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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 만청현 농촌 부녀자 자오즈윈, 중공의 박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남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보도) 바오딩시(保定市) 만청현(滿城縣) 바이룽향(白龍鄉) 둥구촌(東峪村) 농촌 부녀자 자오즈윈(趙志雲)은 1999년 7월 20일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뒤, 파룬따파(法輪大法)에 감은한 그녀는 정부를 믿는 착한 마음으로두 차례나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납치, 고문,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노동교양처분, 장시기 교란 감시를 당해, 가정과 심신은 극심한 교란을 당하고 상해를입어 2013년 12월 26일에 결국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1996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자오즈윈은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의 표준에 따라 사람을 대접하고 일을 처리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신체는 환골탈태하는 변화를 일으켜 고질병이 사라졌고 낙관적이고 건강한 사람으로 변했다.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납치, 고문당해상해를 입다

99년 7월 20일 중공(중국공산당)은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자오즈윈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베이징으로 가서 자신이 연공하여 얻은 이로움을 설명하다가 가오베이뎬(高碑店) 기차역에서 조사받고 만청현 공안국에 의해 바이룽향 파출소로 납치당했다.파출소 경찰의 세도에 홀린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혹독하게 무차별 폭행을가해 그녀의시력이 흐릿해졌다. 그날 저녁 만청현 무장부의 한 더러운 작은 방안으로 옮겨져 감금, 심문을 당했고, 핍박에 못 이겨 대법을 욕하고 연공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고 4~5일 후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래도 평안한 날을 보내지 못했다. 중공 사당의 ‘민감일’이 되기만 하면 파출소 경찰은 베이징으로 가는지 전화를 걸어캐물으며 교란했다. 2000년 봄, 바이룽향 파출소 경찰 구밍량(賈明亮)은 자오즈윈을 파출소로 불러 50위안의 돈을 수색해 갔다.

2000년 10월 1일 오후, 만청현 국가보안대대 자오위샤(趙玉霞), 장전웨(張震岳)은 그녀 집에 들이닥쳐 현 공안국으로 납치했다. 자오위샤는 “아무개가 말하는데 자료는 당신이 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자료는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라고 위협하며 심문했고, 저녁에는 만청현 구치소로 보내 감금했다. 그녀는 구치소에서 강제로 사진을 찍힌 뒤노역 노동을 당했다. 감옥 의사 구루이친(賈瑞芹)이 정면에서 다짜고짜 한바탕 귀뺨을 때려 그녀의 치아가 한대 부러져 선혈이 줄줄 흘러내렸다. 연공을 했다하여 리겅톈(李更田)은 그녀에게 사형범에게 씌우는 일종 형구──두 발은 쇠고랑이로 채웠고, 한자 길이는 쇠몽둥이로 벌리게 하고, 두 손은 수갑으로 채웠는데 손과 발 사이는 한자 길이되는 쇠환(鐵環)으로 연결해 놓는 형구를 씌웠다. 이것은 일종 매우 잔혹한 형구로, 서있을 수 없고 다만 허리만 구부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밥은 먹여 주어야 했고 대소변도 스스로 처리할 수 없었다.

5~6일 후, 자오즈윈은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만청현 국가보안대대의 자오위샤가 또 구치소로 오자, 자오즈윈은 사악의 폭행을 폭로했다. 게다가 “우리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좋은 사람인데,왜 이런 고문을 당해야 하죠?”고 질문했다. 자오위샤는 말로는 상부에서 시켜서 한 것이라고 했다. 자오즈윈은 “현관은 눈앞의 관리보다 못합니다. 상부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이 고문을 가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누가 감히 고문 하겠습니까.”고 말했다. 자오위샤는 들은 뒤 흉악하게 웃으며, 또 할 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형구를 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미 자오즈윈은 9일간의 단식으로 사경을 헤맸다. 남편은 자오훙샹(趙洪祥), 구루이친, 량민(梁民), 자오위샤에게 공갈협박 갈취당해, 어쩔 수 없이 악인에게 한 장의 5천 위안 차용증을 써주어서야 그녀를 집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자오즈윈의 남편은 온종일 두려워 상스러운 욕설을 했다. 또그녀에게 이혼한다고 핍박하며 집에서 거주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바이룽향 파출소에서 온 차량에 탔던 사람들이그녀의 친정집에 들이닥쳐 베이징으로 가는지 캐물었다. 그런 다음계속 끌고 잡아당겨서 그녀를 차량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만청현으로 끌고 갔다가, 또 둥마(東馬)세뇌반으로 끌고 갔고, 또 그녀의 남편이 일하는 곳으로 끌고 갔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는 나와 관계가 없습니다. 나는 그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바퀴 돌고는 그녀를 친정집으로 돌려보냈다. 남동생은 악인에게 “당신들은 함부로 우리 집에서 사람을 끌고 갔는데,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도리어 법을 위반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때 그녀의 남편은 폭죽가게를 차렸는데, 바이룽향 정부, 파출소의 사람은남편의 가게로 가서 함부로 폭죽을 가져가고도 돈을 주지 않았고, 늘 그녀의 남편에게 그들에게 밥을 사라고 했다. 게다가 시비를 걸어 그녀의 남편을 매우 두렵게 했다. 말끝마다 그녀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온종일 이혼하라고 야단쳤다.

자오즈윈은 어쩔 수 없이 4.25에 또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아직 민원사무실로 가지도 못했는데, 곧 사복 경찰에게 톈안먼 경비구(警備區)로 납치당했다. 자오즈윈은 집단 구타, 귀뺨을 맞고, 주먹으로 구타당하고 가죽구두에 얻어맞았다. 또 머리칼을 잡히고 벽에 박혀졌는데, 구타로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눈으로 앞을 똑똑히 보지 못했으며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그런 다음 베이징 핑구(平谷)구치소로 옮겨졌다. 핑구 구치소에서 자오즈윈은 귀뺨맞기, 무차별 폭력, 손가락 끝 비틀기, 쇠정으로 손가락을 눌리는 고문을 당했다. 아픔으로 혼절하면 냉수를 끼얹어 정신을 차리게 했고, 강제로 사진을 찍었다. 감방으로 가는 도중에, 하나의 검문소를 지날 때면 곧 그녀에게 ‘보고 합니다’를 외치게 했다. 그녀가 외치지 않자, 악인은 곧 주먹으로 그녀의 앞가슴을 향해 구타했는데,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파서 밥마저 먹을 수 없었고, 몸을 옮기려 해도 옮기지 못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앉아서 연공을 했는데, 구치소의 악인이 보더니 곧 몰래 그녀의 등 뒤로 걸어가서 혹독하게발로 등을걷어차 등에한 덩의 단단한 것을 남겨 늘 아팠다.

酷刑演示:毒打

고문 시연:혹독한 구타

핑구 구치소에서 자오즈윈은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했고, 감옥 중의 감옥, 파룬궁수련생을 전문적으로 박해하는 작은 검은 방안에 갇혔다. 창문도 없었고 문 위에는 대략 길이가 25센티미터, 너비가 20센티미터인 네모난 작은 입구만 있었을 뿐이었다. 방안에는 똥오줌 통이 있었고, 대소변을 치르는 것마저 협소한 검은 방안에서 치렀다. 5일 후에 큰 감방으로 끌고 돌아갔다.

납치된 뒤 현지로 돌아가 시달림을 당하고, 노동교양처분을 받다

자오즈윈은 핑구 구치소에서 열흘 동안 고통을 당하고, 베이징에서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감금하는 한 접대처로 옮겨져, 스팀 파이프에 채워졌다. 오후, 만청현 610두목 량민 등에 의해 만청현 구치소로 납치당했다.

酷刑演示:野蛮灌食(绘画)

고문 시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그림)

자오즈윈은 만청현 구치소에서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한지 며칠 만에 갖은 학대로 모습이 변했다. 구치소 소장 구루이친, 악독한 경찰 리겅톈(李更田)은 연속 구타하고 욕을 하면서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그리고 신바닥으로 얼굴, 머리를 구타했고, 나무 몽둥이로 복사뼈, 아래 다리뼈, 팔을 구타했으며, 또 구타하면서 비열한 욕설을 퍼부었다. 자오훙샹은 모두 일부 듣기조차 민망한 상스러운욕설을 했다. 매일 두 차례 음식물을 주입했는데, 음식물을 주입할 때, 4명 남자가 그녀를 눌렀다. 머리칼을 잡아당기는 사람이 있고, 팔, 다리를 누르는 사람이 있었다. 구루이친은 음험하고 악독하게 길이가 두 자 되는 고무호스를 그녀의 코와 입안에 꽂고, 옥수수가루 부스러기를 주입했고 야채국을 보태 넣었으며, 어떤 때에는 고의적으로 많은 소금을 넣었다. 다 주입한 뒤에 호스를 뽑아주지 않아, 그 고무호스가 코 안과 위속에 꽂혀 있게 했는데, 시달림을 당해 마음은 불에 타는 듯이 괴로웠다. 다 주입한 뒤에는 땅바닥이나 쇠우리 안에 채워 두었다.

구치소에서 자우즈윈은 수갑에 채워진 채, 국가보안대대의 장전웨에게 불법심문을 당했다. 자오즈윈은 만청 구치소에에서 30일 동안 시달림을 당했다. 2001년 6월 5일 아침, 구루이친은 큰 소리를 지르고는 낮은 소리로 “빨리 물건을 수습하시오. 당신들을 석방해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가족이 당신을 마중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오위샤가 뒷면에서 뒤따르고 있었다. 자오즈윈은 나와서 가족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다만 큰 승용차가 대문 앞에 정차해 있을 뿐이었다. 장전웨는 “당신들은 노동교양처분을 받았습니다. 차에 오르시오! 당신이 만약 불복한다면, 상소를 제출할 수 있습니다. 60일 이내에 효과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오즈윈은 바오딩 바리좡(八里莊) 노동교양소에서 협박당해 1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바오딩 노동교양소에서 마중하러 온 악독한 경찰은 강제로 그녀에게 수갑을 채웠다.

바오딩 노동교양소에 도착해 강제로 몸 검사를 당했고 벽 밑에 세워두기 고문을 당했으며, 마약복용죄수, 매음녀가 지키며 관리했고 또 감옥 규정을 외우도록 위협했다. 죄수는 파리채로 손가락 끝을 후려쳤다. 그 후 밤중에 3~4명 유다(猶大)가 에워싸고 공격해 왜곡된 사설을 주입했고, ‘연공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고 사부님을 욕하도록 위협했으며, 강제로 대법을 비난한 녹화 프로그램을 보도록 했다. 그리고 파룬궁에 대한 인식을 쓰도록 협박당했고 매일 12시간 되는 노역 노동을 했으며, 강제로 줄지어 세워져 인원수를 보고하고 ‘보고 합니다’를 부르도록 했다. 또 늘 유다에게 교란을 당했다.

핍박으로 유랑생활하고, 친구와 이웃까지 교란당하다

자오즈윈이 노동교양소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항상 감시를 당했다.

2009년 8월 11일 오전 9시 이후, 자오즈윈 등 파룬궁 수련생 수명과 만청으로 온 한 명의 이현(易縣) 수련생은 바오딩 바리좡 노동교양소로 가서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한 수련생을 면회할 때, 노동교양소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그날은 이른바 ‘면회일’이었다.

2010년 8월 16일 오후 3시 쯤, 만청현 청관(城關) 파출소 부소장 한옌궈(韓彥國)는 한 무리의 악독한 경찰과 결탁해 그녀의 집에 불법으로 들이닥쳐, 불법 수사를 감행했고, 또 그녀를 납치하는 박해를 감행하려 망상했다. 그들은 자오즈윈에게 파출소로 가서 ‘물어볼 말이 있다’고 하며 가자고 했다. 그녀는 한창 집에서 생질녀의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그녀는 일이 있으면 집에서 물어보라며 파출소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 무리 악독한 경찰은 다짜고짜 곧 강제로 납치하겠다고 말했다. 전혀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이런 흉악한 귀신에 직면해, 자오즈윈은 놀라서 혼절했다. 악독한 경찰들은 자오 씨의 생사도 돌보지 않은 채, 그녀의 집을 함부로 뒤지기 시작했다. 또 자오즈윈의 아들이 공부에 사용하는 컴퓨터를 빼앗아 가려고 시도했다. 자오즈윈의 가족의 호된 질책 하에, 악독한 경찰은 그제야 그만두었다. 가족은 응급조치 전화를 눌러서, 혼절한 자오즈윈을 병원으로 보내 응급처지를 하려고 했다. 자오즈윈은 놀라움을 당했던 이유로 심장병이 도져 땅위에 쓰러졌던 것이다. 그 기간, 한옌궈는 전화로 610주임 가오옌(高岩)에게 물어 보았으나, 가오옌은 떠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120 구급차가 왔을 때, 이 무리 악독한 경찰들은 오히려 가로막으며 그녀를 병원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의무 인원에게 직접 그를 청관 파출소로 끌고가도록 알려주었는데, 그녀의 생명을 내버려 두고 돌보지 않았다. 그 후에 가족이 강력하게 항의하고 견지한 상황 하에 자오즈윈은 그제야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3명 경찰은 구급차를 바싹 뒤따라 병원으로 가서 자오즈위안을 지켰다.

악독한 경찰이진일보로 그녀를 박해하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그날 저녁에 자오즈윈은 어쩔 수 없이 병이 있는 몸으로 유랑생활을 했다.

일이 발생한 후 며칠되지 않아, 악독한 경찰 한옌궈는 또 한 무리의 악독한 경찰을 거느리고 자오즈윈이 거주한 이닝(怡寧) 주택단지 1층으로 가서 조사를 했다. 아래층의 이웃에게 자오즈윈이 돌아왔는지 물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옌궈는 그를 상대해 주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을 보고, 곧 무척 화가 나서 사람들이 한창 마작을 하는 책상을 두 쪽으로 부수었다. 그리고 “내가 바로 청관 파출소 부소장 한옌궈입니다. 청둥촌(城東村)에서 거주하는데, 당신들은 나를 찾으시오.”고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추수의 계절에 자오즈윈은 가족과 옥수수 추수가 걱정되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사당이 그녀를 붙잡으려 하고,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이 여러 차례 잠복 감시를 하고, 집으로 와서 교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극도로 걱정하고 상심해, 마음이 무척 급해 밥을 먹을 수 없었고, 또 주거가 부정하여 여기 저기 숨었다. 그녀는 극심한 압력을 감당하다 심장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는데 점점 심각해져 심장 방전(心臟房顫) 병 증상까지 발전했다. 심장이 답답함은 점점 심각해져 밥도 얼마 먹지 못했고, 저녁에 잠도 이룰 수 없었다. 악독한 경찰은 그녀가 머룬 주택단지에서 여러 차례 잠복 감시를 감행했다. 한옌궈는 그녀의 집으로 가서 그녀 남편에게 그녀의 행방을 알리라고 핍박했다. 그녀의 남편을 보기만 하면 곧 자오즈윈이 어디로 갔는지 캐물었다. 그녀의 남편은 “내가 아직 당신에게 사람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나한테 사람을 요구합니까! 그녀가 집에 없어서, 아버지를 시중들 사람이 없습니다. 다시 소란을 피우면 나는 아버지를 당신의 집으로 데려 가겠습니다.”고 말했다. 한옌궈는 추궁당해 말문이 막혔다.

매번 교란, 공갈협박 중 세상을 뜨다

그녀의 큰 딸이 아이를 낳을 때가 되어서야, 자오즈윈은 집으로 돌아왔다.

2011년 설 전, 중공 불법인원은 또 그녀를 납치하려고 망상했다. 가족은 매번 공갈협박을 당했는데, 그녀가 다시 박해당할까 두려워 감히 그녀에게 집에 거주하지 못하게 했고, 그녀에게 빨리 나가서 며칠 숨도록 했다. 2010년 8월, 사악의 이른바 대납치에서 그녀에게 1년 6개월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내린 노동교양서를 일찍이 다 만들어놓아서, 한옌궈 무리 악도들은 시종 그녀를 감시했다.

2012년 3월, 중공이 양회를 소집한 두 번 째날, 만청 청젠(城建) 사회 지역 주임은 곧 그녀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날 오전, 자오즈윈은 한창 점심밥을 짓다가,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문을 연 뒤 보았는데, 한 낯선 부녀자가 보였다. 자오즈윈은 그녀를 들어오게 했다. 그녀는 집을 잘못 찾았다는 거짓말을 하고는, 황급히 아래층으로 달려갔다. 얼마 안 있어 또 누군가 쾅쾅하고 문을 두드렸다. 그녀가 문을 열고 보았는데, 금방 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머리를 기웃거리며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그녀 딸에게 “그녀는 너의 어머니냐?”고 물었다. 그녀 딸은 맞다고 했다. 그 사람은 머리를들이밀었다가 두 마디 말도 하지 않고 황급히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자오즈윈은 무슨 연고인지 몰랐다.

오후, 그 여인은 마작 집으로 가서 자오즈윈의 남편을 찾아 “당신의 아내에게 사회 지역 사무실에 가서 있으라고 하시오. 우리는 마작을 하겠습니다. 당신의 집 문어귀에서 그녀를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음을 놓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다시 놀라움을 당할까 두려워, 즉시 그녀에게 몇 가지 조건을 말했다. “그녀는 몸이 좋지 않아 병이 있는데, 당신들이 그녀에게 옷을 씻어주고 밥을 지어주시오. 만약 그녀에게 무슨 불길한 일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그가 말하는 말을 듣더니 놀랐다. 원래 그녀는 사회 지역 주임 왕수팡(王素芳)으로, 그녀는 610의 파견을 받고 다른 한 여인과 함께 매일 자오즈윈의 집 문어귀에서 잠복해 있으면서 감시했던 것이다. 또 몇 차례나 그녀의 집으로 가서 교란하고, 그녀를 감시해 사회 지역 사무실에 구금하여 그들이 마작을 하는데 영향주지 않으려고 망상했다. 중공 양회가 해산되어서야, 왕수팡은 부하 직원 톈예이(田野一)에게 지시를 내려 사당 민감일이면 곧 자오즈윈의 남편에게 교란 전화를 걸게 하여, 자오즈윈과 그녀 가정에 극심한 정신적 압력과 충격을 조성해주었다.

자오즈윈은 병으로 쓰러져 밥을 먹지도 못하고 잠을 이룰 수도 없었으며, 또 복부가 부어올라 집안일도 할 수 없었다. 여러 차례 심장 방전 증상이 나타나, 딸은 의사인데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가서 입원치료를 받게 해, 좋은 약을 쓰고 돈도 적잖게 썼다. 2년 동안 병 상황은 가끔은 좋았다 가끔은 나빠졌다. 결국 점점 심각해져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아들과 몸이 불편한 남편을 남기고 사망에 이르렀다.

한 농촌 부녀자는 집안일을 유지하고 노인은 돌보며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과로때문에 중병에 걸려 병치료를 할 방법이 없었는데,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만나서,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 했을 뿐만 아니라, 몸도 좋아졌고 사상도 승화를 얻었다. 이렇게 착한 농촌 부녀자는 오히려 중공 사당 각급 인원에게 장시기 박해를 당해, 결국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중공 정부 인원은 함부로 법률을 짓밟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어겼는데, 오래지 않아 반드시 정의로운 심판과 그 악행이 가져온 악과를 당할 것이다.

문장발표: 2014년 2월 1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2/18/2878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