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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링메이 여사, 14년 전 베이징에서 참사

[밍후이왕] 이것은 몹시 놀라운 소식이다. 일은 이미 14년이 지나갔으나 오히려 막 발생한 것 같다. 린링메이의 모든 친인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현안이 해결되지 않았고, 원혼은 억울한 누명을 벗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연로한 모친은 린링메이를 말하기만 하면 뜨거운 눈물을 금하지 못한다.

林令梅女士遗像

린링메이 여사가 생전에 찍은 사진

2000년 5월 14일은 어머니의 날로, 원래 어머니가 기뻐하는 날이다. 그러나 린링메이의 어머니로 말하면 오히려 가슴이 찢어질 듯 영원히 비통해 잊기 어려운 날이다. 바로 이날 그녀의 아름답고 건강하며 효성스럽고 선량한 좋은 딸이 다시는 문안하러 올 수 없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린링메이는 너무 참혹하게 죽었고 너무 억울하게 죽었으며 너무 애석하게 죽었다. 30세 젊은 나이로, 키는 170센티미터였으며 아름답고 건강했고 몸매가 날씬하고 부지런했으며 유능했다.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 그러나 젊고 아름다운 미인은 10세의 딸을 남긴 채, 3~4일 사이에 갑자기 인간 세상에서 사라졌다……

린링메이는 1971년 1월 7일 헤이룽장성 보리현(勃利縣) 워컨진(倭肯鎮) 성촌(勝村)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재능이 좋았으며, 말을 잘 듣고 철이 들어 종래로 부모를 화나게 하지 않았다. 어른이 된 뒤 보리현 심산 속의 훙싱(紅星, 노훙싱이라고도 부름) 임업장에 시집갔다. 그녀는 남편을자상하게 돌봤으며, 따뜻하고 상냥했고 현숙했다. 게다가 귀여운 딸을 낳았다. 1998년, 린링메이는 인연이 있어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얻었다. ‘진선인(眞善忍)’의 우주 법리는 단시간에 그녀의 원래 순결하고 착한 마음을 움직였다. 이로부터 그녀는 파룬따파를 수련했다. 어떤 사람은 “린링메이는 특히 인내심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녀를 좋지 않게 대해도 그녀는 마치 일이 발생하지 않은 듯 종래로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성질이 좋지 않음을 알고 남편이 그 사람을 찾을까 염려되었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江澤民)은 인민대표대회 차오스(喬石) 등 노 간부들이 실시한 파룬궁에 대한 깊이 있는 조사로부터 나온 ‘파룬궁은 국가와 국민에게 백 가지 좋은 점만 있고 한 가지 나쁜 점도 없다’는 결론을 무시하고,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의 반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더욱이 국가 헌법과 법률에서의 신앙 및 언론자유 게다가 법률의 보호를 받는다는 등 관련 조항을 무시한 채,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하여 탄압을 감행했다. 게다가 광적으로 “나는 공산당이 파룬궁과 싸워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서 장쩌민은 사실을 무시하고 입에서 나오는 데로 함부로 지껄여 파룬궁을 모독했고, 많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잔혹하게 탄압했다. 장쩌민은 비밀지령을 내려 파룬궁에 대해서는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며, 육체적으로 소멸하라.’, ‘구타해 죽여도 죽이지 않은 것으로 하고, 구타해 죽었다면 자살로 간주하라.’라고 했다.

린링메이는 수많은 파룬궁수련생과 마찬가지로, 중공(중국공산당) 강권의 탄압에 직면해서 놀라 쓰러지지 않았고, 그녀는 파룬따파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파룬따파는 ‘진선인(眞善忍)’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게 하고, 사람들의 도덕을 승화시켰으며, 사람들의 신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했기에 잘못이 없다! 그녀는 이렇게 좋은 공법이 중공에게 함부로 모독당함을 볼 수 없었고, 그녀는 무고한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말의 독해를 입어 대법에 대해 존경하지 않고 또 증오한 것으로 인해 죄업을 조성하게 할 수 없었다. 2000년 5월 11일, 그녀는 여동생과 함께 베이징으로 가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는 신성한 길에 올랐다. 5월 13일 이날은 ‘파룬따파의 날’이다. 두 자매는 이른 아침에 톈안먼 광장으로 가서 사람들 쪽을 향해, 장엄하고 아름다운 파룬궁 공법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동은 중공 경찰에게 발견되었다. 경찰은 즉시 에워싸고 그 두 자매를 강제로 끌어갔다. 그 후 두 자매의 신분과 주소를 자세히 조사했고, 두 자매를 베이징 주재 치타이허시(七台河市) 사무실 – 경7빈관(京七賓館)에 인계했다. 경7빈관 308 방안에서, 그 두 사람은 사무실 인원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했고, 철제침대 위에 채워져, 주야로 다른 사람에게 감시당했으며 밤에는 전등을 켜고 있었다.

5월 14일 오후, 치타이허시에서 사람이 와서 린리메이 두 자매를 끌고 돌아갔는데, 바로 이날 밤에 린리메이가 베이징 주재 치타이허시 사무실에서 기이하게 죽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밍후이왕 2000년 9월 11일의 소식에서 말했다. 린링메이와 여동생 린리펀(林麗芬)은 5월 중순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베이징 주재 치타이허 사무실로 연행되어 갔다. 며칠 뒤에 치타이허시 경찰은 린리펀과 다른 수련생을 현지로 끌고 돌아갔다. 당시 치타이허 경찰은, 린링메이는 보리현 임업국에 속하지 치타이허 관할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곧 린링메이를 베이징 주재 치타이허 사무실에 남겼다. 이 때문에 사무실 인원은 린링메이에 대해 매우 화가 났다. 잇달아 보리현 임업국 파출소에 통지를 내려 베이징으로 와서 린링메이를 데려가도록 했다. 그러나 보리현 임업국 파출소에서 마중하러 온 사람은 비행기에서 내린 뒤, 베이징 유람지로 가서 돌아다니며 놀았다. 그들이 유람이 끝난 뒤에 베이징 주재 사무실로 갔을 때, 린링메이는 이미 사망했다. 그들은 린링메이의 가족에게 통지를 내려, 말로는 린링메이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떨어져 사망했다’고 했다. 그러나 린링메이가 사망할 때의 자세는 두 손이 채워져 있었고, 얼굴은 하늘을 향한 뒤 사무실 아래의 철난간 위에 꽂혀 있었는데, 참상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사정을 아는 인사가 말한데 의하면, 린리메이는 베이징 주재 치타이허 사무실에서 치타이허 공안국 정보과 경찰 비(畢) 모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했다. 린리메이는 부득이하게 건물에서 뛰어내려 도망갈 수밖에 없었는데, 불행하게 10여 시간 동안 철난간 위에 걸려 피를 흘려 사망했다.

사건이 발생한 뒤, 보리현 공안국에서는 린링메이의 가족에게 베이징으로 가서 후사를 처리하도록 통지를 내렸다. 린링메이의 가족은 베이징시 톈탄(天壇) 병원 영안실의 냉장고 안에서 린링메이의 시신을 보았는데, 당시 린링메이의 시신은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았다. 그녀의 가족은 린링메이의 눈 동공이 확대되지 않아 그대로 가족의 얼굴을 비쳐낼 수 있었는데, 마치 억울한 사정을 가족에게 말하려는 듯했다. 가족은, 린링메이의 시신 허벅지 내측에 하나의 상처가 있었는데 2~3바늘을 기웠고 아래 팔에는 훑은 상처(擼傷)가 있었으며, 목 뒷덜미 부위에는 일부 붉은 점이 있었고 뒤쪽 허리 부위에는 한 덩어리의 멍이 들었으며, 팔목 부위에는 바늘로 찌른 구멍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녀의 가족은 베이징 주재 치타이허 사무실에서 린링메이의 사망 원인을 설명하도록 요구했다. 그들은 화제를 회피하며 가족에게, 사망원인은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했고, 게다가 화장 명세서 위에 서명하도록 시키고는 곧바로 황급히 린링메이를 화장했다. 린링메이의 사망 증명서는 베이징시 공안국 선무(宣武)분국에서 보리현 워컨진에서 발급한 것이었다. 사망원인: 건물에서 뛰어내리다. 사망 날짜: 2000년 5월 15일. 사망 증명서를 발급한 시간: 2000년 5월 18일. 화장 증명서 위에는 린링메이가 2000년 5월 14일에 사망했다고 썼고, 2000년 5월 18일에 시신은 베이징시 둥자오(東郊) 장의사에서 화장했다.

파룬따파는 수련생에게 일체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며, 수련생이 살생하고 자살함을 엄하게 금하도록 요구했다. 린링메이도 예전에 “파룬궁을 연마한 나는 죽으러 가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린링메이의 가족은 지금까지도 의혹을 지울 수 없었다. 사무실에서 감시가 아주 엄하고, 손은 채워져 있었는데 어떻게 건물에서 떨어질 수 있는지? 만약 린링메이가 자살했다고 말한다면 무슨 원인인지? 무엇 때문에 자살 현장 사진과 CCTV 녹화영상이 없는지? 린링메이는 무엇 때문에 떨어져 다친 상처 흔적이 없는지? 병원에서는 무엇 때문에 가족에게 진단을 내려 응급처치를 진행한 증명을 주지 않았는지? 린링메이를 지킨 사무실 308방 안의 배치가 변경되었고, 린링메이를 채웠던 철 침대는 어째서 없어졌는지 등등이다.

가족이 직접 검시하고 어떤 사람이 2000년 9월 10일에 밍후이왕에 제공한 정보에서, 독자가 다시 스스로 분석하고 사고하시기 바란다. 시간이 지난 지 비교적 길었던 이유로, 일부 서술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사무실 등 사건 연루 인원에 관련해 린링메이의 가족은 알지 못하고 이름을 부르지 못할 수 있다. 자세한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밍후이왕에 제공해 주시기 바란다.

1999년 6월 10일, 장쩌민 따위는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해, 정법위에 2차대전 시기 나치의 게슈타포와 흡사한 불법 조직을 설치했는데, ‘610’이라고 약칭했다. 그것은 헌법과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위에 군림했고, 직접 장쩌민의 명령을 따랐다. 14년 동안 그것이 중국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조성한 재난은 글로 다 쓸 수 없다. 박해로 사망한 이름이 있는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3,741명이다. 치가 떨리도록 분노하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믿기 어렵게 한 것은, 6만 5천 명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해 폭리를 도모하여 이 세상에서 종래로 있었던 적이 없는 죄악을 만든 것이다.

지금 파룬궁은 이미 전 세계 백여 개 국가에 널리 전파되었다. 그러나 장쩌민 등 파룬궁을 박해한 원흉은 30여 개 국가에서 ‘군체멸절죄’, ‘반(反) 인륜죄’, ‘고문죄’로 기소되어 곧 전 세계의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정의의 판결에 직면했다. 중국에서 새로이 정권을 장악한 자는 장쩌민의 뒤를 걸으려 하지 않았고, 장쩌민을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려 하지 않았다. 동시에 역시 정적을 청리하기 위함인데, 반부패의 명의로 파룬궁수련생의 기관을 생체로 적출하고 또 시신을 판매한 보시라이(薄熙來), 왕리쥔(王立軍), 구카이라이(谷開來)를 체포했고, 저우융캉(周永康)을 체포해 정법위를 무너뜨리고 노동교양소를 해체했다. 그리고 ‘톈안먼 분신자살’ 가짜 사건을 각색하고 연출해, 국민을 속여 독해를 입히고 선동하여 파룬궁을 적대시하게 한 동시에 파룬궁을 박해한 ‘610’두목 리둥성(李東生)을 붙잡았다. 중공 18기 인민대표대회 이래 각급 정법위 관리는 썅규(雙規)처분 및 체포당한 인원수가 453명에 달했다. 그중 공안 계통 392명, 검찰원 계통 19명, 법원 계통 27명, 사법계통 5명, 비 공검법사(공안, 검찰, 법원, 사법) 계통 10명이다. 그리고 12명의 정법 고관은 자살해 사망했다. 이 사람들은 예전에 파룬궁을 박해한 급선봉, 흉수와 죄인이었다. 명지(明智)한 사람, 청풍을 보고 향하는 사람은 잇달아 자신과 가족에게 뒷길을 남겨 파룬궁 박해를 멈추라. 게다가 다른 사람이 파룬궁을 박해한 죄행을 적발해 공을 세워서 속죄하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적발될 때는 이미 늦게 된다.

2000년 5월 14일 밤, 이 음침하고두려운 밤에 베이징 주재 치타이허시 사무실 308방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당사자, 사정을 아시는 사람은 밍후이왕에 제공해 주시기 바란다.

종이로 불을 감쌀 수 없고, 했다면 곧 갚아야 한다. 진상은 반드시 천하에 밝힐 것이다! 꼭 하늘에 있는 린링메이 영혼이 편히 잠들게 해야 한다.

문장발표: 2014년 2월 2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2/28/2881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