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다싱안링(大興安嶺) 모허현(漠河縣)의 파룬궁수련생 왕슈칭(王秀清) 여사(44세)는 여러 차례 불법 감금, 두 차례 노동교양처분, 장기간의 위협과 공갈협박을 당하고, 2013년 7월 18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남편도 중공(중국공산당) 사당의 공갈협박을 당해 예전에 그녀를 박해한 적이 있으며 이혼했다.
왕슈칭 여사는 1996년에 대법이 좋다는 말을 듣고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에 들어섰다. 그녀는 직장에서 20년 동안 회계 일을 했는데, 특히 파룬궁을 배운 뒤에 대법의 요구에 따라 일을 한 청렴하고 공정한 좋은 회계사였다. 그녀는 국가의 돈은 한 푼도 점하지 않았다. 직장에서는 탐오하고 부패한 사람들이 판결을 당했다. 그녀를 조사할 때에 기율검사위원회 인원은 “당신은 왜 이렇게 가난한가? 다른 사람은 모두 저축이 있는데 당신은 없군.”이라고 말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사당 장쩌민(江澤民) 범죄조직은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당시 왕슈칭은 “이렇게 좋은 공법을 어째서 연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까? 나는 국가 책임자에게 여실히 파룬궁의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왕슈칭은 베이징으로 갔다. 하지만 왕슈칭은 국가 책임자를 만나지도 못하고 곧 모허현 아무얼(阿木爾) 구치소로 납치당했고, 불법 구류, 벌금을 부과 당했으며 3개월 넘게 감금당했다.
당시 장쩌민 집단은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 방송국 등 여론기구를 이용해 파룬궁수련생에 관해 유언비어를 날조해 모독했고, 왕슈칭의 가족도 박해를 당했다. 가족은 압력에 못 이겨 문화혁명 수단으로 왕슈칭과 ‘한계를 분명하게 그어’, 왕슈칭을 아무얼 구치소로 납치되게 하여 그녀는 거듭 불법 감금을 당했다. 왕슈칭은 수련하기 전에 줄곧 가정 폭력을 당했었다. 중공의 적색공포 때문에 왕슈칭의 남편은 그녀를 더 심하게 학대했다. 다싱안링은 한겨울에 섭씨 영하 4~50도 되는데, 왕슈칭의 남편은 왕슈칭의 솜옷과 솜바지를 강제로 벗겨냈다. 그런 다음 왕슈칭을 바깥의 눈밭에서 추위에 떨게 했고, 또 눈으로 왕슈칭을 묻었다. 그리고는 또 장모에게 전화를 걸어 왕슈칭을 핍박해 수련을 포기하도록 했다. 이 기간에 왕슈칭의 직장에서는 불법으로 그녀의 월급 지급을 중지했다.
2001년에 왕슈칭은 거듭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아무얼 구치소에 의해 납치당했고, 또 아무얼 공안국에 의해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치치하얼 솽허(雙合) 노동교양소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구치소에 감금당한 기간에 왕슈칭의 남편은 압력 때문에 왕슈칭과 이혼했다. 왕슈칭은 심신이 심각한 손상을 입고, 또 중공 사당의 사악한 세뇌를 당했던 탓에 핍박에 못 이겨 수련을 포기했다.
2007년, 왕슈칭은 유선암 증상이 나타났는데, 왕슈칭은 파룬궁만이 그녀를 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때 또 새롭게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2011년 섣달 28일, 다싱안링 자거다치(加格達奇) 기차역에서 왕슈칭은 아무얼진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안전검사를 지났다. 그 때, 지니고 있던 핸드백에 있던 파룬궁 진상시디가 발각되었고, 그 즉시 치치하얼 철로공안처에 의해 치치하얼 구치소로 납치돼 감금당했다.
치치하얼의 철로 파출소는 왕슈칭이 유선암 말기에 걸린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또 그녀를 보름 동안 불법 감금했다. 그런 뒤에 또 왕슈칭에 대해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내렸다. 공갈협박 및 사악의 박해로 왕슈칭의 몸은 차츰 지탱하기 힘들어졌다. 치치하얼 철로공안처는 책임을 질까 두려워 그제야 부득이 왕슈칭을 석방하는 수밖에 없었다.
왕슈칭이 이번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 치치하얼 철로파출소의 다이(戴) 경찰은 다싱안링 아무얼진에 있던 왕슈칭의 어머니 집을 불법으로 수색했다. 당시 왕슈칭의 어머니 집에는 단지 어머니 한 사람만 있었는데, 치치하얼 철로공안처의 다이 경찰 등은 아무얼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과 결탁해 왕슈칭의 어머니에게 한바탕 사악하게 공갈협박을 했다. 이에 왕슈칭의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거의 기절할 뻔 했고, 또 심장병도 도졌다. 아무얼 공안국 부국장 캉(康) 모는 수하에게 지령을 내려 교란하게 했다. 그들은 왕슈칭의 어머니에게 생명 위험이 닥치자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급히 도망쳤다. 이 때 왕슈칭은 여전히 하얼빈(哈爾濱) 종양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왕슈칭의 언니와 형부가 집으로 다그쳐 갔으나 왕슈칭의 어머니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충격을 받아 이 모습이 된 것을 본 왕슈칭의 언니와 형부는 화가 난 나머지 아무얼 파출소로 다그쳐 갔다. 그리고 안에 들어서자마자 “누가 우리 어머니한테 그렇게 충격을 주었는가?”라고 물었다. 이때의 경찰은 모두 자신들과는 관계가 없다며, 자신들이 가서 박해를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치치하얼의 경찰이 왔고, 아무얼 공안국의 캉(康) 국장이 명령을 내려 간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7월 초, 치치하얼 철로공안처의 경찰 다이 모, 아무얼 철로 파출소 류잔후이(劉佔輝) 등은 또 다싱안링 아무얼진 왕슈칭의 집에 가서 소란을 피웠다. 경찰 다이 모 두 사람은 아무얼 철로 파출소의 경찰 류잔후이와 결탁해 불법으로 왕슈칭을 아무얼 철로 파출소로 납치했다. 당시 왕슈칭은 이미 걸을 수 없었고, 호흡하기가 어려워 생명이 위독했다. 그럼에도 경찰 다이 모와 파출소 소장 류잔후이 등 악독한 경찰은 여전히 전혀 인간성이 없이 왕슈칭에 대해 사악하게 위협하고 공갈협박을 했다.
거듭된 위협과 공갈협박, 그리고 이 몇 년 동안의 사악한 박해를 왕슈칭은 더는 견뎌내지 못했고, 결국 2013년 7월 18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겨우 44세였다.
문장발표: 2013년 11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29/2833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