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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살해당한 지 10년, 지린 위수시 부친 재 고소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보도) 겨우 32세인 지린성(吉林省) 위수시(榆樹市)의 리수화(李淑花)는 2003년 9월 24일에 위수 구치소로 납치당했고, 두 아이를 남기고 겨우 14일 만에 박해로 사망했다. 가족은 줄곧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었고, 일전에 거듭 고소를 제출했다.

李淑花生前照片

리수화가 생전에 찍은 사진

공안내부 인원이 누설한 데 따르면, 리수화는 당시 구치소에서 악독한 교도관에게 큰 바늘로 손가락 끝, 팔, 등, 흉부를 찔렸는데, 그 비명을 당시 감방안의 죄수와 업무 인원마저 모두 들었다. 게다가 한 번이 아니었다. 악독한 교도관은 리수화의 눈알을 구타해 튀어나오게 해 기절시켰다. 뒤이어 ‘상급’에 요청해 사람을 죽여서 입을 막았다. 흉수 및 흉수를 감싸준 직접적인 책임자는 여태까지 여전히 법을 어기고도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행동하고 있다.

杨占久

양잔주(楊佔久)

리수화의 남편 양잔주는 2002년 8월에 경찰에게 납치당해 위수시 구치소에서 각종 고문을 당할 대로 당했다. 2004년 3월에 7년의 불법 판결을 당해, 쓰핑(四平) 스링(石嶺)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 이로 인해 두 다리, 두 발이 불구가 되었고, 2009년 8월말에 출소했는데, 행동이 불편해 생활할 때 형, 동생, 누나에게 의지해야 했다.

아래는 리수화의 부친 리푸천(李福臣)의 2013년 11월 20일 고소편지이다.

존경하는 인민대표대회 관원, 검찰원, 법관 여러분

저는 리천푸이라고 하며, 위수시 페이잉가(培英街)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한 일반 국민으로서 거리 청소부입니다. 저는 위수시 ‘610’주임 리펑린(李奉林), 전 공안국 국장 판훙광(范宏光),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장더칭(張德清), 구치소 당직소장 궁톄(宮鐵) 등이 악독한 교도관, 악인을 감싸주고 방임해 저의 딸 리수화(당시 32세)를 2003년 10월에 박해로 사망케 한 일을 고소합니다. 공개적으로 당신들에게 고소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딸 리수화는 1996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뒤, 몸이 건강해지고 가정이 화목해졌습니다. 박해로 사망하기 전에는 재단 일을 했습니다. 무릇 우리 집에 바느질감을 주러 온 사람에 대해 제 딸은 모두 열정적이고 빈틈없이 만족해 할 때까지 복무를 다 했습니다. 딸의 복무태도와 기술이 능숙해 많은 사람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딸을 찾아 바느질감을 맡기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으며, 이웃들도 그녀를 좋은 사람, 꽃이라고 불렀습니다. 두 아이는 활발하고 귀여웠으며, 당시에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 아내 추이잔윈(崔佔雲)은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창춘 헤이쭈이쯔 노동교양소에서 1년 6개월 동안 불법 감금당했고(딸이 박해를 당해 사망했을 때, 아내는 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었음), 10여 년 동안 ‘610’ 국가보안대대, 파출소에 의해 불법으로 이유 없이 10여 차례나 납치당했습니다. 사위 양잔주(楊佔久)는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7년의 불법 판결을 받고 쓰핑 스링감옥에 감금돼 박해를 당해 불구가 되었습니다(딸이 박해를 당해 사망했을 때, 사위 역시 감옥에서 불법 감금을 당하고 있었음).

2003년 9월 24일 오전 9시가 넘은 시각, 제 딸 리수화는 한창 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페이잉가 파출소 경찰 장웨이(姜偉), 리밍차오(李明超) 그리고 경찰 양(楊) 모 3명이 제 집에 왔습니다. 말로는 자료를 쓸 게 있는데, 다 쓰면 집으로 돌려보내겠다며 거짓말로 딸을 페이잉 파출소로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뒤이어 국가보안대대로 보내서 심문을 한 뒤에 구치소에 불법 감금했습니다.

리수화는 납치당한 뒤에 구치소 안에 갇혔는데, 경찰이 딸에게 무엇이든 물어도 딸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딸에게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닐주머니로 딸의 머리를 매 숨을 못 쉬게 하고, 핀으로 손가락, 팔, 등, 흉부를 찔렀습니다. 딸은 아파서 비명을 질렀습니다(감옥의 죄수와 근무인원도 다 들었음). 게다가 박해는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악도는 이 수법이 효과가 없자 곧 흉악하게 “나는 꼭 당신의 입을 열어 모두 누구와 연락하는지, 자료의 출처를 말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딸이 여전히 말을 하지 않자 곧 주먹으로 힘껏 눈을 구타해 눈알이 튀어나오게 했습니다. 딸 리수화는 마음이 찢어지고 폐가 파열될 듯이 비명을 지르다 곧 기절했습니다. 악인들은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가족 및 사회에 알릴 수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상부에 지시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생각 끝에 사형죄수를 교사해 제 딸을 죽여서 입을 막기로 하고, 검은 비닐주머니를 머리에 꽉 매 질식시켜 죽이도록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정을 아는 한 공안 간부가 누설한 데 의하면, 만약 제 딸이 구타당해 눈알이 튀어나오지 않았더라면 질식시켜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2003년 10월 7일 저녁, 위수시 구치소의 수감인원이 한창 저녁밥을 먹는 시간에 갑자기 당직 소장 궁톄와 왕쥔(王軍), 교도관 리(李) 모, 교도관 쑨(孫) 모 그리고 또 우커수(五棵樹)의 형사 죄수 커우쥔광(寇俊廣)이 대법제자인 제 딸 리수화를 불법 감금한 감방에 가서는 커우쥔광을 시켜 딸을 감방에서 업어 내가게 했습니다. 그 뒤에 다른 감방의 많은 사람들은 모두 제 딸의 외침소리를 들었습니다. 잠깐 후에 리수화는 강제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두 여자 형사죄수 쑨둥광(孫東光)과 리옌빈(李豔彬)이 함께 갔습니다. 복도에서 리수화는 여전히 외쳤습니다. 그때 리수화는 구치소에 들어간 지 14일이 되었고, 몸과 정신상태가 모두 매우 좋았는데, 이렇게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당시 감방 안의 사람은 모두 이 사실을 목격했습니다. 감방 안의 사람은 교도관 텅칭링(滕慶玲)에게 리수화가 어째서 돌아오지 않는지를 물었습니다. 텅 교도관은 석방했다고 했습니다. 리수화가 박해로 사망한 진상을 감추기 위해 구치소에서는 고의로 속내의, 속바지를 감방 사람들에게 들고 가서 리수화가 석방된 뒤에 남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리수화는 이미 위수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와 위수 구치소의 악도에게 박해로 사망했었습니다.

처음에 악독한 경찰들은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은 채 직접 화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신을 병원으로 끌고 가서 약물에 며칠 담갔다가 또 미용을 하고 또 냉동까지 해 몸에 있던 바늘 찔린 자국은 이미 흐릿했습니다. 다만 그 쪽 눈이 조금 꺼져 들어갔고, 그 쪽 얼굴 절반이 시퍼랬을 뿐인데,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어떠한 문제점도 전혀 보아낼 수 없었습니다. 가족은 경찰이 데리고 온 법의(法醫)에게 딸 리수화의 몸에 있는 일렬의 바늘 자국은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문의했습니다. 법의는 응급처치를 할 때, 혈관이 꺼져 들어가서 찌른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야말로 황당무계 했습니다. 이 외에, 얼굴에는 또 살가죽이 터진 곳이 두 곳 있었고 손톱이 시퍼렇게 변했으며 뱃속에는 핏물이 가득했습니다.

친구들이 영안실로 가서 제 딸을 보려 했을 때, 경찰은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맨 마지막에 친구들이 강력하게 요구하자 그제야 사후의 용모를 한 번 보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당시 영안실 정원에는 경찰이 가득 서있었는데, 가족이 아는 사람은 국가보안대대 스하이린(石海林), 치리(齊立), 차이원거(柴文革) 등이고, 알지 못하는 사람은 10여 명이었습니다. 어떤 선량한 경찰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원 안에는 당시 경찰차 두 대, 미니버스 두 대가 있었고, 대문밖에는 또 차량이 몇 대나 있었습니다. 법의가 해부했을 때, 뱃속에는 어혈이 흥건했고 폐는 매우 컸으며, 소변부위에도 또 피가 있었습니다. 법의는 생리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 어찌 생리가 온 단 말인가? 감옥에서 박해해 죽인 것이 분명한데도, 또 굶어 죽었다고 말하며 흉수의 죄행을 감추려고 시도했습니다.

화장하는 그날 아침 6시 넘어서, 영안실 대문밖에는 경찰차가 두 줄로 정차해 있었고, 공안국 국장 판훙광(范宏光), 안치판(安啟范), 마밍(馬明), 국가보안대대장 장더칭(張德清)이 대열을 인솔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다른 경찰은 대략 40여 명으로, 경찰복을 입은 사람도 있고 사복 차림을 한 사람도 있었는데, 이들 경찰들은 조문하러 온 파룬궁수련생을 보기만 하면 곧 쫓아버리며 파룬궁수련생이 한 사람이라도 현장에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런 장면은 특별히 음산하고 공포스러웠는데, 그야말로 강한 적과 맞닥뜨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은 사람을 해쳐 이치가 닿지 않기 때문에 불안하고 마음이 켕기고, 속셈이 드러날까 두려워 비로소 많은 사람을 동원했던 것입니다. 화장터에 도착한 뒤, 경찰은 가족이 죽은 뒤의 모습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시체를 불태우는 화로 안으로 직접 밀어 넣어 화장했습니다. 시신을 화장한 뒤, 죄증이 소각되어서야 한숨을 돌렸으며, 십여 대의 경찰차는 공안 간부를 싣고 연기처럼 총망히 떠났습니다. 이렇다 했을지라도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어긴 악인을 감추고 감싸줄 수 없는 것입니다.

사후에 구치소 소장 궁톄의 모친은 한 주택단지에서 “파룬궁수련생 한 명이 구치소에서 단식해 굶어 죽었다.”고 퍼뜨렸는데, 분명히 “이곳에 은 300냥을 안 묻었음”이라는 변명과 다름없었습니다. 그 후, 어떤 사람이 궁톄의 가족을 찾아 궁톄를 통해 딸 리수화가 사망한 원인을 캐려고 했으나 회답이 없었고, 곧 궁톄의 가족은 모두 외지로 떠났습니다. 이곳에 꼭 실마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비록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지만 파룬궁을 믿음은 중국 헌법의 보호를 받음을 알고 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함은 합법적인바, 어떤 사람이든 어떤 조직이든 모두 간섭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곧 국제법과 중국 헌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박해에 참여한 자는 마땅히 곧 법률의 호된 제재를 받을 것입니다. 제 딸은 죄가 없으며 무고합니다. 위수시 ‘610’,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구치소의 악독한 관리와 악독한 경찰은 불법 고문죄, 군체 멸절죄, 반(反) 인륜적 죄, 감싸주고 방임한 죄,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어긴 죄를 졌습니다. 때문에 저는 강력하게 아래의 사항을 요구합니다.

1. 시 인민대표대회, 검찰 기관, 법원은 법에 의거해 그 리펑린, 판훙광, 장더칭, 궁톄 등에 대해 법률적 책임을 추궁하고, 국민이 파룬궁을 믿는 자유의 권리를 보호해 중국 헌법과 법률의 존엄을 위호할 것.

2. 불법적으로 나의 딸을 박해해 사망케 하고, 나와 가족에게 입힌 정신적, 육체적 손실을 법에 의거해 배상하며, 우리에게 공정한 평가를 돌려줄 것.

3. 시 인민대표대회와 검찰 기관에서 법에 의거해 조사한 결과를 때맞춰 우리에게 통보하고, 동시에 우리는 상급(上一級)검찰 기구에 고소, 적발할 권리를 보류한다.

문장발표: 2013년 11월 2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22/2829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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