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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에 생체장기적출 진상을 전해 중생구도하다

글/ 일본 오사카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일본 오사카지역의 파룬궁수련생이다. 오늘 기회를 빌려 여러분과 일본사회에서 장기적출진상을 전달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에서의 심득체험을 교류하게 되어 아주 영광스럽게 느껴진다.

1. 일본 현지 정부를 향해 생체장기적출 진상을 알리다

2012년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으로 탈출한 사건이 발생한 후 파룬궁수련생 장기를 생체로 적출한 사건은 국제사회의 광범한 주목을 받았다. 작년 12월 중순 전 세계 생체장기적출 진상팀 아태 협조인은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을 찾아 우리가 일본에서 이 항목의 연락인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 당시 모두 션윈 티켓팅에 바빴고 이 항목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점유 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그리하여 그 당시 이 항목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마음속으로 아주 막연했다. 매일 밍후이왕, 따지웬, 속인매스컴을 보면 국제사회가 생체장기적출 진상을 주목한다는 기사가 끊임없이 나와서 또한 매우 조급했다. 특히 타이완에서는 작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짧은 3개월 사이에 5천 명에 달하는 의료계 인사가 중공의 생체장기적출 폭행을 질책하는 서명을 했다. 타이완의 보건복지부와 변호사 공회에서도 공문과 공개서명을 내어 중공이 이 악행을 멈출 것을 요구하고 질책했다.

일본 현지 정황에 근거하여 나는 전 일본 각 지방의회에 진술서를 부치는 방식을 이용하여 일본정부에 생체장기적출 진상을 광범위하게 알렸다. 이는 많은 인력과 시간을 점유하지 않을뿐더러 또 대법제자가 없는 지역의 인연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도 되게 한다.

이 일념을 정한 후 나는 바로 아태 협조인에게 메일을 보내 그녀더러 진술서 한편을 적어 일본의 지방의회에 보내게 했다. 주요 목적은 이 서한으로 생체장기적출 진상을 알리는 것이다. 며칠 뒤 진술서가 왔고 내가 보니 중문 영문이었다. 생체장기적출을 아주 근거가 있게 명백하게 적어 사람들의 양지를 도의적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박해가 시작되어 지금까지 많은 일본인은 진상을 모르고 거기에 일부 브로커의 소개로 중국에 가서 장기이식을 아는 일본인도 아주 많다.

아주 빨리 수련생들이 중문 영문 진술서를 번역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조금 불안했는데 진술서가 결국 타이완 수련생이 쓴 것으로 일본의 법률과 행정제도를 아주 잘 이해하지 못해 일본정부를 향해 사용하고 일본 의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비교적 좋은지를 몰랐다. 나와 한 수련생은 같이 우리를 십여 년 넘게 지지해온 한 의원과 약속을 잡았다. 그는 진술서를 진지하게 본 후 우리에게 아주 많은 보귀한 의견을 주었고 또 우리를 도와 아주 좋은 진술서 제목을 생각해냈다.

전국에 2천 개 가까이 되는 의회가 있고 매개 의회에 자료 한 세트를 만들었고 자료에는 현직 의장의 이름과 우편주소를 적었다. 수량이 많아 사이트에서 하나씩 검색하여 이 자료를 작성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고 매우 고생스러웠으며 착오가 없어야 했다. 의장 이름을 잘못 적으면 접수와 심사를 할 수 없었다.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컴퓨터를 잘 다루는 다른 한 수련생과 같이했다. 우리는 지역에 따라 우편번호를 준비했고 처음 시작할 때 일부 좌절도 있었다. 1월부터 2월까지 오사카시에서 매달마다 미술 전시를 열기에 참가하는 수련생들이 적었다. 매번 미술 전시에 나는 많은 시간을 내어 당직을 서는 동시에 또 ‘프리차이나’ 영화 상영과 션윈의 티켓판매를 해야 했는데 모든 일이 이 시간을 맞춰 달려와 압력이 컸으며 더는 진행할 수가 없었다. 비록 자료는 인쇄되었지만 의회자료를 찾을 시간이 없어 자료를 계속 부치지 못했다. 가끔 스스로 물러서면서 지금 이렇게 바쁘고 수련생들도 바쁘니 션윈이 끝나면 다시 하자고 했다. 일부 수련생들은 우편물을 부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없다고 여겼다. 이때마다 같이 이 항목을 하는 수련생들은 늘 나를 격려하기를, 생체장기적출과 같은 이런 가혹한 사실을 더 많은 일본인에게 하루빨리 알려서 진상을 알게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동시에 이런 여러 가지 일을 같이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더 큰 용량을 확대하게 하는 것이고 더 정진하라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후에 행하는 과정에서 나의 정념이 갈수록 충족해졌고 일부 사람의 관념과 안일한 마음을 내려놓아 오로지 자신이 정진하기만 하면 한 사람이 열 명의 몫을 행할 수 있고 이런 항목들은 전부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아를 최대한 내려놓고 중생구도를 위해 최대의 노력을 다해 잘하려고 했다.

그 시기에 낮에는 이런 일들을 전문적으로 처리하고 저녁에는 돌아와서 심야까지 자료를 만들었다. 아침 4시 이전에 일어나서 법 학습과 연공을 하고 또 아이를 돌보고 가사를 돌보았다. 수시로 심성의 고험이 따랐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홍음’ “마음고생”에서 말씀하신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겠노라”였다. 비록 고달팠지만, 자신이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중생을 구도하는 사명을 짊어졌음을 생각하면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션윈의 일이 아주 바빠서 션윈 이후에 다른 지방에 부치는 것을 결정했다. 4월 26일 션윈이 결속되자 우리는 또 우편작업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는 5월 13일 미국에 가야 하는데 6월 의회에 참가해야 하기 때문이며 반드시 5월 13일 전에 우편이 부쳐져야 했다. 짧은 10일간 수련생들의 협조와 노력으로 5월 상반기에 700여 통의 진술서를 보냈다.

이번 피드백 전화가 더 많았다. 내가 미국 뉴욕에서 남동생 집에 있는 동안 시차 관계로 전화는 모두 심야에 걸려왔고 매일 밤 거의 3시 이전에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올해 5월 뉴욕법회에서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처음으로 생체장기적출은 “이 성구에서 가장 큰 사악이다.”라고 하셨고 나로 하여금 이 특별 사안에 더 청성한 인식이 있게 하였다. 오로지 대법제자가 나서서 장기적출 진상을 알려 사악을 폭로해야 비로소 이번 박해를 철저히 제지할 수 있다. 이 과정 역시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고 위덕을 수립하는 기회이다.

6월 전 세계 정의 의사들이 ‘생체장기 강제적출을 반대하는 의사조직’ ‘DAFOH‘가 성립되었고 아울러 전 세계에서 서명활동을 발기했다. 민중과 주류사회의 의사, 변호사, 정부관원 등 VIP를 향해 서명을 수집하고 올해 12월에 유엔인권 고위층에게 올리고 이로써 유엔이 나서서 중공의 파룬궁수련생 생체 장기적출의 폭행을 저지하도록 호소해야 한다.

우리가 의회에 준 진술서의 편지에 매개 의회 매개 의원의 서명 자료가 들어있고 서명지에는 매개 의원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렇게 하니 의원들은 진상을 요해할 기회가 생겨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고 그들의 위치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현재 5개 의회에서 이번 진술서를 수립했다. 50개가 되는 지방의 지방의원들이 ‘DAFOH’의 진술서에 서명한 후 팩스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일부 의회에서는 계속 우리의 진술을 심의하고 조사하게 했다. 5개 지역의 의회는 모두 수련생들이 없는 편벽한 지역이다. 이런 의회는 일본정부에 의견서를 내어 일본정부가 법률로 일본 국민이 중국에 가서 장기 이식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게 요구하고 일본정부가 중공의 14년 넘는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질책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에는 47개 현이 있고 현시정촌의 의원은 대략 35,000명에 달한다. 많은 현에는 수련생이 없고 주변 현의 수련생들은 수련생이 없는 현도 모두 포함해서 우편을 부치고 서명을 수집했다. 일본 정부는 중공을 아주 두려워하고 일본인은 남의 일을 그다지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지지하는 사람들도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보고서 자신의 의견을 표시했다. 나는 이것이 우리한테 주류사회와 민중을 향해 대면적으로 진상을 전달해야 함을 깨달았다. 거리 서명, 전화, 인터넷, 팩스, 우편을 포함하고 얼굴을 마주하고 진상을 알리는 등의 각종 방식을 전 방면으로 해야 일종의 바른 사회적 여론과 방향을 형성할 수 있다. 또한, 더 많은 일본민중은 이번 서명활동을 통해 진상을 알고 구도 될 수 있다.

이번 특별 사안을 행하는 전반 과정에서 각종 교란도 아주 컸다. 이런 교란을 제거하는 동시에 심성도 제고되었다. 가끔 수련생들이 자료 조사를 갓 시작하면 컴퓨터가 말을 안 들었고 지체하기만 하면 며칠이었다. 항상 하다가 또 멈춰지고 하다가 또 멈춰졌다. 후에 내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 공부하고 안을 향해 찾았을 때 일만 많이 하여 일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업무량이 많아 그것을 빨리해치우자고 생각했다. 이러한 조급한 사람마음이 일어나자 일은 늘 순조롭지 않고 반대로 시간이 더 걸린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학습을 해야 한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내가 말한 적이 있는데, 당신이 한 그 일이 만약 법에 있지 않아, 만약 법의 힘이 없고, 당신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그 일을 잘할 수가 없다. 어쩌면 그 일을 당신이 했을 수도 있으나 그것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며,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악의 요소를 해체하는 데 당신 역시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 공부가 가장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데, 그것은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체 일의 근본 보장이다. 만약 법 공부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럼 무엇이든 다 끝장이다.” 나는 전문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있는 수련생들과 같이 늘 법 학습하고 교류하면 더욱 잘 촉진하고 공동으로 제고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2. DAFOH의 서명활동을 통해 의료계에 생체장기적출 진상을 말하다

DAFOH가 서명활동을 발기한 후 나는 우선 의료계를 향해 진상을 알려야 함을 생각했다.

한 유명대학이 내 집에서 아주 가깝고 이 대학의 의료부서에는 부속병원이 있고 이 병원의 이식기술은 전국에서 으뜸이며 일부 유명한 이식의사들도 있었다. 나는 먼저 직접 방문하는 방식으로 의사들의 서명을 수집했다.

처음 갈 때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자료를 가지고 한 대학에서 수업하는 신 수련생과 약속을 잡았다. 우리는 직접 이식의사가 거주하는 진료처를 찾아갔다. 우리는 간단하게 목적을 말한 후 접대하는 의무직원은 의사는 환자와 예약한 후 그 시간에 맞춰 오는 것이라고 말하며 의사를 만나려면 반드시 사전 예약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또 대학의학부서 사무 빌딩에 갔다.

우리는 사무실 하나하나 돌면서 노크하고 서명하려고 했다. 시작할 때 나는 마음속으로 조금 우려가 있었고 남이 업무를 보는 시간에 반감을 느끼면 어쩔까 하고 생각했다. 하여 노크를 할 수 없었고 정념이 부족하여 사람의 염두가 위로 올라왔다. 수련생이 옆에서 나를 도와 자료를 가지고 여기가 사무실이라고 말해주며 들어가자고 했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 후 교수의 비서가 진상을 아주 진지하게 듣고 내가 찾아온 뜻을 반드시 전달하겠다고 말하며 자료를 이식교수한테 전달하겠다고 하면서 명함을 요구했다. 그리고 무슨 용건이 생기면 직접 전화를 걸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중생을 구도하는 올바른 일을 하고 있고 일종의 자비롭고 순정한 심태로 가서 행해야 사람은 명백한 일면이 들을 수 있다.

그날 서명과정 중에서 알게 되었는데 거의 모든 사람이 중국의사 생체장기적출의 수한테 전달하겠다고 했다. 일부 교수는 자리에 있었고 진상을 들은 후 자료와 사이트를 반드시 잘 보겠다고 했다.

각 층 복도에는 의료계 각종 세미나 공지와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우리는 이런 집회의 기회를 이용해 부근에 가서 서명활동을 했고 동시에 우리는 또 한 층에서 많은 의학부서 선생님들의 편지를 발견했다. 매개 편지봉투에는 많은 선생님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우리는 이를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자료를 수집했다.

세 번째, 차를 몰고 가는 도중에 수련생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올 수 없음을 갑자기 알게 되었고 나는 이것은 구세력이 교란하여 수련생이 법을 실증하는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음을 의식했다. 나는 즉시 수련생과 이 생각을 교류했고 그더러 발정념을 많이 하라고 했다. 한 사람이라도나는 갔을 것이다. 차를 몰고 가는 길에 발정념을 많이 했다.

도착한 후 나는 혼자서 무거운 자료를 끌고 지난번에 방문했던 사무실을 재방문했다. 한 사무실에는 한 명의 여자 의사가 있었고 그녀는 파룬궁수련생들의 생체장기적출에 대해 미심쩍어하였다. 하여 나는 진상 사진첩과 이전 매스컴의 보도를 꺼냈고 첫 번째 사진부터 그녀에게 설명을 시작했고 그녀는 내가 한 말이 모두 진실임을 알고 적극적으로 서명지에 서명했다.

직접 방문한 후 우리는 각종 의학계 회의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서명했다.

DAFOH의 서명활동이 시작된 후 전 일본의 수련생들이 정기적으로 법 학습하고 교류했다. 매번 모두 많은 수련생이 참가했고 교류를 통해 일반 민중들의 서명을 수집하는 것 외에 반드시 일본의 의료계, 특히 장기 이식을 하는 의료 인사들에게 장기적출 진상을 해야 함을 의식했다.

마침 9월 2~7일까지 일본 교토에서 제13회 아시아이식학회 회의와 제49회 일본의식학회 총회가 열렸고 약 2천 명에 달하는 이식의사와 관련 인사들이 참가했다. 수련생들은 이것이 얻기 힘든 의식계 진상서명의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캐나다수련생들은 또 저명한 국제인권변호사 데이비드 마터스도 이번 아시아 이식학회 회의에 참가하도록 요청했고 회의 기간에 장기의 악용에 대해 사진설명을 했다. 대회가 열리기 전 2주 동안 전국에서는 참여할 수 있는 수련생들이 모두 참여하여 여러 차례 교류를 진행했고 이번 대회의 참여자에게 진상을 잘 알리고 마터스 선생이 이곳에 온 기회를 충분히 이용하여 진상을 알리는 각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교류했다.

마침 대회의 준비업무가 가장 바쁜 첫 번째 주의 주말에 남편의 아버지가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하다가 사망했다. 남편이 장자여서 일본 전통에 따라 장자가 모든 의식을 주최한다. 나 이 큰며느리도 바빠진다. 갑작스러운 교란은 나로 하여금 마음이 무겁게 했고 더 바빠졌다.

그 시기에 모두 마터스가 도쿄에 온 후 어디에서 보고회를 열고 어디에 가서 진상을 알려야 할지를 정하지 못했다. 일부 수련생은 마땅히 이식계 의사들을 향해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교토이식대회의 회의장이 부근에서 열리기 때문이고 일부는 시간이 겨우 일주일 넘게 남아서 사람을 찾는데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 오사카 교통이 편리하여 사람이 찾아오기 쉬운 곳에서 열어야 한다고 했다. 연속 3일 밤 회의를 열어 모두 각자의 이유를 말했고 의견을 하나로 취합할 수 없었다. 나와 다른 한 협조하는 수련생들은 이 정황을 보고 조금 화가 나서 세미나를 열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학회의 한 협조인에게 오사카 정황을 말한 후 그는 아주 엄숙하게 나에게 말했다. “캐나다 수련생들이 마터스 선생이 일본에 오게 배치한 것은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자신의 심성이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정념이 부족하여 비로소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닌가요? 당신은 여러분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비교적 가능한 방법을 정념으로 대한다면 사부님께서는 인연 있는 사람을 배치하여 보고회를 듣게 하실 겁니다.”

이 격려의 말을 듣고 우리의 인력, 물력, 시간 등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아주 빨리 결정을 내렸다. 오사카에서 열기로 했다. 세미나 장소는 아주 순조롭게 임대할 수 있었고 전단지도 나왔고 주말에 단체 법 학습 시간에 다시 여러 수련생과 소통하고 교류하여 모두 선전하여 사람을 찾아서 세미나에 참석할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 결과 시아버지의 장례로 나는 단체 법 학습에 참석할 수 없었다.

장례를 치르는 시기에 교토에서 세미나를 하려고 견지했던 수련생이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왔고 나도 즉시 전화를 받아 그녀와 교류하고 소통할 수 없어 마음이 두근거렸다. 세미나 시간, 장소가 정해졌는데 왜 이 수련생들은 여전히 자신의 의견을 고집할까, 이 수련생들이 아주 이기적으로 여겨졌다. 후에 다른 한 협조인이 말하기를, 이 부분 수련생들은 여러 수련생에게 오사카 세미나의 홍보를 멈출 것을 요구하고 교토의 장소를 빌리려고 했다고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들은 나의 마음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모두 “왕”이라고 하는데 이는 어찌 진상을 알리는 일을 잘 협조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심성은 큰 충격을 받았다. 후에 내가 냉정하여 자신을 볼 때 자신한테도 아주 강한 자아가 있음을 발견했고 역시 자신의 의견을 아주 고집했다. 아마도 상대방의 방식 역시 그녀로서의 도리가 있을 것이며 진정한 제고는 바로 포기라고 하셨다. 내가 자아를 견지하는 마음을 내려놓은 후 마음은 많이 평온해졌고 마음속으로는 어디에서 열든지 모두 배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 며칠 동안 집안일에 바빠 나는 대법의 협조 연락업무를 볼 수 없었고 이번 아시아 이식학계 회의와 일본 이식학회 총회에서의 진상 알림을 잘하려면 협조업무가 무척 중요함을 느끼었으며 각 방면의 교란도 받았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잘 될 것이라고 느꼈다. 수련생들은 나의 정황을 안 후 나의 협조업무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최후에 우리는 회의장 밖에서 도로허가를 신청하고 회의 참석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지하철 입구와 도로변에 현수막과 전시판을 배치하고 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진상을 알리고 서명을 수집하기로 했다. 그 외 우리는 도쿄와 오사카에 마타스 선생의 세미나를 배치했고 또한 아시아의식회의 이후에 마타스 선생과 같이 교토청에 가서 진술하고 아울러 교토청 기자클럽에서 뉴스 발표회를 열었다.

대회기간의 서명활동이 좋은 효과를 일으키게 하려고 우리는 회의에 참가하여 각종 보고 연설을 하는 130여 명 의식 의사들한테 진상자료와 서명지를 부쳤다. 대회 일주일 전이자 2일 이내에 또 전국 2천 명 관련 의사들한테 생체장기적출 진상자료를 부쳤다. 대면적으로 의식학계에 진상을 알렸다.

자료가 나가서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우편과 팩스로 20여 명 의사교수의 서명이 수집되었고 회의 기간에 일부 의사들은 우리의 자료를 받고 그 자리에서 서명했다.

전국 각지 30, 40명 수련생이 같이 협력하고 각종 교란을 배제하여 6일 동안 아침부터 밤 까지 야외에서 전단지 배포와 서명 수집을 견지했고 2천 명에 달하는 회의 참석자들에게 성공적으로 진상을 전달했으며 약 400명의 서명을 수집했고 그중 123명이 의사였다.

번 장기이식대회는 교토에서 좀 멀리 떨어진 한 국제회의장에서 열렸고 오사카에서 교토로 오가는 시간이 3~4시간이 소요된다. 인원이 적기에 모두 한번 서면 6~7시간이고 시간, 금전, 체력적 헌신이 아주 컸다. 협조 업무를 그다지 해본 적 없었던 한 오사카 남자 수련생은 이번 행사의 현장을 책임졌다. 그는 거의 매일 4시에 일어나서 7시에 현장에 가서 현수막을 펼치고 전시판을 진열하고 자료를 준비하는 등의 업무를 보았다. 아울러 6일간 대회가 진행되는 중 4일간은 모두 큰비가 내렸고 2일간은 태풍이 불었다. 우리는 사악이 이런 악랄한 기후를 이용해 우리가 이번 장기이식대회의 진상서명활동을 포기하도록 시도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반드시 각종 가상에 이끌리지 않으려고 했고 사람을 구하는 일은 더는 교란하게 하지 말아야 했다.

첫날에 나는 주요하게 현수막과 전시판을 책임졌고 아침 7시에 차를 몰고 집을 나서는데 맞은편에 살고 있는 숙부가 내가 아침부터 나간다고 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나는 화가 아주 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를 보지도 않고 차를 몰고 나갔다. 고속도로에서 차는 큰비를 가르며 나아갔고 유리창에 부착된 빗물제거장치가 가장 빠른 속도로 빗물을 제거해주었다. 전방 시야가 아주 낮았고 큰 빗방울이 차 창문을 크게 때렸는데 다른 공간에서의 교란과 압력임을 느낄 수 있었다. 악랄한 기후에 숙부의 훈계로 나는 마음이 아주 괴로웠고 감당 능력이 극한에 달해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심성이 이번 활동에서 법이 나한테 요구하는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느끼었고 일하기에 바빠서 발정념을 많이 하지 못했음이 느껴졌다. 관건적 시각에 심성을 지키지 못했다. 큰비가 내려서 고속도로가 끝난 후 교토 시내의 교통이 막히기 시작했고 나는 발정념을 시작했다. 사부님의 가지를 빌었고 마음속으로 이 현수막과 전시판 게시를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9시 15분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가 사전에 장기이식학계에 대면적으로 진상을 전달했기에 첫날 우리는 대회의 관련 책임자를 찾아가 진상을 알린 후 그는 회의장의 영역을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허락했고 참석자가 반드시 거치는 복도에 서명자료를 배포하게 했다. 이 복도의 위에 천막이 있어 자료와 사람이 모두 젖지 않았다.

9월 22일, 23일 오사카에서 전국약제사대회가 있었고 대회에서는 타이완의 저명한 인사가 와서 강연한다. 대회에 첫날 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렸고 참석자들이 줄을 서서 입장했다. 그들은 우리가 비치한 생체장기적출 현수막을 보았을 때 앞다투어 전단지를 가져갔다. 그날 전단지를 배포하고 서명을 수집하던 수련생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오전의 아주 짧은 시간에 1,500부의 진상전단지를 배포했고 이틀 동안 450부의 서명을 받았으며 그중 절반 넘는 인원이 약제사와 VIP였다.

최근에 우리는 또 8천 명에 달하는 장기와 관련된 전국 내과의사 자료를 정리했고 이 의사들에게 우편방식으로 진상을 알리고 서명을 수집하고자 한다.

3. 거리 서명수집

서명활동에 협조하기 위해 9월에는 교토와 나고야에서 생체장기적출박해를 반대하는 서명활동을 진행했다.

많은 지역의 수련생들이 8, 9월의 뜨거운 햇볕을 이고 매일 거리에 나가 서명을 수집했고 모든 수련생의 공동의 노력으로 현재 일본에서는 25,000명에 달하는 민중 서명과 500명의 사회 주류, 의사, 변호사, 정부관원 등을 포함한 VIP 서명을 수집했다.

일본에는 일어를 할 줄 알고 주류사회를 할 수 있는 수련생이 적고 일부 노년수련생들은 정념으로 재판소, 정부의 관련 빌딩의 외부에서 자료를 배포하고 서명을 수집해 주류사회의 인사들이 진상을 알게 했다.

한번은 한 노년수련생이 재판소 밖에서 서명을 수집하는데 재판소의 경비가 직접 그녀에게 다가와 알아듣지 못하는 일어로 말을 했다. 이곳에서 서명을 수집하지 말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결과 경비는 노년수련생이 늘 이곳에서 서명을 수집하는 것을 보고 본인도 서명지에 직접 서명하고자 한 것이었다.

또 일부 민중은 진상자료를 본 후 서명을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이 이름도 적었다.

서명과정에 이렇게 감동적인 사례가 매일 발생했다. 사람들은 진상을 요해한 후 정의적 판단을 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2013년 대뉴욕지역법회설법’ 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구세력 그것은 이 일체를 모두 개변시켰고, 이러한 한차례 마난을 만들어내었을 뿐 아니라,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사악이었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하는데, 이전 고대 로마가 기독교도에 대해 가장 사악하게 박해할 때도 이 정도로 사악하지 않았으며, 가장 흉악해도 사람을 사지(死地)로 내몬 것뿐이었다. 이 별(星球)에서 가장 큰 사악, 이는 대법제자가 이번 박해 중에서 감당하고 마주한 이러한 사악으로, 이번 박해 중에서 표현된 사악이다. 구세력은, 당신들은 모두 이렇게 고층차에서 왔고, 당신들은 모두 그렇게 큰 과위를 증득하고 그렇게 큰 왕이 되어야 하는데, 당신들에게 작은 마난의 방식으로 하고, 그에 상등(相等)하는 사악한 방식으로 하지 않으면, 수련되어 올라갈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는바, 그것들은 모두 이 한 세트의 논리였다.”

이 법을 배운 후 나의 이해는 구세력이 배치한 “이 성구에서 가장 큰 악”이 인류의 도덕적 최저선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만약 사람이 이 일을 안 후 정확한 판단을 해내지 못한다면 정말로 구도 되기 어렵다. 아울러 진상을 알리는 것은 대법제자로서는 벗어날 수 없는 책임이다.

협조 과정에서 나는 양호한 수련상태를 유지하고 매일 일찍 일어나서 연공을 견지하고 법 공부를 잘하는 것이 협조업무를 잘할 수 있는 관건임을 체득했다. 이 항목의 연락인으로서 자신이 짊어진 책임을 알고 이 과정에서 반드시 자아를 내려놓고 자신을 잘 닦아야 한다. 자신이 잘할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정체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오로지 협조를 잘해야 비로소 법의 위력을 펼쳐낼 수 있고 비로소 이렇게 큰 정법의 일을 잘할 수 있다.

이상은 제가 생체장기적출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의 심득교류이고 적절치 못한 곳은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3년 미국 서부 국제 법회 발언고)

문장발표: 2013년 10월 3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3/10/30/2819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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