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충칭보도) 2014년 1월 9일 오전, 충칭(重慶) 완저우구(萬州區) 관인옌(觀音岩) 파출소 경찰은 주츠향(九池鄉) 파룬궁수련생 머우룬후이(牟倫會) 및 장천잉(張臣英) 두 부부를 납치했다. 소식에 따르면, 며칠 전에 충칭 완저우구 몇 구역에 대면적으로 대법진상 현수막 및 진상 자료가 나타났는데, 중공(중국공산당)의 불법 인원은 머우룬후이 및 장정잉(張正英)이 참여한 것으로 의심했던 것이다.
1월 10일 오전, 완저우구 파룬궁수련생 장천잉(張臣英)과 탄딩위(譚定玉, 여, 60대), 웨이즈비(魏芝碧), 허이팡(何一芳, 여, 60대), 리펑얼(李鳳兒), 쑨지란(孫繼蘭), 광량(鄺良), 얼마(二媽, 여, 70대) 등은 관인옌 파출소로 납치당한 두 수련생을 면회하러 가서 파출소에 석방을 요구했다.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은 그들을 공안국 국가보안지대로 납치해 박해를 감행했다. 소식에 따르면, 지금 완저우구 저우자바(周家壩) 예비역 고포4단(預備役高炮四團)의 81호텔 6층 세뇌반에 불법 감금돼 박해를 당하고 있다.
장천잉과 아들 샹유웨이(向有為)
1월 12일 저녁, 완저우구 국가보안지대는 주민위원회 등 10여 명과 결탁해 불법으로 장천잉이 거주하는 곳에 가서 가택수색을 감행하여 일부 현수막 진상자료와 대법서적을 강탈했으며, 전체 과정을 녹화했다. 그러나 장천잉의 남편이 사진을 찍으려 했을 때, 국가보안의 경찰은 오히려 그가 사진을 찍는 것을 저지했으며, 또 장천잉의 아들 샹유웨이(向有為, 외지에서 근무함)의 전화번호를 요구해 가져갔다.
장정잉 여사와 남편 머우룬후이가 당한 박해
장정잉(張正英) 여사는 40여 세로, 충칭시 완저우구 주츠향 황메이촌(黃梅村) 황메이 5조에 거주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전에 가난하여 남편 머우룬후이는 직접 산에서 돌을 주워 어깨에 걸쳐 메고 등에 지고 날라 돌을 쌓아서 집을 만들었다. 그는 지쳐서 몸이 망가지고 불치병에 걸렸다. 일가족 다섯 식구였는데, 부모는 연로하시고 아이는 매우 어려 생활은 전부 장정잉이 가꾼 야채를 파는 데 의지했기에 매우 어려웠다. 1997년 12월 25일, 장정잉과 그의 남편 머우룬후이는 함께 파룬따파를 수련했다. 3개월이 되지 않아 머우룬후이의 질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이 가정은 구원을 받았다.
2000년 2월 18일, 룽바오(龍寶)공안국 부국장은 파이러우(牌樓)사무실 등에서 7~8명을 거느리고 머우룬후이의 집안에 들이닥쳐 강제로 가택수색을 감행했고 그를 불법 구류시켰다. 2000년 7월 20일, 머우룬후이는 광장으로 가서 민중에게 파룬궁이 박해당한 진상을 이야기했다가 또 룽바오 공안국에 의해 유치장으로 납치당했다. 보름 동안 불법 구류시킨 뒤, 이 경찰 무리들은 또 머우룬후이에 대해 1년 6개월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내려 시산핑(西山坪)노동교양소로 납치해 박해를 가했다.
2001년, 장정잉은 3년의 불법 노교 처분을 당해 공중에 매달리는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 꼬박 3일 동안 공중에 매달렸는데, 학대로 생명이 위독해졌다. 의사는 식물인간 진단을 내렸고 기껏해야 2개월 더 살 수 있다고 했다.
2009년 1월 16일, 악독한 경찰은 또 몰래 머우룬후이를 충칭 시산핑노동교양소로 납치해 1년 9개월 동안 노동교양을 시켰다.
2014년 1월 9일 오전, 완저우구 관인옌 파출소 경찰은 그녀의 집에 뛰어들어 장정잉과 남편 머우룬후이를 관인옌 파출소로 납치해 박해를 감행했다.
장천잉 여사가 여러 차례 박해 당하다
장천잉 여사는 1998년 대법을 수련한 뒤, 몸의 각종 고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심신은 극히 큰 승화를 얻었다. 1999년 7월 20일에 중공 사교가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장천잉은 자신의 믿음을 견지해 사악의 거짓말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거듭 중공 사당의 광적인 박해를 당해 구치소, 세뇌반으로 납치당했고, 두 차례나 노동교양소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2000년 9월, 완저우구 현지에 대법진상이 나타난 뒤, 완저우구 사당 악인은 장천잉이 참여한 것으로 의심해 첫 번째로 그녀를 납치했다. 그 후, 남편 샹쉐밍(向學明)에게 3만 위안을 갈취한 뒤에야 보석해 주는 형식으로 장천잉을 풀어주었다.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또 그녀의 ‘태도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당시의 환청로구치소(環城路, 지금 이미 헐어서 딴 곳으로 옮겼음)로 납치해 박해를 가했다. 구치소의 악독한 교도관은 장천잉이 연공함을 저지하기 위해 전문 인원을 파견해 지켰는데, 그녀를 고정된 쇠의자에 꼬박 3일 동안 채워둔 적이 있다. 악인이 어떻게 구타하고 욕을 하며 박해를 가하든지를 막론하고, 그녀는 연공을 하고 진상을 알림을 견지했다. 그 후에 또 10여 일 동안 단식으로 항의했다. 맨 마지막에 교도관은 부득이 타협하여 그녀가 마음대로 연공하고 진상을 알리는 것을 허락했다. 그녀는 구치소에 2001년까지 불법 감금당했다.
2001년부터 2004년 사이에, 현지의 중공 불법 인원은 장천잉이 현지 ‘완고분자’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감시 및 그녀 가족에게 소란을 피웠다. 2004년, 중공 사당 악인은 장천잉 및 아들 샹유웨이가 현지에서 대법진상자료를 만들 것으로 의심해 7월에 또 장천잉을 납치했다. 아들은 당시 여전히 충칭 싼샤학원(三峽學院)에서 공부를 했는데, 핍박으로 유랑생활을 했다(당시 밍후이왕에 보도되었음). 장천잉은 완저우구 저우자바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또 완저우구 세뇌반(전 완저우구 국세접대소)으로 옮겨져 박해를 당했다. 완저우구 세뇌반에 있던 5개월 중, 세뇌반의 악도가 어떻게 구타하고 욕하며 또 마약 중독자 재활원으로 옮겨서 박해를 가중 시키든지를 막론하고, 그녀는 대법을 외우고 연공을 견지했으며, 어디로 가든지 모두 높은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 게다가 또 세뇌반의 다른 파룬궁수련생을 선도해 함께 박해에 반대했다. 완저우구 세뇌반은 2005년 연초 때 해체되었다. 맨 마지막에 완저우구 국가보안지대의 사악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2005년 2월에 또 장천잉 및 이른바 ‘전향’당하지 않은 수련생을 충칭시 징커우(井口)세뇌반으로 보내 계속 박해를 가했다. 그녀는 여전히 그것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줄곧 높은 소리로 따파 하오!(大法好, 대법은 좋습니다)를 외쳤다. 1개월도 되지 않아 징커우 세뇌반은 곧 현지 정부에서 사람을 파견해 그녀를 집으로 마중해 가도록 했다.
2006년 6월, 파룬궁수련생 장천잉과 자오싱메이(趙興美)는 완저우구 루산향(廬山鄉)에서 진상을 알릴 때, 현지 악인에게 무고를 당해 납치당했다. 그녀들은 1년 6개월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충칭시 마오자산(茅家山) 여자노동교양소에서 더욱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노동교양소에서는 장천잉에게 이른바 ‘전향’을 하도록 핍박하고, 이어서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밥도 매우 적게 먹였다. 바오자(包夾, 24시간 감시) 인원이 구타하고 욕하는 것을 제외한 외에도 독방에 가둬 혹형을 가하는 등 노동교양소는 각종 악랄한 수단으로 장기간 그녀를 고문했다. 그녀는 구타로 앞니마저 부러져 밖으로 치켜들었고, 몸은 한때 뼈만 앙상하게 수척해졌다. 그녀는 여전히 높은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를 외쳤다. 어떻게 박해를 가하든지를 막론하고, 여전히 대법을 외우고 연공을 견지했다. 매번 심각한 박해를 당한 뒤에도 건강을 매우 빨리 회복했다! 안의 교도관은 그녀를 미워하기도 하고 두려워 하기도 했다.
장천잉이 두 번째로 불법 노동교양을 당한 것은 2009년 10월 1일 전야이다. 현지 중공 불법 인원은 보시라이(薄熙來)가 충칭으로 와서 파룬궁을 박해함에 관해 하달한 지표를 완수하기 위해, 장천잉이 막 납치당한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당한 상황을 알아보러 갔을 때, 파룬궁수련생의 집안에 잠복해 감시하다가 장천잉을 납치했다. 그녀는 이렇게 또 1년 6개월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두 번째 노동교양 중에서 악독한 교도관은 그녀를 ‘전향’시키지 못함을 알고, 그 세트의 계통적인 박해를 유지한 외에 진일보로 핍박하지는 않았다. 장천잉은 2010년 3월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그녀의 아들 샹유웨이는 불법 판결을 받고 4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당한 뒤에 막 집으로 돌아온 지 6개월이 되었다.
완저우구 관인옌(觀音岩) 파출소:023-58966110
문장발표: 2014년 1월 1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4/2857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