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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 푸청유 노인, 억울한 옥살이로 생명 위독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올해 66세인 한 노인이 있다. 그에게는 효자인 두 아들과 며느리, 총명하고 귀여운 손자, 예쁘고 착한 손녀가 있다. 노인은 한창 사람의 즐거움을 향수할 나이지만 핍박에 못 이겨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게 되어 9년 동안 유랑생활을 했다. 결국 2011년 11월 28일에 중공에 납치되어 7년의 불법판결을 받아 박해로 지금 생명이 위독하다.

그는 바로 랴오닝성 잉커우시 바위취안구(잉커우시 경제기술개발구라고도 부름)의 파룬궁수련생 푸청유(伏承友, 불법 감금당한 뒤 사당은 푸청유(伏成有)라고 고쳤음)이다. 푸청유 노인은 파룬궁을 수련한 뒤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 일을 함에 다른 사람을 고려하고 마음씨는 더욱 착해졌다. 게다가 술과 다년간 피워 온 담배를 끊어버렸다. 이 일체는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아래 사진은 노인의 2011년 사진이다. 그는 비록 중공 경찰에게 납치당하기 전 유랑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수련 중에 있었으므로 얼굴은 건강하고 행복한 웃음을 띠었다.

伏承友
푸청유

이렇게 건강하고 낙관적이던 노인은 현재 따롄감옥 7감구역 1중대에 불법 감금 당해 짧은 1년 사이 박해로 목숨이 경각에 처해있다. 현재 푸청유는 두 다리가 부어올랐고 전신에는 이상하게 피부 비듬이 떨어져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려워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피부가 문드러져 저녁에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따롄을 언급하면 사람들은 그곳이 아름다운 해변도시이고 바다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은 열정적이고 손님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과는 달리 따롄에는 아직도 난관링감옥, 다롄감옥 등 인간지옥이 있다. 가족은 다롄감옥에 생명이 위독해진 푸청유를 병보석과 가석방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따롄감옥 7감구역 부감구역장 둥훙솨이는 조건이 부족하다며 무리하게 거부했다.

이러한 비극은 이미 10년 전에 연출된 적이 있다. 그러나 중공은 근본적으로 국민의 생사를 상관하지 않았다. 2002년 7월 2일, 푸청유는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랴오닝성 하이청시 난타이공안국에 의해 납치당해 하이청시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2002년 11월말, 푸청유는 구치소에 있는 기간에 심각한 박해를 당해 당시 전신 부종상태가 나타나 옷과 신발마저 신지 못했다. 몸에서는 눈꽃만한 가루가 떨어지고 이상한 냄새가 나서 하이청시 병원으로 보내져 정밀검사를 받은 후 다시 구치소로 돌려보내졌다. 당시 병원에서는 푸청유의 생명이 위독하고 심장, 간, 비장, 폐, 신장이 모두 상했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어서 랴오닝성 안산시 610, 정법위, 공검법사와 하이청시 610, 정법위, 공검법사 등 총 10여개 단위에서 하이청시구치소로 와서 조사했다. 하이청시구치소에서는 진실한 상황을 요해한 뒤 책임이 두려워 당시 16기 인민대표대회가 끝난 뒤에 푸청유를 석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16기 인민대표대회가 끝난 뒤 구치소에서는 푸청유가 구치소 안에서 죽을까 두려워 국가보안을 독촉해 석방을 요구했다. 국가보안대대는 신속히 가족과 연락한 뒤에 곧 푸청유를 석방해 주었다. 푸청유는 집에 있으면서 18일 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발정념을 했다. 몸은 매우 빨리 호전되어 아래 위층을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푸청유가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여 몸이 호전된 뒤 중공은 또 그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2001년 11월 8일, 바위취안 국가보안대대 대장 왕쿠이, 경찰 장루는 한 무리의 경찰을 거느리고 또 푸청유의 집을 포위했다. 방 안팎에는 전부 경찰로 가득 찼다. 게다가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감행했다. 푸청유는 왕쿠이에게 하이청에서 죽음에 직면했던 경험을 말하며 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돌아왔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들도 푸청유의 다리가 아직도 아주 많이 부어오른 모습을 보고 아주 난처해하며 푸청유의 아내, 아들과 손자 일가족을 모두 끌고 갔다. 그러나 상부에서 허락하지 않아 그들은 다시 돌아와 푸청유를 찾았다. 핍박에 못 이겨 푸청유는 어쩔 수 없이 옷을 입고 집을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이로부터 9년의 유랑생활이 시작되었다.

푸청유는 9년간 유랑생활을 하며 집이 있어도 돌아올 수 없었다. 이렇다 할지라도 사악한 중공은 푸청유 이 착한 노인을 박해하며 끝까지 추적했다. 푸청유의 아내도 역시 파룬궁수련생으로, 여러 차례 바위취안구 공안국에 납치당해 장기간 충격을 당해 당뇨병이 도져 이미 세상을 떠났다.

2011년 6월 28일, 잉커우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장지와 류린은 또 푸청유의 아들 집에 가서 교란했다. 그리고 가족에게 랴오닝성 최고법원, 랴오닝성검찰원, 랴오닝성사법국에서 하달한 ‘도주 중인 자의 자수 독촉에 관한 통고’를 보냈다. 그리고 푸청유의 행방을 캐물었다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가족을 미행했다.

2011년 7월 15일, 바위취안구 국가보안대대 지도원 후이화이치는 젊은 경찰을 거느리고 바위취안구 창장로초등학교에 가서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푸청유의 큰 손녀(당시 9세)를 찾았다. 진상을 똑똑히 모르는 부교장과 아이의 반 주임 쉬쳰은 악인을 도와 아이를 찾았다. 아이가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후이화이치가 거느리고 간 젊은 경찰은 아이를 뒤쫓았다. 아이는 놀라서 필사적으로 달려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랫동안 가슴이 두근거리며 두려움에 떨었다.

2011년 7월 15일 전후, 악인은 푸청유의 둘째 아들 집에 갔다. 당시 푸청유의 9살 난 손자가 집에 있었다. 사복경찰이 문을 부수자 아이는 놀라서 집에 있을 수 없었다. 경찰이 떠나간 뒤 밖에서 4시간 동안 있다가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온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2011년 11월 28일, 바위취안타이산 사회구역 사당 부녀 주임과 바위취안구 국가보안대대의 악경 몇 명은 한패가 되어 푸청유의 둘째 아들을 납치했다. 그리고 24시간 동안 불법구류를 시켜 푸청유의 행방을 캐물었다. 사실 바로 그날 푸청유는 판진 다와현에서 일을 보다가 다와현 공안국경찰에게 납치당했으나 그들은 가족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푸청유의 둘째 아들을 24시간 동안 불법 감금하고 자신의 부친을 숨긴 것을 승인하게 강요했다. 가족은 도처에서 실종된 푸청유를 찾았는데, 2012년 3월이 되어서야 잉커우시 바위취안구 사당 공검법 기구가 아무런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공모하여 푸청유에게 7년의 불법 판결을 내렸음을 알게 되었다.

2012년 4월 5일, 66세의 파룬궁수련생 푸청유는 따롄 난관링감옥으로 납치당했다. 2012년 5월 7일에 따롄 난관링감옥에 의해 야오자 감옥으로 이송되어 불법감금을 당했다.

파룬궁을 수련해 푸청유는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 돌아왔으나, 사악한 중공은 근본적으로 국민의 생사를 장난으로 여겨, 다시 한번 착한 노인을 매우 위험한 지경으로 밀어냈다.

문장발표: 2013년 1월 17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7/2678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