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보도) 옌타이 시(煙台市) 파룬궁 수련생 허슈링(賀秀玲)은 2004년 3월, 뇌막염으로 병원에 보내져 치료받았는데, 숨이 붙어 있었음에도 시체실로 보내졌다. 허리의 등쪽에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산 채로 신장을 적출당한 것으로 의심된다. 경찰 측은 10만 위안(약 1770만원)의 적은 돈으로 허슈링의 남편 쉬청번(徐承本)이 다시 상소하지 않도록 매수하려 했다가 그에게 거부당했다. 2년 후 쉬청번은 아내가 생체장기를 적출당한 것이 아니냐는 질의서를 인터넷으로 보냈다가 이튿날 바로 체포되었다. 허슈링의 시신은 핍박에 못 이겨 화장되었다.
쉬청번은 세뇌반으로 납치되어 박해로 몸이 급속히 수척해졌다. 원래 85kg이었던 몸무게가 몇 달 후에는 겨우 50kg 정도밖에 되지 않아 해골 같았다. 그리고 의식이 늘 희미해졌고 2년 후 사망할 때는 피부가 문드러졌는데, 당국에서 입을 막으려고 약물 박해를 가한 것으로 의심된다.
본문은 쉬청번이 생전에 구술한 것과 밍후이왕에 게재한 문장에 근거해 정리해 낸 것이다.
위황딩 병원에서 생체장기를 적출당했을 것으로 추측
옌타이 시 파룬궁 수련생 허슈링 여사(52세)는 2003년 8월, 공안에 불법 체포되어 옌타이 난자오(南郊)구치소에 감금당했다. 2004년 3월, 옌타이 위황딩(毓璜頂)병원에서 진찰받았는데 뇌막염이라고 했다.
허슈링은 불법 체포된 지 6개월 후 억울하게 재판받았는데, 이유는 그녀가 만든 인쇄물이 그녀의 믿음, 파룬궁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중국의 법률에는 파룬궁이 위법이라고 한 조문이 없으며, 또한 모든 국민에게 신앙과 언론 자유의 권리를 부여하였는데, 이 권리에는 인쇄물을 포함해 믿음을 전파하는 권리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렇다 할지라도 경찰이 법집행을 명목으로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것을 저지할 수 없었다. 박해명령은 중공(중국공산당) 최고위층에서 내렸기에 박해가 오랫동안 이어지게 했고 고문은 흔한 일이 되었다. 그중 가장 극단적인 박해형식은 다른 사람에게 인체장기를 공급해주는 집단이 되게 한 것이다. 환자가 장기이식이 필요하고 많은 돈을 내면 수시로 장기를 적출당했다. 이들 환자는 세계 각지에서 왔는데, 절대다수는 자신이 얻은 장기가 죄 없이 박해당한, 순결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멀쩡하게 산 사람에게서 온 것임을 모르고 있다.
쉬청번의 기억에 의하면 3월 10일 오후 5시경, 그는 즈푸구(芝罘區) 610사무실 리원광(李文光)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는데, 먼저 허슈링이 병이 있는지를 물었다. 쉬청번은 아무 병도 없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리원광은 허슈링이 병이 있어 위황딩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데 면회할 수 있다고 했다. 쉬청번은 여기저기 물어서 그날 저녁 7시경 마침내 6층 뇌신경 내과 32호 병실에서 아내를 찾아냈다. 당시 병실에는 환자 두 명이 있었는데 모두 가족이 돌보고 있었다. 쉬청번은 그 후에야 구치소에서 3월 8일 허슈링를 입원시키고 구치소 사람 2명이 지켰으며, 병원에서는 결핵성 뇌막염이란 병세가 위독한 진단을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쉬청번은 아내를 만났을 때 눈앞의 참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 사람이 자신의 아내임을 믿지 못했다. 그녀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말을 할 수도 없었고 몸을 뒤척일 수도 없었으며 손과 목의 색이 변해버려 이미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더욱 처참한 것은 이 시간에 간호해주는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치료도 해주지 않고, 오히려 두 손이 침대 머리에 채워져 있는 것이었다. 손목에는 오래된 상처와 새로운 상처가 있었고 겹겹이 피딱지가 붙은 흉터가 있었다. 하반신은 드러나 있었는데, 남녀가 드나드는 병실에서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채 치욕을 당했다.
쉬청번은 아내에게 어디가 불편하지를 묻자, 그녀는 손으로 가슴부위를 만졌다. 쉬청번이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켜 앉히자 아프다고 소리쳤다. 그녀는 왼쪽 눈을 뜰 수 없게 되었다. 쉬청번은 아내가 병원에서 결핵성 뇌막염이라고 진단받았는데 왜 가슴부위가 아프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허슈링은 힘겹게 자신의 허리 뒷부분을 가리켰는데, 당시 쉬청번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허슈링은 또 배가 많이 고파 밥을 먹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5~6분 후 구치소 직원 2명(남여 각 1명)이 들어왔다. 쉬청번은 “그들이 병실을 나간 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허슈링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라고 했다.
구치소 직원은 허슈링이 약을 먹고 링거주사 맞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쉬청번은 믿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 간수는 약 두 알을 가져와서 쉬청번더러 아내에게 먹이도록 했다. 그리고 감기치료제 한 컵이 있었다. 쉬청번은 아내가 결핵성 뇌막염인데 왜 감기치료제를 먹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링거 두 병이 침대 머리에 걸려 있었는데 의료직원이 허슈링에게 한 병을 주사했다. 남자 간수는 그녀에게 링거를 맞힌 적이 있는데 그녀가 주사바늘을 뽑아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쉬청번이 허슈링을 만났을 때는 주사바늘을 뽑지 않았다. 쉬청번은 그들이 이전에 허슈링에게 주사를 놓고 약을 먹이지 않았다고 여겼다.
쉬청번이 허슈링에게 음식을 먹이려고 하자 간수는 그녀에게 사과를 깎아서 두 조각을 먹였다. 그런 다음 그녀에게 먹이면 안 된다고 했다. 쉬청번은 허슈링에게 밥을 먹이겠다고 했으나 그들은 허락하지 않았다. 먹을 수 있는데 왜 못 먹게 하는지, 설마 환자의 건강회복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간수는 허슈링이 소변 배출관을 꽂아 바지가 젖었기에 바지를 입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쉬청번은 소변 배출관을 보지 못했다. 그 후 한 의사가 소변 배출관을 꽂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쉬청번은 자기가 아내를 돌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남자 간수는 난자오 구치소장 장푸톈(張福田)에게 전화한 다음 쉬청번이 아내를 돌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쉬청번은 “나는 그녀의 가족입니다. 왜 안 됩니까? 누가 만든 규정입니까?”라고 물었으나 병실에서 쫓겨났다. 면회시간은 불과 10분 정도였다.
그 후 쉬청번은 장푸톈에게 “허슈링은 단지 연공하여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였을 뿐인데 오히려 박해를 당해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생명이 위독해져도 여전히 이렇게 잔인하게 수갑을 채워 놓고 있는데, 분명 그녀를 사지에 몰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렇게 하도록 지시하였습니까?”라고 물었다. 장푸톈은 “공안과 구치소의 법률이 이렇게 하도록 한 것이오.”라고 했다.
눈물을 흘리는 시체와 심전도 측정지를 찢는 의사
이튿날 아침 7시경 리원광은 쉬청번에게 어서 병원으로 가라고 전화로 통지했다. 쉬청번은 옷을 챙겨서 병원으로 갔으나, 리원광은 허슈링이 이미 병사했다고 했다. 리원광은 쉬청번더러 의사에게 사망원인을 묻도록 했으나, 허슈링을 만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쉬청번이 허슈링에게 옷을 입히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옷을 가져가라고 했다. 그들은 쉬청번이 시신을 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허슈링은 시체실에서 하반신을 드러낸 채 며칠 동안 누워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훗날 가족들의 마음에 큰 고통이 되게 했다.
가족들은 3월 11일 오전 10시경 황급히 병원 시체실로 왔다. 그들은 허슈링의 하반신이 드러나 있고 손발이 따뜻하였으며 왼쪽 눈이 뚜렷하게 검은 자색을 띠고 있음을 보았다. 쉬청번은 아내의 허리 뒷부분이 붕대에 감겨 있음을 발견했다. 쉬청번은 뇌막염 환자인 아내의 허리 뒷부분이 붕대에 감겨 있는 점을 아주 이상하게 생각했다. 허슈링의 여동생은 몇 년 동안이나 허슈링을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언니, 왜 이 모습이 되었어요? 눈을 뜨고 저를 보세요. 여러 해 동안 저를 보지 못했잖아요!”라고 울부짖었다.
울부짖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허슈링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족은 그녀의 얼굴에 많은 땀방울이 맺힌 것을 발견했다. 아직 죽지 않았던 것이다! 가족들은 다급히 위층으로 가서 의사를 찾아 응급 처치하도록 했다.
세 번이나 찾아서야, 남자 의사 1명과 여 간호사 2명이 심전도 측정기를 가지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심전도 측정지가 10㎝ 정도 나왔을 때, 가족들은 측정지의 윗면이 뛰어오르는 곡선임을 보았다. 상식적으로 말하면 사망했으면 직선이어야 했다. 심장박동이 있으면 곡선이 나타난다. 여동생은 “보세요. 보세요. 아직 심장이 뛰고 있는 사람을 당신들은 이곳으로 보내왔어요!”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의사가 깜짝 놀라며 측정지를 찢어버리려 하자, 가족이 제지하며 의사에게서 측정지를 빼앗으려 했으나 의사가 먼저 손에 쥐고 총망히 출입구로 도망쳤다.
비통하고 분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는 가족은 허슈링의 맥박이 살아 있음을 발견하고 시체실의 노인에게 봐주도록 간청했다. 노인은 흰 장갑을 끼고 맥을 짚어 맥박이 있음을 확인하고는 매우 놀라워하며 “지금까지 이런 일을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가족들은 병원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간청했으나 응급처치에 동의하는 의사가 없었다. 그들은 적십자회, 110, 병원 의료사고과 등 곳곳으로 뛰어다니며 도움을 청했으나 치료해 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이튿날, 가족들은 허슈링을 보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그 다음 날, 가족이 허슈링을 보도록 허락받았을 때 허슈링은 심장박동과 맥박이 없어지고 손발이 차가워져 이미 사망했음이 확인되었다.
의문투성이, 공안이 10만 위안으로 입을 막으려 하다
허슈링이 세상을 떠난 요 며칠간, 일체는 모두 의문투성이였다. 가족들이 여기저기 찾아가서 의사에게 응급처치를 요구했을 때, 병원에서는 허슈링의 주치의 궈(郭) 씨가 지난(濟南)으로 외출했다고 책임을 회피하였다. 오후에 가족들은 시체실 앞에 정차한 장의차량에 허슈링을 싣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족들이 급히 제지하자 장의사에서 온 사람은 610에서 장의사에 전화하여 사람을 서둘러 싣고 가서 화장하라고 했다고 알려주었다. 가족들이 극력 가로막았기에 아직 숨이 붙어있던 허슈링은 끌려가지 않게 되었다. 610은 왜 그렇게 급히 화장하려 했을까?
이튿날, 가족들은 허슈링 면회를 거부당했다. 그래서 그들은 허슈링의 병실로 가서 환자들에게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려 했으나 병실은 하룻밤 사이에 텅 비어있었다. 병원 측에 허슈링의 병력서를 달라고 했는데, 서류가 원래의 것이 아니었으며 모두 변경하여 복사한 것으로 중요한 진료기록이 없어졌다. 뇌신경외과로 가서 문의하자 한 의사가 “우리 병원에서 무엇을 얻어내려 하지 마시오.”라고 했다.
허슈링의 허리 뒷부분 붕대에 대해 병원에서는 허리에 천자(穿刺: 주사바늘로 체액을 뽑아내는 일)를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돈을 내어 병을 치료한 구치소장 장푸톈은 천자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허슈링의 병력서에 천자치료를 했다는 기록과 치료결과도 없었다. 가족은 병력서를 들고 전문가 몇 명을 방문했다. 전문가들은 약속이나 한 듯 뇌막염은 근본적으로 천자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으며 진료기록으로 판단하면 천자가 아니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또 병력서는 정리한 적이 있고 그중에는 병세가 위독해 응급 처치한 과정을 기록한 것이 없다고 했다. 쉬청번은 병원을 여러 번 찾아 허슈링의 원래 병력서를 요구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그 후 산둥성(山東省) 검찰원에서 원래의 병력서를 찾아갔다.
3월 13일, 시체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쉬청번은 구치소의 장푸톈과 서면으로 협의하여 시신을 장의사로 보내 냉동했다. 협의는 가족이 수시로 시신을 볼 수 있고 가족의 허락이 없으면 화장할 수 없다고 약정하는 내용이었다.
쉬청번의 강력한 요구로 옌타이시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은 사체를 부검했다. 그들은 쉬청번에게 부검보고서를 주지 않고 부검결과를 한 번 건성으로 읽어주었을 뿐이다. 즈푸구 610과 구치소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 읽은 뒤 바로 쉬청번을 쫓아냈다. 그들이 말에 의하면 허슈링의 창자에 작은 붉은 반점이 가득 널려 있고 자궁에 자색의 물질 한 덩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게다가 외상이 없다고 말했다. 외상이 없는데 왜 붕대로 허리를 감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쉬청번은 지방에서 최고검찰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했으며 인터넷에 글을 올려 유엔에서 조사해주도록 요청했다. 이 기간에 옌타이공안국 610은 여러 번 사람을 보내 쉬청번이 다시 민원을 제기하지 않도록 그를 설득할 사람을 돈으로 매수하려 했다. 한 번은 이웃을 찾아 권했는데 말하기만 하면 10만 위안(약 1770만원)을 주겠다고 했고 안 되면 더 줄 수도 있다고 했으며 다시 상소를 제출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7월 8일, 산둥성 공안청, 산둥성 검찰원에서는 옌타이로 와서 사체를 다시 부검했다. 이번에도 법의관이 부검보고서를 한 번 읽었는데 여전히 610과 구치소에는 책임이 없다고 했다. 쉬청번이 부검보고서를 달라고 했으나 여전히 거부당했다.
쉬청번은 예전에 “……황당하고 가소로운 것은 현장에 10여 명 사람들, 산둥성 공검법, 옌타이시 공검법, 시 공안국, 610, 세뇌반에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한 류궈야오(劉國堯)가 모두 현장에 있었는데, 내가 허슈링의 시신 사진을 찍겠다고 했으나 현장의 사람들이 모두 반대하며 허락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허슈링의 시신이 냉동된 기간에 가족은 줄곧 그녀를 보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으며 다만 두 번의 사체부검 전에 한 번 보도록 허락받았다가 바로 쫓겨났을 뿐이다. 더욱이 시신을 만지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첫 번째 사체부검 전에 쉬청번과 여동생은 함께 시신을 보러 갔다. 당시 허슈링은 온몸이 드러나 있었고 목구멍에서 아랫배까지 길게 가르고 대충 꿰매놓은 상태였다. 참상을 본 쉬청번은 즉시 피를 토했고 여동생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울었다.
핍박에 못 이겨 시신을 화장하고, 남편은 아내가 생체적출을 당한 것이 아니냐고 질의했다가 박해 당해 목숨을 잃다
허슈링은 파룬궁 때문에 세 차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감금과 고문을 여러 번 당했다. 2003년 8월 말, 허슈링과 동료는 죄 없이 체포되어 세뇌반의 류궈야오에게 고문당한 적이 있다. 류궈야오는 그녀의 두 손을 뒷짐결박으로 수갑을 채워 침대 난간에 묶어 놓고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는 쪼그린 고통스러운 자세를 5일 동안이나 유지하게 했다. 게다가 잠을 자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못하게 했다. 석방된 동료의 말에 의하면 허슈링은 구치소에 갇힌 뒤 줄곧 믿음을 견지하다가 좁고 어두운 방에 갇혀 고문당했다고 한다. 시신 손목의 겹겹이 붙은 피딱지와 상처는 지속적인 고문 학대로 남은 것이다.
전문가의 분석에 의하면, 허슈링은 뇌막염으로 입원했는데 사실은 신장을 공급해주는 살아있는 신체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눈 부위가 심상치 않은 것으로 보면 동시에 눈 부위의 기관을 적출당했을 수도 있다. 신장이 가장 중요한 장기가 아니었기에 적출당한 뒤 허슈링은 즉시 사망하지 않고 사경을 헤매면서 고통에 시달렸다. 그러나 610은 스스로 자연스럽고 완벽하다고 여긴 계획을 수립했다. 그들은 간호를 명분으로 사람을 보내어 그녀를 감시하면서 주사를 맞히지 않고 약도 먹이지 않았으며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여 기력이 쇠약해져 사망할 때까지 기다렸다. 게다가 말을 할 수 없게 하는 약물을 가하고 임종 시에 가족과 한 번 만나보게 하는 것으로 그녀를 가족에게 인계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녀의 심장박동이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즉시 가족에게 사망통지를 하여 신속하게 시신을 화장했다. 생체장기를 적출한 죄악은 이처럼 뇌막염으로 병사했다는 거짓으로 덮어 감춰졌다.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은 아마도 자연의 이치가 분명하여 허슈링이 시체실에서 심장박동과 맥박이 있었고 땀을 많이 흘렸으며 또 가족의 외침 속에서 눈물을 흘린 것이다. 가족은 허슈링이 죽지 않은 채 시체실에 누워있었음을 목격하고는 비참한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진상을 찾는 서막을 열었다.
2006년 봄, 중공이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적출한 죄악이 해외에서 폭로된 뒤, 쉬청번은 아내가 생체장기적출을 당해 사망했음을 더욱 강하게 의심했다. 4월 19일, 쉬청번은 인터넷에 글을 올려 강력하게 질의했다. 또한 국제인권조직에서 옌타이로 와서 허슈링의 시신을 다시 부검하여 사망원인을 밝혀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문장이 세상에 나온 다음 날인 4월 20일, 쉬청번과 파룬궁 수련생인 여동생은 경찰에게 갑자기 체포당했다.
이어서 610은 허슈링의 외아들 쉬후이(徐輝)를 찾았다. 그들은 프린터, 컴퓨터 등 물증을 옮겨와 쉬청번을 판결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들은 쉬후이가 어머니의 시신을 화장하는 데 서명한다면 바로 아버지를 석방할 것이며 돈 5만 위안(약 880만원)을 준다고 했다. 그들은 쉬후이에게 어머니를 화장하고 아버지를 데려오겠는지를 물었다. 쉬후이는 핍박에 못 이겨 시신을 화장하는 데 서명했으며 610은 쉬후이에게 5만 위안을 주었다.
6월 20일, 허슈링의 시신은 화장되었다. 화장하는 날, 현장에 경찰이 많이 왔다. 경찰 몇 명은 쉬청번의 가족을 바싹 뒤따랐으며 허슈링의 여동생이 울면서 하소연하자 경찰은 그녀를 신속히 끌고 갔다.
쉬청번과 허슈링의 여동생은 610의 사설감옥인 세뇌반에 갇혔다. 그곳에서 2, 30명이 그들을 에워싸고 구타하고 욕하였으며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또한 두 사람에게 시신을 화장하는 데 동의하라고 했으나 거부당했다.
쉬청번은 여러 날 동안 잠자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으며 밥과 물을 먹지 못했으나 그는 여전히 믿음에 확고했다. 한 감시원은 “쉬청번은 꼬박 5일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했으나 여전히 소처럼 건장해서 몇 사람이 눌러도 쓰러뜨리지 못했습니다.”라고 했다. 쉬청번을 세뇌하는 데 실패하자 610은 그를 더욱 사악하고 흉악하기로 이름난 자오위안(招遠) 세뇌반에 가뒀다. 그곳은 고문수단이 흉악할 뿐만 아니라 암암리에 파룬궁 수련생에게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사용함으로써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한 적이 있다.
쉬청번은 그곳에서 급속히 수척해졌다. 원래 키는 178cm, 몸무게는 85kg이었는데, 몇 달 후에는 겨우 50kg 정도밖에 되지 않아 모습이 해골처럼 무섭게 변했다. 그는 의식이 늘 희미해져 머리가 맑지 못했다. 믿음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아내의 사망원인을 밝히는 일도 포기했는데 약물을 주사당한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2008년 초, 쉬청번은 갑자기 사망했다. 2월 26일, 쉬청번은 갑자기 더저우(德州)에서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왔는데 듣기에는 매우 좋다고 했다. 이튿날, 가족은 쉬청번의 부고를 받았다. 가족이 그의 시신에 옷을 입힐 때 피부가 문드러져 속옷과 피부가 붙어 있음을 발견했다. 친척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법의관을 찾아 감정한 결과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법의관이 가스중독이라고 모호하게 말했으나 친척은 여러 가지 흔적으로 보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610에서 쉬청번의 입을 막기 위해 약물 박해를 가해 만성중독으로 사망했던 것이다.
국제적으로 추적당한 옌타이 위황딩병원
국제인권조직에서 옌타이 위황딩병원에 대해 조사한 바로는 이 병원의 이식센터의 직원이 말하기를 1년에 적어도 160~170회의 신장이식 수술을 한다고 했다. 게다가 신장 공급원이 충분하며 제공한 장기가 건강해 외국인에게 이식해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장기 공급원에 대해서는 회피하며 말하지 않았다. 병원 내부일지라도 감추고 누설하지 않았다.
2006년 3월 초부터 중공이 끊임없이 파룬궁 수련생의 생체장기를 적출하여 불법 이식함으로써 폭리를 도모했음을 고발하는 증인이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생체장기적출’이란 책의 작가 데이비드 마타스와 데이비드 킬고어는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적출한 현상이 대륙에서 장기간 보편적으로 존재했음을 다년간의 추적을 거쳐 수십 개의 증거로 확실하게 증명했으며, ‘지구에서 여태껏 있었던 적이 없는 사악’이라 불렀다.
올해 2월, 왕리쥔(王立軍) 충칭 전 공안국장이 미국 영사관에 찾아간 것으로 야기된, 보구카이라이(薄穀開來)가 영국인 헤이우드를 모살한 사건은 구카이라이가 생체장기를 적출하고 국제적으로 시체를 불법 판매하였으며, 내막을 아는 헤이우드를 죽여 입을 막은 일 등의 죄악을 말한다. 일단 이 흑막을 폭로하면 파룬궁 수련생의 생체장기를 적출한 중공의 죄행을 폭로하는 것과 같기에 당국은 심적으로 큰 부담을 여겨 극력 덮어 감췄다. 인류도덕의 최저선에 도전한 이 악행은 현재 전 세계 정의로운 인사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2006년 6월, 옌타이 위황딩병원은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 혐의를 받아 ‘파룬궁박해진상 연합조사단(CIPFG)’에 의해 ‘증거수집대상 추적에 관한 제2차 공고(파룬궁 수련생 박해혐의를 받는 중국대륙 병원을 추적해 증거를 수집)’ 명단에 들어 있었다. 허슈링은 단지 매년 유황딩병원에 신장을 제공한 피해자 160~170명 중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문장발표: 2012년 09월 09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9/9/2625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