리밍타오는 그 후 한단시 제1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는데, 2년 3개월 동안 기한을 초과한 감금을 당했다. 그 기간 그는 단식으로 항의했다가 여러 차례 구치소 교도관에게 고문과 시달림을 당하고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酷刑演示:吊铐

고문 시연: 매달기 고문

2003년 7월 3일, 한단시 한산구 법원은 리밍타오에 대해 비밀리에 형기가 11년 되는 불법 판결을 내렸다.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은 상황에서 11월 13일 비밀리에 스자좡 북교 제4감옥으로 리밍타오를 납치해 박해를 가했다.

리밍타오가 스자좡 북교 제4감옥으로 납치되자, 감옥 측은 그를 감옥의 ‘전향반’에 가둬 넣었다. 이 ‘전향반’은 접대소 안에 설치되어 있는데, 바로 ‘접견실 죄수가 24시간 동안 친척들과 면회하는 접대소’였다. 이것도 악인이 늘 사용하는 기만수단으로, 사실은 죄행을 덮어 감추고 사람들의 이목을 가려 전혀 거리낌 없이 박해를 감행하기 위해서였다.

리밍타오는 문과 창문이 꽉 닫히고 커튼이 쳐진 독방에 갇혔는데, 폭력 죄수 3명이 그를 지켰다. 악인은 리밍타오를 강제로 벽 모서리의 작은 걸상 위에 앉혀놓고 ‘아오잉(熬鷹)’ 고문을 가해 주야로 그가 눈을 붙이고 잠자지 못하게 했다.

교육처의 교도관은 “당신은 더는 고집하지 마라. 이미 감옥까지 들어왔는데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관할하지 않는다. 보증을 쓰면 된다. 당신은 이곳이 강제 개조 기구임을 알아야 한다!”고 위협했다. 리밍타오는 “우리가 대법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려 함은 절대 잘못이 없다!”고 말하며 교도관의 일체 무리한 요구를 거부했다.

2003년 말, 교육처 교도관 자오쥔(趙軍)은 리밍타오가 ‘전향’하려 하지 않음을 발견하고 뜻밖에도 펜치로 잔인하게 리밍타오의 오른손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으스러뜨렸다. 리밍타오는 손가락이 으스러져 붓고 화농과 어혈이 생겼으며 새끼손가락 손톱이 빠졌다. 리밍타오는 그 후에도 나날이 수차례에 걸쳐 교도관에게 폭력적인 구타를 당한 동시에, 장기간 형구를 쓰고(차고) 있었다.

리밍타오가 억울한 옥살이를 당한 11년 이래, 스자좡 북교감옥 교도관은 무리하게도 그의 가족이 면회함을 거부했고, 여러 가지 비열한 수단으로 소식을 봉쇄해 박해 진상을 덮어 감췄다.

문장발표: 2014년 5월 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5/2/2907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