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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산 부녀자 자오예, 노동교양소의 박해로 사망(사진) — 12월 18일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보도) 탕산 파룬궁수련생 자오예(趙燁.女)는 허베이(河北) 여자노동교양소의 잔혹한 박해로 생명이 위독해 병보석 형식으로 풀려났으나 회복되지 못한 채 2012년 12월 15일 한밤중에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는 겨우 40세였다.


탕산 파룬궁수련생 자오예(趙燁)

2012년 3월 자오예가 노동교양소로부터 병보석을 받았을 때는 이미 피골이 상접해 수척해진 모습으로 체중은 겨우 30kg에 불과했으며, 오른팔은 불구가 되어 쓰지 못한 채 정신마저 흐리멍덩했는데 40도의 고열이 계속되어 심신을 온전하게 가누지 못하는 아주 위중한 상태였다. 가족들이 즉시 조치를 취하고 몇 만 위안의 치료비를 써가며 온갖 방법의 치료를 했지만 차도를 보이지 않아 매일 링거와 투약으로 연명하다가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도 고문박해로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악한 허베이 여자노동교양소 측은 매월 자오예의 근황을 정확히 보고하라고 가족들을 핍박해 왔었다.


학대로 피골이 상접해진 자오예

그런데 자오예가 사망하기 전까지의 병 증상의 상태로 볼 때 중공(중국공산당)의 악도들이 자오예에게 독약을 주입한 것으로 인정되는 상당한 증거가나타나고 있다. 당사자인 자오예 말에 의하면 노동교양소에서 어느 날 의심스러운 밥을 먹다가 갑자기 구토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자오예는 예술설계의 전공자로 탕산 도자기 연구소에서 설계업무에 종사했는데 예술성이 인정되어 그의 작품이 예술전에서 수상을 한 적도 있는 인재이다. 그녀는 그 후 자좡(家裝)회사에서 설계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으나 30여 세의 젊은 나이에도 체질이 약하여 성질이 조급했으며 또 잔병치례가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가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온 몸의 질병이 모두 깨끗이 사려졌을 뿐만 아니라 성품도 착해지고 몸도 강건해져 가족들이 모두 기뻤다.

자오예는 중화 신전문화를 널리 알리겠다는 일념으로 션윈예술단공연 CD를 사람들에게 선사했는데 그걸 이유로 2011년 2월 25일 탕산시 훠쥐로(火炬路) 파출소 악경(사악한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동년 3월 11일 자오예는 수갑에 채워져 가오신(高新) 공안분국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류훙(劉紅)과 셰레이(謝磊) 등에 의해 카이핑(開平) 노동교양소로 끌려가 감금되어 1년 9개월의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당했다. 그 후 5월 허베이 여자노동교양소 3대대로 이송되어 계속 혹독한 고문 박해를 당했다.

자오예가 노동교양소로 납치돼 들어갈 때는 신장 160cm에 혈색이 좋고 걸음걸이도 단정한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말하는 태도도 솔직하고 품위가 있었다. 그녀에게는 중학교에 다니는 딸이 있는데 그해 중간고사 시험을 치르는 기간이라 어머니의 보살핌이 한창 필요한 시기였고, 남편은 늘 외지에서 일을 하는 중이여서 오직 집안을 보살피는 것은 자오예 뿐이었는데 그런 그녀가 중공 악도들에게 납치되는 바람에 정상적인 한 가정은 여지없이 박살나고 말았다. 자오예는 노동교양소로 끌려간 후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면서 그들의 강요에 대해 단호히 거부했으며, 또한 그곳의 부당한 강제 노역에도 협력하지 않고 거부했다.

2011년 8월 15일 노동교양소 3대대의 파룬궁수련생들이 박해를 반대하며 불법적인 강제 노역에 항의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자오예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날 모든 사람들을 노동교양소 2층 대기실에 집결시켰는데 3대대의 전 경찰들은 흉악한 귀신처럼 덮쳐들었으며, 악경들 중에는 전기봉을 들고 있기도 했다. 지휘자인 뤼야친(呂亞琴)은 집결한 사람들 모두에게 군대자세로 서있게 한 후 살기등등한 언동으로 광적으로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내가 너희들을 혼내주지 못할 것 같은가! 기한을 연장한다. 모두에게 기한을 연장하라!”고 소리쳤다. 그들은 강제 노역에 참여하지 않은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그에게 끌려 나갔다.

자오예는 첫 번째로 불려 나갔으며 그 후 악경들의 사무실로 끌려갔다. 그곳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이 먼저 전기 봉으로 충격을 가했는데 충격기는 길이가 20센티를 넘었고 직경은 대략 3센티 정도였다. 당시 8월이라 반소매 차림이었는데 옷을 걷어 올리고 가슴뼈 아래부위와 목 부위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자오예가 그녀들을 향해 당장 손을 멈추라고 권하자, 그들은 입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이로 인해 입과 치아에 상해를 입어 며칠 동안이나 고통에 시달렸다. 고문의 주동자는 뤼야친(呂亞琴)과 류쯔웨이(劉子維) 등이었는데 그녀들의 수법은 아주 악랄 했다. 그날 그렇게 고문을 자행하는 동안 얼굴이 검고 험악하게 생긴 펑커좡(馮可莊)이 옆방에서 지키고 있었고, 몇 명의 남자 경찰들은 고문실 밖에서 욕설로 가세를 하며 위세를 떨었다. 또 쇠문을 사이에 둔 옆방에서도 팍팍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대략 반시간이 정도의 고문을 당하고 나서야 자오예는 기진한 채 그 방에서 끌려나왔다.

이튿날 자오예는 하루 동안 세워두는 고문을 당했는데 셋째 오전까지도 굴복하지 않자 악경 류쯔웨이(劉子維)는 재차 뒤편 사무실로 자오예를 끌고 갔다. 화가 치민 류쯔웨이는 경찰용 전기봉으로 반시간 넘게 구타를 가했다. 자오예가 고문을 당하고 나온 후 옷을 걷어 올리고 보니 오른쪽 팔이 극심한 상해로 이미 청자색으로 되었음을 발견하고 모두들 놀랐다. 그날 오후에 또 자오예는 악경 스장샤(師江霞)에게 위협을 당했는데 이른바 행위규정이란 걸 외우라고 핍박했다. 악경 스장샤의 남편 장닝(張寧.역시 노동교양소의 경찰)도 옆에서 위세를 부리며 협박을 했는데“안 되면 끌어다가 우리 단 둘이 담화로 해치우자”고 깡패 같은 저속한 언동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자오예는 작업실 접이 의자위에 앉혀지는 고문을 당했는데 낮 하루 동안 앉혀지고 밤이면 대기실 마룻바닥에서 잠을 잤다. 그들은 사람을 붙여 감시를 했는데 다른 사람과 말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이 자오예를 격리시키는 것은 자신들이 구타하고 고문한 흔적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자오예는 이런 단독 감금 생활을 대략 3개월 동안 지속했다. 고문으로 인한 신체적 상해로 전신의 고통이 심했는데 신경의 손상까지 입어 팔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자오예의 오른팔 근육은 위축되기 시작했으며, 오른 손바닥은 왼 손바닥에 비해 더 작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그녀의 생활은 원활하지 못해 심한 불편을 초래하게 되었다. 밥을 먹거나 세수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왼 손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빨래를 할 때는 그냥 물에 흔들어 헹구는 수밖에 없는 등 오른 손은 근본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좀 힘을 쓰려고 하면 떨려서 오른 팔은 마치 몸에서 동떨어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몇 번이나 담당 책임 대장을 찾아가서 밖의 정규시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치료를 할 수 있도록 요구했으나, 그는“노동교양소 의무실의 의사가(마(馬) 씨 성. 남. 40여세. 안경착용) 다른 병원의 검진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뼈가 부러지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말했다.”라고 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자오예는 2011년 말부터 몸이 초췌해지고 수척해지면서 청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쪽 귀가 제대로 들리지 않더니 양쪽 귀 모두 제대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치료를 위해 의사와 소통하려면 큰 소리를 지르며 손짓 발짓을 동원해야 했다. 2012년 초, 몸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식사를 전혀 하지 못했으며 조금만 먹어도 설사를 했다. 기침을 하다가 뱉어 낸 가래는 검은 회색인데 행동은 느려지고 제대로 걷지를 못해 휘청거렸다. 그리고 차츰 의식이 흐리멍덩해졌다.

2012년 3월 1일, 자오예의 상황은 이미 중풍에 걸린 중증 환자의 증상이 나타났다. 노동교양소 측에서는 그제야 자오예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인식하고 영내 의무실에 입원시켜 매일 링커를 꽂고 환자용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의무실에서는 대장이 직접 지키면서 어떤 사람도 접촉하지 못하게 했는데 심지어 일반 죄수들과의 접촉마저도 차단시켰다. 이런 상태가 밖으로 새나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목숨이 경각에 이르자 할 수 없이 정규시설이 갖춰진 외래 병원으로 옮겼다. 3월 14일 자오예의 가족이 소식을 듣고 급히 허베이성 여자노동교양소로 찾아갔다. 이때는 이미 자오예의 정신은 흐리멍덩해졌고 스스로 혼자 활동도 못하는 상태에서 40도의 고열로 혼수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피골이 상접한 그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체중은 겨우 30kg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노동교양소 측에서는 그제야 병보석의 형식으로 다 죽어가는 자오예를 가족에게 떠밀어 넘겨주었다.

허베이성 여자노동교양소에서 자오예 박해에 참여하여 책임을 져야할 인물 중 일부 인적사항이 밝혀진 자들 : 3대대 대대장 왕신(王炘), 대장 뤼야친(呂亞琴), 스장샤(師江霞), 왕웨이웨이(王衛偉, 王維衛), 류쯔웨이(劉子維), 노동교양소의 감옥 의사 마(馬) 모이다. 또 칙임을 져야할 자들의 인적사항은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

허베이성 여자노동교양소(河北省女子勞教所)

주소:허베이성 리취안시 퉁즈진(스퉁로) (河北省鹿泉市銅冶鎮(石銅路)) 우편번호:050222

전화:0311-83939196류웨이전(劉維真) 0311-83939138소장 저우잔취안(周佔全)0311-83939188부소장 펑커좡(馮克莊)0311-8393-9177、0311-83939125、13933840195부소장 조리 위옌(於衍)0133-83939166、13582132059(사악함)부소장 안환어(安煥娥)0311-83939168사무실 과장 하오(郝) 모0311-83939199、83939109、83939111、83939150관리과0311-83939125 83939124 83939133 과장 유제(尤傑) 과원:장닝(張寧),장쥔(張君)교육과(610)0311-83939129、83939130、83939162과장 천루이(陳瑞)노교소 주재 검찰원0311-839391573대대:대대장0311-8393-9168、0311-83939125악독한 경찰 스장샤(師江霞)0311-83939112악독한 경찰 뤼야친(呂亞琴)13483688101(이미 2대로 파견되었음)

3대대의 감옥 경찰은 또 류야민(劉亞敏), 하오밍(郝明), 스장샤, 리저(李哲), 장징징(張晶晶), 딩자자(丁佳佳), 량첸(梁倩), 리신(李鑫), 류자(劉佳), 자오만(趙曼), 웨빙칭(翟冰清), 궁리핑(宮麗萍), 리제(李潔), 뤼제(呂傑(潔))가 있다.

문장발표: 2012년 12월 18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2/18/2666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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