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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파룬궁수련생이 당한 박해(상)

글/ 심운(沁雲)

[밍후이왕] 1949년 중공(중국공산당)이 정권을 빼앗은 뒤, 매년 3월 8일이면 여성에게 이른바 ‘명절(부녀절)’을 쇠게 했다. 여성은 전문적인 명절이 있는데 겉으로는 중공이 여성의 직위를 특별히 존중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가상일뿐이다. 본질적 근원을 캔다면 중공의 조상은 파리 코뮌의 깡패 무리인바 외부 침입자일 뿐만 아니라 깡패가 정권을 빼앗은 것과 같아 중화민족 여성의 권익을 수호하려 한다는 말은 완전히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이다.

밍후이왕에서 2013년 3월 1일까지의 소식에 따르면, 민간 경로를 통해 3649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로 사망했음을 파악하고 확증했다고 한다.(중공이 전력을 기울려 죄악을 감춘 것 때문에 이는 실질적으로 박해로 사망한 사례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중 여성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대략 53.36%다. 수천을 헤아리는 많은 여성 파룬궁수련생들이 감옥에 갇히고 가정이 파괴되며 가족이 사망했으며, 또 수천을 헤아리는 수많은 여성 파룬궁수련생이 잔혹한 고문, 혹독한 구타, 능욕과 강간을 당했고 약물학대, 강제유산을 당했으며 생체 장기적출 등 박해를 당했다!

1. 잔혹한 고문과 혹독한 구타를 당한 여성 파룬궁수련생

중국공산당의 ‘형법’은 그럴듯하게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함과 폭력으로 증거를 얻음을 금지한다. 위반자는 3년 이하 유기형이거나 단기 징역형에 처할 수 있고,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해 사람을 불구로 만든 자는 엄벌에 처한다고 했다.

하지만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소멸성 박해 속에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함은 공공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고문을 사용함은 적어도 40여 가지인데, 사용 대상 중에는 여성과 노인이 상당수 차지했다. 참혹한 고문으로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사망하거나 영원히 불구가 됐다.

中共迫害法轮功,使用酷刑至少四十多种,令人发指的迫害时时刻刻都在中华大地上发生着。
중공이 파룬궁 박해에 사용한 고문은 적어도 40여 가지로, 이 치가 떨리도록 분노케 하는 박해가 시시각각 모두 중화대지에서 발생하고 있다.

◇ 장쩌민을 놀라게 하고 나쁜 일에 협조한 불량배들을 발광하게 한 진상(眞相) 삽입방송

2002년 3월 5일, 파룬궁수련생들이 창춘(長春) 유선 텔레비전에 성공적으로 파룬궁 진상 동영상을 삽입방송한 후, 장쩌민(江澤民)은 대단히 두려워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용서하지 말고 죽이라”고 지시했다. 창춘 지역 5천여 명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당했는데 그중 대량의 여성 파룬궁수련생이 포함됐다. 그들은 남성 파룬궁수련생과 마찬가지로 잔혹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어떤 이는 창춘 징웨탄(淨月潭)으로 끌려가서 비밀리에 중형을 당했는데, 약 30명 파룬궁수련생이 참혹한 형벌로 사망했다. 어떤 이는 학대로 사망한 뒤 곧바로 매장됐다.

산둥(山東)성 파룬궁수련생 장즈쿠이(張致奎)의 진술에 따르면, 징웨탄의 비밀 집행 방식에서 그는 고문으로 고통을 당해 반죽음에 이르렀다. 그는 시국(市局)으로 끌려 돌아온 후 시국 안에 많은 작은 방이 있음을 보았는데 작은 방마다 모두 ‘호랑이 의자’(고문 도구)가 하나씩 있었고 호랑이 의자 위에는 모두 여성 파룬궁수련생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은 모두 이미 기절했는데 모두 하반신을 드러내거나 겨우 옷 한 벌만 걸치고 있었을 뿐이었다.

* 수차례 기절하고 두터운 털옷과 내복 바지에 피가 스며든 왕위환, 결국 불구 되어 사망

파룬궁수련생 왕위환(王玉環)은 생전에 창춘 경찰 측에게 10여 차례 불법 감금당했고, 9차례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당했다. 2002년 3월 11일, 왕위환은 창춘 공안1처에 납치당했고, 12일 저녁에 가오펑(高鵬)과 장헝(張恆)에게 꽁꽁 묶여서 차 트렁크에 넣어져 징웨탄의 집형실로 끌려갔다. 왕위환은 호랑이 의자에 채워졌다. 악독한 경찰은 5분 간격으로 그녀에게 중형을 가했고 거꾸로 묶은 팔을 뒤로 흔들었는데 뼈가 결국 ‘우지직’하고 탈골했다. 심장이 찢어질 듯한 고통으로 왕위환은 거의 기절할 뻔했다. 땀과 눈물이 순식간에 쏟아졌다. 머리는 사타구니 부위로 강제로 눌려졌는데 목은 거의 부러질 뻔했다. 매초마다 모두 사람을 질식시켰다. 발목은 잡아당겨져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극렬한 아픔과 고통으로 왕위환은 전신을 떨었다.

땀, 눈물과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는 그녀의 머리카락과 옷 그리고 바지에 배었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은 그녀를 한 차례씩 기절시켰는데, 또 한 차례씩 냉수와 뜨거운 물을 끼얹어 정신을 차리게 했다. 뜨거운 물은 그녀의 이미 상처 난 피부를 더욱 갈라지게 했다.

王玉环
왕위환(王玉環)

왕위환은 이후에 말했다. “당시 나는 정말 그 긴긴 고통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정말 그들이 총으로 나를 쏴 죽였으면 했다.”

4시간 넘는 호랑이의자 학대를 당한 뒤 왕위환은 다시 한 차례씩 담배연기로 기절했는데 또 다시 냉수를 끼얹어 정신을 차리게 했다. 그리고 담배꽁초로 눈꺼풀을 벌리고 태웠다. 앞니는 구타로 두 대나 부러졌고, 얼굴은 구타로 부어올라 검은 자색이 됐으며 두 귀는 찔려서 청력을 잃었다.

17일 동안, 왕위환은 세 차례나 중형을 당했는데 매번 극심했다. 그중 한 번은 악독한 경찰이 다른 사람에게 그녀의 상처가 피범벅이 됨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녀에게 아주 두터운 털옷과 털내복 바지를 입혔다. 하지만 피는 아주 빨리 털내복 바지에 스며들었다. 경찰은 또 한층 더 두터운 털내복 바지를 입혔다. 그러나 스며 나온 피는 또 털내복 바지를 흠뻑 적셨다.

왕위환은 중형을 당한 후 생명위기에 빠졌지만 감옥병원으로 보내져 계속 박해를 당했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위에 묶여 독극물 주사를 한 대 맞았는데 이후 줄곧 두 다리가 마비됐고(꼬집어도 감각이 없음), 발은 장시기 동안 차가웠다. 게다가 성적 모욕도 당했다.

왕위환은 이후에 말했다. “여성인 우리는 벗겨진 채 실 한 오리 걸치지 않고 ‘대’자형으로 아무것도 펴지 않은 딱딱한 침대 위에 묶였다. 이렇게 몸이 벗겨져 26일 동안 묶여졌으며 경찰, 감옥 의사와 남자 죄수에게 심한 모욕을 당했다!”

2007년 5월 9일, 왕위환은 거듭 납치돼 시 국가보안대대에 의해 거듭 징웨탄 고문실로 보내져 밤새 심문을 당했다. 왕위환은 돌려보내진 뒤에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고, 내장은 전부 손상을 입어 음식물을 먹기 어려웠으며 혼자 걸을 수 없었다. 2007년 9월 24일, 창춘(長春) 공안병원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 52세였다.

◇ 혹독한 구타를 당해 사경에 이른 위슈링, 4층 창문에서 내던져져 사망

于秀玲
위슈링(于秀玲)

위슈링(于秀玲)은 랴오닝(遼寧) 자오양현(朝陽縣) 파룬궁수련생으로 32세다. 2001년 9월 14일에 집에서 스자쯔(十家子)구치소로 납치당했는데, 9월 19일 아침 8시에 룽청(龍城) 공안분국으로 끌려가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꼬박 13시간의 괴롭힘을 당한 위슈링은 혹독한 구타로 사경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이 병원에 보내 응급처치를 했다고 말하자 다른 한 사람은 “병원에 보내지 마시오. 응급처지를 해서 살아나면 우리는 교대할 방법이 없습니다”고 말했다. 죄행을 감추기 위해 악인 황(黃)씨와 쑨(孫)씨 등은 위슈링을 4층 창문에서 던져 살해했다. 당시는 밤 12시쯤인데 그들은 황급히 시신을 보내 화장했다.

화장하기 전에 악독한 경찰은 위슈링의 남편 펑뎬샹(馮殿祥)에게 통지를 내려 사망자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말했다. 펑뎬샹이 현장에 도착한 후 황씨와 쑨씨는 난폭한 깡패 몰골을 드러내며 펑뎬샹을 위협했다. “당신들이 한번 신고해 보시오. 마음대로 하시오! 상부에 지시가 있는데 파룬궁을 어떻게 괴롭혀도 과분하지 않다고 했소!”

◇ 산둥 웨이팡 우징샤, 3일 만에 무참하게 구타로 사망

吴敬霞母子
우징샤(吳敬霞) 모자

우징샤는 산둥 웨이팡(濰坊) 파룬궁수련생이다. 수련에 확고하고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납치돼 구타당했고 불법 감금과 갈취를 당했다. 2002년 섣달 5일(1월 17일) 아침, 우징샤는 진상자료를 배포했다가 경찰에게 찬예위안(產業園) 파출소로 압송돼 정문의 초소 스팀 파이프에 채워졌다. 이튿날에 웨이팡 쿠이원구(奎文區) 세뇌반으로 압송 당했는데 사흘 만에 박해로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29세였다.

시신은 온몸에 상처투성이였다. 얼굴 위에는 화장지를 덮고 있었는데, 입에는 피가 흘렀고 등은 구타당해 시퍼렇고 검게 멍들었으며, 허벅지 뼈는 구타로 부러졌고 목 위에는 또 한 갈래의 붉은 선이 그어 있었다. 가족이 시신에 옷을 갈아입힐 때 그녀의 허벅지 뼈가 구타로 부러지고 뼛조각이 살 밖으로 나와 있음을 보고는 차마 보지 못해 옷도 갈아입히지 못했다. 우징샤는 또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였다. 아이에게 사흘 동안 젖을 먹이지 못해 유방은 원래 불룩해져 아프고 괴로웠다. 그러자 악독한 경찰은 바로 그녀의 가장 아픈 부위에 전기봉을 이용해 4~5곳이나 전기충격을 가했는데 상처부위를 모두 종이에 압정을 박아 가렸다.

가족은 고소장을 웨이팡시 공안국에 제출했다. 책임자는 “이 소송을 걸면 이깁니다. 그러나 오늘 당신을 위해 소송을 걸어 이기게 하면, 내일이면 우리는 곧 관직을 떠나야 하며 먹을 밥이 없게 됩니다”고 말했다. 우징샤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뒤 가족들의 전화까지 감시당해 가족은 자유를 잃었다.

◇ 인신매매한 사당 서기를 고소하다 노동교양 박해로 사망, 가족은 부검하려다 협박당해

史永清
스융칭(史永淸)

스융칭은 허베이(河北) 안궈시(安國市) 치저우진(祁州鎭)의 농촌 여성으로 파룬궁을 수련한 뒤에 몸이 건강했고 얼굴에는 늘 웃음을 띠었다. 파룬궁이 박해를 당한 뒤 여러 차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는 이유로 납치감금을 당했다. 2001년에 바오딩 노동교양소의 박해로 정신이상이 됐다.

치저우진의 차오(曹) 서기는 책임을 감당할 까 두려워, 뜻밖에 이혼한 그녀를 딩현(定縣) 딩촌(丁村)에 팔았고 그녀의 호구(호적)를 강제로 옮겼다. 스융칭은 그곳에서 욕과 구타를 당하자 참을 수 없어 여성을 인신매매 죄로 차오 서기를 고소했다가 오히려 노동교양소로 붙잡혀 들어가 박해를 당했다. 출소 후 또 줘저우(涿州) 세뇌반으로 붙잡혀 들어가 생명이 위독해질 때까지 박해를 당했다.

2004년 섣달 18일, 나이 겨우 35세인 스융칭은 박해로 사망했다. 가족은 그녀의 웅크린 시신을 보았다. 공안국 측은 가족에게 위협하며 부검을 가로 막았고, 가족에게 1천 위안을 주어 일을 끝내고는 가족을 핍박해 시신을 화장시켰다. 스융칭의 어린 아이는 보살펴 줄 사람이 없었고 핍박에 못 이겨 학업을 그만두었다. 할아버지는 충격으로 뇌혈전 증상이 나타나 한쪽 눈이 실명했다. 할아버지와 손자 두 사람은 다만 대변을 퍼내는 일로 어려운 나날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2. 여성 파룬궁수련생이 능욕과 강간을 당하다

고문학대를 제외하고 ‘전 인류를 해방’시킨다고 허풍을 떤 중공은 본성을 고치지 않고 또 깡패가 가장 잘하는 짓을 저질렀다.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수단 중 하나로 공공연하게 능욕과 강간을 일삼은 것이다.

中共酷刑:强奸、轮奸,恶警强奸、轮奸及纵容男犯或社会上的流氓强奸、轮奸法轮功女学员
강간과 윤간, 악독한 경찰이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직접 강간·윤간하거나, 또 남성 죄수나 사회상 불량배를 방임해 강간·윤간하다.

(1) 불법 감금장소에서 통일적으로 배치해 체계적으로 능욕과 강간 실시

중공 깡패는 한 방면으로는 불법 감금장소에서 통일적으로 배치해 체계적으로 능욕과 강간을 실시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2000년 10월에 장쩌민, 뤄간(羅干)이 떠받든 박해의 ‘본보기’는 랴오닝 선양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에서 일어났다. 18명 여성 파룬궁수련생의 옷을 완전히 벗겨 남자 감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남자 수감자에게 난폭하게 능욕하도록 격려했는데 여러 사람이 사망, 불구, 정신 이상이 됐다.

미혼 처녀인 샤오장(小蔣)은 마싼자에서 강간 및 박해를 당해 정신이상이 됐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는 지금 이미 10여세이다.

◇ 2001년 5월, 하얼빈(哈爾濱) 완자(萬家)노동교양소는 50~60명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남자 노동교양대로 들여보내 능욕하며 강간하게 했다.

◇ 2001년 6월, 헤이룽장(黑龍江) 빈현(賓縣) 파룬궁수련생 탄광후이(譚廣惠)는 악독한 경찰에게 남자 노동교양대로 들려 들어가서 3명 남자에게 윤간을 당했다. 그 후 완자병원에서 또 악독한 경찰에게 강간을 당한 동시에 약물박해로 정신 이상이 됐다.

◇ 랴오닝성 여자감옥은 황신(黃新) 등 여러 명 여성 파룬궁수련생의 옷을 완전히 벗겨 남자 감옥에 밀어 넣어 마음대로 사형수가 강간하게 했다.

◇ 광둥(廣東) 노동교양소에서는 여성의 정조를 조건으로 내걸고 남자 수감자를 이용해 성적 박해를 하겠다고 위협해 강제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켰다.

◇ 1999년 10월, 헤이룽장 치치하얼 푸위현(富裕縣) 구치소에서는 한 여성 파룬궁수련생의 옷을 완전히 벗겨 남자 감방에 던져 넣고 마음대로 남자 수감자가 윤간하게 했다.

◇ 2001년 7월, 허베이 싱타이(邢台) 공안국과 싱타이 차오둥(橋東) 공안국은 ‘파룬궁을 반대하는 전문사건팀’을 만들어,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한 동시에 고문으로 괴롭혔다. 예전에 구치소로 압송한 여성 파룬궁수련생의 손발을 채우고는 차위에서 윤간을 했다. 한 악독한 경찰은 다른 사람에게 그는 혼자서 예전에 파룬궁 수련자 3명을 강간한 적이 있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

……

(2) 불량배가 마음대로 강간하도록 방임하고 보호하다

다른 한 방면에서 중공은 박해하는 불량배를 방임, 보호해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마음대로 능욕하고 유린하게 했다. 이들 불량배는 경찰, ‘610’인원 및 ‘610’과 경찰의 부추김을 받고 파견된 사회 깡패 등을 포함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003년 5월 13일 저녁, 충칭(重慶)대학 고압수변전(高壓輸變電) 전문 연구생 웨이싱옌(魏星艶)은, 사핑바(沙坪壩) 바이허린(白鶴林) 구치소에 의해 악독한 경찰에게 두 명의 여자 죄수 앞에서 강간을 당했다. 구치소측은 사후에 일체 증거를 소각하고 관련자를 이전시켰다. 적어도 10명 파룬궁수련생이 강간박해를 폭로했다가 ‘국가기밀을 폭로했다’는 등 죄명을 뒤집어쓰고, 불법적으로 5년에서 14년 중형판결을 당했다. 피해자 웨이싱옌은 지금까지 행방불명 상태다.

◇ 2000년 3월 17일,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간 2명의 청두(成都) 신진현(新津縣) 여성 파룬궁수련생과 여성 대학생은 베이징 주재 청두 사무실에서, 청두 우허우구(武侯區) 왕타오(王濤) 등 3명의 야만적인 경찰에게 강간당했다.

◇ 2001년 2월, 후난(湖南) 창사시(長沙市) 파룬궁수련생이자 칠순의 고독한 노부인 쩌우진(鄒錦-이미 억울하게 세상을 떠남)은 창사시 제1구치소에서 량화구(雨花區) 징완쯔(井灣子)파출소 레이전(雷震) 등 악독한 경찰에게 윤간 학대를 당해 기절했다. 그 후 9년 무고한 판결을 선고받았다.

◇ 2002년, 허베이 정딩현(正定縣)의 온갖 악행을 일삼는 610두목 후쥔(胡軍)은 정딩현 610깡패 2명을 거느리고, 위(裕)씨 등 3명 미혼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비밀리에 정딩현 궈하오(豪大) 호텔로 압송해 강간과 윤간을 감행했다.

◇ 허베이 줘저우(涿州)시 610두목이자 난마(南馬)세뇌반 두목 가오쉐페이(高學飛)는 예전에 세뇌반에 불법 감금당한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강간한 적이 있다. 이 악도는 예전에 전문적으로 세뇌반에 불법 감금당한 허베이 줘저우 ‘11.25’ 강간사건의 피해자 류지즈(劉季芝)를 감시했는데 소송을 막으려 시도하기도 했다.

◇ 2004년 4월, 푸젠(福建)성 센유현(仙遊縣) 파룬궁수련생 천단샤(陳丹霞)는 악독한 경찰에게 지시당한 사회 깡패에게 혹독한 구타, 강간을 당해 불행하게 임신했다가 핍박에 못 이겨 유산했다. 잔혹한 박해는 그녀에게 정신착란 증상이 나타나게 하여 정신이상이 되게 했다. 모친(파룬궁수련생)은 박해로 세상을 떠났고, 여동생(파룬궁수련생)은 6년 불법 판결을 당했는데 심지어 생리가 왔을 때에도 남동생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 19세인 미혼 처녀 샤오이(肖亦)는 산시(山西)성 창즈(長治)정신병원에서 사흘 밤에 14번이나 윤간을 당했다. 가슴부위와 음부는 담배꽁초에 지져져 상처가 생겨났다. 결국 시달림으로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도 못했다.

◇ 2002년 여름, 베이징 창핑(昌平)정신병원에서 9세인 소녀(고아가 된 파룬궁수련생의 자녀)는 정신병원의 3명 간수 다터우(大頭), 창마오(長毛), 야바(啞巴)에 의해 윤간을 당했다. 소녀가 학대당하는 비명소리는 심장이 찢어지고 폐가 파열되는 듯 했다.

……

3. 여성 파룬궁수련생이 참혹하게 성적 학대를 당하다

여성 파룬궁수련생이 성적 학대, 성적 손상을 입은 박해 사례는 더욱 전국적이었는데, 그 수는 헤아리기 어렵다. 이곳에서 몇 가지 사례만 들겠다.


중공의 고문 설명도: 악독한 경찰이 전기봉으로 파룬궁수련생의 유방, 음부에 전기충격을 가하고, 전기봉을 여성의 음부 안에 꽂아 넣고 전기충격을 가했는데 미혼 처녀마저도 가만두지 않았다.

◇ 랴오닝성 다롄(大連) 노동교양소 안에서의 잔인하고 저질스러운 성적 학대

다롄 교양원은 불법 감금한 수백 명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파쇼식 박해를 감행했다. 게다가 저질적이고 악독한 수단으로 파룬궁수련생을 핍박해 수련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도록 했다.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교양원은 더욱 극히 잔인하고 저질적인 수단을 취해 성적 박해를 감행했다.

예를 들면 손과 발을 ‘대’자형으로 채워, 대걸레 막대기와 칫솔(칫솔 털을 밖으로 향하게 함)을 함께 묶어서 음도에 찔러 넣었는데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리고 다시 상처를 입은 음도 안에 고춧가루 물을 주입하고 고춧가루를 밀어 넣어 피해자를 까무러칠 정도로 고통을 주었으며 아물기 어려운 심신의 상처를 남겼다. 양심을 상실한 그녀들은 미혼 처녀마저 가만두지 않았다.

* 창쉐샤(常學霞)는 옷을 완전히 벗겨진 채 혹독한 구타를 당한 뒤 독방에 갇혔다. 간수는 악독한 경찰 완야린(萬雅琳)의 지휘 하에 유두를 꼬집고 음모를 잡아당기며 신발 솔로 음도 속을 찔렀다. 옆에 물 한 대야를 놓고는 피가 나지 않으면 또 큰 신발 솔을 바꿔서 광적으로 음도를 찔러댔다.

* 악도는 굵은 끈으로 3번이나 왕리쥔(王麗君)의 음부를 왔다 갔다 하며 비비 꼬았으며 부러진 대걸레 막대기를 음도를 찔러놓아 크게 출혈하게 했다. 아랫배와 음부는 공처럼 부어올라 팬티마저 입지 못했고 화장실에 가서도 쭈그려 앉지 못했는데 소변도 누지 못할 정도였다. 2개월 후에도 여전히 고통으로 앉지 못했고 다리도 절뚝거렸다.

酷刑演示:鞋刷捅刷下身
고문 시연: 신발솔로 음부를 찌르고 닦다

* 푸수잉(傅淑英)은 ‘오마분시(五馬分屍-고대의 혹형으로, 죄인의 사지와 머리를 다섯 마리의 말에 묶은 후 말을 몰아 잔혹하게 찢어 죽임)’ 고문을 한 시간 넘게 당한 후 몸이 찢어지는 듯 했다. 간수는 또 막대기로 그녀의 음부를 찔러 염증이 생겨 문드러지게 됐다. 그리고 또 대걸레 막대기와 칫솔(칫솔 털을 밖으로 향하게 함)을 함께 묶어 음부를 찔러 피가 줄줄 흘러내리게 했다. 다시 상처를 입은 음부 안에 고춧가루 물을 주입하고 고춧가루를 밀어 넣어 참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주었다.

* 중수쥐안(仲淑娟)은 손발이 ‘대’자형으로 묶여졌으며 간수는 화장실을 닦는 솔로 음도를 찔려 크게 출혈하게 했다.

* 쑨옌(孫燕)은 음부를 찔려 끊임없이 피를 흘렸다. 세워두는 고문을 당할 때 피가 다리를 따라 땅바닥에 흘렀는데 간수마저도 너무 잔인하다고 말했다. 독방에서 시달림을 당해 1년이 넘는 동안에 절뚝거렸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그녀가 소아마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 취수메이(曲素梅)는 독방 안에서 꼬박 5일 동안 ‘큰괘에 올리기’ 고문을 당했다. 간수는 음도 안에 고추와 걸레를 쑤셔놓아 그녀가 3개월 동안이나 침대에 올라가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다.

* 간수는 만춘룽(滿春榮)의 음도 속에 고추장을 넣었다.

……

이들 치가 떨리도록 분노케 하고 정상인의 상상을 초과한 변태적인 행위는 사회상의 범죄자, 현지 깡패마저도 감히 하지 못하는 짓이다. 악독한 경찰은 또 후안무치하게 말했다. “나 이곳은 바로 정부를 대표해 당신들에게 ‘전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랴오닝 마싼자 노동교양소의 악독함

랴오닝 선양(瀋陽) 마싼자 노동교양소에서, 악독한 경찰은 여성 파룬궁수련생의 옷을 완전히 벗겨 남자 감방 안에 집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또 옷을 완전히 벗겨 강제로 그녀들을 촬영해 모욕을 주거나 혹은 장시간 동안 눈밭에 세워 추위에 떨게 했다. 게다가 전기봉을 음도 안에 꽂아 넣고 전기충격을 가하기도 했다.

* 몇 시간 동안 유방에 전기충격 당해 완전히 문드러진 왕윈제가 상처를 입고 억울하게 사망하다

왕윈제(王雲潔)는 랴오닝성 파룬궁수련생이다. 2003년 초에 마싼자 노동교양소 궈톄잉(郭鐵英) 등 악독한 경찰에 의해 강압 전기봉 두 대로 동시에 유방에 몇 시간 동안이나 전기충격을 당했다. 이로 인해 유방 전체가 완전히 문드러졌다. 이튿날, 그녀들은 또 강제로 왕윈제의 다리를 쌍가부좌로 올리고 천으로 다리와 머리를 함께 단단히 공 모양으로 묶었다. 그리고 다시 수갑으로 두 손을 뒷짐결박해 7시간 동안이나 매달았다. 그때부터 왕윈제는 다시는 정상적으로 앉거나 서지 못했다.

마싼자 악독한 경찰은 그녀가 2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생각해 2003년 11월에 황급히 가족에게 데려가라고 통지했다. 왕윈제는 집으로 돌아온 후 유방이 점점 더 심각하게 문드러져 결국 2006년 7월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王云洁被电棒电击致使乳房溃烂
왕윈제가 전기봉 충격으로 유방이 문드러진 모습

* 신수화(信素華)는 랴오닝 번시(本溪) 파룬궁수련생으로 마싼자 교양소에서 여러 차례나 악독한 경찰에게 음부를 혹독하게 채여 쇼크까지 일으켰다.

◇ 미혼 처녀의 음부가 짓이겨 문드러져 3개월 동안 상처가 낫지 않다

후먀오먀오(胡苗苗)는 허베이 장자커우시(張家口市) 파룬궁수련생이다. 2010년 6월 26일에 허베이 여자노동교양소 1대대로 납치당해, 악독한 경찰 대대장 왕웨이웨이(王偉衛) 및 일반 죄수 우옌춘(吳艶春), 리링링(李玲玲), 중둥룽(宗東榮) 등에게 학대를 당해 장시간 동안 세워두는 고문, 구타를 당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저질하고 잔혹한 성 학대였는데 악인은 빗자루와 손가락으로 음부를 짓이겨 문드러지게 했다. 3개월 후에도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못했으며 똑바로 서서 걷지 못했으며 극히 고통스러웠다.

◇ 흉악하게 두 유방을 밟아 피해자가 입과 귀에서 피를 뿜어내고 기절

흉악범: 허베이 라이수이현(淶水縣) 라이수이진(鎭) 진장 류전푸

천청란(陳程蘭)은 허베이 라이수이현 파룬궁수련생으로, 2000년 8월에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사당 학교로 납치당했다. 라이수이진 진상 류전푸(劉振福)는 그녀에 대해 인간성이 없는 잔인한 박해를 가했다. 사람을 구타해 넘어뜨린 뒤 다시 발로 두 유방을 혹독하게 밟았다. 밟으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네가 그래도 연마할지 두고 보겠다. 네가 그래도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갈지 두고 보겠다!” 천청란은 당시 즉시 입과 귀에서 피를 뿜어내며 기절해 쓰러졌다. 두 유방은 밟혀서 검은 자색으로 부어올랐다.

이름이 상세하지 않은 사람이 성 학대, 성 모욕을 당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베이징 자오양(朝陽)분국 제2구치소 경찰은 잔인하게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땅바닥에 눌러놓고 아랫배 부위에 나무판자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네 사람이 나무판자위에서 사납게 밟았는데 내장을 밟아 터지게 했다. 심지어 피와 오줌마저 밟혀 나왔다. 어떤 이는 옷을 완전히 벗기고 십자가 위에 묶였는데 내려와서 대소변마저 볼 수 없게 했다. 어떤 이는 생리가 와서 피가 줄줄 아래로 흘러내렸으나 악독한 남자 경찰은 태연스럽게 그녀들 신변에서 돌아다녔다.

酷刑演示图:多人狠踩女性下身
고문 시연도: 여러 사람이 여성의 하반신을 악독하게 짓밟다.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 스바리허(十八里河) 여자노동교양소의 한 파룬궁수련생은 사부님을 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옷이 완전히 벗겨진 채 철창 위에 매달렸다. 악인은 돌아가며 손으로 그의 유방을 힘껏 아래로 잡아당겼다. 피는 유두를 따라 아래로 떨어졌다.

산둥 핑두시(平度市) 주거우진(祝溝鎭)의 악독한 경찰 머우춘양(牟春陽)과 야만적인 경찰 판(潘)씨는 여성 파룬궁수련생의 옷을 완전히 벗겨 갈고리를 불에 달궈 음부를 걸어 잡아당겼고 앞가슴과 유방을 흉악하게 구타했으며 갈고리를 불에 달궈 얼굴을 지졌다.

신장(新疆)의 한 악독한 경찰은 한 29세 대학 강사 수련생을 뒷짐결박으로 채워 두 유두를 전선으로 한데 꿰맨 뒤 전기충격을 가했다.

4. 여성 파룬궁수련생이 참혹하게 정신적 약물 학대를 당하다

중공은 광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함에, 함부로 법률을 짓밟으며 사람을 붙잡고, 가두며, 살인하고, 고문학대를 가하며, 성 학대를 감행한 외에, 또 더욱 비열한 수법을 사용했는데 바로 독극물을 투입하는 것이다. 약물을 사용해 정상적 사유를 갖고 정신이 건강한, 하지만 굴복하지 않는 파룬궁수련생에게 손상을 입혔다. 약물 학대로 그들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중에서 사망케 하고 불구로 만들었다.

중공은 독극물을 조직적, 체계적, 대면적으로 자국민을 박해함에 사용했는데 이는 오로지 악독한 중공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중공이 수련생에 대한 박해와 증오가 이미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며 인성을 상실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며, 또 진일보로 중국 공산당의 생명을 살해하는 본성과 사악한 본질을 폭로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약물은 사람에게 큰 재난을 입혔는데 전례 없는 큰 독성을 가진 것들이다.

◇ 정신병원에서 10여 년간 손상을 입은 궈민이 고통 중에서 비참히 세상을 뜨다

궈민(郭敏, 여)은 전 후베이(湖北) 시수이현(浠水縣) 국세국 시마진(洗馬鎭)분국 직원으로, 파룬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0년에 시수이 국세국 공회주석 탕위안훙(湯圓紅)에 의해 직접 황강시(黃岡市) 탕캉(康泰) 정신병원에 보내져 약물손상을 입었다. 2002년에 시수이현 적십자회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이렇게 갇힌 것이 또 8년이 넘었다. 궈민의 심신에 심각한 상해를 입힌 것은 약물손상과 정신적 학대인데 이는 그녀에게 6년 동안이나 생리를 중단하게 만들었다. 또 배는 만삭 임산부처럼 부풀었으며 2010년 7월에는 자궁경부암에 걸렸다.

가족은 연루당해 박해를 당할까 두려웠고 또 중공 세뇌의 독해를 입어 수년간 궈민을 데려오려 하지 않았다. 2011년 7월 5일, 궈민은 고독하게 고통 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겨우 38세였다. 시수이 적십자회 정신병원에 있던 최후의 나날에 그녀에게 물 한 컵 부어주는 사람도 없었고 병실로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암으로 큰 고통에 시달렸던 그녀는 침대 위에서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으나 다시 침대로 기어오를 기운도 없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으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 톈진 판차오 노동교양소에서 약물로 여성 파룬궁수련생 살해

톈진(天津) 판차오(板橋) 여자노동교양소의 악독한 경찰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전향’하지 않으면 정신병이라고 소란을 피웠다. 판차오 여자노동교양소에서는 고문학대를 감행한 외에 또 파룬궁수련생의 죽과 마시는 물 및 링거 중에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 성약(性藥), 독극물을 투입해 파룬궁수련생으로 하여금 정신이상과 반응이 무디며, 눈이 보이지 않게 하고, 하지에 지각이 없는 증상 및 고혈압과 심장병 등이 나타나게 했다.

* 자오더원(趙德文)은 톈진시 베이천구(北辰區) 파룬궁수련생이다. 톈진시 판차오 여자노동교양소에서 잔혹한 박해를 당해 악도에게 성약을 주입당한 뒤에 상해를 입어 크게 출혈했다. 결국 2003년 6월 3일에 노동교양소에서 사망했다.

* 저우쉐전(周學珍)은 톈진시 베이천구 파룬궁수련생으로, 2000년 말 집에서 납치당했다. 판차오 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 악도에게 옷이 벗겨진 채 돼지우리에 묶여져 모기에게 물려 기절했다. 그리고 악도들을 그를 독방에 가둬 강제로 독극물을 먹였는데 정신이상이 된 후에야 석방했다.

* 자오빙훙(趙炳紅)은 톈진 다강(大港) 유전의 노동자다. 판차오 노동교양소에서 학대를 당해 정신이상이 됐다. 대변도 먹고 오줌마저 마셨는데 그야말로 사람 모습이란 없었다. 교도관은 그래도 여전히 그녀를 가만두지 않고 늘 마약범과 형사범을 시켜 그녀를 괴롭혔다. 구타를 당해 그녀는 전신이 청자색을 띠었다. 불법 노동교양 기한이 만기되어서야 석방했다.

* 천위메이(陳玉梅)는 톈진 다강구(大港區) 파룬궁수련생으로, 2008년 11월 14일에 납치돼, 판차오 여자노동교양소에서 고문학대를 당했다. 예전에 침대위에 ‘대’자형으로 채워져 2년 넘게 박해를 당했다. 예전에 강제로 링거를 주사 당했는데 출처가 불분명한 독극물을 주입 당했다. 그리고 고의적으로 그녀의 몸 안에 공기를 넣었으며(주사기로 체내에 공기를 넣으면 해당 부위가 괴사하거나 죽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위험하다: 역주) 링거를 다 끝내도 바늘을 뽑아주지 않았는데 그녀를 죽이려 한 것이다. 결국 천위메이가 박해로 정신이 흐리멍덩해진 뒤에야 석방했다.

酷刑演示:死人床
고문 시연: 사망자 침대(死人床)

바이훙(白虹)은 전 톈진시 허핑구(和平區) 권업공장(勸業場)위생원 직원이다. 2002년 겨울에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는데, 악독한 경찰과 바오자(包夾: 수감자로 이뤄진 감시원)에게 무차별폭력을 당했고 밤에 옷을 완전히 벗겨 돼지우리에 던져졌다. 바이훙이 단식으로 항의하자 악도들은 그녀의 사지를 침대 위에 묶어놓았다. 밤에는 그녀를 두 방안 사이의 협소한 복도로 들고 갔는데 그곳에는 몇 장의 시멘트 판이 있었다. 그녀들은 바이훙의 옷을 완전히 벗겨 시멘트판 위에 눕히고는 또 옷으로 부채질해 찬바람을 맞게 했다. 그리고 또 그녀를 개를 기르는 큰 우리 앞으로 밀고 가서 개와 함께 가두겠다고 큰 소리쳤다. 바이훙은 노동교양소의 이 같은 박해로 정신이상이 됐다.

* 왕징샹(王景香)은 판차오 여자노동교양소에서 정신 및 육체적 학대를 당했다. 교도관은 또 그녀의 밥안에 독극물을 주입해 왕징샹은 정신이상이 되어 한때 기억을 잃은 적이 있다.

* 무샹제(穆祥潔)는 톈진시 파룬궁수련생으로, 예전에 판차오 여자노동교양소에서 잔혹한 학대를 당한 적이 있다. 그녀에게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하기 위해 예전에 독극물을 주입했는데 그녀는 한때 정신이 무너져 스스로 통제하기 어렵게 됐다.

* 왕위링(王玉玲)은 톈진 다강구 파룬궁수련생으로 판차오 여자노동교양소에 의해 약물박해로 한때 두 눈이 실명하고 하반신에 지각도 없었다. 한 번은 악도들이 그녀를 땅위에서 끌고 다녔으나 신발이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

* 마저전(馬則珍)은 톈진 우칭(武淸) 파룬궁수련생으로 막 판차오 여자노동교양소로 납치당해 들어왔을 때는 무슨 일이나 다 할 수 있었다. 백 여근 되는 콩을 오랫동안 메는 것도 문제되지 않았다. 2001년, 교도관은 그녀가 고혈압 증상이 있다는 구실로 죄수에게 지시해 그녀에 대해 강제로 매일 두 번씩 약물을 주입하게 했다. 매번 모두 몇 사람의 죄수가 누르고 코를 잡고 입안으로 주입했다. 줄곧 2년간 주입했는데 마저전의 신체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고 걷는 것마저 매우 어려웠다.

◇ 헤이룽장 수련생 쑹후이란이 탕위안현 구치소의 독극물로 오른쪽 다리가 괴사되다

쑹후이란(宋慧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허강시(鶴崗市) 신화(新華)농장 파룬궁수련생으로 여러 차례 박해를 당했다. 2010년 12월에 또 자무쓰시(佳木斯市) 화촨현(樺川縣) 헝터우산(橫頭山)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탕위안현 구치소에서 독극물을 주사당해 대뇌반응이 무디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으며 오른쪽 다리가 괴사되어 탈락했고 심장이 괴로웠다.

宋慧兰被打毒针迫害致残(右脚焦黑、溃烂、坏死脱落)
쑹후이란이 독극물을 맞아 불구가 되다(오른쪽 다리가 괴사되어 탈락했다)

2011년 2월 23일, 탕위안현 구치소 소장 옌융(閆勇), 리(李) 교도관, 무잔궈(穆佔國), 장지우(薑繼武), 양리(楊麗) 등 사람은 흉악하게 쑹후이란을 판자 침상에 눌러놓고, 그녀에게 수갑을 채우고 강제로 정체불명의 약물 한 병을 주입했다. 즉시 쑹후이란은 마음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느껴 땅바닥에서 뒹굴며 말도 하지 못했다. 고통스러워 사는 게 죽느니만 못했다. 무릎 이하는 전부 감각을 잃고 몸은 뻣뻣해 졌으며 혀끝이 굳어지며 걷지도 못했다. 몸도 말을 듣지 않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몸이 나날이 쇠약해졌다. 대뇌반응이 무디고 때로는 기억이 사라졌다. 2월 28일 밤중, 쑹후이란은 심장이 이상했는데 극도로 괴로웠다. 감옥 의사 장젠훙(張儉紅)은 이튿날에 출근한 뒤 와서 쑹후이란의 다리를 보더니 “이 다리는 이제 불구가 됐군”이라고 말했다. 당시 쑹후이란의 오른쪽 다리에는 자색으로 된 큰 물집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온 후 쑹후이란의 몸은 뻣뻣해 졌고 눈빛은 흐리멍덩했으며 말할 줄도 모르고 손발은 뻣뻣해 굽힐 수 없었다. 마치 몸이 목석 같이 어떠한 반응과 지각도 없었다. 오른쪽 다리 이하는 발등과 발가락이 전부 괴사해 검은 색을 띠었고 핏물이 흘렀는데 만져보면 뻣뻣해 마치 철판과 같아 두드리면 퉁퉁 소리가 났다. 다리는 하루하루 악화되어 점점 검어졌고 굳어졌다. 움직이기만 하면 곧 다리를 따라 핏물이 흘렀다.

쑹후이란의 언니와 딸은 밤낮 그녀를 간호했다. 그녀는 다리가 아팠을 뿐만 아니라 심장도 또 이상하게 괴로워 분초마다 모두 극심한 고통 속에서 시달려 5분도 눕지 못했으며, 수시로 사망할 위험이 있었다. 언니와 딸은 돌아가며 그녀를 품속에 안고 있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떠나갈 것만 같아 두려웠다. 가족은 극히 마음이 아팠다. 5월 25일, 결국 쑹후이란의 오른 다리는 떨어져 버렸다.

(계속)

문장발표: 2013년 3월 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3/4/2706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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