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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중공의 박해 당한 구이양 우쩌슈 노인 억울하게 세상을 떠남

[밍후이왕통신원 구이저우 보도]구이양시(貴陽市)우쩌슈(吳澤秀,75,女)노인은,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의 박해를 피해 유랑생활을 하던 중2013년12월20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중공이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한10여 년 세월 동안 우쩌슈 노인은 줄곧 박해를 당했는데, 3차례 세뇌반에 감금, 2차례 노동교양소(이하 노교소)감금 등 모두5년 동안 감금 중에서 온갖(고문)박해를 당하여,건강을 크게 해치는 심신상의 손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계속되는 중공의 박해를 피해 정처 없는 유랑생활을 하다가 급기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吴泽秀
우쩌슈(吳澤秀)

1999년7월 중공의 장쩌민 정치깡패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노인은 정부에 대한 믿음을 갖고 고향에서 먼 길을 떠나 베이징 소재(정부)민원실로 찾아가서, “파룬궁은 저에게 건강을 주었습니다.”하고 진실을 말했다.하지만 이 노인은,이런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구이양 쳰둥(黔東)파출소에 의해 납치된 후 거주지로 이송되었지만,중공에게 장기간 박해를 당했는데, 15일의 구류처분, 3차례 세뇌반 감금, 2차례 노교소 감금 등의 박해를 받았다.

노인은 또2001년 진상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2년의 불법적인 노동교양처분으로 구이저우 여자 노교소에 수감됐고,그곳에서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은2004년1월4일 또 중공에 납치되었는데 이유는,구이저우 칭전시(清鎮市)에서, “노교소에 수감된 파룬궁수련생들이 고문박해를 당하고 있다.”는 내용을 폭로하는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납치된 것이다.납치3일 후 전격적으로3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고,구이양 웨이칭(威清)파출소의 사악한 경찰관(이하 악경)에게 압송되어 구이저우성 여자노교소(소재지:구이저우 칭전시 중8향(中八鄉))에 감금돼 박해를 받았다.

노인은 생전에 다음과 같은 하소연을 했다. “선악을 가리지 않는 노교소는 정말로 인간지옥입니다.노교소 안에 함께 수용되어 있는 마약복용 죄수를 악독한 교도관의 도구로 삼아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하는데,악인 교도관 자오샤(焦霞),덩쥔(鄧君)의 지휘와 조종에 의해 고문 박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나는 발가벗겨져 신체검사를 당했습니다.내가 그들,사악에게 굴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악독한 교도관은 장기간 가족과의 면회를 차단시켰습니다.집에서 돈을 보내 차입했어도 내가 그 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는데,다만 화장지를 구입하겠다고 해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악독한 교도관 자오샤는 마약죄수를 시켜 나를 감시하고 괴롭히게 했는데,장시간 군대자세로 세워두는 고통과 잠 안 재우기,심지어 눈을 깜빡거리지도 못하게 하는 등 전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온갖 방법의 고문과 박해로 고통과 괴로움을 가했습니다.더구나 용변이 급해도 화장실 가는 걸 허락하지 않고,자기들 맘에 내키면 데려가고,그렇지 않으면 바지 안에 그대로 싸라고 했습니다.또 그들은 자기들 기분대로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가했습니다.”

“악독한 교도관 덩쥔과 자오샤는 또 마약복용 죄수를 시켜,내가 먹을 음식에 약명불명의 약을 넣게 하거나,강제로 약을 먹였는데,그 약을 먹고 나면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흐리멍덩해졌습니다.그래서 제가 제대로 서지 못하면 악독한 교도관 자오샤는 내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그들은 장시간 대법을 비난하고 모욕하는 녹화영상물을 강제로 시청하게 하고,무슨 종교서적을 읽도록 하여 세뇌를 시도했습니다.이런 세뇌교육은 대부분 조교(幫敎)팡싸(方颯)와 장정팡(張正芳)이 맡았는데,교육이 끝난 다음 자신들이 요구하는 내용대로 소위‘체득문’을 작성하여 제출하라고 핍박했습니다.”

노인은 노교소에서 풀려난 뒤에도 그들,중공의 박해는 계속됐다.국가보안,공안,파출소,지역사회위원회 등의 사람들이 직접 집으로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 교란의 공갈협박을 함으로써 고통과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그러므로 정상적인 편안한 가정생활은 영위할 수가 없었으며,심신에 극심한 상해를 입었다.

우쩌슈 노인은,고문의 수단으로 강제세뇌와 함께 진선인(眞善忍)의 믿음을 포기시키려는 중공의 정신적 육체적인 박해를 피하기 위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어쩔 수 없이 집을 팔아 가산을 정리한 후 노인의 몸으로 주거가 일정치 못한 유랑생활을 하게 되었다.그러다가 그동안 중공으로부터 받은 고문 박해의 후유증으로 건강을 유지 못한 채 결국2013년12월20일 이른 새벽 타향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향년75세다.오늘 날 중국에서 진선인(眞善忍)’의 믿음을 견지하기만 하면,만년을 편안하게 보낸다는 것은 일종 지나친 희망으로 되었다.

문장발표:2014년1월2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24/2860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