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성 보도) 그녀는 예전에 불치병에 걸렸었고 아들은 뇌성마비에 걸렸으며 어머니는 반신불수에 걸린 적이 있다…… 이런 고난들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기 때문에 다시는 병을 앓지 않게 되었고 그녀는 새 삶을 얻었다. 하지만 중공(중국공산당)의 박해 하에 그녀는 정신병원, 구치소, 노동교양소, 불법 감옥에 갇혀 심한 학대를 당했다. 그러나 겨우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그녀는 머우융샤(牟永霞)라고 부르며 올해 66세로 원래 다칭시(大慶市)의 한 중학교 교사였다. 머우융샤를 익숙히 아는 사람들은 그녀의 일생이 정말 기구하다고 알고 있다.
기구한 인생, 끝없는 근심과 고뇌
머우융샤는 청년 시절에 불치의 중증 혈액병과 중증 근무력증에 걸렸는데 일 년 넘게 걸을 수 없어 의사로부터 살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후에는 또 신장염, 심장병, 위궤양, 극도의 신경쇠약증에 걸렸다. 머우융샤는 36세가 되어서야 가정을 이뤘으나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쌍둥이를 낳은 후 그녀의 몸은 곧 완전히 무너져 늘 혼수상태에 처했다. 예전에 다칭 유전 총병원에서 수혈, 수액을 맞고 55일 동안 산소를 공급받는 등 응급처치를 받았는데 결국 병원에서는 치료할 방법이 없자 어쩔 수 없이 들것에 실어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정신이 흐리멍덩해진 상태에서 건물에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되고 ‘2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머우융샤의 두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잔병이 많았다. 큰 아이는 뇌성마비에 걸려 오른쪽 몸을 절뚝거리며 걸었고 지능이 떨어져 10세가 넘을 때까지 밥을 먹여주었으며, 또 바이러스성 심근염에 걸렸다. 둘째는 코에서 일 년 내내 출혈이 있었고 요붕증에 걸려 끊임없이 물을 마시려 했으며 늘 오줌을 누면서 주야로 울고불고 했다.
두 아이는 머우융샤의 70여 세의 모친이 돌보았다. 노 모친은 또 불행하게 아이를 돌봐주는 중 가스 폭발 때문에 화상을 입어 근육위축 증상, 반신불수에 걸려 오래 동안 치료해도 완쾌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머우융샤의 남편은 이 몇 명의 환자와 직면해 초조하고 불안해 늘 격노하며 물건을 부수고 아이를 때렸다. 한 번은 두 아이를 때려 부상을 입혔는데 두 아이는 놀라 기겁해 고열이 오르고 눈 밑에 출혈이 생겼으며 사시 증상이 나타났다. 이 가정은 다시는 정상적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남편이 근심과 고뇌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머우융샤는 남편과 협의 이혼을 했고 부양비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그를 연루시키지 않았고 그에게 다시 건강한 여자를 찾아 건강한 아이를 낳아 안정된 생활을 하라고 권했다. 남편은 떠났다. 그 때 머우융샤의 두 아이는 겨우 5세였다. 병고, 마음의 걱정, 이런 설상가상의 나날에 직면해 마음씨 좋은 이웃, 동료, 학생, 친구의 도움이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두 아이와 노 모친을 위해 그녀는 몸부림치며 하루하루 고통스럽고 어렵게 살아갔다.
짧은 40일, 친자매를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다
1998년 10월 7일, 어떤 사람이 머오융샤에게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선사하며 그녀에게 “꾸준히 반복적으로 이 책을 보고 또 연공까지 보태면 곧 전 집안이 이로움을 입어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라고 알려주었다. 머우융샤는 한번 시험해 보려고 ‘전법륜’을 읽기 시작했다. 1개월 후,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가 뜻밖에 정말 스스로 생활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심태도 차분해지고 이어서 온몸의 난치병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마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린 듯 기뻤다. 이웃도 “정말 당신은 기쁘겠어요.”라고 말했다.
두 아이도 어머니를 따라 파룬궁을 연마했다. 그 결과 건강도 다 좋아져 아이들은 즐거워 깡충 깡충 뛰었다……
아이들의 변화를 보고 머우융샤는 즉시 집으로 돌아가서 88세 반신불수가 된 모친을 모셔오려고 했다. 당시 모친은 한창 감기로 고열이 올라 자매들마저 그녀가 모친을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머우융샤는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위력에 대해 강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는 몰래 택시를 타고 모친을 자기 집으로 모셔갔다. 노 모친은 그녀와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했는데 매우 빨리 침대에서 내려와 활동할 수 있었다. 40일 후 여동생들이 동정이 보이지 않자 노인이 이미 세상을 떠난 줄로 여기고 모두 그녀의 집으로 따지러 왔다. 문을 열고 보았는데 그녀들은 입구에 서서 멍해졌다. 마치 예전에 알고 있는 듯한 한 노부인이 창문 앞에 서있었는데 키가 크고 얼굴색이 좋았다. 언니는 의혹스러워 “그 노부인은……”하고 물었다. 머우융샤가 “들어오세요!”고 말하자, 여동생은 “이 목소리를 들어보니 언니네요. 그런데……”고 말했다. 머우융샤 두 모녀의 큰 변화로 친자매들마저 알아보지 못했다.
자매들은 노 모친을 에워싸고 이리저리 보면서 “어찌 된 일이죠?”고 물었다. 모친은 “좋아졌지”라고 말했다. 자매들은 즉시 노 모친의 신변에 모여 함께 파룬따파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보기 시작했다.
머우융샤가 지난 시절 걱정하고 고뇌하던 집은 생기와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그녀의 집은 그때부터 다시는 환자가 없었다. 이 집의 기적은 친구, 이웃, 동료를 모두 놀라고 기쁘게 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모두 “파룬궁은 너무 좋아요. 이 일가족을 구했어요.”라고 말했다. 친구, 이웃들도 모두 그녀를 찾아 법공부를 배우고 연공을 배웠다.
예전에 뇌성 마비에 걸렸던 그 큰 아이는 그 후에 샤먼(廈門)대학 시험에 합격했다. 졸업 후 괜찮은 직업까지 찾았다.
정신병원: 묶어놓고 약물 주입, 강제로 주사하다
1999년 7월, 장쩌민(江澤民)은 명령을 내려 파룬궁을 박해했다. 중공(중국공산당) 대변인 매체의 유언비어, 모함은 천지를 뒤덮을 듯 했다. 머우융샤는 극도의 고통 속에 빠졌다. 그녀는 정부에서 아직 이 공법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고 오해일 수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이 정치자본을 얻기 위해 중간에서 방해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책임자에게 파룬궁 진상을 반영했다. 그 결과 뜻밖에 정신병원에 갇혔다.
정신병원 의사와 간호원은 마치 악마, 부체와 마찬가지로 강제로 머우융샤에게 약을 주입하고 독극물을 주사했다. 그녀는 자신이 멍청하게 되어 가족을 보살펴 줄 수 없을까 봐 극도로 놀라고 두려웠다. 그녀는 늘 창턱으로 가서 난간을 잡아당기며 밖을 향해 높은 소리로 “저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지 정신병 환자가 아닙니다! 누가 저의 집 자매에게, 저를 구출하도록 이 소식을 전해주세요”라고 외쳤다.
그러나 한 무리 ‘흰 가운’들은 매번마다 그녀를 끌어내려 병실로 끌고 와서는 침대 위에 눌러놓았다. 그리고는 흰 천으로 특별히 만든 끈으로 그녀의 손발을 침대 위에 묶어놓고 강제로 독극물을 주입했는데 약물 주입 기계로 그녀의 입을 비틀어 열고 여러 크기의 약 한 줌을 그녀의 위장 속에 주입했다. 10분도 되지 않아 그녀는 시야가 흐릿해지고 앞뒤 가슴이 싸하며 찌르는 듯 아픈 감을 느꼈다. 일어날 때 눈앞이 아찔해졌고 사지가 나른해져 탁탁 끊임없이 쓰러졌다. 그녀는 자꾸 쓰러져 무릎은 부상을 입어 매일 피범벅이 됐다. 허리는 곧게 펼 수 없어 등을 구부리고 있었고 눈빛은 흩어졌고 사유는 느려졌다……
여동생이 그녀의 아이를 데리고 그녀를 보러 왔던 적이 있다. 아이는 비분해마지 않았다. “이것은 어머니를 괴롭혀 죽이려는 것이 아닙니까?” 몇 명 자매는 항의하며 사방에 구출을 호소했다. 3주 후 머우융샤는 그제야 친구들의 도움 하에 정신병원을 벗어났다.
정신병원을 벗어난 후 머우융샤는 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웃들은 그녀에게 “절대로 집으로 돌아오지 마세요. 경찰이 당신의 집 입구에서 잠복해 감시하고 있고 또 도처에서 당신을 찾고 있어요. 간호인원도 와서 조사하며 물었어요……”라고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다.
막 정신병원에서 벗어났을 때 독극물의 작용으로, 머우융샤는 연속 두통이 생기고 8일 동안 고열이 올라 물 한 방울도 마시지 못했다. 얼굴마저 새파래지고 입술은 검은 자색을 띠었다. 이어서 미열이 오르고 두통이 생겼으며 메스꺼워 그녀는 늘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몸 주변은 문드러져 고름이 흘러내렸는데 두 아랫다리 부위는 문드러져 흰 뼈(지금까지도 흔적이 남아있음)가 드러나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그녀는 매일 연공, 법공부를 견지했다. 6개월 후 차츰 건강을 회복했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 매일 어머니를 잃는 두려움 속에서 보내다
이 기간 동안 한창 중점 고등학교에 다니는 머우융샤의 아이는, 어머니가 살해당할 것 같아 끊임없이 울면서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어머니가 없어요. 집에 없어요……”라고 말했는데 두 아이는 공부할 마음이 없었다. 본래 성적이 우수하던 큰 아들은 학기말 시험에서 5개 과목 성적이 겨우 26점밖에 되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원래 늘 경시에 참가하는 우등생이었으나 어머니가 박해를 당한 것 때문에 전혀 교실로 가지 않았고 시험마저 치지 않아 과목마다 영점이었다.
이 몇 해 동안 머우융샤의 아이들은 온종일 그녀를 위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어떤 때에 아이들은 갑자기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와서는 문을 열고 어머니가 또 집안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아이들은 소년 시절을 매일 어머니를 잃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보냈었다. 사실 소년시절 뿐이었겠는가.
2008년, 중공이 올림픽을 조직하는 때를 빌어 전국 각지에서 함부로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그해 여름 방학에 머우융샤의 큰 아들은 샤먼대학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어머니에게 성대한 회갑을 해드리려고 준비했다. 뜻밖에 머우융샤는 이때 룽강(龍崗)분국 형사경찰대 경찰에게 납치를 당했다.
고문시연: 담배 두 대를 동시에 파룬궁수련생의 콧구멍에 꽂아 넣고 입을 막는다. 쏘여져 사레가 들리고 질식해 극히 고통스럽다.
이번 납치 때 경찰은 머우융샤에게 다음과 같은 고문을 실시했다. 1박2일 동안 먹이지 않고 잠을 재우지 않았으며 화장실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테이프로 입을 봉한 후 불붙은 담배를 그녀 콧구멍 안에 꽂아 넣고 질식시켜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납치한 그날 밤 12시, 경찰 7~8명은 경찰차 두 대를 몰고 그녀 입을 봉한 채 6층 거처로 끌고 돌아와서 거실 사이의 홀 소파 위에 채워놓았다. 그리고 옷을 넣은 여행 가방을 식칼로 찢고는 옷을 잡아당겨 온 바닥에 던졌다. 또 경보기가 달린 보험 상자를 부수어 열었는데 안에는 그녀가 핍박에 못 이겨 근무 연한을 계산해 받은 퇴직금 9만 위안(약 1,527만원)의 돈이 있었다. 몇 명 경찰과 창칭(長靑) 사회지역 중년 여성은 돈을 담은 소형 금고를 침실로 들고 가서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 다음 나와서 안에 4만 7천 위안(약 797만원)이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5만 여 위안(약 850만원)은 이렇게 강탈당했다. 악도들은 또 그녀가 큰 아들에게 막 사준 5천 여 위안(약 85만원)짜리 노트북 컴퓨터, 친구가 선물한 4천 위안(약 68만원)인 필립스 핸드폰 등 개인 물품을 강탈했다.
큰 아들은 기쁘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안은 온통 난잡하게 어질러졌고 경찰이 집에서 잠복해 감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4년 억울한 옥살이. 시달림을 당해 사경을 헤매다
구치소에서 머우융샤는 시달림을 당해 혈압이 올라 두 차례나 쇼크에 빠져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1개월 후 그녀는 불법 판결을 받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여자감옥으로 납치당했는데 이렇게 4년을 갇혔다.
감옥에서 머우융샤는 정신적, 육체적 이중 학대를 당했고 말을 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으며 입은 늘 테이프로 봉해졌다. 장시기 마좌(碼坐) 고문을 당했는데 바오자(包夾, 밀착 감시원) 세 명이 감시를 했다. 앞 면의 한 사람은 의자 위에서 그녀의 두 발을 밟고 뒷면의 좌우에서 두 사람이 그녀의 어깨를 당겨서 강제로 똑바로 앉게 했다. 한 장에 50cm되는 바닥벽돌에 앉히기만 하면 10여 시간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했고 움직이면 무차별폭력을 가했다. 매일 앉혀져 가슴, 등, 허리, 골반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 어떤 때는 호흡이 어려운 증상, 땀에 흠뻑 젖는 증상, 사지 마비, 늘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또 수면을 허락하지 않아 혈압이 240으로 높아졌고 심장박동은 130여 회나 됐다.
교도관은 머우융샤에게 화장실 가는 것도 장시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한 번은 참다가 배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파서 머우융샤는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갔다. 아직 감방문을 내딛기도 전에 곧 감시하는 살인범에게 구타당해 바닥에 쓰러졌다. 악도는 무릎으로 그녀의 왼쪽 가슴을 받았는데 그녀는 순간 눈앞이 까맣게 되고 가슴이 갑갑하며 극렬한 고통을 받아 기절할 뻔 했다. 이후부터 왼쪽 가슴뼈는 몇 달째 극심하게 아파 일어나고 눕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치료를 요구했으나 교도관은 허락하지 않았으며 또 계속 핍박해 마좌 고문을 가했다.
머우융샤에게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하기 위해 어느 한 번은 한겨울에 감옥장은 부하에게 지시를 내려 그녀를 독방에 가두었다. 아무런 난방 설비가 없고 창문도 없었는데 그녀의 속내의를 깡그리 벗기고 외투를 씌워 손발을 아무것도 깔지 않은 나무판자 침대위에 채워놓았다. 꼬박 하루가 지난 뒤 그제야 고쳐서 한 쪽 손만 채웠다. 그 기간 하루에 두 주걱 입쌀 죽을 주었을 뿐이다. 머우융샤는 시달림을 당해 심박동이 너무 빨랐고, 혈압이 높아졌으며, 사지가 마비되어 여러 차례 기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옥 측은 줄곧 그녀를 보름 동안 가뒀다.
머우융샤가 “당신들은 고의로 살인을 합니다.”라고 말하자, 교도관들은 “당신이 죽으면 자연적인 사망으로 간주해 당신의 집에 골회함 하나를 주고는 윗면에 얼룩말 오라기(죄수 표지)를 씌울 거야”라고 말했다.
4년 동안 심신에 손상을 입은 머우융샤는 시달림을 당해 몸이 극도로 허약해지고 손발이 마비되어 늘 머리가 어지러웠다……
머우융샤는 2012년 7월에 출소했는데 당시 그녀는 사경을 헤맸다. 그녀를 본 사람은 모두 그녀가 곧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2개월 넘게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거쳐 머우융샤는 또 살아났다. 대법의 신기함은 다시 한 차례 그녀의 몸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머우융샤는 출소한 뒤 줄곧 친구들의 구제에 의지해 나날을 보내 생활이 매우 어려웠다. 아래의 관련 직장에서 머우융샤가 파룬궁을 연마를 견지하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으며 파룬궁을 포기한다는 보증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그녀에게 양로보험 수속을 밟아주지 않았고 그녀가 근무 연한으로 계산해 받은 퇴직금(補發款), 위문금, 집 보조금 지급을 거부했다. 이들 다칭(大慶)유전 광구(礦區) 사업부, 제1건물관리 사무소, 보험회사 룽난소(龍南所), 관리국 안정협조센터, 창칭 열에너지(熱力)에서는 그녀에게 10년 동안 난방비, 건물관리비를 물어 주지 않았다.
이곳 관련 기구에서 공산당을 도와 나쁜 짓을 하지 말고 될수록 빨리 머우융샤에게 공정하게 대해주기 바란다. 불법인원으로 충당한 졸개는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박해자는 결국 꼭 갚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음은 영원히 변치 않는 천리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원래 이와 같고 현실도 역시 이와 같다.
다칭유전 광구사업부 안정협조센터(즉 ‘610’): 5199927
다칭유전 광구사업부 제1건물관리사무소 안정협조센터(즉 ‘610’) : 5393766
다칭 보험회사 룽난소 사무실: 5972529
다칭유전 광구사업부 창칭 열에너지: 5985911
다칭석유관리국 안정센터(즉 ‘610’) : 5977600
문장발표: 2014년 3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3/30/2893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