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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 서우광시 리궈쥔 여사가 생전에 당한 잔인한 박해(사진)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산둥 보도) 2002년 4월 16일, 산둥(山東) 웨이팡(濰坊) 서우광시(壽光市)에서 유랑생활을 하던 리궈쥔(李國俊) 여사는 웨이팡에서 세 들어 살던 집에서 거듭 중공(중국공산당) 경찰에게 불법 체포돼 웨이팡 구치소에 1개월 동안 갇혔으며, 거듭 각종 고문으로 시달림을 당했다. 불법 감금에 항의하기 위해 12일 동안 단식했다가 또 ‘610’ 세뇌반(서우광시 당교(黨校) 원내에 설립했음)으로 납치돼, 줄곧 박해로 사망할 때까지 박해를 당했다. 당시 겨우 37세였다.

李国俊全家合影(右:李国俊;左:孙读贤,李国俊丈夫)

리궈쥔의 가족사진(왼쪽: 쑨두셴(孫讀賢), 리궈쥔의 남편임)

2002년 6월 초, 서우광진 진(鎭)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서기 추이젠쥔(崔建軍)은 리궈쥔의 집에 가서 그녀가 서우광 ‘610’ 세뇌반에 있다면서, 그녀의 남편에게 2천 위안(약 35만 원)을 가져오면 곧 석방할 수 있다고 했다. 리궈진의 남편은 정말로 믿고 2천 위안을 빌려서 그에게 주고는 석방되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과 가족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기다리던 가족은 오히려 충격적인 부고 소식을 접한 것이다. 6월 9일, 가족은 리궈쥔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시신은 이미 서우광시 다오톈진(稻田鎮)의 화장터로 보내진 뒤였다! 리궈쥔의 남편이 시신을 보려 하자 중공 정부인원들은 허락하지 않았다. 친정 식구의 단호한 요구에 겨우 한 번만 보게 했다. 리궈쥔의 시신은 온몸에 상처투성이였고, 입가에서는 또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으며, 발바닥과 몸에 전기 충격을 당한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전신과 등에는 일부 붉은 반점이 있었고 발바닥은 희어졌다.

2002년 6월 10일(음력 4월 30일) 오전, 서우광시 중공 정부직원들은 리궈쥔의 가족을 위협해 빠르게 장례를 치렀다. 그날 공안국, ‘610’에서 모두 왔다. 또 경찰차 3~4대가 있었으며, 또 일부 경찰이 보초를 서면서 가족이 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동정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 촌민이 없었다. 모두 암암리에 “멀쩡한 사람이 그들에게 맞아 죽었는데, 또 ‘자살’했다고 말하네요. 우린 마음속으로 믿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리궈쥔은 2002년 6월 5일에 박해로 사망했다. 직접적인 책임자는 서우광시 ‘610’ 사무실 부주임 리퉁중(李同忠), 톈칭춘(田慶春)이다.

리궈쥔 여사는 1997년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전에 온몸에 여러 가지 병이 많아 밭에 가서 일을 할 수 없었다. 수련한 뒤에 모든 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집안 살림을 할 수 있었고 또 밭에 나가 일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녀의 가정에도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장쩌민 정치집단이 파룬궁을 탄압해 박해한 뒤, 리궈쥔은 수련생의 착한 마음으로 정부에 진상을 알렸다가 반대로 진 정부에 의해 불법 감금박해를 당했다.

리궈쥔 여사는 생전에 밍후이왕에 투고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단지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서우광시 진정부에 의해 5번 불법 감금을 당했습니다. 어느 한 번은 80일 동안 현금 1만 4천 위안(약 250만 원)을 갈취당했습니다. 서우광진 정부 사무동은 인간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사악에게 이용당한 나쁜 사람은 고무 몽둥이, 경찰 전기몽둥이, 대나무 장대, 젖은 나무 몽둥이, 술병 등으로 혹독하게 구타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등 각종 악독한 방식으로 저와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 수련생 친구를 혹독하게 구타해 괴롭혔습니다.”

“2000년 6월 22일 오후 두 시, 서우광 진 정부 사무동 1층에서 서우광진 당위 부서기 류시중(劉錫忠)은 감찰대 대장 폭도 푸링궈(付令國)에게 고무 몽둥이를 가져오라고 지시를 내리고 제 신발을 벗게 했습니다. 저는 단호히 협력하지 않고 ‘저는 벗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푸링궈는 화내며 고무 몽둥이로 제 몸을 사납게 후려쳤습니다. 계획 생육팀의 쉬웨이(徐偉)와 다른 한 폭도는 저의 어깨를 눌러 움직일 수 없게 했습니다. 맞은 저는 갑자기 귀로 아무 소리도 똑똑히 듣지 못했고, 두 눈을 꼭 감고 똑바로 섰습니다. 저는 그들 몇 사람이 당황하며 저를 침대로 끌고 가는 것만 느꼈습니다. 일순간에 몸이 마치 칼로 베어지는 듯했고, 전신이 허탈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 그들은 교활하게 저에게 ‘당신은 어찌 된 일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당신들이 저를 구타했어요.’라고 말하자 그들은 ‘누가 당신을 구타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류시중은 호의를 갖지 않고 깡패 몰골을 하며 ‘푸 씨(푸링궈를 가리킴)를 찾아 당신의 가려운 곳을 긁게 해주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일이 생길까 두려워 의사를 찾아 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오후 5시쯤, 또 악도 장궈중에게 지시를 내려 구타했는데, 저를 구타할 때 입으로 또 ‘당신은 어디 가서도 나를 신고할 수 없다. 당신이 신고해 보라.’라고 했습니다. 말을 하고는 자기 손에 있는 고무 몽둥이를 휘둘러 저를 한바탕 사납게 후려쳤습니다…….”

“8월, …… 구타당해 세 개의 굵은 대나무 장대가 대나무 가지가 되었고, 가지는 또 토막이 되었는데, 30분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녁이 되자 악독한 교도관은 또 한 차례 우리를 박해했습니다. 어떤 꿍꿍이가 있는 듯한 두 낯선 사람이 이곳에 나타나자 정젠핑(鄭建萍)은 웨이(魏) 모(여)에게 지시해 저를 전등을 켜지 않은 방안으로 불렀습니다. 암흑 속에서 두 사람의 검은 그림자가 보였는데, 검은 그림자는 졸개였습니다. 그들은 저를 땅바닥에 눌러 넘어뜨리고 나뭇가지로 후려쳤습니다. 뒤이어 저를 의자 등에 눌러놓았는데, 머리는 의자좌석을 받치고 있었고 발은 땅에서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대나무 토막으로 사납게 후려쳤습니다. 구타로 바지에도 혈흔이 묻었습니다…….”

酷刑演示:悬空抽打

고문 시연: 후려치기

“(2001년)6월 4일, 저와 수련생들은 함께 교류할 때, 불행하게 사악에게 전부 붙잡혀 갔습니다. 그중 두 수련생은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고, 그들의 생명을 바쳐(리인핑(李銀萍)과 왕란샹(王蘭香)임) 확고하게 대법을 위호했으며, 이로써 사악을 진섭하게 했습니다. 이 학살 사건은 서우광시 공안국 정보과 과장 마오더싱(毛德興)이 혼자서 촉성한 것입니다. 사악은 우리를 쑨지진(孫集鎮) 파출소로 끌고 갔고, 마오더싱은 저를 방안으로 불러서 심문했습니다. 저는 협력하지도 않고 또 대답하지도 않았습니다. 공안국의 악독한 경찰 우관정(吳官正)은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자 화가 나 어쩔 줄 몰라 빗자루를 들고 광적으로 저를 혹독하게 구타했습니다. 구타를 당해 빗자루가 두 토막이 되어서야 멈추었고, 또 사악하게 한 바탕 욕을 했습니다. 저는 다만 사악을 청리했을 뿐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 후, 사악은 우리를 구치소로 보냈습니다. 우리는 죄수가 아니었기에 죄수가 먹는 밥을 먹지 않았고, 그들의 심문에도 우리는 승인하지 않고 협력하지 않았으며, 서로 안아서 그들이 끌고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구치소의 간수는 화가 난 나머지 ‘장쩌민 더러, 저들을 끌어올리게 하겠다.’라고 했습니다.”

리궈쥔 여사가 이 몇 차례 박해당한 상황에 관해서는, 그녀 스스로 자술한 문장 《산둥 웨이팡 서우광 학살 사건의 확실한 증거》를 참조하기 바란다.

리궈쥔은 이번에 마굴에서 뛰쳐나온 뒤,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게 되어 밖에서 떠돌아다녔다. 그 때 그녀의 아들은 겨우 10세였고, 남편 혼자서 집에서 아빠, 엄마 역할을 했다. 멀쩡하던 한 가정이 장 씨 깡패집단에 의해 핍박으로 단란히 모일 수 없었다. 2002년 4월 16일, 세 들어 사는 집에서 웨이팡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돼 웨이팡 구치소에 감금당했다. 동시에 납치당한 사람은 또 대법수련생 장파샹(張發香)인데, 이 둘은 감금박해를 거부해 12일 동안 단식했다. 웨이팡 구치소에서는 곧 인명 사고가 생길 것 같자 서우광으로 돌려보냈는데, ‘610’은 서우광 세뇌반으로 납치해 계속 감금박해를 감행했다. 결국, 2002년 6월 5일에 박해로 사망했다.

문장발표: 2013년 12월 1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2/14/2839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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