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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주타이 노동교양소, 장칭쥔을 살해하고 돈으로 사건을 무마하려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보도) 2013년 4월 하순, 지린성(吉林省)에서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610사무실’에서는, 성 사법국을 시켜 세 사람을 연변주(延邊州) 사법국에 파견해 가라고 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2010년 10월에 주타이(九台) 인마허(飲馬河)노동교양소에서 억울하게 사망한 장칭쥔(張慶軍)의 아들 하이보(海波, 31세)를 연길 주 사법국으로 데려 가도록 했다. 어떤 사람이 와서 하이보에게 “돈을 줄 테니 이 일을 조용히 해결합시다(듣기로는 사망자의 둘째 남동생에게 10만 위안의 돈을 주면 확실히 해결할 수 있다고 함).”고 말하며, 하이보에게 서명하기만 하면, 즉시 장칭쥔의 시신을 화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와서 배상은 10만 위안인데, 20만 위안으로 올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사법국에서 온 사람이 하이보의 부친이 억울하게 사망한 사건의 진상을 조사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들이 와서 적당히 일을 얼버무리려 할 것이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

하이보는 이 말을 듣고 엉엉 소리내어 울면서, 이들의 제안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어떻게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그는 부친이 억울하게 사망한 사건에 대해 명백한 진상이 밝혀지기를 원했다! 파견되어온 사람은 이 상황을 보더니 “당신은 집에서 잘 생각해 보시오. 어떻게 할 지 결정이 되면 우리에게 전화 주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8월, 전 지린 주타이 인마허노동교양소(지금은 마약 중독자 재활원으로 고쳤음)에서는 하이보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다른 요구가 있는지를 물었다. 하이보가 “50만 위안을 꺼내놓은 뒤에 다시 이야기 합시다.”고 말하자, 노동교양소의 사람은 “요구하는 돈이 너무 많습니다. 협상할 수 없습니다.”고 말했다.

64세인 장칭쥔 노인은 도문시(圖們市) 석현진(石峴鎮) 파룬궁수련생이다. 2010년 10월에 주타이 인마허 노동교양소로 납치당해 7일만에 곧 박해로 사망했다. 현재 시신은 여전히 장의사의 냉장고 안에 놓아두고 있는데, 매일 노동교양소에서 시신방치비용(停屍費) 백 위안을 감당하고 있다.

张庆军
장칭쥔

张庆军眉梢与颧骨处被恶徒伤害的痕迹


장칭쥔의 눈섭꼬리와 광대뼈 부위에, 악도에 의해 상해를 입은 흔적

설명:이 두 장의 사진은 장칭쥔 가족이 장의사가 없는 기회를 틈타서, 매우 급하게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다. 가족이 초점 거리, 폭광(曝光) 시간과 구도를 잘 맞추지 못해 사진이 희미하다. 목과 몸 측면의 흰 안개 상태로 된 부분은 시신을 놓은 냉장고 안의 얼음과 서리이다. 원 얼굴 위의 상흔은 화장 크림분에 의해 감추졌었는데, 몸과 얼굴 위의 얼음과 서리를 녹이기 위해 가족은 시간을 끌었다. 화장 크림분은 녹은 얼음물이 녹을 때 함께 축축해지면서 녹아내렸는데, 그제야 상흔이 드러났다.

장칭쥔은 도문시 석현진 10위원회에서 살고 있다. 장칭쥔과 아내 장수화(張淑華)는 예전에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린 뒤로 일을 할 수가 없고, 일 년 내내 병고 속에서 나날을 보내 생활이 고생스러웠다. 운좋게 파룬궁을 수련하고, 게다가 엄격하게 파룬궁의 요구인 ‘쩐, 싼, 런(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었으며, 매순간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했다. 이로부터 신체가 건장하고 튼튼해졌으며, 생활이 즐거웠다. 그리고 근무지에서도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사람 됨됨이가 성실하고 선량했다.

하지만 바로 이 한 쌍의 부부 장칭쥔과 장수화는, 1999년 7월부터 중공이 파룬궁 ‘쩐, 싼, 런’에 대해 박해를 시작한 이래, 여러 차례 현지 중공 사악한 당 정부 인원과 경찰들의 불법 강탈, 납치, 불법 감금 등 박해를 당하고, 각각 2001년과 2005년에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 그리고 노동수용소에서 비인간적인 학대와 고문·박해를 당했다. 노동수용소에서 석방돼 나온 요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불법 체포, 가택 수사, 구류시키고 파룬궁수련생으로 하여금 수련을 포기하게 하는 세뇌반에 강제로 가두어 ‘쩐, 싼, 런’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려는 신앙권리를 박탈했다.

2010년 9월 10일, 도문시 석현진의 경찰 두 명(그 중 한 사람은 김학문(金學文, 조선족, 20여 세)이라고 불렀음)은 속임수를 써서 막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는 장칭쥔을 경찰차에 실었다. 게다가 쑹린촌(松林村)양로원에 위치한 세뇌반에 가둬 박해를 감행했다. 국보대대, 정법위 및 파출소, 가도 등 몇십 명은 강제적인 방법으로 장칭쥔을 핍박해 신앙을 포기하게 했다.

열흘 후, 610은 지시를 내려 장칭쥔을 세뇌반에서 시 공안국 안산(安山) 구치소로 옮겨서 감금·박해를 가했다. 중공 악인은 또 각종 방법으로 장칭쥔에게 ‘쩐, 싼, 런’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도록 협박했다. 뒤따라 610은 거리낌없이 장칭쥔에 대해 노동교양박해를 감행했다. 게다가 시 국가보안대대 부대장 저우훙(周宏)이 나서서 10월 22일에 장칭쥔을 극히 악명이 높은 주타이 인마허노동교양소로 압송해 박해를 가했다.

단 7일 만에 장칭쥔은 주타이노동교양소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장칭쥔의 가족은 노동교양소로 와서 장칭쥔의 머리 부위에 상처가 있음을 보았다. 노동교양소 측은 장칭쥔은 심장병으로 갑자기 사망했는데, 정상적인 사망에 속한다고 말했다. 가족이, 노동교양소에서 관련 증거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또 당시 당직을 선 경찰, 의사, 그리고 장칭쥔과 함께 숙박한 사람을 만나겠다는 요구를 제출하자, 노동교양소 소장은 가족에게 이런 권리가 없다며 노동교양소에서는 다만 검찰에게 보일 수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가족이 노동교양소에서 22일부터 30일까지의 장칭쥔에 대한 감시, 녹화 기록을 보자고 요구하자, 노동교양소에서는 감시 녹화기기가 고장이 났다고 대답했다.

문장발표: 2013년 10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0/10/2809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