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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장기적출로 의심: 펑민이 그해 강제로 수술 받고 박해로 사망한 배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우한보도)우한시(武漢市)파룬따파(法輪大法)수련생 펑민(彭敏)은2000년2월 말, 3월 초에 중공(중국공산당)경찰에게 납치돼 우한시 칭링(青菱)구치소에서 잔혹한 학대를 당하고 온몸이 마비되었다.그 후 경찰에 의해 강제로 병원으로 보내져 수술을 받았다.

彭敏

펑민(彭敏)

수술을 받은 뒤,펑민의 허리 뒤쪽이 이유 없이 베어져 큰 구멍 하나가 생겼다.병원 측 직원은 펑민이 하루라도 목숨이 살아 있으면 그 하루라도 퇴원할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펑민은2001년4월6일 저녁에 사망했는데,사망하기 전날 독극물을 주사 당했다.펑민이 세상을 떠난 뒤,병원 측은 부검을 허락하지 않았으며,또 경찰 측에 협력해 즉시 강제로 화장하도록 했다.이 일체는 비정상적인 조치였는바, 모두 하나같이 생체장기적출을 가리켰다.

펑민이 박해당해 사망한 경과

펑민이 칭링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 교도관은 그가‘진선인(眞善忍)’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켜 연공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그를 혹독하게 구타했다.소장 슝지화(熊繼華)와 교도관의 직접적인 지휘 하에 죄수들은 수법을 바꿔가며 펑민을 괴롭혔다.예컨대, ‘예포 쏘기’박해는 독한 죄수가 두 손으로 펑민의 머리를 잡고 힘껏 벽에 부딪치는데,마치 예포처럼 울렸다.고통스러워 기절했고,뒷머리는 부딪혀 부어올랐으며 피망울이 생겼다.또‘청천벽력’은 악독한 죄수가 주먹으로 펑민의 정문(頂門)을 잔인하게 다섯 번 구타했는데,매번‘쿵’하는 소리를 냈다.또‘정심발(定心腳)’은 악독한 죄수가 발로 흉부를 힘껏 차는 것으로서, 7번 걷어차고 또 등 부위를 향해 힘껏8번 걷어차서 소위 전칠후팔(前七後八)정심발이라고 했다.이것이 다는 아니다.구치소 소장 슝지화는 또 늘 직접 한 무리의 죄수를 지시해 펑민을 혹독하게 구타하게 했다.생사도 고려하지 않고 죽도록 구타했다.또한,교도관 주한둥(朱漢東)의 지시에 죄수15~16명이 펑민을 나무판자 침대위에 눌러 놓고 플라스틱 신발 바닥으로 여러 차례 둔부를 사납게 쳤다.

2008년8~9월 경,펑민의 둔부 중간과 왼쪽 다리에 직경이13~15센티미터 되는 고름집이 생겼으나 구치소 측은 치료는커녕 오히려 죄수에게 이 기회를 틈타 그를‘훈계’하라고 암시했다.그래서 죄수10여 명이 펑민을 나무판자 침대위에 눌러 넘어뜨리고,돌아가며 그의 몸에 생긴 고름집을 눌러 극한의 고통을 느끼게 했다.전신은 고통으로 경련을 일으켰고,한 달 가까이 계속 밤에 잠을 잘 수 없어 문 옆에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2001년1월9일,펑민은 거듭 악독한 교도관과 죄수10여 명에게 꼬박 하루 동안 혹독한 구타와 욕설을 당한 뒤,사지와5번 척추뼈가 분쇄성 골절,경추 압축 골절 되었다.당시 기절한 그는 우한시(武漢市)제3병원으로 보내져 응급구조를 받은 뒤에 의식을 회복했다.그러나 이미 전신이 마비되었다.

그의 어머니 리바오슈(李瑩秀)가 이 소식을 알게 된 후,펑민을 집으로 데려 갔다.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펑민은 차츰 먹고 마시고 말을 할 수 있었다.이렇게 펑민의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하자 우한시 공안국 폭동방지대대에서 경찰30여 명을 파견해 강제로 그를 우한시 제7병원으로 납치해 직접 수술실에 보냈다.

수술을 받은 뒤,펑민은 입원부2층 골외과의 복도 끝의 한 방안에 격리되었다.밖은 병풍으로 막았다.경찰은 우한시‘610’과 협동해 그의 어머니,형 펑량(彭亮)이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말로는 간병을 시킨 것이나 사실은 격리시켜 연금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이는 사실 소문이 새지 못하게 막기 위한 것이었다.동시에 우한시 우창구(武昌區)중난가(中南街)파출소의 경찰을 배치해 방안에서24시간 감시하면서 그들이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그해3월 경,친구3명이 성공적으로 펑민을 면회갔다가 그의 허리에 큰 구멍이 있는 것을 보았다.펑민의 어머니인 리바오슈는 그들에게 아들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강제로 병원 수술실로 보내졌는데,나온 뒤에 허리에 큰 구멍 하나가 생겼다고 말했다.병원 측은 치료도 해주지 않고 펑민을 못살게 굴어 죽이려고만 했다는 것이다.

펑민의 허리에 왜 큰 구멍 하나가 생겼을까?이것은 의학적인‘치료’에서 필요하지 않았다.펑민은 신장을 생체로 장기적출당하지 않았을까?당시 일반인은 중공이 사악하게 생체로 장기적출을 할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610사무실’및 우한시 공안국의 지시 하에 펑민에게 죄악을 저지른 우한시 제7병원 측이 마음이 켕겨하는 것을 그 후의 태도,언행을 통해 보아낼 수 있었다.펑민은 수술을 받은 뒤,머리 아래로는 이미 완전히 지각을 잃었다.그러나 병원 측은 경각에 달한 그에게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게다가 공공연하게 펑민의 가족에게 그의 퇴원은 죽은 뒤에나 가능하다면서,하루라도 살아 있으면 그 하루라도 퇴원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01년4월5일 오전,펑민은 강제로 독극물을 주사 당했다. 4월6일 밤 한 시가 넘어서 펑민은 호흡을 멈추었다.펑민이 숨지자 시신은 즉시 옮겨졌고 가족은 즉시 격리 당했다. 2001년4월7일 오전10시 쯤,경찰은 펑민의 시신을 강제로 화장했다.그리고 얼마 후,펑민의 어머니 리바오슈도 갑자기 의문사 했다.

박해에 참여한 인원이 현세현보(現世現報)를 당하다

우한시 제7병원은 중공 경찰 측에 협력해 펑민을 박해해 사망케 한 뒤,또 적극적으로 중공 선전매체에 협력해 가짜 뉴스를 녹화해 세인에게 독해를 입혔다.병원 측은 본 병원 의료진과 외부 매체에,펑민이 연공 때문에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 했으나 경찰 측이 이를 구했다고 말했다.제7병원 골외과 의료직원은 세상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에 속아 펑민이 사망한 뒤에 경찰 측과 협조해 가족을 저지했다.또한,가족의 합리적인 부검 요구까지 거부하여 가족의 정당한 권리를 불법으로 박탈했다.게다가 펑민을 강제로 화장까지 했다.이 의료직원은 중공의 졸개로 이용당해 대법제자를 박해함으로써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저질렀는바,지금 연이어 하늘의 징벌로 인과응보를 받기 시작했다.게다가 자신들의 가족까지 연루되었다.

우한시 제7병원은 그 후에 우한시 야저우(亞洲)심장병 병원이 매입하여 야저우 심장병 제7병원이 되었으며, 7병원 인원을 다시 조직하면서 기존의 골외과를 없애고 외과와 합쳤으며,원래 과 인원8명 중에서 겨우 두 명만 외과에 남겼다.다른6명 중에 두 사람은 연구생 공부를 하여 병원을 떠났는데,그 중 한 사람은 이미 방광암에 걸렸고,다른4명은 직업을 잃었다.기존 골외과 주임 진젠핑(金建平)은2년 반 전에 이미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퇴직해 집에 있는데,올해 겨우53세 정도밖에 안 되었다.그의 외아들은 회사를 차렸으나 손실이 막심했다.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선악에 인과응보가 있음은 천리이다.사람이 어떠한 나쁜 일을 하든지,하늘은 모두 보고 있다.파룬불법(法輪佛法)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을 박해하면 그 죄는 산처럼 크다.희망하건대,세인 및 당사자가 모두 진상을 깨달고 때맞춰 철저히 뉘우치길 바란다.공을 세워 속죄하면 혹시 구원을 받을지도 모른다.

문장발표:2013년12월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2/15/2840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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