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2013년 6월 3일, 선양시(瀋陽市)에 여름에 들어서서 첫 번째로 큰 비가 내렸다. 퍼붓는 비는 우뢰를 동반했는데, 마치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듯했다. 바로 전날, 선양시 다둥구(大東區) 파룬궁수련생 우수옌(吳淑豔) 여사가 랴오닝(遼寧) 여자감옥에서 7년 동안의 잔혹한 박해를 당해 생긴 간 복수로 고통을 받다가 팔순의 노부와 남편, 딸에게 그리움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우수옌 여사는 올해 대략 47세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중공(중국공산당)이 함부로 파룬궁을 모함하고 민중을 속이는 것을 보고나서 착한 마음을 지니고 주변 사람에게 파룬궁이 중공에게 박해당한 진상을 알리다가 2006년 5월 24일에 창안(長安)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당시, 컴퓨터, 프린터 및 많은 관련 자료도 불법으로 수색, 강탈당했다. 그날, 우수옌의 남편 마장[馬江, 리밍(黎明)회사의 직원]은 퇴근해 귀가할 때, 악독한 경찰에게 속아 물건을 가지러 갔다가 또 납치당했다. 우수옌은 선양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고, 마장은 다둥구(大東區) 바커수(八棵樹) 구치소에 있었다. 당시 집에는 70대 노인과 중학생인 딸만 남아 경제적으로 곤궁에 빠졌고 생활을 보살펴 줄 사람이 없었다.
우수옌은 7년의 불법 판결을 받고 랴오닝성 여자감옥 7감구역에서 박해를 당했다. 2012년, 랴오닝 여자감옥 불법 인원은 우수옌이 박해로 간 복수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뒤에 얼마 살지 못할 것임을 알고서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녀를 데리고 입원 치료를 받게 했다. 가족에게 통지한 후, 그녀를 병원에 내던지다시피 하고서는 거들먹거리며 떠났다. 우수옌은 6년 반 동안 랴오닝 여자감옥에서 억울한 옥살이 박해를 겪고, 오랫동안 헤어져 거의 7년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7년에 달하는 길고 지루한 감옥살이와 육체적인 잔혹한 학대, 그리고 신앙자유가 폭력적으로 박탈당한 상황, 체력적인 무리, 의지력의 가혹한 고험, 가족에 대한 끝없는 걱정은 우수옌의 심신에 극심한 상해를 입혔다.
우수옌은 비록 박해로 조성된 병고를 당하지만 일가족이 마침내 단란하게 한자리에 모여 앉았으니 며칠 동안 안정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우수옌이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되어 가도 파출소의 경찰 6~7명이 기세등등하게 집으로 와서 그녀를 공갈 협박하였다. 겨우 평정을 찾았던 그녀는 이 일로 또 극도의 공포심을 느꼈고, 결국 병세가 빠르게 악화되었다. 복수는 급격히 가중되어 복부가 마치 출산을 앞둔 임신부와 같았고, 온종일, 온 밤을 누운 채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거의 5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이 기간에 파출소 관계자는 또 끊임없이 찾아와 교란하며, 가족에게 압력을 가했다. 심지어 사심 없이 그녀를 돌보는 파룬궁수련생을 위협하고 미행했다.
그 해, 우수옌이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을 때, 딸은 여전히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부친도 역시 70여 세었다. 남편은 동시에 불법 감금당해 집에는 노인과 아이만 남았다. 그 후, 여러 방면에서 남편을 구출해서야 풀려났다. 오늘날, 팔순 노부친, 이미 성년이 된 딸, 그녀를 거의 7년 동안 기다린 남편에게 우수옌은 얼마나 딸로서의 효도하고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아내로서 살뜰한 보살핌을 다 하고 싶었겠는가. 중공의 지속적인 박해 속에서 우수옌 여사는 소원을 성취할 수 없었다. 2013년 6월 2일 오전 9시 50분, 그녀는 심장박동이 멈췄다.
6월 4일, 많은 친척과 친구는 무거운 심정으로 그녀를 맨 마지막으로 배웅했다. 겨우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려고 견지한 것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쓴 우수옌 여사의 조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덮어 감춰지고 잊어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억울한 사정은 언젠가는 깨끗이 씻을 날이 있다. 예전에 그녀를 박해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만약 아직도 자신의 죄과를 반성하고 메우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피고석에 앉아 역사의 재판과 천리의 징벌을 당할 것이다.
문장발표: 2013년 6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6/10/2751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