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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신룽, 노동교양소 고문과 독약 박해당해 세상을 뜨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시보도) 산시성(陝西省) 맨현(勉縣) 파룬궁수련생 웨이신룽(魏欣蓉, 魏欣榮)은 2차례나 시안(西安) 여자노동교양소(이하 노교소)에 갇혀 혹독한 구타, 전기 고문, 매달기 고문 등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또 독극물주사를 맞고 독약이 투입된 밥을 먹어 폐에 만성 화농이 생겼고, 결국 2012년 12월 1일 이른 아침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49세였다.

웨이신룽은 맨현 양식국 간부로, 박해당한 뒤에 맨현 원취안진(溫泉鎮) 정부 임업소(林業站)에서 근무했다.

웨이신룽은 1997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해, 몸이 건강했고 가정도 화목했으며 직장에서 직무를 다하고 책임을 다했다. 1999년 7월 20일에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집단이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뒤, 웨이신룽은 베이징으로 가서 파룬궁(法輪功)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던 중,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2003년 7월, 또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는데, 두 차례 모두 산시성 시안여자노교소에 불법 감금돼 박해를 당했다. 학대를 당해 피골이 상접해졌다.

첫 번째 노동교양 박해 – 혹독한 구타, 전기 충격, 37일 동안 매달기 고문을 당하고 대(大)자형으로 쇠틀 침대에 채우다

산시성 여자노동교양소의 악독한 소장 장줘칭(張卓青)은 악당(惡黨)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장, 뤄(江,羅) 깡패집단을 바싹 따라가며 있는 힘을 다해 사악의 선봉에 섰다. ‘610’의 조종 하에 리전(李珍) 등 악독한 경찰 여러 명을 파견해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 등 여러 곳으로 가서 사악한 수단과 경험을 익혀, 더욱 혹독하게 파룬궁수련생의 몸에 고문, 박해를 가해 강제 전향을 시도했다.

2001년 7월, 노교소에서는 파룬궁수련생의 이불 속을 수색하여 대법 경문을 빼앗아 갔다. 파룬궁수련생이 대장에게 경문을 달라고 요구하자, 대장은 주기는커녕 파룬궁수련생들을 2층 큰 교실에 가뒀고 웨이신룽 등 파룬궁수련생을 3층 교실 안에 가뒀다. 그런 다음 몇 명의 내위대(內衛隊)의 악독한 경찰 졸개가 들어왔는데 모두 남자였다. 그들은 손에 전기몽둥이, 수갑, 경찰봉 등 형구를 들고 이 여자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해 무차별폭력을 가했다. 현장에 있던 간수들도 모두 사람을 구타했다. 이 외에 노동교양소에서는 또 황옌(黃燕), 리리샤(李麗霞), 레이샤오링(雷小玲) 등 여러 명의 바오자(역주: 24시간 밀착해서 파룬궁 수련생을 감시하는 마약사범 등 죄수)를 뽑아서 나쁜 짓을 하는데 협조하게 했고, 사람을 구타하여 여러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다쳤다. 웨이신룽은 구타로 심각한 상처를 입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노교소의 악독한 교도원은 장기간 파룬궁수련생에게 화장실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어떤 때에는 단지 얼굴을 씻는 대야 안에 소변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바오자들이 이를 발견하고는 곧 오줌으로 수련생의 그릇을 헹구게 한 다음 다시 밥을 담아 주었다. 박해 중에서 웨이신룽이 세뇌전향을 거부했던 이유로, 노교소의 악독한 교도원 리전 등은 여러 차례 경찰봉으로 그녀를 마구 두들겨 팼다. 하루는 악독한 교도원 리차이롄이 웨이신룽을 불러다가 그녀의 두 손을 창문 철근 난간 위에 매달았다. 그리고 경찰봉으로 웨이신룽의 등과 팔을 혹독하게 구타했다. 이렇게 한번 매달면 7일 동안 매달았는데, 구타로 웨이신룽은 온몸에 상처투성이였다.

酷刑图:吊铐
고문시연: 매달기 고문

웨이신룽은 늘 악독한 교도원에 의해 층계 위, 철문 위, 철 침대 위에 매달리는 고문을 당했다. 2001년 11월, 시안에는 이미 눈꽃이 날리기 시작해 날씨가 무척 추웠으나, 웨이신룽의 두 손은 연속 꼬박 37일 동안 채워졌다. 악독한 교도원은 등 뒤에서 그녀를 구타했는데 매일 이러했다. 그 후 그녀가 옷을 벗었을 때, 모두 그녀의 등, 전체 등 부위, 둔부, 허벅지 전부가 검은 자색을 띤 것을 보았는데 참혹하여 차마 볼 수가 없었다.

酷刑演示:野蛮灌食
고문시연: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주입

2002년 초, 악당의 악독한 교도관 자오샤오양(趙曉陽)이 새로 부임해 오자, 또 한 차례 박해가 시작되었다. 웨이신룽은 전향을 저지하기 위해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악독한 교도관들은 여러 차례 웨이신룽에게 야만적으로 호스를 꽂고 음식물을 강제 주입했는데 기관, 식도, 위장에 호스가 꽂혀 선혈이 줄줄 흘렀고 여러 곳에 손상을 입었다. 어느 한번은 내위대의 대장이 그녀를 땅에 넘어뜨려, 가죽 구두로 그녀의 얼굴 절반을 밟고는 호스를 입안에 마구 꽂았다. 음식물을 주입하지 못하자 자오샤오 양은 다른 사람에게 명령을 내려 웨이신룽의 손발을 나눠서 대자 형이 되게 하여 쇠틀 침대 위에 매달았다. 등에는 또 나무막대 하나를 가로로 메게 해 팔을 고정시켰다. 그런 다음 음식물 주입과 링거를 주사했는데, 그 정경은 극히 잔인했다.

2002년 4월 3일, 노교소에서는 1, 2, 3대대에 갇힌 약 백여 명의 대법수련생을 함께 집중해서 사악한 강제 ‘전향’을 시도했다. 따로따로 방안에서 감시당하며 기본적인 인신자유를 제한당했다. 화장실로 가서 대소변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출석에 협조하지 않고 사람 수를 보고하지 않으며, 도착보고를 하지 않고, 대법을 비난한 선전 보기를 원하지 않고 듣기를 원하지 않는 대법수련생에 대하여 일률적으로 수면을 박탈한 채 밤새 ‘벽을 마주하고’ 세워두었다. 동시에 다른 노동교양 중인 자를 시켜 욕설을 퍼붓고, 마구 두들겨 패게 하는 것으로 박해를 감행했다. 웨이신룽, 쉬밍샤(徐明霞), 류구이칭(劉貴清), 쑨롄청(孫運城), 리수롄(李淑蓮), 리샤오룽(李小榮), 위친전(於勤珍) 등 8명의 파룬궁수련생은 사악한 ‘전향’을 저지했다가 박해당해 뒤뜰의 철 틀 위, 철문 위, 층계 위, 사무실의 철 침대 위에 꼬박 며칠 동안 매달기 고문을 당했다. 동시에 비적 교도원은 다른 노동교양 중인 사악한 자를 교사해 개·돼지만도 못한 짓을 했는데, 다른 파룬궁수련생의 그릇에 오줌을 쏟아 더럽혔다. 비적 교도원들은 다른 노동교양 악인과 같이 인간성을 다 잃고 8명의 파룬궁수련생의 두 손을 채워서, 몸 위를 가로타고 입안에 더러운 걸레를 밀어 넣어 박해를 감행했으며 또 강제로 음식물주입을 했다. 그 후 또 잔인무도하게 그녀들을 철 틀 위에 매달고는 화장실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웨이신룽은 꼬박 8일 동안 괴로운 박해를 당했고, 쉬밍샤는 박해로 꼬박 9일 동안 고통을 당했다.

웨이신룽은 아무리 많은 박해를 당했어도 ‘진선인(真善忍)’의 믿음에 대해 포기하지 않았다. 웨이신룽은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노교 기한을 연장하는 박해를 보름 동안 당한 뒤, 마침내 온몸에 상처인 몸을 이끌고 사악한 노교소를 떠났다.

두 번째 노동교양 – 밥 안에 독약 투입, 장기간 수면 박탈 고문, 정신병원에서 독극물 주사를 당하다

2003년 7월, 맨현 ‘610’,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의 악독한 경찰 후쥔젠(胡軍建), 허중룽(何中榮), 장바오성(蔣保生), 가오샤오보(高小波) 등은 부문의 서기 우중인(吳宗銀), 사무실 주임 장빈(張斌)의 협력 하에 출근하던 웨이신룽을 강제로 납치했다. 그리고 2년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내려 밤새 산시성 여자 노동교양소에 가둬 거듭 박해를 가했다.

노교소에서는 ‘610’의 의도에 따라, 웨이신룽을 독방에 가두고 류야(劉雅), 리화(李華), 주훙메이(朱紅梅) 등 여러 명의 바오자를 이용해 이성을 상실한 채 미쳐 날뛰면서 웨이신룽을 학대했다. 당시 악독한 교도 대장 왕리(王力)는 업무 업적을 위해, 사악하고 잔인하게 강제로 웨이신룽을 핍박해 장기간 동안 병마용(兵馬俑) 자세로 쭈그려 앉혔는데, 약간이라도 흐트러지면 이들 바오자들은 곧 벌떼처럼 밀려와서 욕설을 퍼붓고 곧 구타했다.

악독한 교도 대장 왕리는 젊은 교도 대장 장 모에게 지시해, 웨이신룽의 식사에 독약을 투입하게 했다가 웨이신룽에게 발각되었다. 이후부터 웨이신룽은 단지 찐빵과 밥만 먹고 반찬과 국물을 먹지 않았다. 악독한 경찰은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성질을 내면서 바오자에게 명령을 내려 그에게 국물을 주입하게 했다. 이 인간쓰레기들은 무슨 나쁜 일이든 모두 해낼 수 있었다. 그들은 웨이신룽의 머리카락을 잡고 강제로 주입했다. 머리카락은 잡혀서 한 줌씩 빠졌다. 입안에 주입하지 못하면 곧바로 옷깃 안에 쏟아 넣었는데, 주입을 당해 온몸과 땅바닥마저 국물이었다. 그들은 곧 웨이신룽의 옷으로 땅바닥을 닦았으며, 닦다가 어질러지면 곧 던져버렸다. 겨울에 매우 추웠으나 웨이신룽은 맨 마지막에 단지 털옷 한 벌, 솜옷 한 벌만 입었다. 그녀는 “왜냐하면 국물을 털옷 안에 주입하면 곧 흘러내려 가게 되지만, 몸에 붙으면 몸이 차갑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2004년 2월 12일, 노교소에서는 전향하지 않은 파룬궁수련생을 전부 남쪽 건물 2층 단칸방으로 이송해 봉쇄 관리하며 강제로 전향을 시도했다. 당시 사법부에서는 이른바 새 규정을 공포해 전 노교소의 노교 인원에게 모두 새롭게 모두 베껴 쓰게 하고 외우도록 요구했다. 이들 파룬궁수련생들은 쓰지 않았고 더욱이 읽지도 않았으며 또 사람 숫자도 보고하지 않았다. 악독한 교도원들은 화가 나서 때를 가리지 않고 악독하게 욕설을 퍼붓고, 손이 가는 대로 구타했다. 악독한 교도원 펑징(馮靜)이 하루는 큰소리로 “지금부터 시작해 노교소의 물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노교소의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노교소의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당신들은 수련생이 아닌가! 흥, 능력이 있으면 또 노교소의 땅에 서 있지 말라.”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날 밤에 흡연자를 지시해 파룬궁수련생의 이불을 전부 복도 안으로 가져가게 하고, 침대 널판지마저 들어 올리게 하고는 낮이나 밤이나 벽을 마주해 세워두었다. 10여 일이 지났다. 악독한 교도원들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해도 파룬궁수련생을 동요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악독한 교도원은 또 웨이신룽을 일 개월 동안 아래층 영창실에 가뒀다.

2004년 3월 말, 노교소에서는 그녀의 남편에게 그녀를 만나러 가라고 통지했는데, 조건은 노교소에 협력해 웨이신룽을 전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 남편은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으며, 감히 알아보지 못했다. 오로지 그녀의 몸이 수척하고 얼굴이 초췌하며, 털옷이 끈끈하게 한데 엉켜 매우 굳게 되었고 솜옷도 단단한 덩어리로 응결되었으며 온몸이 꾀죄죄해진 것만 보였다. 그녀에게 상황을 물어서야 집에서 보낸 옷과 이불은 전부 땅바닥을 닦아서 던져버려졌음을 알게 되었다. 일시적으로 자제하지 못하고, 괴로워서 실성, 통곡했다. 황급히 거리로 가서 속내의와 속바지, 솜 신을 사고 많은 식품과 과일을 사왔으나 악독한 교도원 펑(馮)모는 바오자에게 나눠주어 먹였다. 노교소에서는 전향시키려는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자, 이로부터 가족에게 다시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동시에 악독한 교도원 서기 자오샤오 양은 또 여러 차례 전 노교소의 대회에서 공개적으로 웨이신룽이 전향하지 않으면 그녀 남편을 직장에서 해고할 것이고 그녀가 거주하는 방을 몰수할 것이라고 위협하며 말했다.

2004년 3월, 웨이신룽과 다른 몇 명의 확고한 파룬궁수련생은 남쪽 건물 2층으로 이사해 단독으로 격리되어 강제 전향을 당했다. 교도원 펑징은 극히 사악했다. 그녀가 출근하기만 하면 곧 욕설을 퍼부었고, 일부러 파룬궁수련생을 모독하고 헐뜯었다. 설을 쇤 후, 사법부에서는 새로운 ‘노교소의 규정과 규율’을 반포했다. 파룬궁수련생이 이것을 베끼는 것을 거부하면 노교소는 곧 박해를 가중시켰다. 악독한 교도원 펑징은 외출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화장실로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고 밤에 또 잠자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저녁이 되면, 그녀는 곧 바오자에게 명령을 내려 침대 판자, 이불을 가져가게 하고는 세워두는 고문을 가했다. 2004년 7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웨이신룽은 침대에 누워 잠잔 적이 한 번도 없다.

웨이신룽을 전향시키지 못했기에, 악독한 교도원 장 모는 웨이신룽에게 강제로 수갑을 채워 아래층의 영창실로 압송해 가서 감금했다. 노교소에서는 2명의 교도원과 악독한 교도대장 장 모를 파견해 웨이신룽을 우궁현(武功縣) 정신병원으로 끌어다가 강제로 독극물을 주사했다. 당시 정신병원의 의사는 웨이신룽에게 “당신은 저를 원망하지 마세요. 그녀들이 저를 시켜 당신에게 주사하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酷刑演示:打毒针(注射不明药物)
고문 시연: 독극물을 주사하다

노교소로 끌려온 뒤, 웨이신룽은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해 악독한 교도원에게 독방 땅바닥의 침대 널빤지 위로 들려갔다. 연속 며칠 동안 웨이신룽은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소장 장줘칭은 웨이신룽이 죽을까 두려워 끊임없이 가서 살펴보았다. 입으로는 또 지저분한 말을 했다. “일도 하지 않고 이곳에서 죽은 체하고 있군!”

이로부터 웨이신룽은 생리가 중단되었고 아랫배가 부풀어 올라 밥을 먹지 못했다. 2005년 5월 13일, 남쪽 건물에 감금당했던 9명의 파룬궁수련생은 두 차례나 단체로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사부님께서 생신을 즐겁게 보내시길 축원드립니다’ 등 구호를 외쳤다가 욕설을 당했고 ‘속박 옷’을 입는 고문 박해를 당했다. 6월 중순, 웨이신룽 등 파룬궁수련생은 단체로 단식하며 박해를 반대했다. 25일이 지난 뒤 오전 9시, 갑자기 굉장한 소리가 울리더니 노교소의 벽 일부분이 무너졌다. 악인들은 온통 놀라서 당황했다. 며칠 후에 곧 이 사람들을 각 대대에 분산해 보냈다.

웨이신룽의 아랫배는 쭈그려 앉을 수 없을 정도로 부어올랐으나, 지도원 리전은 웨이신룽에게 꾀병을 부리며 일하지 않는다고 욕을 했다. 웨이신룽은 “나는 배가 부어올라 허리를 굽힐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리전은 손을 내밀어 웨이신룽의 배 위를 잠깐 만져 눌러보더니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고는 가버렸다. 지도원 리전은 웨이신룽에게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게 했는데, 흉강 안에서 한차례는 600mL 가량의 적액(積液)을 뽑아 검사했는데, 진단결과 폐결핵이었다. 병원의 의사는 “당신들이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 그녀를 효녀로 되게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노교소에서는 이제야 가족에게 병보석 절차를 밟으라고 통지했다. 2005년 7월 하순, 웨이신룽은 석방돼 집으로 돌아갔다. 이때 웨이신룽은 이미 학대로 피골이 상접해졌다. 웨이신룽을 본 친척과 친구들은 대성통곡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웨이신룽의 몸은 매우 허약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걷질 못했으며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짬이 나면 그녀를 업어서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그녀를 안아서 정원 안에서 햇볕을 쬐게 했다. 가족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웨이신룽의 몸은 차츰 좀 회복되었다. 웨이신룽의 요구에 직장의 국장은 그녀의 출근을 허락했다. 당시 직장 악당 서기 우중인은 사무실에서 큰소리로 “노교 기한이 만기되지 않았기에, 월급을 지급할 수 없고, 출근도 허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동시에 세 사람을 배치해 감시하고 미행하게 했는데, 줄곧 양식국이 해체되어서야 웨이신룽은 원취안진 진정부 임업소에 배치받아 근무하게 되었다. 우중인은 장, 뤄 집단을 바싹 뒤따라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는데, 수단이 악랄하고 비열하여 이미 악보를 받아 암으로 목숨을 잃었다.

2011년 겨울부터 웨이신룽은 기침하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동교양소에서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해 식도와 목구멍에 손상을 입어 밥을 먹고 물을 마시도 못했다. 음식물을 넘기기만 하면 기관과 비강으로 넘어가 장기간 먹지 못했다. 2012년 11월에 병세가 심각해져 집으로 돌아와서 휴식했다. 11월 말에 몸이 극도로 허약해지고 혼미상태가 나타나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폐가 전부 화농되었다는 진단을 내렸다. 응급처치에도 효과를 보지 못한 채, 2012년 12월 1일 이른 아침에 불행하고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2년 12월 9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2/9/2663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