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금융 석사가 박해로 사망, 베이징 하이뎬 구치소에서 몰래 화장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베이징 보도) 5월 15일, 실종된 지 20일도 안 된 덩화이잉(鄧懷穎)이 하이뎬(海澱) 구치소에서 박해로 사망했다는 부고가 전해져 그의 가족, 동창, 지도 교사, 친구들이 충격과 비통에 빠졌다.

5월 28일에 다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는데, 덩화이잉의 시신을 하이뎬 구치소의 악독한 경찰이 몰래 화장했다는 것이었다. 친척과 친구는 소식을 듣고 모두 비분해했다.

덩화이잉(1970년 출생, 나이 겨우 43세)은 베이징 전력대학 97년계 금융전업을 졸업했고 석사 학위를 얻었다. 1995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풍채가 출중하고 재능이 넘치는 지식 엘리트로서, 덩화이잉은 날로 미끄러져 가는 사회 난상(亂象) 중에서 도덕 양심을 지키면서 진선인(真善忍)의 준칙으로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해 사회와 가족 그리고 친척, 친구들에게 복을 주었다. 하지만 오히려 중공(중국공산당)은 그를 두 차례나 감옥에 집어넣어 잔혹한 박해를 감행했는데, 차례로 12년을 겪었다.

하이뎬 구치소에서 박해당해 생명이 위독해져 사망하다

덩화이잉은 파룬따파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공에 다년간 박해를 당하면서도 그렇게 많은 중국인이 아직도 중공의 거짓말 해독을 입는 것을 보고 자신의 휴식 시간을 이용해 늘 고생을 마다치 않고 진상자료를 신변의 사람에게 선사해 주었다. 2013년 4월 27일, 덩화이잉은 하이뎬구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불행하게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당해 하이뎬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일반적으로 막 들어간 사람은 모두 1과(1층)에 감금당했다. 그러나 하이뎬 구치소의 악독한 경찰은 1층의 감방마다 모두 파룬궁수련생이 있다면서 덩화이잉을 2층에 불법 감금했다. 덩화이잉은 들어간 뒤, 즉시 단식으로 박해에 반대했다. 하이뎬 구치소의 악독한 경찰들은 그를 박해하다가 생명이 위독해지자 그제야 999로 보내 응급처치를 했다.

오늘까지 가족, 친구는 하이뎬 구치소의 악독한 경찰이 덩화이잉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원래 건강하던 그가 갑자기 숨졌는지를 여전히 모르고 있다. 덩화이잉의 가족이 한창 공안국에 공정한 평가를 요구할 때, 하이뎬 구치소는 또 급하게 몰래 화장했다.

베이징 퇀허 노동교양소의 과도한 노동박해

2001년, 덩화이잉은 극히 악명이 높은 베이징 퇀허 노동교양소에 의해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그 기간에 악독한 경찰은 과도한 체력 노동으로 그에게 박해를 가했다. 예컨대, 고생스럽고도 힘든 통로 도랑을 파는 것이다. 악독한 경찰들은 파룬궁수련생 자오밍(趙明), 친웨이(秦尉), 덩젠카이(劉建開), 덩화이잉 등을 핍박해 저녁에 통로를 닦고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 등을 시켰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도랑을 팠는데, 가장 고생스럽고 가장 힘들고 가장 더러운 일은 모두 그들에게 하게 했다. 낮에 파룬궁수련생은 모두와 마찬가지로 하루 동안 중노동을 해야 했고, 저녁에는 죄수가 휴식할 때도 파룬궁수련생들은 오히려 핍박으로 도서실의 ‘작은 걸상에 앉혀져’ 줄곧 한밤중까지 강제 세뇌를 당했다. 강제 세뇌와 고문에 직면해 불복할 때면 악인들은 구타하기, 걷어차기, 밟기, 냉수 끼얹기, 군대자세로 쭈그려 앉히기, 잠을 재우지 않기, 걸상에 앉히기, 전기 충격 등 수단으로 그들을 학대했다. 덩화이잉의 심신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10년 동안의 철창 박해

2002년 11월 18일, 덩화이잉은 동창에게서 소포가 하나가 있으니 베이징시 하이뎬구 칭허(淸河)로 가서 찾으라는 전화를 받았다. 덩화이잉은 칭허에 간 뒤에 즉시 납치, 실종되었다. 그 후, 무고하게 11년의 중형 판결을 당했다. 2003년에 베이징 첸진(前進) 감옥으로 옮겨져 박해를 당했고, 2004년에 또 그를 베이징 진중(金鐘) 감옥에 옮겨져 계속 박해를 당했다.

이 기간에 첸진 감옥 12감 구역에 불법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 량밍화(梁明華), 우쥔(武君), 가오젠밍(高建銘), 친웨이, 우차오(吳超), 멍쥔(孟軍), 왕웨이위(王為宇), 우인창(吳引倡), 덩화이잉 등이 분분히 일어나 중공의 박해를 부정하고 새롭게 정법수련에 들어서서 악독한 경찰들이 매우 당황했다. 이에 첸진 감옥은 전문적으로 엄하게 담당하고 박해를 감행하는 8감 구역을 설립했다. 덩화이잉은 거듭 박해 속에 빠졌다.

감옥에 갇힌 덩화이잉은 자신이 심각한 박해를 당하면서도 여전히 신변의 다른 대법수련생과 죄수에게 관심을 가졌다. 정직하고 소박한 일언일행은 수감된 형사 죄수들을 고무 격려 해주었고, 죄수들은 그의 선한 권고를 들었다. 온갖 나쁜 짓을 다한 중공의 암흑 감옥에서 덩화이잉은 그들에게 여명의 빛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순선(純善)한 인품과 자랑할 만한 뛰어난 재능에 그들은 탐복을 금치 못했다. 2012년 6월에 이르러서야 덩화이잉은 다시 자유를 얻었다.

하이뎬 구치소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람.

문장발표: 2013년 6월 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6/1/2747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