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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의 억울한 죽음, 협박으로 함구했던 가족이 고발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쓰촨보도) 64세의 쓰촨(四川) 미이현(米易縣) 파룬궁수련생 구싱즈(辜興芝)씨는, 2002년 11월 7일 오전 8시에 미이현구치소의 형구 – 사형 침대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당시 악독한 경찰은 강제로 그녀의 가족에게 입을 다물도록 협박했다. 최근에 구싱즈의 여동생 구싱펑(辜興鳳)은 미이현 법원에 흉수 – 이현구치소 교도관 주청룽(朱成龍), 린하이(林海), 미이현구치소 감옥의사 천칭(陳清)등을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다음은 구싱펑의 고소장의 주요한 내용이다.

구싱즈는 생전에 미이현 바이마진(白馬鎮) 위안후이룽촌(原回龍村) 7사(七社)의 농민이다. 2002년 4월 2일, 그녀는 파룬궁 진상전단지를 학교에 다니는 그녀의 조카를 통해 친구들에게 나눠주게 했는데, 선생님에게 발견되었다. 선생님은 조카를 추궁하여 구싱즈를 알아냈고 110에 전화를 걸어 경찰에 신고했다. 2002년 4월 2일, 정보과와 샤오제(小街)파출소 경찰 양정푸(楊正富), 단보(單波), 마오타이닝(毛太甯), 왕잉중(王應中) 등은 불법으로 구싱즈의 집에 들이닥쳐 그녀를 밀어 넘어뜨려 밟은 채 그녀의 열쇠를 빼앗았다. 그런 다음 샅샅이 뒤져 녹음기, 모든 대법책, 저축한 8천 위안(약 140만원), 현금 400여 위안(약 7만원)을 강탈해갔다.

辜兴芝

구싱즈(辜興芝)

구싱즈는 먼저 샤오제 파출소에 감금당해 단보, 마오타이닝, 왕잉중 등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그 후 그녀는 미이현구치소로 납치돼 불법 감금당했다. 그 기간에 구싱즈는 정보과와 구치소 경찰에게 혹독한 구타, 체벌 등 잔혹한 시달림을 당했다. 그 후 그녀는 1년 6개월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그녀는 나이가 많은 탓에 노동교양소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경찰은 다시 그녀를 미이현구치소로 끌고 와 계속 감금 박해했다.

구싱즈는 단식으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악독한 경찰과 악독한 의사에게 한 달 동안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해 사경을 헤매게 되었으나, 악독한 경찰 린하이(林海)는 여전히 그녀에게 수갑을 채워 형벌 침대(刑床) 위에 매달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구싱즈는 곧 형벌 침대 위에서 사망했다.

酷刑演示:野蛮灌食

야만적인 음식물주입

그 후 연속 발표된 소식을 통해 실증되었는데, 구싱즈는 당시 형벌 침대 위에서 음식물을 주입 당했다. 몇 사람이 누른 다음, 구치소 감옥 의사 천칭(陳清)은 부인과에서 자궁검진에 사용하는 질경으로 그녀의 입을 비틀어 열었다. 어떤 때에는 직접 엄지손가락 굵기인 플라스틱 관을 콧구멍에 꽂아 음식물을 주입했다. 야만적인 음식물주입을 당한 구싱즈는 폐가 터져, 폐부위에서 출혈과 고열이 계속되었다. 10월, 현 병원과 부유보건소의 의사가 이틀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구치소로 가서 구싱즈에게 링거 및 독극물을 주사했는데 구싱즈의 생명이 위독해졌으며 10월 중순, 구싱즈의 생명이 또다시 위험해졌다. 구치소에서는 또 그녀를 현 병원으로 보내 응급처치를 했다. 구싱즈는 당시 몇 명의 형사 죄수에게 부축을 받아 감방에서 나왔는데, 두 발을 끌면서 나왔고 신이 끌려 벗겨진 것마저 몰랐다. 가족이 문안하러 와서 이 참상을 보고 병보석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했다. 11월 6일 아침, 구싱즈는 이미 인사불성이 되어 말을 할 수 없고 손과 발도 기운이 없었으며 몸이 극도로 허약해져, 또 현 병원으로 보내져 강제로 코에 호스를 꽂고 음식물을 주입 당했다. 이번에는 한 죄수가 업고 두 명의 죄수가 부축했다. 그 후 병원에서 감방으로 돌아왔을 때도 코의 호스는 뽑지 않았다. 교도관은 그녀가 코의 호스를 뽑지 못하도록 그녀의 손을 뒤로 결박하여 사형 침대 위에서 꼬박 하루를 둔 채 한 죄수가 감시하게 했다. 2002년 11월 7일 오전 8시, 64세인 구싱즈는 미이현구치소의 사형 침대위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酷刑演示:死人床

사인 침대(死人床)

미이현 공안국 경찰은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가족들에게 알렸다. 게다가 구싱즈는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또 구싱즈의 시신을 급히 보내 화장하려 했다. 비통에 빠진 가족은 단호히 동의하지 않았고, 시신을 집으로 옮겨 매장하겠다고 버텼다. 그래서 경찰은 강제로 그의 가족에게 지장을 누르고 보증서를 쓰도록 협박하며 ‘경찰이 박해해 사망했다고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소식을 누설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고 위협했다. 시신도 그들이 요구한 시간에 따라 매장해야 한다고 했다. 잇달아 공안국에서는 향(鄉)과 결탁하여 3명의 정보과 경찰을 파견하여 그의 가족을 바싹 뒤따라 시신을 운반해 집으로 돌려보냈다. 동시에 줄곧 구 씨 집에서 지키고 있었으며, 다른 파룬궁수련생이 장례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경찰은 줄곧 가족을 감시하며 11월 8일에 구싱즈를 안장한 뒤에야 떠났다.

구싱펑은 고소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언니가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것은, 국가에 대해 인민에 대해 백 가지 좋은 점만 있고 한 가지 해로운 점이 없는데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녀는 미이현법원에서 새롭게 구싱즈의 사건을 심리하고, 구싱즈를 박해해 죽인 흉수를 체포해 법에 따라 처리하도록 요구했다. 미이현구치소 교도관 린하이, 여성 감옥 의사 천칭 등은 구싱즈에 대한 박해에 참여 했는바, 이 두 사람은 당연히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기타 박해 책임자:

공안국 정보과 경찰 샹진파(向金髮):공안국 국장 류타이밍(劉太明) 0812-8171988

문장발표:2013년 9월 2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9/25/2803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