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1992년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는 지린(吉林) 창춘(長春)에서 불가의 상승 수련대법-파룬궁(法輪功)을 전수하시어 신속하게 신주대지에 널리 전해져서, 중국의 가장 북쪽 끝-다싱안링(大興安嶺) 모허현(漠河縣)에도 홍전되었다. 투창(圖強) 임업국의 쿵판룽 노인 일가족 다섯 식구, 부부와 세 딸은 연이어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에 들어서서, 대법 속에서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으며 도덕과 경지가 승화되었다.
그러나 1999년 7월 20일 중공(중국공산당) 사당(邪黨)은 파룬궁에 대해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시작했다. 그 날부터 2006년까지의 7년 사이에 쿵판룽 노인의 집은 납치와 감금, 노동교양처분의 박해가 끊인 적이 없다. 현지 공안요원은 “우리 이곳의 구치소는 쿵 씨 집에서 도맡았습니다.”고 말할 정도 였다. 쿵판룽의 아내 둥슈친(董秀芹)은 네 차례나 납치 감금되어 한 차례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고, 큰 딸 쿵샹즈(孔祥芝), 둘째 딸 쿵샹리(孔祥麗)는 모두 네 차례 납치 감금되어 각각 두 차례씩 불법적인 노동교양처분을 당했으며, 막내 딸 쿵샹춘(孔祥春)은 두 차례 불법 감금, 한 차례 노동교처분의 박해를 당했다. 그리고 쿵샹룽 노인은 세 차례 납치 감금을 당했다.
이렇게 세 딸은 장기간 감금되고 노동교양처분을 당했으며, 셋째 사위는 이로 인해 직장에서 압력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사위들은 심리적인 압박을 감당하지 못하고 늘 쿵판룽 노인의 집으로 가서 불평을 늘어놓으며, 이혼하겠다고 떠들었다. 막내딸은 납치돼 노동교양처분을 당했으나, 이제 겨우 2세밖에 안 된 아이가 집에 내버려져 보살펴 줄 사람이 없었다. 결국 쿵판룽 노인이 그 어린 외손자를 보살펴줘야 했다. 장기간 이런 생활에서 우울증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안정되지 못해 정신적 육체적 괴로움으로 쿵판룽 노인은 건강상태가 점차 나빠지게 되었다. 쿵판룽 노인은 결국 2012년 5월 12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72세다.
1. 아내 둥슈친 납치 감금 4차례, 노동교양처분을 한차례 당하다
쿵판룽의 아내 둥슈친은 금년 74세로, 1999년 9월 10일 쿵판룽의 일가족 여섯 식구, 쿵판룽 둥슈친 부부, 세 딸(막내 딸 쿵샹춘은 두 살 아이를 안고 있었음)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 돌아온 뒤, 모허 투창공안국의 파룬궁 박해를 주관한 부국장 장러우팡(張落芳), 허우지창(侯繼昌) 등이, 국가보안대대장 왕징산(王景山), 저우원콴(周文寬) 등에게 지시하여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감행한 후 악경(사악한 경찰)들은, 쿵판룽과 아내 둥슈친을 함께 납치하여 모허현 구치소로 연행, 3개월 동안 불법 감금했으며, 또한 이른바 급식비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기도 했다. 또한 2000년 2월, 쿵판룽과 아내 둥슈친은 투창 국가보안 악경 왕징산 등에 의해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고, 투창 구치소로 납치돼 1개월의 구류처분을 받고 감금당했다.
2000년 7월 남편 둥슈친은 거듭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투창 공안국 장러우팡, 왕징산 등 악경에 의해 투창 구치소로 납치돼 불법 감금을 당하여 또 2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8월 치치하얼(齊齊哈爾) 솽허(雙合) 노동교양소로 이송되었다. 둥슈친은 노동교양소에 들어가자마자 악경 자오리쥐안(趙麗娟) 등이 욕설을 퍼부었다. 대장 왕메이(王梅), 왕옌(王岩) 및 대장 훙전취안(洪振權) 등도 그에게 심한 욕설로 모욕을 주었고, 세뇌를 꾀하고 ‘전향’할 것을 강요하는 등 정신적인 학대를 가하며 장기간 독방에 감금했다. 2000년 10월 25일 둥슈친은 또 헤이룽장성 마약 중독자 재활원으로 납치돼 계속 박해를 당했으며, 불법적인 독방 감금으로 고통을 당했다.
2001년 말, 투창 국가보안 악경 왕징산, 저우원콴 등은 쿵판룽 노인의 집에 불법적으로 난입하여 가택수색을 해 집안에 있던 단지 300위안뿐인 생활비를 몽땅 강탈했고, 대법서적, 진상자료와 그 외 아이의 음악청취용인 헤드셋 등을 모두 강탈한 후, 쿵판룽, 둥슈친 부부를 납치하여 투창 구치소에 보름 동안 불법 구류하고, 급식비 명목으로 다시 돈을 갈취했다.
2. 큰 딸 쿵샹즈 4차례 납치 감금, 2차례 노동교양처분을 당하다
쿵판룽의 큰 딸 쿵샹즈는 금년 51세로, 1999년 7월 20일부터 파룬궁에 대한 믿음을 견지한 것 때문에 중공 사악기관에 의해 네 차례 납치 감금, 두 차례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1999년 7월 20일 다음날 쿵샹즈와 막내 여동생 쿵샹춘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베이징 주재 다싱안링 투창 공안국의 악경 가오광쿼(高廣闊) 등에 의해 납치되어 투창 구치소에 보름 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그리고 강제로 매일 30여 위안의 급식비를 갈취당했다.
1999년 9월 18일, 쿵샹즈는 부모와 여동생 등 일가족 여섯 명이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돌아온 뒤, 모허현 투창 공안국 국장 장뤄팡, 허우지창이 부하에게 지시하여 투창 구치소에 보름 동안 감금했고, 역시 급식비 명목으로 돈을 갈취했다.
2002년 정월 18일 쿵샹즈는 세 번 째로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민원실에서 접수하지 않자, 쿵샹즈는 톈안먼 광장으로 들어가서 현수막을 펼쳤다가 톈안먼 그곳의 국가보안 특무에게 현장에서 납치되어 베이징 주재 다싱안링 사무실로 압송됐다. 투창 공안국 궈쓰훙(郭嗣宏), 쉬후이싱(徐會星) 및 직장의 몇 사람은 쿵샹즈를 투창 구치소로 이송 감금했다. 쿵샹즈는 혹심한 핍박을 견디지 못하여 수련을 포기했고, 베이징으로 들어가 청원함을 허락받지도 못했다. 1개월 감금당한 뒤 1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치치하얼 솽허 노동교양소로 이송되어 박해를 받았다.
2002년 투창 공안국 허우지창, 장뤄팡은 부하 츠정더(遲正德) 등 악경을 대동하고 불법적으로 쿵샹즈의 집에 들이닥쳐 가택수색을 감행하여 대법책을 강탈하고, 쿵샹즈를 납치하여 구치소로 압송 감금했다. 쿵샹즈는 3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치치하얼 솽허 노동교양소에 수감되어 박해를 받았다.
3. 둘째 딸 쿵샹리 4차 납치, 2차 노동교양처분, 혹심한 고문박해 당하다
쿵샹리는 금년 48세다. 1999년 9월 18일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가서 이름을 밝히지 않고, 주소를 말하지 않고, 또 파룬따파에 대한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베이징 구치소에서 81일 동안 불법 감금되어 혹독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그 후 투창 국가보안 웨이밍(魏明)에 의해, 모허현 투창 구치소로 이송되어 보름 동안 불법 감금을 당했다.
2002년 정월 18일 쿵샹리는 두 번째로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국가보안 특무에게 납치돼, 모허현 투창 국가보안 악경 궈쓰훙과 푸진허(付金和), 쉬후이싱(徐會星)에 의해 투창 구치소로 압송 1개월 동안 불법 감금되어 1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치치하얼 솽허 노동교양소에 감금되어 박해를 받았는데, 그곳에서 비인간적인 고문과 혹독한 구타 등의 학대를 받았다. 잠 안 재우기,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주입, 독방에 가두기, 뒤로 양손 결박시켜 밤새도록 방치하기, 밤새도록 바닥에 앉혀 고문을 가하는 등 박해를 받았다. 그 후 점차 박해의 정도를 강화시켜 절반 정도 쭈그려 앉히는 식으로 채워놓고 발끝만 약간 바닥에 닿게 하는데, 한 쪽 손은 침대위에 다른 한 쪽 손은 침대 아래에 채워놓는 혹독한 고통의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또 여러 차례 두 손을 침대판자 사이에 채워놓기도 했다. 한쪽 손은 침대 밑에 한쪽 손은 침대 위에 채워 쭈그리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게 했다. 악경들은 못된 죄수에게 지시하여 온갖 모욕과 구타 그리고 욕설을 퍼붓게 했다. 쿵샹리는 연공을 한 것 때문에 17박 18일 동안 수갑에 채워졌다. 그 중에 3일 낮 3일 밤은 잠을 못자게 했다. 이 기간에 악독한 죄수가 지키면서 그가 때리고 싶으면 때렸고, 욕하고 싶으면 욕을 했다. 쿵샹리는 이런 불법적인 고문에 항의하여 단식을 시작했는데, 그들은 2, 3일에 한 번씩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단행했다, 음식물 강제주입을 할 때, 소장 훙전취안과 악경들은 구타를 가했다. 소장 훙전취안은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보다도 더 대단한 파룬궁수련생을 우리는 많이 다루었다. 우리는 너에 대해 대처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다가 네가 죽으면 우리는 쪽지에 ‘당신이 자살했다고’ 한 장 적어서 상부에 보고하면 우리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하고 말했다.
2002년, 모허 투창 국가보안의 악경 뤼펑(呂峰) 등은 쿵샹리의 집에 불법으로 들이닥쳐 가택수색을 감행하여, 대법 서적을 강탈하고 쿵샹리를 투창 구치소로 납치해 갔다. 그리고 3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내린 후 치치하얼 솽허 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시켰다.
치치하얼 노동교양소에서 쿵샹리 등 파룬궁수련생은 경문을 거둬들여 압수함을 거부했다가, 독방에 갇혀 쇠의자 위에 앉혀졌다. 몇 명이 악독한 경찰에게 연속적으로 걷어차이고 구타를 당했으며, 손과 팔을 한 바퀴 비틀어 쇠의자 위에 놓인 굴렁쇠에 밀어 넣은 후 그 안에서 수갑을 채웠는데, 극심하게 조여져 살 속까지 패이고 뼈까지 패어들어 그 고통은 형용키 어려울 정였다. 악경은 입으로 상스러운 욕을 퍼부으며, 매우 힘들게 수갑 채우기를 마친다. 키가 작은 사람이거나 팔이 짧은 사람은 근본적으로 앉지도 못하고 또 서지도 못했다. 거기에다가 쿵샹리 등 파룬궁수련생에게는 발까지 쇠의자 철판과 쇠 굴렁쇠 안에 넣고, 쇠 굴렁쇠로 손과 발을 단단히 한곳에 채워놓는다. 쿵샹리는 이런 고문과 학대를 당하며 14일 동안 ‘쇠의자’에 앉혀져 학대를 당한 후 설 수도 없었는데, 손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4. 막내 딸 쿵샹춘은 2차례 납치, 1차례 노동교양, 이혼 당해 2세 아이는 보살펴 줄 사람이 없다
쿵샹춘(42세)은 1999년 7월 21일 큰 언니 쿵샹즈와 함께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베이징 주재 다싱안링 투창 공안국의 악독한 경찰 가오광쿼 등에게 의해 투창 구치소로 납치당해 보름 동안 불법 감금당했고, 강제로 급식비를 매일 30위안씩 갈취당했으며, 1999년에 그녀 남편은 견디지 못하고 그녀를 핍박하여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2000년 6월, 쿵샹춘은 2세인 아이를 안고 거듭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투창 국가보안대대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되어 투창 구치소로 압송 감금되었다. 1년의 불법적인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치치하얼 솽허 노동교양소에 수감되어 계속 박해를 당했다.
5. 쿵판룽 3차례 납치 감금, 박해로 사망
쿵판룽과 아내 및 세 딸은 모두 대법을 수련했다. 모허현 투창 공안국 국장 허우지창, 부국장 장뤄팡은 수하에게 지시를 내려, 장시기 쿵판룽 일가에 대해 교란, 납치, 가택수색, 금품갈취 강탈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1999년 쿵판룽과 아내, 세 딸이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간 뒤,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는 사위는 혼자 고향의 집을 팔아버렸다. 두 노인은 집으로 돌아온 뒤 거처할 곳이 없어 여러 곳으로 다니며 세를 얻어 살 수밖에 없었다. 지역 경찰이 여러 차례 집주인을 찾아가, 그에게 집을 팔거나 세를 놓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1999년 7월 20일 그 날부터 줄곧 2006년까지, 대법을 수련하는 쿵판룽의 전 가족 다섯 식구에 대한 중공의 납치, 가택수색, 구류 등의 불법적인 박해가 중단된 적이 없었다. 현지의 공안요원은 “우리 이곳의 구치소는 쿵 씨 집에서 도맡았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세 딸이 납치와 노동교양처분을 당하자, 사악한 중공은 연좌제의 정책을 써 3명의 사위에 대해서도 직장을 통해 압력을 가했다. 사위들은 이로 인해 심리적인 압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늘 처갓집으로 가서 불평을 늘어놓으며 이혼하겠다고 떠들었다. 아내 둥슈친은 4차례 납치돼 감금당했고, 1차례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더군다나 쿵판룽 노인은 3차례 모허현 투창 구치소로 납치돼 감금당했다.
13년의 잔혹한 박해에, 쿵판룽 노인은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우울증을 수반하게 되었고, 정신적 육체적 시달림을 감당하기 힘들어했다. 둘째 딸은 이혼했고, 막내 딸 쿵샹춘은 납치 감금된 후 노동교양처분을 당해 수감되어, 집에 홀로 남게 된 겨우 두 살인 아이는 보살펴줄 사람이 없었다. 쿵판룽 노인은 어쩔 수 없이 외손자를 보살펴 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도 모두 쿵판룽 노인의 심신에 극심한 상해를 조성했다. 쿵판룽 노인은 13년의 핍박과 시달림 속에서 고통을 받다가, 결국 2012년 5월 12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72세였다.
쿵판룽 일가족의 비참한 상황은, 중공 사당이 선량한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 생생한 증거다. 이들 가족들이 처한 진실한 묘사로, 중공의 사악함과 잔학함이 폭로됐는데, 이로써 중공이 잔혹하게 파룬궁을 박해한 죄악이 어느 정도에 달했는지를 볼 수 있다. 쿵판룽 일가처럼 이런 비참한 상황은 중국 대륙에서는 아직 많고도 많다. 중공 사당은 박해 중에서 파룬궁수련생 및 가족에게 가져다 준 심신의 상해는 정말 글과 말로는 다 표현 할 수 없다. 희망하건대 선량한 중국인이 중공 사당에 대해 어떠한 환상도 품지 말고, 일찍이 사당의 일체 조직을 탈당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길 바란다.
문장발표: 2013년 12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2/10/2837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