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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춘샹이 랴오닝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한 과정(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 보도) 랴오닝성(遼寧省) 단둥시(丹東市)의 파룬궁수련생 왕춘샹(王春香, 여, 1958년생)은 2008년에 중공(중국공산당)에 의해 8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랴오닝성 여자감옥에 감금되었으며, 2011년 9월 25일,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王春香遗照
생전의 왕춘샹(王春香) 사진

왕춘샹은 아주 온화한 사람으로, 살결이 희고 느긋한 성격에 말하는 것도 작고 느렸다. 누구를 보아도 웃었으며, 다른 사람을 즐겨 도왔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적극 도와주었다.

2006년 10월 31일, 단둥 공안국 1처의 경찰이 왕춘샹을 납치했다. 왕춘샹은 구치소에 있는 동안 박해로 혈압이 줄곧 매우 높아 단둥시 공안병원, 단둥시 제1병원으로 끌려가서 검사받은 결과 혈압이 모두 200을 넘었으며, 심장병, 뇌혈관 경화 증상도 나타났다.

구치소에서는 다베이(大北)감옥에서 왕춘샹의 수감을 거부하자 고의로 왕춘샹의 병 기록을 분실했다. 그리고 2007년 9월 8일, 두 번째로 왕춘샹을 다베이감옥으로 납치했다. 당시 왕춘샹은 건강검진을 구실로 내세운 악독한 경찰 왕징(王晶)의 말에 속아 선양(瀋陽)의 랴오닝성 여자감옥으로 갔다.

왕춘샹은 랴오닝성 여자감옥 1감 구역에 갇혔다. 그곳에서 그녀는 밤새 세워두는 고문을 받았으며 죄수에게 구타당했다. 2009년 말, 1감 구역의 소대장을 인나(尹娜)로 바꿨다. 그는 나이가 젊지만, 마음이 독하고 하는 짓이 악랄했다. 왕춘샹은 단식으로 노동박해에 항의했다가 나흘 동안 세워두는 고문을 받았다. 그 후 병원에 보내져 입원했다가 설을 쇤 뒤에야 돌아왔다. 인나는 왕춘샹이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수를 시켜 그녀를 식당으로 끌고 가서 뺨을 때렸다. 왕춘샹은 당시 혈압이 매우 높았기에 오래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 왕춘샹이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인나는 또 트집을 잡아 그녀에게 욕했으며, 그녀는 혈압이 높아져 또 죄수에게 업혀 병원으로 돌아갔다. 당시의 교육과장은 정추쥐(鄭秋菊)이며 감구역장은 왕젠(王鍵)이었다.

왕춘샹은 병원에서 돌아온 후 곧 정추쥐에게 의자를 치워버린 채 세워두는 고문을 받았다. 어느 날 식사 시간에 식당 밖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왕춘샹이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든 채 넘어졌던 것이다. 본래 그녀가 혈압이 200을 넘은 데다가 연일 체벌을 받아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식당으로 가는 길에 기절하여 쓰러졌던 것이며, 또 병원으로 실려 갔다.

왕춘샹은 2011년 1월, 1감 구역 3소대에서 9감 구역으로 보내졌으며, 8개월 후 박해로 사망하였다.

9감구역 감구역장 우리(武力)는 매우 위선적이어서 면전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달랐다. 왕춘샹이 9감 구역에 도착한 지 며칠 되지 않아, 한 집행요원이 “오늘부터, 왕춘샹에게 학습을 시킨다고 했습니다. 우 과장이 때릴 것은 때리고 욕할 것은 욕하라고 했습니다.”라고 했다. 왕춘샹은 저녁에 창고로 불려 가서 세워두는 고문을 받았다. 왕춘샹이 창고로 학습 받으러 가면 창고에 있던 사람은 모두 쫓겨나 다른 방에 가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3월 9일 저녁 7, 8시경, 왕춘샹은 창고에서 학습 받는 것을 거부했다. 당시 집행요원 가오화이잉(高懷穎)은 죄수 쑨닝(孫寧, 20여 세, 신민(新民) 출신)과 바오자(包夾) 양양[楊洋, 20여 세, 링위안(淩源) 출신), 장잉(張瑩, 20여 세, 카이위안(開原) 출신) 등을 교사해 강제로 왕춘샹을 학습 받으러 가게 했다. 쑨닝은 왕춘샹을 넘어뜨렸다가 잡아당겨 일으켜 맞은편의 창고로 끌고 갔다. 왕춘샹은 “당신들, 왜 이래요?”라며 소리쳤으며, 바오자 양양과 장잉에게 혹독하게 구타당했다. 왕춘샹은 과장 우리에게 이 일을 말했으나, 아무 결과가 없었다. 바로 우리가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2011년 3월 15일 저녁 7, 8시경, 왕춘샹은 사감실(監室) 맞은편 창고로 끌려가 또 혹독하게 구타당했다. 그 후, 집행요원 가오화이잉은 창고 주임에게 “당신들 아무도 못 보았지요? (사람을 구타한 일을 가리킴) 그렇지요? 아무도 못 보았지요!”라고 했다.

2011년 4월 5일 청명절, 감옥장 양리(楊麗)가 작업실을 순시했다. 왕춘샹은 감옥장에게 자신이 구타당한 상황을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막 입을 열자 감옥장 양리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당신네 대장을 찾아 해결하세요.”라고 했다.

왕춘샹은 바오자에게 끌려 돌아왔다. 저녁 7, 8시경, 왕춘샹은 또 양양과 장잉에게 창고로 끌려가서 혹독하게 구타당했다. 그날 저녁 당직을 선 쑤잉(蘇影)과 간사 왕(王)모 두 사람과 집행요원 가오화이잉은 문밖에서 왕춘샹이 구타당하는 것을 보았다. 왕춘샹이 급히 출입문에 뛰어가 경찰에게 “두 사람이 저를 구타해요.”라고 하자, 두 경찰은 “누가 당신을 구타하지? 누가 보았어요?”라고 했다. 그중의 왕모는 “누가 당신더러 작업실에서 일하지 말랬어요.”라고 했다. 가오화이잉도 옆에서 따라서 말했다. 악인들은 점점 더 날뛰었다. 그녀들은 왕춘샹을 방안으로 끌어들인 후 문의 유리를 작은 틈만 남기고 신문지로 막았다. 두 경찰과 가오화이잉은 문밖에서 왕춘샹이 구타당하는 것을 보았다. 잠시 후, 지키던 경찰이 떠나갔으나 죄수들은 계속 왕춘샹을 구타했다. 한참이 지난 후, 왕춘샹을 구타하던 악인은 바오자에게 왕춘샹을 감방으로 끌어들이게 했다. 바오자 요원은 왕춘샹이 머리가 온통 물에 젖은 채 땅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두 악인은 왕춘샹의 신발을 벗긴 채 차가운 물을 담은 대야에 서 있게 했던 것이다. 당시 왕춘샹은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멍이 들었으며, 엉덩이는 침에 찔려 헐었으며 검게 변했다. 바오자 요원은 왕춘샹이 감옥장을 찾아가는 것을 막지 못해 벌점 2점을 받았다.

그 후부터 왕춘샹은 신장이 더욱 나빠져 고통받았으며, 작업실에서 일할 때 화장실에 자주 갔다. 그러나 화장실로 갈 때면 바오자 요원이 반드시 따라갔다. 소대장 쑤잉은 생산량에 영향 줄까 봐 잡역부가 왕춘샹에게 매일 뜨거운 물 한 컵 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냉수도 단지 반 컵만 주라고 넌지시 지시했다. 왕춘샹은 혈압이 높아 늘 입이 말랐다. 어떤 죄수는 그녀를 보면 너무 불쌍해 바로 잡역부를 찾아 왕춘샹에게 물을 주라고 요구했으나, 잡역부는 “우리도 물을 많이 주지 못하겠어요. 대장이 허락하지 않아요.”라고 했다.

어떤 죄수는 집행요원 가오화이잉의 지시를 받아 왕춘샹의 방석이나 의자를 늘 훔쳐갔으며, 왕춘샹의 옆에 있는 빈 작업대에 고양이 똥을 놓아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왕춘샹은 매일 저녁 학습을 할 때면 죄수에게 구타당했다.

어느 날 악인 장잉은 죄수들에게, 저녁에 왕춘샹을 구타한 과정을 흥분하며 말했다. 그녀는 손짓으로 흉내 내며 “주먹으로 그녀의 가슴을 쳤어요.”라고 한 다음 쾌권(快拳) 동작을 했다.

어느 날 한 파룬궁수련생이 소대장 쑤잉에게 “왕춘샹의 몸이 좋지 않아요. 혈압도 그렇게 높은데, 그녀에게 어떤 심각한 상태가 나타나면, 나는 그녀들을 고의적 살인죄로 고소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쑤잉은 “누가 그녀더러 일하지 말랬어요. 감옥에서는 인원수에 따라 그녀의 비용을 걷어 들이는데, 그녀가 일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녀의 생산액을 부담해야 하지요. 그럼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화풀이를 좀 하면 안 됩니까?”라고 했다.

왕춘샹은 죄수 신분을 나타내는 명찰 착용을 거부했다가 사무실로 불려 가서 악독한 경찰 우훙(吳虹)에게 한바탕 욕을 먹었다. 사무실에서 나온 뒤 집행요원이 왕춘샹에게 명찰을 달아주자 그녀는 뜯어냈다. 그러자 죄수 자오민(趙敏)이 강제로 달았다. 이러다가 결국 왕춘샹은 명찰을 땅에 던져버렸다. 그 후부터는 누구도 그녀에게 명찰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2011년 9월 25일은 주말이었다. 9감 구역에서는 초과근무를 했는데, 왕춘샹이 감방에서 나오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악도들이 왕춘샹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듣자하니 저녁에 일을 마칠 무렵 그녀가 병원으로 실려 가는 도중에 사망했다고 한다.

왕춘샹이 박해받은 더 많은 상황은 밍후이왕에 게재된 2011년 10월 10일의 문장 ‘왕춘샹, 랴오닝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사망’과 2011년 10월 16일의 문장 ‘왕춘샹이 박해로 사망한 과정에 대한 책임자를 추적’을 참조하시라.

문장발표: 2012년 11월 15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5/2654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