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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박해 한 달 남짓 된 루윈페이 위 천공, 검찰원 여전히 석방 거부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간쑤보도) 란저우시(蘭州市) 시궈위안(西果園)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있는 루윈페이(盧雲飛, 남, 44)는 2014년 4월 18일 현재 생명이 위독한 상태인데, 란저우병원 2원에 의해 위 천공의 진단이 내려졌다. 가족이 소식을 듣고 서둘러 갔을 때, 과거 건강했던 루윈페이는 구치소의 고문박해로 입술이 갈라터지고 수척한 모습이었는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등 대단히 위중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위중한 환자에게 족쇄를 채워침대에 고정시켜 놓고 있었다. 가족은 위급상황임을 알고 초조한 마음에 석방을 요구했으나, 국가보안, 검찰원은 여전히 계속 박해를 획책하고 있다.

루윈페이는 1970년생으로 란저우시 시구구(西固區)에서 거주했다. 그는 란저우 시구(西固) 란롄공장(蘭煉廠)에서 근무하다가 2001년 명예퇴직을 한 후 현지 가도, 전 란롄공장 구역에서 막일을 했으며, 2014년 3월 9일 란저우시청관구(城關區) 장예로(張掖路)에서 파룬따파(法輪大法)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경찰에게 납치되어, 란저우시 시궈위안(西果園)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당했다.

2014년 3월 10일, 시구 진완(金灣)분국의 4~5명이, 란저우시 시구구 루윈페이의 부모님 집에 들이닥쳐, “루윈페이가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했으므로그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의 그런 사정을 몰랐다.악경(사악한 경찰)들은 자신들이 찾고 있는 물건(증거)을 찾아내지 못하자화를 내며 돌아갔다.

그 후 시구 싱푸로(幸福路) 사회지역 요원들은 또다시 루윈페이의 부모님 집을 찾아와서 교란했는데, 그들의 말로는, 루윈페이를 찾는다고 말했을 뿐 정작 그의 부모님에게 루윈페이의 행방과 정황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은 계속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열흘 뒤 부모는 루윈페이의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가족에게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지 못했다. 그로부터 2일 후 가족은 란저우시 경찰관서로부터, 국가보안대대 5층으로 가서 루윈페이의 열쇠 등 개인 물품을 찾아가라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그제야 루윈페이가 이미 란저우시 시궈위안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당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족이 란저우시 시궈위난 구치소를 찾았을 때, 쪽지에 루윈페이가 물건을 받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가족은 4월 18일 갑자기 시궈위안 구치소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루윈페이가 위급한 병에 걸려 감옥병원으로 보냈으나, 받아주지 않아 다시 란저우병원 2원으로 옮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족이 급히 란저우병원 2원으로 갔으나, 처음에는 병원 측에서 가족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가족이 “만약 우리 아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당신들을 베이징에 신고(고발)하겠다.”고 말하자, 병원 측 태도가 다소 완화되었으며 그 후 면회가 이루어졌다.

루윈페이의 모습은 극도로 수척한 모습으로 입술은 갈라 터졌으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는데, 그런대도 침대에 족쇄로 채워놓고 있었다. 의사는, “두 가지 치료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수술을 받는 것이고 또 하나는 보수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루윈페이의 건강상태로는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의사가 말한 그 보수적인 치료를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수시로 (생명)위험이 나타났다.

시궈위안 구치소장은, (생명이 위급해지자) 가족에게 빨리 사람을 집으로 데려가라고 요구했다. 가족이 매우 위급한 상황이라 초조한 마음으로 란저우시 국가보안대대를 찾아가서 사정을 말하자, 그들의 태도는 난폭했다. 가족은 “원래 멀쩡했던 사람을 당신들이 잡아다가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당신들이 석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신들을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고소장 내용을 직접 그들에게 보여줬다.

그제야 국가보안대대 사람은 “우리는 이미 루윈페이의 관련 자료를 란저우 청관 검찰원으로 올렸으니, 당신들이 검찰원에서 찾아가라.”고 말했다. 가족은 변호사를 선임했다. 변호사는 “어쨌든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고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은 변호사를 대동하고 검찰원을 찾아가서 ‘보석’을 요구했다. 그러나 청관검찰원은 (행정적) 절차를 수행하지 않고 있다.

루윈페이 2003년 구치소, 세뇌반에서 박해당하다

루윈페이는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2003년 ‘610’과 악경(사악한 경찰)에게 납치되어 란저우시 제2구치소(화린산(華林山)에 감금되어 박해당한 적이 있다. 란저우시 제2구치소에는 당시 몇 십 명의 대법제자가 불법적으로 감금되어 있었으며, 혹독한 강제노역(해바라기 씨 고르기, 쇠털 고르기 등)에 투입되어 중노동을 강요받았는데, 이를 거부하자, 소장과 대장은 곧 ‘천후형(穿後刑 – 족쇄와 두 손을 등 뒤로 채운 후 철사줄로 족쇄와 수갑을 동시에 등 뒤로 연결, 쭈그려 앉은 자세라 움직이지 못함)’이라는 고문을 가했으며, 또 정원에서 추위에 떨게 하고, 벽에 기대지 못하고 화장실 출입도 못하게 했다. 대법제자들을 주야로 계속 그런 고문형틀에 묶여 있게 해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中共酷刑示意图:“穿后刑”——将人双手背铐、双膝下跪、双脚戴脚镣,同时将手铐、脚镣用铁丝最短距离串起来

중공 고문 설명도-천후형(穿後刑)고문 두 손은 등 뒤로 채워 두 무릎은 꿇고, 두 발에 족쇄를 채운 후 동시에 수갑과 족쇄를 철사줄로 가장 짧은 거리로 연결 고정시킴.

루윈페이는 그 후 또 란저우 훙자완(龔家灣) 세뇌반으로 납치되어 감금댱했다. 세뇌반에서는 이른바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키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대량의 인력과 재력을 동원하여 혹독한 박해를 가했다. 각급 기관 단위에서 인원을 차출하였고, 또 직업이 없는 자들을 고용하여 소위 바오자(包夾 – 감시자)로 기용했다. 이 바오자들은 모두 세뇌반 요원들의 친척과 친구인데, 파룬궁수련생을 1:1 또는 2:1로 상대하며 단독 감금을 통해 박해를 가했다. 그들은 파룬궁수련생 간에 대화를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화장실 가는 것조차 바오자가 붙어 다녔다. 저녁에는 앉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것들은 수련생이 앉기만 하면 가부좌를 하는 것으로 여겨, 조금도 신체적인 자유를 주지 않았다. 당시 루윈페이의 바오자는 직장의 리푸웨이(李富偉)와 장시린(姜喜林)이었다.

(박해를 가한 각급 단위의 기관과 요원의 인적사항은 원문을 참조하기 바람)

문장발표: 2014년 4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4/29/2906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