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대륙보도) 올해 69세로 원래 자무쓰(佳木斯)대학 전자공정학과 강사인 황민(黃敏)은 파룬궁을 수련하고 텔레비전 스팟 뉴스를 이용해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2003년에 중공(중국공산당)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산둥 웨이하이(威海) 구치소에서 20년 무고판결을 당했다. 지금 황민은 여전히 산둥성 감옥 11감구역에서 박해당하고 있다. 감옥에서는 지나간 8년 동안, 무리하게도 가족과의 면회를 거부했다.
파룬궁을 수련해 건강을 회복하다
대법수련을 하기 전, 황민은 담낭염, 흉막염, 간염, 중증 신경쇠약 등 각종 질병을 앓았다. 더욱 참기 어려운 것은 ‘3차 신경통’이었다. 늘 강의할 때면 재발했는데, 아픔으로 땀투성이가 되었고, 벽에 머리를 부딪쳐 학생들이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 한 적이 있었다. 이 일로 강단에서 고별하고 집에서 병으로 휴양했다. 매일 너무도 슬픈 나머지 죽고 싶은 생각뿐인 나날이었다. 중약, 신약, 민간 요법상의 약방 전부가 효과가 없었다. 마지막에는 베이징에서 서독(西德)에서 수입한 ‘카마시핑(卡馬西平)’을 샀다. 한 알에 10위안으로 하루에 3알을 먹었는데, 그것은 그래도 괜찮은 셈이었다. 그때는 월급이 아주 적어서 집에 약간밖에 없는 돈을 모두 그의 약비용으로 썼다. 그는 8년 동안 출근하지 않았다.
95년 5월, 우연한 기회에 황민은 다행히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얻었다. 연마해서 3개월 만에 약을 전부 중지했고, 몸은 차츰 건강을 회복했다. 가족은 ‘알약은 왜 적어지지 않을까? 그는 좋아졌다. 그는 정말 좋아졌다.’며 놀랍고도 이상하게 여겼다. 모두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가족에게 “내가 좋아졌어!”라고 알려주었고, 친구와 친척에게, 학생들에게 “나는 파룬궁을 연마해 좋아졌습니다!”고 알려주었다. 파룬따파의 ‘진선인(眞善忍)’은 그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8년간 강단을 고별했다가 또다시 나타나서,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곧 ‘따파하오(大法好-대법이 좋습니다)’를 말했다. 그의 전 가족도 모두 연마했고, 일부 학생과 동료마저 따라서 연마했다. 매일 이른 아침이면 녹음기를 들고 연공장으로 갔으며, 모두를 도와서 비디오와 책 등을 구매해 주었다.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박해당하다
마침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을 때, 중공(중국공산당) 두목 장(江)모 및 그를 바싹 따르던 자들은 오랫동안 모의했던 박해를 발동했다. 장 씨 정치깡패집단은 선전도구를 모두 동원해 파룬궁을 비난했다. 황민은 대학 내의 정치 졸개에게 박해당한 첫 번째 인물이었다. 중공 요원은 세뇌반을 조직해, 강제로 그를 전향시키고, 위협과 이익을 꾀하는 각종 수단을 사용했으나 전부 효과가 없었다. 세뇌반에서 그는 중공 관원 앞에서 “파룬따파는 잘못이 없습니다. 나는 이런 것들은 듣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고, 그는 정정당당하게 걸어 나올 수 있었다.
1999년 황민은 공직에서 해고당했고 월급도 중단되었다. 그는 여러 차례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평가를 요구했고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99년 7월 23일에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들어갔으며, 99년 12월에 거듭 베이징으로 갔다가, 자무쓰 구치소에 납치당했다 7개월 동안 감금당했는데, 학대로 머리카락, 수염, 눈썹마저 희어졌다. 마지막에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수척해져, 온몸을 떨면서 바로 서지도 못했다. 가족이 강력하게 석방을 요구하고, 1,000 위안의 급식비(옥수수 떡 비용)를 바쳐서야 감옥에서 풀려났다.
2000년 6월, 황민은 다시 베이징으로 들어갔다가 납치돼 구치소로 보내졌다. 자무쓰대학 책임자 및 610 보위처는 천방백계로 자료를 모았다. 전자공정학과 서기 린쉐강(林學港)은 적극적으로 보위처, 610과 공안국에 협조해 별의별 궁리를 다 해서 황민에게 1년의 노동교양을 시켰다.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한 좋은 사람이 무거운 수갑과 족쇄를 차고 자무쓰 노동교양소에 갇혔다.
노동교양소에서의 조우
자무쓰 노동교양소안에서, 악독한 경찰들은 강제로 황민을 전향시키기 위해 독방에 가두기, 격리시키기, 작은 걸상에 앉히기 등 각종 수단으로 집중훈련대에서 5개월 동안이나 괴롭히며 그에게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그러나 그는 전향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확고해졌다.
구치소에서 황민은 옴에 걸려 온몸에 모두 검고 커다란 고름집이 생겼는데, 매일 끊임없이 고름과 피를 흘렸다. 얼굴을 제외하고 전신에 한 곳이라도 건강한 피부가 없었다. 가장 심각했을 때, 옷마저 입을 수 없게 되었으나, 노교소에서는 석방해주지 않고 차례로 번갈아가며 박해했다. 그는 이불 위에 비닐 천을 펴고, 그 위에 화장지를 펴고 누웠다. 매일 화장지(작게 감은 것이 아님) 한 보따리씩을 사용했다. 고름이 끊임없이 흐르고 또 흘렀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지만, 악인은 여전히 그를 풀어주지 않고 그에게 회보를 쓰도록 했다. 그는 단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만 썼을 뿐이다. 그는 어느 방안으로 가든지 모두 대법을 실증했고 수련생에게 대법은 잘못이 없음을 알려주었다. 악독한 경찰도 그가 두려워, 끊임없이 그의 방을 바꿨다. 그가 가지 않으면 노개범(勞改犯) 4명이, 이불 깃 하나씩을 잡아당겨 그를 들어 올려서까지 방을 얼마나 바꾸었는지 모른다. 6개월 후 피부의 고름은 완쾌되었다.
2001년 8월, 불법 노동교양이 이미 만료되었으나 노교소에서는 황민에게 기한을 연장해 감금하려 했다. 그는 단식으로 박해에 반대했다. 생활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음에 이르러서야 병보석 형식으로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노동교양소를 벗어난 뒤의 불행한 처지
노동교양소에서 나온 뒤, 황민은 생활 방도가 없었다. 악인이 그의 경제력을 잃게 해, 매일 가서 바로잡으려 했으나 그를 상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황민은 ‘나는 대학 교사이다. 내가 일생 동안 노동한 저축을 중공에게 빼앗겼는데,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2001년 10월이었다. 그는 간단한 행장을 들고 대학 보위처로 가서, 그들과 도리를 따졌으나 관할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진상에 똑똑하지 않은 경찰이 그를 밀어냈을 뿐이다. 게다가 “당신은 이미 해고당했습니다. 대학, 이곳에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보위처에서는 문을 열고, 황민을 강제로 대문 밖에 밀어냈다. 황민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절대 사악이 이렇게 박해하도록 허락할 수 없다. 대학 관할범위에서 나를 있지 못하게 하면, 나는 큰길로 가겠다.” 큰길의 인도 옆 작은 숲 아래에서, 간단한 행장을 펴고 잠을 잤다. 11월의 동북의 날씨는 이미 아주 추웠다. 그는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그곳에서 하루를 지냈다,
이른 아침,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이 연이서 이곳을 지났다. 한 사람이 그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큰 소리로 “당신은 죽은 사람인지 아니면 산 사람인지요?”라고 묻자, 황민은 큰 소리로 “저는 산 사람입니다! 저는 대학교수로,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인데, 그들에게 해고당했으며 저를 노동교양을 시켰습니다. 제가 돌아왔으나, 월급을 지급해 주지 않습니다. 저는 먹을 곳이 없고 있을 곳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은 즉시 대학 파출소[신화(新華)파출소]에 신고했다. 몇 명의 경찰이 오더니, 그를 집안으로 들고 들어갔다. 그의 발은 한때 동상 증상이 나타났다. 파출소에서는 그의 집에 통지를 내렸다. 그의 아내는 황민을 보더니, 이유를 설명하고, 곧 파출소에 “당신들은 관할할 겁니까? 그에게 입고 먹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들은 학교 측과 연계를 한 후에, 먼저 가족에게 데려가라며 그들이 꼭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며칠 되지 않아 파출소에서 전화를 걸어왔는데, 매달 5백 위안의 생활비를 준다며 돈을 가져가라고 말했다.
텔레비전 스팟방송 진상에 참여하다
노동교양소에서 나와서 황민은 몸이 막 건강을 회복하자, 즉시 진상 알리기에 뛰어들었다. 2002년, 그는 텔레비전 스팟방송을 했던 성과를 보았다. 몇 명의 어린 수련생이 여러 차례 그를 찾아 기술상의 일을 물었다. 그도 류청쥔(劉成軍)이 스팟방송 진상을 한 이유로 박해를 당해 사망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생각했다.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정당한 권리를 허락하지 않음을 묵인할 수 없다고. 그래서 곧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나아가 텔레비전 스팟방송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는 길로 들어섰다. 2002년 그는 몇 명의 동수와 함께 현지 스팟방송을 연구해 성공했다. 공산당은 국가보안, 공안을 전부 출동시켜 그들을 붙잡았다. 그는 유랑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60세 노인에게 있어서, 얼마나 간고한 어려움이었겠는가.
2002년 대략 4월 때, 중공은 전국 각지에서 그들을 붙잡았다. 2003년 악당(惡黨)은 지명수배령을 내려 황민을 붙잡았다. 한 파룬궁수련생을 붙잡기 위해 중공은 5만 위안의 상을 걸었고, 지방에는 또 만 위안의 장려금을 주었는데, 중공 사정(邪政)이 파룬궁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중공에게 납치돼, 20년의 무고판결을 선고받다
2003년 2월 18일, 황민의 가족은 황민이 납치당한 소식을 알았고, 이는 가족에겐 극심한 고통이었다. 황민의 아내는 황민을 면회하러 산둥 웨이하이(威海) 구치소로 급히 갔다. 소장 샤오진안(肖金安)은 각종 구실로 거부했다. 그의 아내는 매일 웨이하이 구치소로 갔다. 그때 황민은 단식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웨이하이 가오커지(高科技) 공안국에서 심리하고, 훼이하이 환추이(環翠)법정에서 판결했던 이유로, 그의 아내는 웨이하이시 커지 공안국, 610, 환추이 법원으로 매일 가서 소식을 알아보고 석방을 요구했다. 황민이 소식을 전해왔는데, 천 5백 위안의 돈은 어디로 빼냈는지 모르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공안국에서는 610을 찾으라고 했고, 610은 사건에 따라 법원에 이르렀다고 알려주었다. 가족은 환추이 법원으로 와서 재판장 장샤오양(張曉陽)과 저우다카이(周大凱)를 찾아 돈을 달라고 했다. 동시에 그녀들에게 황민의 가족이 이미 도착했기에, 재판하고 심판함에 반드시 가족에게 통지해야 함을 알려주었다. 게다가 그들에게 전화번호를 남겼다. 가족은 거의 매일 환추이 법원으로 갔다. 장샤오양은 다음 주 월요일에 개정을 하는데, 극장에서 한다고 알려주었다. 월요일까지 기다린 가족은 극장으로 다그쳐 갔으나 동정이 없었고, 그들이 근본적으로 공개적 심리를 진행한 것이 아니라, 지난 주 금요일에 바로 비밀리에 구치소에서 심판했으며 유기형 20년에 언도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황민 등 파룬궁수련생이 불복하여 또 한 차례 고소했다. 보름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장샤오양과 저우다카이는 또 한 차례 거짓말과 기만하는 등 수단을 채취해, 구치소에서 비밀리에 판결을 선고했다. 황민 등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유기형 20년에 언도되었다.
천 5백 위안을 환추이 법원에서 빼냈기 때문에 가족은 거의 매일 가서 요구했다. 장샤오양은 회피하며 면회해 주지 않았으며, 또 기만하고 거짓말을 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돌려주지 않았다. 그 후 장샤오양은 숨어버리고, 나이가 많고 수척한 노인에게 가족을 면회하도록 했는데, 거짓말을 꾸며서 “저우다카이가 출국했습니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당신이 다시 와서 요구하십시오!”고 말했다. 저우다카이는 사실 출국하지 않았다.
산둥성 감옥에서 박해를 당하다
황민이 2003년 8월에 산둥성 지난(濟南)감옥으로 납치당했기 때문에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지난으로 다그쳐 가는 수밖에 없었다. 웨이하이 환추이 법원의 천 5백 위안은 지금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
2003년 9월 1일, 가족은 산둥성 감옥으로 와서 면회를 요구했다. 대대장 천옌(陳岩)은 “지금은 안 됩니다. 당신은 먼저 돌아가서 통지를 기다리시오.”라고 말했다. 가족은 “그건 안 됩니다. 내가 이렇게 왔습니다. 5개 성을 지나서 왔는데, 사람을 보지 못하면 어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가족이 매일 감옥으로 가서야 3일 후, 마침내 남편을 만났다.
황민은 줄곧 11감구역에 있었다. 황민은 단호하게 전향하지 않고, 늘 단식했다. 바오자(包夾)에게 감시당하고, 쭈그려 앉기 고문, 격리 등 박해를 당했다. 매일 감옥에서 사상회보를 쓰도록 했으나, 그는 전부 거부했다. 그는 이미 엄관 감구역에 있은 지 9년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대법을 굳게 믿는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가족이 면회하지 못해, 8년 동안 부부가 서로 만나지 못하다
2004년 정월 8일, 황민의 아내와 아들은 산둥성 감옥으로 면회하러 왔다. 두 모자는 아침 일찍이 감옥 면회실로 갔다. 등기실에서 10시에 면회한다고 알려주었기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10시 반까지 기다려도 동정이 없었다. 11시가 넘어도 여전히 동정이 없자, 마음이 무척 급한 두 모자는 어떻게 할지 몰랐다. 왜냐하면 면회시간은 단지 30분뿐이고, 11시 반이면 근무 인원이 곧 퇴근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11시 15분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황민을 면회한 셈이다. 부자는 4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오래 헤어져 있다가 다시 만났는데, 아들이 부친에게 몇 마디 위안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몇 마디도 하기 전에, 이를테면 5분쯤이 되어, 그 악독한 경찰 정(鄭) 씨는 높은 소리로 “그들이 규칙을 모른다!”고 외쳤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즉시 4명의 형사들이 오더니, 60여 세인 황민을 거꾸로 메고 끌고 갔는데 신조차 벗겨졌다. 악독한 경찰 정씨는 또 거짓말을 꾸며서, 황민의 아들이 그의 옷과 단추마저 잡아당겨 떨어뜨렸다고 했다. 그야말로 황당무계했다. 가족은 친인을 면회하러 온 것인데, 어찌 이런 무리한 일을 하겠는가?! 분명히 그 사악한 경찰이 미리 모의해 놓은 것이다. 아직 외치기도 전에 4명의 죄수가 올 수 있는가? 게다가 10시에 면회시킨다고 말하고는, 11시 15분에야 면회시켰는데, 중공의 깡패 짓과 기만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가족이 폭로문장을 써서 감옥의 책임자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비록 오후에 또 한 번 면회를 하라고 불렀으나, 이후로부터 다시는 황민의 아내가 면회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8년이 넘는데, 노부부는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했다. 누군들 부모형제가 없겠는가? 누군들 아내와 아들딸이 없겠는가? 단지 중공 사당만이 이런 사람으로서의 도리 없는 일을 해낼 수 있을 뿐이다. 만약 다시 남편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곧 소송을 제기하려 한다.
지난 얼마 동안의 시일에 황민은 이미 학대로 배뇨하기가 어렵게 되어, 산둥 경관병원에 입원했다. 감옥 측은 황민의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았다. 최근 혈압이 또 높아지기 시작했다. 산둥성 감옥은 황민을 반드시 석방해야 하며 더는 박해를 허락하지 않는다.
가족이 연좌를 당하다
2002년에 황민을 붙잡기 시작해서부터, 그의 집은 편안한 날이 없었다. 매일 24시간 동안 경찰이 보초를 서며 잠복감시를 했다. 그때는 감히 그의 집으로 가는 사람이 없었다. 경찰은 돌아가며 그의 집으로 가서 가택수색을 했으며,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늘 밤중에 그의 아이와 아내를 공안국으로 끌어다가 심문했다. 아이든지 어른이든지 가리지 않고 전부 미행당했고 전화는 몇 해 동안이나 감청당했다. 아이는 저녁에 영어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위층 문 입구에 경찰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연속 외쳤다.
그의 이웃집의 한 사람은 심장병 환자였는데, 병세가 아주 심각했다. 경찰이 그의 집 문을 두드렸기 때문에 여러 번이나 놀라 병이 재발했다. 그 때문에 경찰이 그의 집 문을 두드리기만 하면, 가족은 이웃이 놀랄까 두려워 급히 문을 열었다. 그의 친척 일가도 빠짐없이 연좌 당했다. 그의 아내의 남동생과 여동생도 여러 차례 교란당했으며, 며느리 집마저 빠뜨리지 않았다. 황민의 고향 허난(河南)의 모든 친척도 역시 한 집도 빠지지 않았다. 형과 숙모마저 심각한 교란을 당했고, 역시 전화를 전부 감청당했다. 가족을 연좌하는 이런 사악한 정치는 그의 전 가족에게 극심한 압력과 정신적 상처를 가져다주었다. 몇 해 동안 친척은 서로 알고 지내지 못했으며 감히 내왕하지 못했다.
그의 아내의 노 이모는 아들도, 딸도 없고, 70여 세이지만 역시 늘 경찰에게 교란당했다. 2003년 섣달 그믐날 밤에 보위(保衛)파출소의 한 무리 악독한 경찰에게 가택수색을 당했다. 노부인의 모든 대법 서적을 가져가 버려, 71세인 고독한 노인은 이런 놀라움과 충격에 대량의 각혈을 했다. 그리고 급격히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었는데, 결국 2003년 6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2년 11월 29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29/2659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