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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의 억울한 옥살이 당한 베이징 하이뎬구 리진펑 박해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베이징보도) 베이징시(北京市) 하이뎬구(海澱區)에서 출소한지 6개월된 파룬궁수련생 리진펑(李津鵬)은 건강이 악화되어, 2013년 8월 15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47세였다.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깡패집단이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박해한 이래, 리진펑은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수차례 심각한 박해를 당했다. 두 차례는 불법 판결을 당했는데 모두 11년으로, 심신이 극도로 손상되어 간경화 증상, 두 눈이 거의 실명된 상태가 나타난 적이 있다.

李津鹏遗照

리진펑(李津鵬) 생전 모습

리진펑(남, 대학출신)은 베이징 하이뎬구 베이와시리(北窪西裏) 16동 802호에서 살았다. 그는 베이징시 문물국에서 근무했는데, 그 후 직업을 바꾸어 스스로 냉동회사를 경영했다. 리진펑은 어릴 적부터 잔병이 많은 ‘약 광주리’ 였다.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한 뒤, 몸은 차츰 건강을 회복했다.

리진펑은 마음씨가 착하고 사람을 대함에 매우 너그럽고 후했다. 안경을 썼고 점잖았으며, 말하는 소리도 크지 않고 얼굴 위에는 늘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선 후, 그는 더욱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고 연로하신 부모님께 극진한 효성을 다 했다. 그리고 회사 직원들에게는 생활적으로 보살펴 주었고 근무 중에 일을 도우면서 지도를 해주어 아랫사람에게는 형님과 선생님으로 여겨졌다. 동창 중에서 리진펑은 열성적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었고 대담하게 일을 맡아 했기에, 동창 친구들은 모두 그를 큰 형이라고 불렀다. 2006년 10월 19일, 첫 번째로 불법 판결을 당한 리진펑은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되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동창 친구들은 베이징에서 몇 대의 차를 몰고, 차뎬(茶澱)감옥(톈진(天津) 경내에 위치했음) 문 앞으로 마중하러 갔는데, 그 장면은 아주 대단해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하지만 이렇게 인품이 고상하고 정의감이 풍부하며 사업에서 성공한 좋은 사람이었으나, 1999년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그의 인생노정은 잔혹하게 바뀌었다. ‘진선인(眞善忍)’ 믿음을 견지하고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리진펑은 여러 차례 박해를 당해 가정, 사업, 심신에 심각한 충격을 입었다.

1999년 7월, 리진펑은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청원하러 갔다가, 여러 차례 현지 파출소에 의해 불법 구류를 당했다. 2000년 6월, 리진펑은 쯔주위안(紫竹院)공원에서 공개적으로 연공을 하여 보름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다. 그 당시 단체 연공에 베이징 공상대학 강사 자오신(趙昕)도 현장에 있었다. 자오신은 그 후 하이뎬의 악독한 경찰의 박해로 사망했다.

酷刑演示:电棍电击

고문 시연: 전기봉으로 전기 충격 가하기

2000년 10월 20일, 베이징 하이뎬, 펑타이(豐台) 두 곳의 경찰은 ‘대법자료를 인쇄했다’는 이유로 리진펑을 불법적으로 붙잡아 6년의 판결을 내렸다. 차뎬 감옥에서 리진펑은 박해를 가장 심하게 당한 수련생 중의 하나이다. 그에게 핍박으로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바른 믿음을 포기시키기 위해, 경찰은 여러 가지 고문인 세워두기 고문, 수면 박탈, 전기봉으로 전기 충격 가하기, 뭇매질하기 등을 사용한 적이 있다. 어느 한 번, 악독한 경찰은 죄수에게 지시를 내려 리진펑과 다른 한 대법제자에 대해 뭇매질하게 해 한 자 길이가 되는 접의자를 부러뜨려 놓았다. 리진펑은 벽에 부딪혀 땅바닥에 쓰러졌고, 머리 부위는 크게 어혈이 생겼다. 원래 파룬궁을 수련해 건강했던 몸은 극도로 손상을 입어 간경화 증상, 두 눈의 망막 박리 증상 등이 나타났는데, 증상이 매우 심각했다.

2006년 10월, 그가 막 감옥에서 돌아왔을 때 얼굴은 겉늙었다. 친구들은 예전에 풍채가 출중하고 재능이 넘치던 젊은 총각이, 학대로 ‘겉늙은이’ 같은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거주지 파출소, 610 등에서는 여전히 ‘답방’한다는 구실로 그의 정상적인 생활에 대해 교란하며 정신적으로 압력을 가했다.

2007년 12월 16일, 하이뎬구 처다오거우(車道溝) 난리(南裏) 20동 8층의 공공 베란다 위에 놀랍게도 ‘하늘이 중공을 소멸하려 하는데, 탈당(退黨)하면 평안하다’는 현수막이 나타났다. 이는 사회에 반향이 매우 커서 중공의 두려움을 일으켜, 즉시 ‘사안이 심각하고 내용이 위법적’인 ‘큰 사건ㆍ중대한 사건’으로 규정해, 하이덴구 공안분국과 완서우사(萬壽寺) 파출소에 책임을 지워 ‘되도록 빨리 사건을 해결해 엄숙하게 처리하며, 엄중하게 탄압’하게 했다. 인근에서 살고 있는 리진펑은 경찰 측의 집중 관리를 당해, 이른바 정찰, 증거 수집 등은 바로 선입관적이고 유죄라는 전제 하에 불법으로 전개되었다.

불법 감금 기간에 리진펑은 단호하게 일체 고발된 내용을 부인했다. 단식으로 당국의 무리한 박해와 불법적인 증거 수집에 항의했는데, 몸 상태가 악화되어 응급실로 보내졌다. 두 눈 망막 박리 증상으로 거의 실명에 이르렀고, 간 복수 증상, 전신 부종 증상이 나타나서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경찰 측은 가족의 면회를 허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보석 수속도 밟아주지 않았다. 하이뎬 구치소에서 리진펑과 같은 감방에 있던 사람이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악독한 경찰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이른바 ‘증거’를 얻기 위해 리진펑에 대해 각종 박해수단을 사용해 생명이 심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경찰 측은 2008년 1월 21일 리진펑에 대해 2년 6개월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내린다는 결정을 했으며, 또 이튿날에 집행함을 통지한다고 했다. 강제로 노동교양소로 이송할 때, 몸 상태가 너무 나빴던 이유로 노동교양소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공안의 악독한 경찰, ‘610’ 악도는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화를 내며, 형사사건으로 고쳤다. 사건 처리 측은 서류를 검찰원으로 이송해 기소를 하려고 시도했으나, 모두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 당했다. 중공은 ‘정치임무’의 강대한 압력 하에 불법으로 리진펑에 대해 기한을 초과하면서 1년 4개월 동안 감금한 뒤에 또 그에 대해 5년의 억지 판결을 내렸다.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한다면 어찌 구실이 없음을 걱정하랴.’, 이것은 깡패 무뢰한의 논리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중공 사법의 어두운 현실이다. 리진펑의 변호사가 증거를 조사해 확인한 데 따르면, 리진펑에게 불법으로 죄를 씌운 ‘(2009) 해형초자(海刑初字)’ 제240호 판결서와 관련 서류는 억지 증거에 논리가 혼란했다고 한다. 그 기간에 차례로 48명의 경찰이 거짓을 꾸미는데 참여했는데, 개입한 사람 수가 많고 절차를 위반한 것도 많았으며, 거짓을 꾸민 내용이 넓고 거짓을 꾸민 수준이 비열해, 보기만 해도 몸소리쳤다! 모두 합쳐서 다음과 같다. – 현수막이 현장에 나타난 시간을 거짓으로 꾸미고, 검증한 현수막 출처를 제공해 거짓을 꾸미고, 제출한 조사 기록과 압수한 명세서에 대해 거짓을 꾸미고, 기록을 문의한 절차가 위법이고, 현수막의 증거를 수집함에 관련된 절차가 위법이고, 검증한 절차를 제공함이 위법이다. 그리고 조사 절차가 위법이고 검찰원에서 기소장을 심사함이 위법이고 심리 절차 또한 엄중하게 법을 어겼다…(자세한 상황은 ‘밍후이왕’ 관련 보도 참조).

그리고 마땅히 지적해야 할 것은, 국민이 ‘하늘이 중공을 소멸하려 하는데, 탈당(退黨)하면 평안하다’는 등 현수막을 건 것은 합리적인 것이고 합법적인 것인 바, 하늘이 부여한 언론자유를 행사한 것이다. 더욱이 세상 사람을 구해 내는 것으로, 찬양할 만한 장거이다. 중공 사당은 매체를 강점해 국민을 속이고, 국민의 언론자유와 권리를 박탈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범죄이다.

문장발표: 2013년 8월 2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8/22/2785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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