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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수련으로 중병 완쾌한 왕스친, 거듭 박해당해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성 보도) 창춘시(長春市) 위수시(榆樹市)의 파룬궁(法輪功)수련생 왕스친(王士芹)은,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으로부터10여 년 동안의 박해를 당했는데, 수차례 불법적인 납치, 세뇌, 교란, 노동교양처분, 옥살이(8년) 등의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그는 이처럼 장기간의박해로 지병이 도졌다가, 파룬따파(法輪大法)수련을 거쳐 건강을 회복했는데 이런 과정이 수차례 반복됐다. 하지만 중공의 잔인한 박해가 끊이지 않게 되어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고달픈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이 떄문에 극심한 핍박의 시달림으로 건강을 잃게 되었고, 결국 2014년 2월 20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1. 대법수련으로 중병이 완쾌돼 심신의 건강을 되찾은신기함

왕스친(王士芹.女,66)은, 위수시 페이잉가(培英街)에서 거주하며 위수 철물공장에서 근무했다. 그는 이미 30대에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는데, 심각한 류머티즘 판막성 심장병으로 두 손가락이 굽었으며 증세가 심할 때는 갑자기 기절하기도 하는 등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병세는 점점 악화됐다. 가족들은하얼빈 의과대학 부속 제1병원, 제2병원, 하얼빈 중의학원 등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1984년에 베이징 푸와이(阜外) 병원, 중국 심혈관연구원을 찾아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최종적으로 류머티즘 판막성 심장병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의사는, 수술을 받게 된다면 3개의 판막인 주동판(主動瓣)과 아첨판 등을 바꿔야 한다고 했으며, 1만 명의 같은 병 환자 중에 3, 4명이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데 왕스친이 그에 해당된다고 했다. 당시는 외국인 의사가 수술을 집도하였는데, 치료목적 외에 일종 실험을 하는 경향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그런 병은 수술하고 치료한다고 해도 완쾌시킬 수 있다고 보증할 만한사람(의료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술비용도 20만 위안(3,500만 원 상당)의 소요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치의는 왕스친의 가족에게 “돌아가세요. 혹시 몇 해를 더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수술을 하게 되면 수술대에서 온전하게 살아서 내려올 수 있다는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왕스친은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으며, 보조적치료를 받으면서 되는 대로 그날그날 사는 날까지 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왕스친은 매우 수척한 모습이었는데 형용할 수 없는 몰골이었다. 얼굴은 자줏빛 무와 같았으며, 허리도 곧게 펴지 못했다. 84년에서 95년까지는해마다 위수병원에서 몇 차례씩 입원하였는데 병원에서 설을 6번이나 쇠었다. 어떤 때는 1년에 9차례나 입원하기도 했다. 점차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으며 급기야는 가족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녀는그 당시, 슬하에 어린아이가 없었다면 삶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왕스친이 극도의 절망상태에 빠져 있을 때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법광이 이 작은 도시를 비추었다. 왕스친은, 95년 위수 공원에서 대법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그녀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법 공부와 연공을 하면서 마음을닦아 선을 행했다. 약 한 알 먹지 않고 주사 한 대 맞지 않았는데, 법 공부와 연공을 한 지 1개월 만에, 그녀의 모든 병은 전부 사라졌다. 왕스친은 곧죽을 사람에서 건강한 좋은 사람으로 변했다. 얼굴색도 좋아졌고, 바람이 일정도로 걸어 다니며 집안일은 물론 장사도 했는데, 무엇이나 다 할 수 있었다.

왕스친은 말하기를, 자신은 예전에 장사할 때 돈을 벌기 위해서 도덕심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나쁜 것(물건)을 좋은 것이라고 하고, 심지어 수량이나 근수를 줄여서 (속여) 팔았다고 했다. 그러나 법 공부를 한 뒤부터 다시는 남을 속이거나 손해를 보게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또 그녀는 과거 직장에 다닐 때 늘 입원하는 등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으므로, 직장에서는 해마다 일정한 의료비를 내야 했지만, 그녀가 대법을 수련한 뒤부터는 직장에서 그녀에게 다시는 의료비를 결제해 줄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직장책임자는 “다른 사람이 파룬궁에 대해 좋다 나쁘다고 말하든지 말든지를 막론하고, 왕스친의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었다면 그건 바로 좋은 공법입니다.” 라고 말했다. 왕스친의 몸이 건강을 회복하고 심령이 개변됨으로 해서 현지에서는 매우 큰 파문을 일으켰다. 친척 친구들은 모두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고, 많은 사람이 이 사례를 통해 잇달아 대법수련에 들어섰다.

2. 거듭 박해당한, 왕스친이 건강한 몸으로 대법이 좋음을 실증하다

중공은, 1999년 7월 20일부터악독하게 대법과 대법 사부님에대해 유언비어를 날조하며터무니없는 모함을 했고,파룬궁(法輪功) 수련생들을불법적으로 체포했다. 그러나 왕스친은 파룬따파가 사람에게 도덕을 중히 여겨 선을 행하도록 가르치고, 몸을 건강하게 함을 깊이 깨달아 매우 좋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그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체험이었다. 중공이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대법을 모함하고 수련생을 탄압하였음에도, 왕스친은 놀라 주저앉지 않고, 선념(善念)으로 몇 차례나 성 정부와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그녀는 국가 관계기관 책임자를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자신이 직접 경험한 대법의 위대함과 초상적인 면을 실증하려 했다. 이로부터 왕스친의 집은 편안한 날을 보내지 못했다. 몇 차례나 중공에 의해 불법적인 납치, 가택수색, 구류, 벌금, 노동교양처분, 법원판결, 세뇌반 등등에 감금되었다.

(1) 국가보안경찰에게 구타당해 머리에 상처를 입다

왕스친은, 1999년 ‘7.20’ 이후 창춘(長春) 성정부로 청원하러 갔으나, 결과가 없었으므로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베이징 민원실, 톈안먼으로 가서 대법을 실증했는데 그 후에도 몇 차례 더 베이징으로 갔다. 1999년 11월 24일, 왕스친은 베이징 경찰관에게 납치돼, 베이징 주재 지린성(吉林省) 사무실로 이끌려간 후 다시 창춘으로 이송되어 대기 중이던 위수 공안국에 의해 돌아왔다. 그러나 위수 공안국에서 국가보안경찰관스하이린(石海林)에게 무자비한 구타를 당해 머리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렸으며, 운전기사 마(馬) 모에 의해 마포 걸레대로 가슴부위를 찔리고 구타당했으며, 주먹으로 머리를 구타당했다. 종국에는 국가보안경찰에게 370(약 64,000원)위안을 강탈당하고, 현지 유치장에서 1개월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다.

(2) 창춘 헤이쭈이쯔 노동교양소에서 전기고문, 구타, 갈취당하다

2000년 2월 24일, 왕스친은 현지 많은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위수 공원에서단체 연공을 하다가 경찰에게 납치되어 위수 유치장에 불법적으로 유치됐는데, 다시 유치장에서 연공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관에게 혹심한 구타를 당하고. 혹한에 얼리기 고문을 당하면서 먹는 음식은 돼지 먹이 만도 못한 걸 배식받았다. 정황이 그토록 열악했지만, 왕스친은 원래부터 고생스럽다고 하지 않았고, 늘 싱글벙글했다.

그 후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해 창춘 헤이쭈이쯔 도동교양소 (이하 노교소)에 감금됐다. 그녀는 정정당당하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으며, 사부님의 생신을 맞아 단체 연공에 참가했을 뿐인데, 악경(사악한 경찰)들은 전기고문 나무판 구타 등 잔혹한 박해를 가하고, 밥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노교소 측은 그녀가 과거 심각한 심장병을 앓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으며, 그 병이 도져 번거로운 사건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감금 3개월 만에 왕스친을 집으로 돌려 보냈다. 그러나 왕스친은 그들의 강요로 노교소에 2천(약 34만 원) 위안의 보석금형식의 돈을 바쳤다.

2000년 7월, 파룬궁수련생에게 경문을 전해줬다는 이유로 왕스친은 집에서 현지 페이잉(培英) 파출소 경찰관에게 납치되어, 1개월의 구류처분을 당하고, 또 현지 공안국 정보과에 의해 1천 위안의 벌과금이 부과됐다. 2000년 12월, 왕스친은 다른 4명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바오서우향(保壽鄉)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작은 기를 꽂았다가, 악독한 경찰관에게 납치돼 현지 파출소로 끌려가서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왕스친은 위수 구치소로 넘겨져 3개월 넘게 박해를 당했다.

(3) 거듭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갈취당하고, 정신적 상해를 입다

2001년 6월, 왕스친은 중공의 핍박에 시달리다 못해 떠돌이 유랑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8월 3일, 악경은 아무도 없는 왕스친의 집을 급습하여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가택수색을 감행하여 녹음기, 연공CD, 전자책 등을 강탈해 갔다. 이런 박해에 놀란 시아버지는 심장병이 도져 입원했다.

2001년 9월 10일, 페이잉 파출소 경찰관 장웨이(姜偉), 루하이타오(盧海濤)와 바오서우향 파출소의 악경인 주다촌(朱達村)의 치보주임 런리주(任立柱)는 바오서우에 위치한 친정집을 급습하여 왕스친을 또다시 납치했다. 왕스친은 당시 두 살도 되지 않은 손녀를 데리고 있었는데, 아이를 가족이 데려갈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으나, 악경들은 이에 응하지 않고 그대로 납치하여 구치소에 감금시켰다. 9월 24일 왕스친은 1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그런 후 국가보안대대에서는, 노교소에 가두지 않는다는 이유로 왕스친의 가족으로부터 2천(약 34만 원) 위안을 갈취하고도 영수증조차 발급하지 않았다.

(4) 납치, 자백 강요, 핍박으로 유랑생활하다

2002년 3월 5일, 창춘 텔레비전에 대법진상을 위한 스폿 방송을 했다. 그날 저녁에 페이잉 파출소 경찰관 장웨이, 루하이펑 등은 세 차례나 왕스친의 집을 찾아가서 행패를 부렸고, 3월 6일 아침 8시경 국가보안대대 스하이린, 형사경찰대 우(吳) 모, 쑨(孫) 모 등 5명이 왕스친의 집을 급습하여 온통 대대적인 가택수색을감행했다. 그 후 왕스친은 국가보안대대에 납치됐다. 스하이린, 쑨 모, 우 모 등 10여 명이 자백을 강요했는데, 왕스친은 당시에 심장병이 도졌다. 그녀의 막내아들이 공안국으로 찾아가서 어머니를 빼앗아 돌아왔다. 이후로부터 왕스친의 유랑생활은 다시 시작됐다. 2002년 10월 25일, 왕스친이 위수 광룽거리(光榮大街)를 보행 중에 장웨이, 루하이펑 등 3명에게 납치되어 택시에 태워져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5) 2003년 구치소에서 박해당해, 돌발성 각혈

현지 자료점은 왕스친과 관련되었던 관계로 파괴되었고, 구치소에 감금 중이던 왕스친은 2003년 5월 20일 돌발성 각혈 증상이 나타났다. 모공마저 모두 피가 스며들었으며, 머리칼은 온통 피로 엉겨 붙었다. 하얼빈 모 큰 병원에서 응급처치할 때,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다. 정상적인 사람의 혈소판 수치가 10~30만인데, 왕스친의 혈소판은 다만 1천밖에 되지 않았다. 만약 대법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 재난을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왕스친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파룬따파가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한기적이었던 것이다.

(6)2003년에서 2006년까지 8년의 불법 판결, 지린성 헤이쭈이쯔 여자감옥에서 생명 위독

2003년 3월 왕스친은 위수 법원에 의해 8년 형의 불법적인 판결을 받고, 지린성 헤이쭈이쯔 여자감옥에 수감되기 위해 이송됐다. 그러나 감옥 측은, 신체검사를 하고 나서 수감시킬 수 없다며 한 시간 반 동안 입감을 거부했다.그러나 스하이린이, 그녀가 죽어도 감옥과는 관계가 없다고 서명을 했다.

어느 날 감옥 측은 왕스친에게 방한복인 솜옷을 입지 못하게 한 후 4시간 동안 추위에 떨게 했다. 왕스친의 몸은 점차 나빠졌다. 2006년에 이르러서심각하게 복부가 부어올랐다. 배는 공처럼 커다랗게 부어올랐고,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감옥 측은 그녀가 정말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고, 감옥에서 죽게 되면 일이 번거로울 것을 우려해서 ‘병보석’ 형식으로 출소시켰다. 그녀는 감옥에서 돌아온 뒤, 법 공부와 연공을 거쳐, 그녀의 몸은또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나 악인은 여전히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감옥 측은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교란하다가 집으로 찾아가서 조사하고, 그녀를 창춘 병원으로 데려가서 검사했으며, 결과 몸 상태가 좋아졌다는 진단을 받고 그녀를 다시 수감했다.

(7) 세뇌반으로 납치하다

2009년 현지에서 세뇌반을 조직했다. ‘610’(불법적인 중공의 파룬궁박해 전문조직)의 두목 리펑린(李鳳林)은 직접 요원을 인솔하여 왕스친을 납치한 후 세뇌반에 감금시켰는데, 동시에 수련하지 않는 그녀의 남편도 함께 붙잡아 동행하게 했다. 그 후 남편이 ‘보증서’를 제출하여 그녀를 풀어줬다.

만약 중공의 이런 사악한 박해가 없었다면, 왕스친은 수 천 수만의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사회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면서 수련을 했을 것이다. 어디에 있든지를 막론하고, 그들은 모두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당 통치하의 중국대륙에서는 사람들은 믿음,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 권리를 박탈당했다. 현지 파출소,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의 경찰은 왕스친에 대해 늘 교란, 불법감금, 고문학대를 감행하여, 그녀의 심신에 일반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받게 했다. 결국, 2014년 2월 20일 중공의 압제로 인한 심신의 상해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4년 3월 1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3/19/2888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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