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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 라이시 시 산부인과 의사 리훙샹이 받은 박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보도) 2013년 12월, 미국에서의 대학원 졸업식에 참석해달라는 딸의 초청을 받은 리훙샹(李紅香) 여사는 비행기로 베이징(北京)에 가서 환승할 때, 여권이 무효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50세의 리훙샹 여사는 산둥 성(山東省) 라이시 시(萊西市)병원 산부인과 의사이다. 비록 의사이지만 천식, 부인병, 과민성 비염, 무릎 관절염을 앓았는데, 오랫동안 치료해도 완쾌되지 않았다. 1996년 2월, 그녀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뒤, 모든 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파룬따파 진선인(眞善忍)의 요구에 따라 열심히 근무했으며, 뇌물, 선물, 물건구매 카드, 약품 커미션, 각종 검증․검사의 공제금을 받지 않았다. 그녀의 청렴결백으로 환자들이 혜택을 받았으며, 병원도 이로움을 얻었다.

리훙샹의 가족도 파룬궁을 수련하여 이로움을 얻었다. 부친의 30여 년간의 천식, 모친의 다년간의 만성위염과 위출혈까지 대법을 수련해 완쾌되었으며, 딸은 1998년에 오토바이 사고로 왼쪽 아랫다리가 부러졌으나, 병원에 가지 않고도 55일 만에 기적같이 건강을 회복했다. 일가족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으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실증했다.

리훙샹 여사는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장기간의 박해를 받아 정상적으로 근무할 수 없었고 승진도 할 수 없었으며, 늘 610 요원에게서 오늘은 민감일이라는 등 내일은 전화를 감청한다는 둥 공갈 협박을 받았다.

납치되다

1999년 4월 11일, 과학 무뢰한 허쭤슈(何祚庥)는 톈진(天津)교육학원의 잡지 ‘청소년 과학기술 박람’을 발표해 파룬궁의 문장을 모독하고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톈진의 일부 파룬궁 수련생은 톈진교육학원 등 관련 기구로 가서 실제 상황을 말했다. 톈진 시 공안국은 4월 23일과 24일 이틀간 난데없이 진압경찰을 동원하여 파룬궁 수련생 45명을 납치하고는 “당신들은 베이징으로 가시오. 베이징으로 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오.”라고 공언했다.

1999년 4월 25일, 각지 만여 명의 파룬궁 수련생은 자발적으로 잇달아 베이징 국무원의 민원실로 청원하러 갔다. 리훙샹도 60여 세 부모와 8세 딸을 데리고 청원하러 베이징으로 갔으나, 국가 민원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베이징 경찰에게 가로막혔다. 뒤이어 라이시 시 경찰에 의해 라이시 시로 납치되었다. 라이시 시의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공안국, 위생국은 라이시 시 병원의 우슈신(吳秀欣), 주리신(朱麗新), 리훙샹 등 파룬궁 수련생에게 파룬궁을 비판하라고 강요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은 공개적으로 파룬궁 박해운동을 발동했다. 7월 21일 이른 아침, 리훙지(李紅極), 리훙핀(李紅品) 자매와 쥐루이훙(居瑞紅)은 시외버스를 타고 재차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다가 지난(濟南) 고속도로 입구에서 경찰에게 가로막혀 납치되었다. 그들은 라이시 시 경찰과 라이시 병원의 기사에 의해 라이시 수용소로 납치되어 10여 일 동안 불법 감금되었다. 리훙샹은 집으로 돌아온 후 겨우 며칠 만에 병원 응급센터 1층에 갇혔다. 리훙샹과 우슈신이 대법을 실증하는 말은 단장취의(斷章取義)되어 현지 텔레비전에 방송되었다.

1999년 9월 13일, 리훙샹은 출근하다가 보위과장 량완쥔(梁萬軍)에게 끌려가서 민원국 수용소에 보름 동안 불법 구류되었다. 그 기간, 라이시 세무(稅務) 파출소장 우위루(吳玉路)는 수용소로 간 적이 있는데, 파룬궁 수련생이 단체로 ‘논어(論語)’ 외우는 것을 듣고는 파룬궁 수련생 양리화(楊麗華)의 긴 머리카락을 잡고 벽에 부딪쳤으며, 가죽 구두를 벗어 사납게 때렸다. 리훙샹이 “구타는 허용되지 않아요.”라고 큰소리로 외치자 우위루는 리훙샹도 때려 땅에 넘어뜨렸다. 그는 파룬궁 수련생 성다(滕達)와 왕융후(王永虎)가 쭈그려 앉히기 고문을 거부하자 두 사람을 걷어차서 넘어뜨렸으며, 가죽 구두를 벗어 사납게 때렸는데, 그야말로 실성한 사람 같았다. 구치소 교도관은 강제 노동을 시키고, 교도관 개인의 이불을 빨라고 했으며 개인 집의 청소까지 시켰다.

1999년 10월 하순, 파룬궁 수련생이 희생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자, 당시 라이시 시 정법위 서기였던 장훙싱(薑洪興)은 두 우두머리를 가두면 청원하러 가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어느 날 저녁 9시가 넘어서, 병원 보위과장 량완쥔은 보위요원 3명과 함께 리훙샹과 우슈신의 집에 들이닥쳐 두 사람을 납치하여 병원 응급센터 2층에 꼬박 42시간 동안 감금했다.

1999년 12월 8일, 리훙샹은 세 번째로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다가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기다리던 라이시의 경찰 류궈훙(劉國紅)에게 발견되어 베이징 주재 라이시 사무소로 납치되었다. 그녀보다 하루 일찍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던 모친 리슈화(李秀花)와 작은이모 리슈아이(李秀愛), 그리고 왕싱메이(王興梅) 등은 정보과의 악독한 경찰 장루닝(張魯寧), 샤오쉐(小薛)에 의해 압송되어 돌아왔다. 돌아오는 중에 장루닝은 리슈화와 리슈아이, 그리고 다른 한 파룬궁 수련생의 돈 수백 위안을 자신의 식비로 빼앗았으며, 파룬궁 수련생을 라이시 수용소에 집어넣었다. 한겨울에 파룬궁 수련생을 맨발로 정원에 쭈그려 앉혀놓았는데, 60세여 세인 리슈화조차도 가만두지 않고 8일 동안 불법 감금했다. 어느 날 오전, 당시 교통대대의 대장 자오장레이(趙江雷)는 파룬궁 수련생을 불러내어 정원에 줄을 세워놓고는, 새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한 장 한 장 갈기갈기 찢으며 수련생들을 자극했다.

1999년 12월 중하순에 리훙샹은 보위과장 량완쥔에 의해 라이시 세뇌반으로 납치되어 일주일을 보냈다. 함께 갇혔던 사람은 인민병원의 장화(張華), 류차이샤(劉彩霞), 쑨린(孫琳), 중의원 장웨이(蔣偉), 발전소의 리옌(李燕) 등이다. 감시한 사람은 라이시 시 정법위 부서기 왕(王) 모, 주임 왕 모, 공안국 사오쥔(邵軍), 위춘잉(於春英), 저우(周) 모(50여 세), 병원의 저우수핑(周淑萍) 등이며, 민정국 궁샤오보(宮小波), 사법국 주임 저우 모 등이 세뇌과를 맡았다.

리훙샹은 대법을 수련해 직접 이로움을 얻었음에도 중공에 의해 반복적으로 불법 구금된 사실을 편지로 써서 병원의 각 과(科) 주임과 수간호사 수십 명의 집에 보내주었다. 병원 서기 위환청(於煥成)은 리훙샹을 그의 사무실로 불러 차갑게 빈정댔다.

업무상 박해받다

1999년 7월 20일, 리훙샹의 급여는 이유 없이 만 위안이나 지급 중지되었다. 1999년 12월부터 3개월 동안은 급여를 받지 못했다. 그 후 매달 겨우 3백 위안(약 52,000원)의 생활비만 받았을 뿐이다. 그 후에는 조건이 비교적 좋지 않은 향진(鄉鎮) 병원인 라오링(繞嶺)병원으로 전근되었다.

2001년 9월, 리훙샹은 15년의 전문의로서의 경험으로 라이시 시 제2 병원에서 산부인과 부주임을 맡았다. 2003년 7월, 산부인과 주임 우수즈(吳淑志)와 원장 황위안성(黃元生)은 리훙샹이 파룬궁 자료를 배포했다고 610 사무실에 신고했다. 황위안성은 또 직접 위생국에 전화하여 악의적으로 모함했다. 2005년에 고위직 승진시험이 있었는데, 리훙샹과 우수즈는 동시에 시험에 응시했다. 기계 설비 및 장비 분야 점수는 리훙샹이 우수즈보다 7점이 높았으나, 병원 측은 은밀히 조작해 리훙샹을 탈락시켰다.

신임 원장 푸페이전(付斐珍)은 610과 공안국의 압력이 두려워, 리훙샹에게 라이시를 떠나려면 반드시 상부에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리훙샹이 협조하지 않자 원장은 곧 610 사무실과 위생국에 보고했으며, 리훙샹의 연속 휴가 사용을 제한했다. 2006년 말 중급간부 회의 시 병원 측은 산부인과 업무를 주관한 리훙샹을 고의로 말석에 배치했다. 원장은 또 간호부 주임 린구이룽(林桂榮)으로 하여금 암암리에 리훙샹과 대화하게 하여, 리훙샹이 파룬궁 진상을 알리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2007년 1월, 병원 측은 파룬궁을 수련하면 중급간부로 임용될 수 없다는 규정을 문서로 하달했다. 리훙샹은 핍박에 못 이겨 산부인과 부주임직을 그만두었다.

2008년 3월, 푸페이전은 리훙샹을 병원의 후근(後勤) 부서로 이동시키고 방치했다.

출국이 제한되다

610사무실 주임 류즈시(劉致希)는 늘 리훙샹에게 오늘은 민감일이라는 둥 내일은 그녀의 전화를 감청한다는등 공갈 협박하였기에 리훙샹과 그녀의 가족은 늘 공포에 떨었다.

2012년 3월,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리훙샹의 딸은 대학 졸업식에 어머니를 초청했다. 리훙샹이 푸페이전에게 휴가를 신청하자, 푸페이전은 사람을 시켜 610주임 류즈시와 위생국장 장위(張瑜)에게 보고했다. 공안국 610에서는 리훙샹의 출국을 제한했다.

2013년 12월, 리훙샹의 딸은 미국에서의 대학원 졸업식에 또 한 번 어머니를 초청했는데, 푸페이전은 이번에는 허락하였다. 그러나 리훙샹이 비행기로 베이징에 가서 환승할 때, 여권이 무효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리훙샹이 라이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서 알아보니, 여권이 2012년 3월부터 3년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여권 절차를 밟는 수밖에 없었는데, 610과장 선타오(沈濤)는 보증서를 작성하라고 강요하였다. 리훙샹은 이런 식으로 들볶이며 4천 위안(약 70만 원)의 손실을 보았다.

선악에 인과응보가 있음은 하늘의 뜻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리훙샹을 박해한 나쁜 사람은 악보를 받았다. 라이시 시 공안국 전 정보과장 사오쥔(50여 세)은 결국 2012년 8월, 식도암 말기가 되었는데 폐에 전이되었다. 전 라이시 시 병원 보위과장 량완쥔은 48세에 식도암에 걸렸는데, 수술을 받은 지 1년 만에 사망했다. 전 라이시 시 병원 부원장 천커톈(陳克田), 그의 아내 친셴잉(秦賢英)은 2003년에 폐암 말기가 되어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천중강(陳中剛)은 2013년에 직장암 진단을 받았다. 라이시 시 제2 병원장 황위안성은 우수즈가 1급 의료사고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면직되었다. 우수즈가 정직되고 1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의료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과실에다 환자가 적고, 분만 수가 동급 병원 산부인과보다 훨씬 적어 결국 과 주임의 위치를 떠났다.

이곳에서 파룬궁 수련생은 여전히 악한 자에게 자신을 위해 퇴로를 남기라고 권한다! 한때 미친 듯이 날뛰던 왕리쥔(王立軍), 보시라이(薄熙來), 저우융캉(周永康) 부류를 보라. 그들도 오늘날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파룬궁 수련생은 모든 생명이 대법 중에서 이로움을 얻기를 바라며,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때에 사람들이 사악을 멀리하고 선량함을 유지하여 자신의 생명에 아름다운 미래가 있도록 하길 기대한다.

문장발표: 2014년 2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2/10/2875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