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 보도) 랴오닝성(遼寧省) 후루다오시(葫蘆島市) 난퍄오구(南票區) 싼자쯔(三家子)가도 파룬궁수련생 장징화(張景華, 張井華)는 2012년 7월 2일에 파룬궁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당했다. 2013년 1월 9일, 난퍄오구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은 공모해 장징화에 대해 불법 심리를 감행했다. 게다가 31일에 4년의 판결을 선고했다. 장징화는 이미 상소하기로 했으며, 또 2013년 2월 8일 오전에 상소장를 후루다오시 중급인민법원에 직접 건네주었다.
1월 9일의 법정에서 장징화의 한 친척은 변호인 앞에서 그녀를 위해 무죄변호를 했다. 변호인은 법률을 인용해 장징화가 파룬궁을 믿고 진상을 전파함은 무죄이며, 헌법과 법률의 보호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른바 검찰관이 장징화를 모욕하고 비난하며, 죄를 뒤집어씌워 모함한 것을 반박한 동시에 다음과 같은 법률계를 침범했다고 했다.
1.《헌법》제36조에는 국민은 종교신앙자유가 있다.
2.《형법》제243조 규정: 무고모함죄.
3.《형법》제251조의 ‘불법으로 국민의 종교신앙자유를 박탈’한 등이다.
변호인은 또 원래 위암환자였던 장징화가 파룬궁을 수련해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사실과 그녀가 가정의 엄청난 곤란 속에서 전부 감당했던 경험을 진술하여 듣는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2백여 명이 서명하여 장징화의 석방을 요구하다
장징화의 친척과 친구, 이웃,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불법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뒤, 모두 분해하며 계속 장징화를 성원하겠다고 표시했다. 이들은 불법 법정심리가 진행된 뒤에 법정에 200~300명이 서명한 청원서를 직접 건네주며 사실을 존중하고 법률의 좇아 선량한 장징화를 무죄 석방하도록 요구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청원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장징화의 이웃, 마을 사람, 친구와 친척으로, 우리는 몇십 년을 화목하게 살아왔습니다. 장징화는 사람됨이 소박하고 선량하며, 몇십 년 동안 누구와 얼굴을 붉히거나 다투지 않았습니다. 다년간, 그녀는 연약한 몸으로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이 쓰러질 듯한 가정을 지탱했습니다.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는 고령의 부모님을 그녀 혼자 부양해야 했고, 공무로 불구가 되고 또 뇌혈전까지 걸린 남편을 돌봐야 했으며, 또 두 아이를 양육해야 했습니다. 그녀 자신은 또 위암에 걸렸습니다. 전 가족 3대가 단시간에 깊고 깊은 물에 빠졌습니다. 바로 이때, 그녀는 천만다행으로 파룬궁을 얻었습니다. 연공을 한 지 겨우 몇 달 만에 몸은 빠르게 호전되었습니다. 온 가족은 새롭게 희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오히려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붙잡혔고, 그녀의 집은 또 궁지에 빠졌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공무로 불구가 되고 뇌혈전에 걸렸는데, 지금 마음이 조급하고 속을 태워 여러 번 쓰러져 다쳤습니다. 그녀의 두 아들딸은 모두 외지에서 생활하고 근무하기에 장기간 귀향해 부친을 돌봐줄 수 없습니다. 그녀 한 사람을 붙잡는 바람에 온 가족이 해를 입었고, 또 우리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난퍄오 법원에서 장징화를 석방해 주십시오. 설도 가까워지는데 그들 온 가족이 단란히 한 데 모여 설을 쇠게 해주십시오.
위암 확진, 대법을 수련해 죽을 고비에서 다시 살아나다
장징화의 남편 차이중런(蔡忠仁)은 원래 난퍄오 광업국 싼자쯔 탄광의 광산 노동자였다. 1974년 11월에 갱내에서 석탄 채굴을 할 때, 석탄 덩이가 떨어져 머리에 외상을 입었고 4급 불구에 속했다. 그 후로 일할 수 없게 되었고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2012년 초, 그는 또 뇌혈전에 걸려 반신불수가 되었다. 장징화의 남동생 장훙야오(張洪堯)도 역시 난퍄오 탄광 광산 노동자인데, 80년대 초에 갱내에서 석탄 채굴을 할 때 사고로 사망했다. 이로부터 부모님을 부양하는 무거운 책임이 장징화의 어깨에 떨어졌다.
1995년 전후, 장징화는 진저우시(錦州市) 부속병원에서 위암 확진을 받았다. 그녀의 부친 장언카이(張恩凱)는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났다. 모친 왕위전(王玉珍)도 역시 갖가지 병을 앓았는데, 1992년에는 백내장에 걸렸고 2000년에는 뇌혈전에 걸렸으며 2002년부터는 치매에 걸리기 시작해 두 눈이 차츰 실명되었다. 2011년 말 9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몸져누워 있었다. 전 가정의 무거운 책임은 장징화 한 사람 몸을 내리눌렀다. 그녀는 연로하신 잔병이 많으신 부모님을 부양해야 했고, 또 공무로 불구가 된 남편을 돌봐야 했으며, 또 고생을 참고 견디며 두 자녀를 양육하고 대출금으로 아들이 대학공부를 끝낼 때까지 뒷바라지해야 했다.
그녀는 위암 확진을 받은 뒤, 베이징 셰허(協和) 병원, 진저우 부속 병원 등에 가서 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모두 호전이 없었다. 그 후, 그녀의 병세는 계속 악화되어 온종일 위가 아프고 각혈했는데, 어쩔 수 없이 좁쌀 죽을 먹는 수밖에 없었다. 걷기도 어려워 3층에 오를 때도 3~4번이나 휴식해야 했고, 야채를 사러 나가는 길에도 몇 번이나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녀는 집에 겨우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는 치료할 수 없어서 결국 치료를 포기하기로 하고 눈물을 머금고 딸에게 유언을 남겼다. “엄마가 떠나면 우리 가정은 네가 돌봐야 한다. 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아버지와 남동생을 잘 보살펴야 한다.”
속담에 이르기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다. 바로 장징화의 온 가족이 궁지에 빠졌을 때, 그녀는 파룬궁을 만났다. 연공을 하고 한두 달이 지나자 밥과 만두 등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걸을 때도 더는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위통과 각혈 증상도 모두 사라졌으며 건강을 회복했고 원기가 왕성했다. 이것은 정말 기적이었다! 온 가족이 모두 이 때문에 기뻐했고, 생활에도 희망이 생겼다.
파룬궁은 그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다. 동시에 또 그녀의 온 가족을 구원했다. 장징화는 더욱더 파룬따파를 믿었으며, 시각마다 확고하게 ‘진선인(眞善忍)’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선행(善行)으로 신변의 무수한 사람을 감동시켰으며, 또 사람들에게 파룬따파 진상을 알려줌을 견지했다…….
진상을 전했다가 납치, 불법 판결 당하다
2012년 7월 2일, 장징화와 자오리화(趙麗華)는 놘츠탕(暖池塘)에서 파룬궁진상을 알리다가 모함당해 놘츠탕 파출소의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자오리화는 열흘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다. 7월 12일, 친구가 후루다오시 유치장에 마중을 갔으나 유치장에서는 석방을 거부했다. 그 후에 랴오닝성 후루다오시 난퍄오구 놘츠탕진 파출소에 의해 랴오닝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로 납치당했으나 신체검사에서 불합격되어 자오리화는 집으로 돌아왔다.
장징화는 후루다오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놘츠탕 파출소 소장 셰펑(謝朋)은 장징화의 집에서 진상 자료를 찾았다. 말로는 장징화를 ‘우두머리’이니 판결해야 한다고 했다. 난퍄오구 검찰원 체포승인과의 양단딩(楊丹丁)이 불법으로 체포령을 내렸고, 난퍄오구 검찰원 공소과 과장 양샹언(楊向恩)은 장징화의 이른바 사건을 공모하여 꾸며서 박해한 뒤에 ‘공소’를 제출했다.
2013년 1월 9일, 난퍄오구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측은 공모하여 장징화에 대해 불법 법정심리를 감행했으나 그날에는 어떠한 판결도 내리지 않았다. 그러다 2013년 1월 31일, 난퍄오구 법원은 마침내 불법 조직 ‘610’의 지령에 굴복해 헌법도 무시한 채, 장징화에게 4년의 불법 판결을 내렸다.
문장발표: 2013년 2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2/10/2697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