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닝샤보도) 2013년 3월 16일, 거듭 박해당한 닝샤(寧夏) 우중시(吳忠市) 칭퉁샤시(青銅峽市) 사오강진(邵剛鎮) 둥팡훙촌(東方紅村) 파룬궁수련생 우상란(吳尚蘭) 여사가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40여 세였다.
우상란 여사는 세상을 떠나기 전, 한 달이 좀 넘는 동안 또 칭퉁샤시 샤오바진(小壩鎭) 청관(城關) 파출소 경찰에게 강제로 납치당한 뒤에 걸상 위에 여러 시간을 채워졌는데, 화장실 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심각한 병 증상이 나타나서야 경찰이 가족에게 데려가서 병치료를 하게 했다. 그녀는 그제야 집으로 돌아왔다.
우상란 여사는 생전에 거듭 중공(중국공산당) 각급 인원에게 박해를 당했다. 예전에 납치, 불법 감금, ‘쇠의자’에 앉히기 고문, 집에 찾아와 교란하고 공갈협박 하는 등 고통을 당했다.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데 사용하는 형구: 쇠의자 고문
2006년 8월 26일, 닝샤 인촨시(銀川市) 융닝현(永寧縣) 공안국 사람 여럿이 우상란의 집에 불법으로 들이닥쳐, 강제로 우상란을 인촨시 구치소로 납치, 감금했다. 구치소 경찰악인은 우상란의 손발을 쇠의자 위에 꼬박 3일 동안 묶어놓고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파룬궁을 모독한 자료에 지장을 찍으라고 우상란을 핍박했다. 9월 19일에 이르러서 칭퉁샤시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리전장(李振江) 등은 그제야 우상란을 집으로 압송해 왔다.
2010년 6월 8일 오후, 칭퉁샤시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리전장과 다른 두 경찰은 또 우상란의 집으로 갔다. 말로는 그녀와 ‘이야기’하려 한다고 했다. 우상란은 방법을 생각해내 그곳을 벗어났다. 이 때문에 옥수수밭의 김을 매지 못하고, 논밭의 김도 매지 못했다. 당시 칭퉁샤시 610,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국가보안대대 인원은 빈번히 현지 파룬궁수련생을 교란했고, 우상란을 인촨 ‘법제세뇌반(강제 세뇌반)’으로 보내려 한다고 큰 소리쳐서 그녀로 하여금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게 했다.
2012년 5월 말, 칭퉁샤시 국가보안대대 리전장 등 경찰 몇은 사오강진 파출소 경찰 및 둥팡훙촌 촌간부 자싱전(賈興真), 장신룽(張欣榮)과 결탁해 우상란의 집으로 가서 파룬궁을 포기하도록 핍박하며 강제로 인촨시 세뇌반으로 납치하려고 했다. 우상란이 단호하게 협력하지 않자 리전장 등은 또 우상란의 남편을 사주해 이혼하도록 했다. 그러나 우상란의 저지로 악인들의 납치박해는 달성되지 않았다. 이어 며칠 사이에 경찰들은 여러 차례나 집으로 찾아가서 교란, 잠복감시를 했다. 우상란은 어쩔 수 없어서 친정집으로 숨었다. 친정 식구는 진상을 똑똑히 몰라 우상란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핍박하면서 끊임없이 압력을 가했다. 이로 인해 우상란은 심신에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
2013년 1월 27일 오전 10시쯤, 우상란은 칭퉁샤시 샤오바진 청관 파출소 경찰에게 파출소로 납치당했다. 악독한 경찰들은 우상란을 걸상위에 몇 시간 채워놓고 화장실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몇 시간 후에 또 우상란을 병원으로 보내 신체검사를 시켰다. 그날 오후 6시 쯤, 파출소 경찰은 우상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청관 파출소로 가서 사람을 데려가라는 통지를 내렸다. 게다가 경찰은 우상란 남편에게 “우상란은 이미 급병에 걸렸다. 빨리 그녀를 데려가 병 치료를 하라.”고 알려주었다. 7시 쯤, 우상란과 남편은 그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뒤, 우상란은 줄곧 몸이 불편했다. 게다가 병은 점점 심각해져, 결국 2013년 3월 16일에 사망했다.
우상란이 2013년 1월에 납치당하고 사망하기까지 겨우 한 달이 좀 넘었을 뿐이어서 그녀가 생전에 박해당한 더욱 많은 상세한 상황은 알 방법이 없다.
문장발표:2014년 1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6/2853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