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산둥 제2노동교양소는 산둥 사람들에게 산둥 제2강제수용소로 불리는데, 산둥성 장추시 관좡향 치왕로 29호에 위치한다. 우편번호는 250217이고, 우편함은 161이다. 각 노동교양인원이 있는 대대의 편지함은 대대에 따라 각각 1611,1612,1613,1614,1616,1617,1618,16110 이다.
이상의 우편함은 각각 제1대대, 제2대대, 제3대대, 제4대대, 제6대대, 제7대대, 제8대대, 제10대대로 총 8개 대대이다. 그중 제7대대와 제8대대는 전문적으로 파룬궁(法輪功)수련생을 박해하는 대대이고, 제6대대는 마치 중계소 역할을 하는 신수대(新收隊)이다.
파룬궁수련생은 노동교양소로 납치당한 뒤, 제7, 8대대에 갇힌다. 파룬궁수련생 이외의 사람이 노동교양소에 도착하면 반드시 제6대대에 들어가야 한다. 제4대대의 사람 수는 아주 적은데 노동교양소 초소에서 당직을 서는 인원과 밥을 짓는 인원으로 다수는 집에서 돈을 사용한 사람들이다. 파룬궁수련생은 이 대대에 가두지 않는다. 다른 대대는 일반노동교양인원대(일반교양대)로서 노동을 위주로 한다. 파룬궁수련생은 처음에 한, 두 달의 세뇌과정을 거친다. 세뇌를 거부한 대법제자는 한 달 후 강제로 수예작업실(수예를 학습하는 작업실이란 의미이나, 사실은 노예식 공장임)로 보내져 노역 노동을 당한다. 유다(역주-수련을 포기하고 사부님을 배반한 자를 비유)와 의지가 강한 대법제자는 제외된다.
산둥 제2노동교양소에서 노동교양 인원은 매일 15시간에 달하는 노예노동식 수예노동을 한다. 이들은 매년 산둥 제2노동교양소를 위해 1000만 위안의 이윤을 창조했다. 때문에 산둥 제2노동교양소는 돈이 너무 많아 어디에 쓰면 좋을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 소장 하오둥구이는 2012년 전에 소장을 맡았을 때 악경들이 잔혹하게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함을 묵인하고 100만 위안을 사용해 가치를 추산하기 어려운 천연고무 체조장을 건설했다. 그는 작업을 진행하는 기간에 매일 현장에 가서 아주 오랜 시간을 구경했는데, 하오둥구이가 천연고무 체조장 공정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후에 또 40만 위안을 들여 노동교양소의 높은 담에 석회를 한벌 칠했다. 그리고 높은 담위에 도료를 뿜어 그림 몇 폭을 그리고 ‘높은 담 문화’라는 좋은 이름을 갖다 붙였다. ‘문화’라는 정도까지 발전한 이상, 그 몇 폭의 그림의 가치는 더욱 추산하기 어렵다. 그러나 많은 이윤을 창조한 노동교양인원은 겨울에 추위에 떨지 않기 위해서는 집에서 이불을 보내주어야 했다. 또한 여름에는 돗자리를 보내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여름의 무더운 밤에 잠을 이룰 수 없게 된다. 매일 끓지도 않은 물과 사법부의 표준적인 무우와 양파로 끓인 돼지사료국을 마시면서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사회주의는 좋다를 외치고 사당들의 나치스식의 교육, 감화, 구원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했다.
노동교양소의 노동교양인원은 늘 종이박스 접기, 자동차 데이터선, 텔레비전 AVI 데이터선, 청바지, 재봉, 등의자, 전자코일, 각종 상자를 포장했다. 가장 오랜 시간동안 지속한 일은 바로 산둥 쯔보 메이린 전자유한회사에서 가공한 다이오드를 곧게 비비는 일이었다. 이 일 역시 파룬궁수련생이 거의 매일 하는 일이다. 산둥 쯔보 메이린 전자유한회사에서는 늘 칭다오 하이얼 회사를 위해 다이오드를 가공해 주었는데, 매 하나의 다이오드 자료를 가져온 영수증(또 공정카드라고 부름) 윗면에는 놀랍게도 ‘하이얼 전용’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쯔보 메이린 전자유한회사에서는 매일 자동차 번호판이 ‘루 C11066’인 중형화물차가 나가는데, 먼저 장뎬에서 산둥 제1노동교양소(남), 산둥 제2여자노동교양소로 갔다.(이 두 노동교양소는 모두 쯔보 왕춘에 있음) 그런 다음 관련된 다이오드를 박스로 왕춘에서 멀지 않은 장추산 산둥 제2노동교양소 7, 8대대로 보냈다. 차를 모는 기사는 천씨로, 사람들은 천 기사님이라고 불렀다. 또 한 여성 기술인원이 동반했는데 가는 길에 어제 해낸 일감을 가져갔다.
이른바 다이오드 곧게 비비기는 바로 손잡이 전자 다이오드의 휘게 변하는 두개의 인족(引腳)을 곧게 비비는데, 전자설비가공 생산라인에 사용되었다. 다이오드를 곧게 비빌 때 다이오드 밑에는 반드시 고무를 한층 받쳐야 했고, 손에도 반드시 고무를 착용해야 했다. 다이오드가 미끌어짐을 방지하기 위해서 바닥 고무에는 반드시 시너라는 액체를 뿌려야 했는데 이는 독성이 있고 타기 쉬우며 휘발성이 높은 액체다. 많은 사람은 이런 독성 약품 때문에 온몸의 피부가 문드러지고 눈이 붉게 부어올랐다. 그러나 악경들은 이것에 습관이 되었다. 노교인원에게 일단 이런 과민증상이 나타나면 단지 환자에게 일부의 약을 바르게 하여 일을 끝냈다.
다이오드 곧게 비비기를 제외하고 이윤이 비교적 높은 것은 바로 수공으로 전자코일을 감은 것과 자동차 데이터선 제작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 일은 주로 파룬궁수련생 이외의 사람이 했는데, 체력소모가 비교적 컸고, 주로 한국으로 수출했다. 2010년에 한국과 북한 정세가 긴장된 시기에 이 항목을 한때 중지한 적이 있다.
노동교양소에서 하는 일은 모두 노골적인 노예노동으로, 수예를 학습하지도 않고 또 아무런 보수도 없다. 게다가 상응하는 보장과 존중도 받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가장 좋은 인권시대에 중국에서 중공 깡패 특색을 구비한 노동교양소의 진실한 모습이다.
문장발표 : 2013년 1월 4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4/2674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