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광둥보도) 2009년 9월 2일, 광둥(廣東) 제양(揭陽) 파룬궁수련생 린사오나(林少娜)가 마을 사람들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 진상을 알리다 납치당했다. 9월 말 법관은 그녀의 무죄를 승인했으면서도 여전히 3년형이라는 억울한 판결을 내려 광둥성 여자감옥에 수감했다. 2010년 2월 10일 린사오나 가족은 그녀가 유선암이라는 통지를 받았지만, 수술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2년간 불법 감금박해를 당했다. 그러다 여자감옥 측은 그녀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제서야‘병보석을 허락했다. 하지만 회복하지 못한 그녀는 결국 2013년 6월 26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린사오나의 생명을 구했던 파룬궁
린사오나는 젊었을 때 남편을 따라 하이난 생산건설병단(海南生產建設兵團)에서 근무했다. 그녀는 중공의 계획생육의 핍박에 인공유산을 여러 번하여 건강이 몹시 악화되었다. 그녀 부친은 중의사였지만 그녀의 건강을 회복시키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린사오나의 온몸의 골격마저 곧 흩어진다고 말했다.
1998년 린사오나는 우연한 기회에 친척집에 갔다가 친척이 한창 연공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궁금해서 연공 동작을따라해 보았다. 그녀는 연공을 하고 난 뒤 몸이 뜨끈뜨끈한 게 일종 말할 수 없는 편안한 감각을 느꼈다. 병마에 시달릴대로 시달린 그녀는 곧장 대법수련의 길에 올랐고, 매우 빨리 몇 년 동안 달고 살던 약탕관을 던져버렸다.
1999년 7, 중공(중국공산당)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린사오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고심대법이 모함, 먹칠당하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거짓말에 속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그녀는 늘 마을사람들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진상을 이야기했고, 사람들에게 매체의 거짓말 선전을 믿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리고 또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많이 해 좋은 사람이 되라고 권고했는데, 이것도 역시 간접적으로 사회에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근거로 진상을 알렸다.
법관은 린사오나 여사의 무죄를 승인하면서도 결국 억울한 판결 3년형을 내리다.
2009년 9월 2일, 린사오나는 룽청구(榕城區) 셴차오진(仙橋鎮) 산첸촌(山前村)으로 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다 모함당해 셴차오 파출소에 불법 체포되어 제양시 구치소에 갇혔다.
불법 감금 중, 구치소 측은 가족과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아 그녀에 대한 구체적인 소식을 알 방법이 없었다. 언제 그녀가 개정하여 판결 당했는지 몰랐다.
그 후 2009년 9월 말, 광둥성 젠양시 룽청구법원은 그녀에 대해 비밀개정을 감행했다. 가족에게 그 어떠한 통지도 없었을 뿐 아니라 변호사 선임도 허락하지 않았다. 개정 시 그녀는 경찰의 기소 안건을 겨냥해 반박했다. 결과 법관마저 그녀가 확실히 무죄임을 승인했다. 그러나 법관은 여전히 ‘법률 실시를 파괴한 죄’로 3년형을 선고했다. 당시 그녀는 젠양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었다.
젠양시 구치소에서 체력을 초과한 노예노동 박해 감행, 가족의 면회는 저지
그녀의 가족은 2010년 1월 5일에야 젠양시 구치소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이미 룽청구 법원에서 비밀리 개정 3년형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가족은 그녀의 정신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함을 발견했는데, 그녀는 젠양시 구치소에서 줄곧 강제노동 당했음을 폭로했다. 매일 과중한 임무량을 완수하지 못하면 특근을 시켰는데, 임무를 완수해야만 휴식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매일 고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근본적으로 충족한 휴식을 얻지 못했다. 겨우 몇 분간의 면회만 허락되어 아직 상세한 정황을 묻기도 전에 강제로 종료했다.
당시 외지에서 공부하던 그녀의 아들이 겨울 방학에 집으로 돌아와 급히 그녀를 만나려고 했다. 그러나 구치소에서는 면회일만 허락된다며 바로 면회를 거절했다.
2010년 1월 20일 그녀의 남편과 아들은 새벽부터 젠양시 구치소에 가 그녀와의 면회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미 며칠 전에 그녀를 내 보냈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에 어디로 보냈는지 묻자, 구치소 직원은 ‘광저우(廣州) 바이윈(白雲)으로 보내졌습니다.’고 대답했다.
2010년 1월 21일 그녀의 가족은 룽청구법원으로 가서 그녀의 석방을 요구했다. 룽청구법원은 그제야 불법 판결 결과서를 그들에게 가져주었는데, 윗면의 죄명은 ‘법률위반행위’로 3년형을 내렸고, 광저우 바이윈 여자감옥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가족이 그들에게 “도대체 어느 조목의 법률을 위반했는지”를 질문하자 그들은 황급하게 책임을 미루면서 “지금 이 문제에 대해 말하지 마시오.”라고 했다.
그리고 왜 이런 사안에 대해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았는지 묻자 그들은 “이 모두 그녀 스스로 요구한 것입니다. 그녀는 성년이니까 완전히 이런 요구를 제출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어처구니없는 해명을 했다. 그녀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5개월 가량 불법 감금당한 후, 어찌 이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모르게 하고, 그들과의 면회를 거절했겠는가? 법원의 직원은 사실을 무시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지껄이며 말도 안되는 구실로 가족을 속였다. 그리고 법원과 구치소에서 법적 절차없이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범법한 사실을 덮어 감추려고 시도했다.
박해로 유선암 증상이 나타나자, 여자감옥에서 강제로 수술한 후 여전히 감금한 채 박해 감행
감옥에서 계속 박해 당하여 그녀의 건강이 악화되어 유선암이 이미 확산되었다는 진단결과가 나왔다. 2010년 2월 10일, 가족은 광둥 여자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받고 부랴부랴 감옥에 갔는데, 유리를 사이에 두고 면회할 수 밖에 없었던 가족은 무거운 심정으로 병보석을 요구했다.
접대한 사람은 감옥 ‘610’의 주임 장(江) 모였다(경찰번호는 4455467임). 장 모는 병보석을 불허한다면서, 감옥 지정 병원에서 그녀가 수술할 것을 허락하는 데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녀의 병세에 대해 잘 몰랐던 가족은 먼저 그녀와 주치의를 만나 상황을 요해한 뒤에 다시 말하자고 요구했다. 장 모는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고 어느 병원에 입원했는지 알리지 않았다. 게다가 가족에게 “당신이 서명하지 않는다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녀가 ‘동의’하기만 하면 우리는 수술을 예전대로 합니다.”고 위협했다. 하지만,그녀의 남편이 재삼 요구하자 감옥 측은 오후에 그녀와의 면회를 허락했다.
원래 광둥 무장병원에 감금돼 있던 그녀는 이미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수척해 있었다. 주치의의 말에 의하면, 린사오나의 유선암은 이미 확산되어 수술을 받을 수 없었기에 그녀의 남편은 병보석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주임 장 모는 그녀를 ‘계속 관찰해야 한다’며 병보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강제로 광둥 무장경찰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여러 차례 화학 치료를 받았다. 그녀는 수술을 받은 뒤 극심한 정신적 학대와 고통으로 건강은 계속 악화되었다. 그리고 또 2년 넘는 비참한 박해를 경험했다. 결국 그녀의 건강이 극도로 위독해지자 감옥측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녀의 가족에게 병보석을 허락하는 통지를 보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동안 당한 심신의 상해가 너무 심각해 건강을 회복할 수 없었다. 결국 2013년 6월 26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3년 7월 2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7/21/2769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