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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엔지니어 리훙쿠이, 출소 20여일 남기고 다칭감옥에서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하얼빈시(哈爾濱市) 우정국 전기기계 일체화 엔지니어이자 하얼빈 파룬궁 의무보도소의 책임자 리훙쿠이(李洪奎, 61세)가 8월 28일에 다칭(大慶)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7년의 억울한 수감생활 견디고 만기출소를 불과 20여 일 남겨 둔 시점이었다. 가족은 리훙쿠이의 사망에 대해 매우 놀랐다.

리훙쿠이는 파룬궁을 수련한 뒤,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으로 자신을 요구해 연속 몇 년 동안 시와 성급 노동 모범, 선진 업무자 등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중공 사악한당(중국공산당)이 1999년 7월 파룬궁을 박해한 뒤, 세 차례나 불법 체포를 당했고 두 차례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감옥에서 10년 동안 불법 감금당해 비인간적인 학대를 받았다.

리훙쿠이는 두 번째로 불법 판결을 받고 다칭감옥에 수감되었으며 만기출소예정일이 2012년 9월 21일이었다. 그런데 다칭 감옥에서 갑자기 8월 13일 저녁, 가족에게 리훙쿠이가 뇌출혈 증상이 나타나 다칭 제4병원에 보내져 수술과 치료를 받는다는 통지를 내렸다. 그리고 2주 후인 8월 28일 새벽 5시 14분에 리훙쿠이는 사망했다. 만기 출소를 불과 20여일 남겨 둔 시점이었다.

리훙쿠이(1951년 7월 출생)는 예전에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 공업대학에서 공부했고 직장은 하얼빈시 우편관리국이며 직무는 전기기계 일체화 엔지니어이다. 리훙쿠이는 1976년에 하얼빈 우정국 다오와아구(道外區) 우정지국(支局)에서 기술혁신을 했다. 우편물 자동 취포기(取包機)는 2년의 노력을 거쳐 투입해 사용했는데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78년에 또 둥리(動力) 우정지국에서 우편물 자동 취포기를 만들었으며, 같은 해 하얼빈 우정국으로 파견되어 근무했다. 리훙쿠이가 근무함에 열심히 책임지고 초과 근무를 해도 종래로 원망의 말이 없이 다른 사람을 보살폈던 이유로, 1978년부터 1991년까지 연속 14년 동안 하얼빈 우정국 선진근무자로 평가받았다. 동시에 또 시국 공회 적극분자로 평가받았다. 이 기간에 또 자성반전(磁翻轉) 광고판, 우편물 중계운수 텔레비전 감시, 무전기와 소포분간기계의 개조 등 공정을 완수했다.

리훙쿠이는 1994년 5월부터 파룬궁 ‘眞ㆍ善ㆍ忍’ 을 수련하기 시작해 근무를 함에 더욱 열심히 했고, 동료와 화목하게 지내 모두의 호평을 받았다. 연속 몇 년 동안 시와 성급 노동모범, 선진 업무자 등의 칭호를 평가받았다. 1996년 우정 중추분간설비 생산작업에 참여한 뒤, 어느 한 차례의 설비 공제에서 고장이 나타났는데 당직 인원은 아주 오랜 시간에도 원인을 찾지 못했고 모두는 방법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리훙쿠이가 오늘 출장에서 돌아오는데, 그가 집에 도착했는지를 알아보지요. 그를 찾아와 보입시다.”라고 했다. 직원이 전화를 걸어서 리훙쿠이가 막 집에 도착했음을 알고 고장사실을 리훙쿠이에게 알리자 즉시 직장으로 출근해 기계수리를 완료해 고장을 해결했다.

리훙쿠이는 1994년 8월 5일에 사부님께서 하얼빈시에서 개최하신 전공 설법(傳功講法)학습반에 참가했으며, 1999년 초에 하얼빈 파룬궁 의무보도소의 책임을 맡았다.

중공 사악한 당과 장쩌민(江澤民) 깡패집단이 전국에서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 날, 리훙쿠이는 1999년 7월 19일에 하얼빈시 공안국에 불법체포를 당해 35일 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같은 해 10월, 리훙쿠이는 다시 한 번 납치당한 동시에 3년 반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는데 불법 형기는 2000년 6월 19일부터 2003년 12월 18일이며 하얼빈 제3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2005년 9월 23일, 하얼빈시 610과 공안국은 전면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불법 납치했다. 리훙쿠이 등 수 십 명 파룬궁수련생들은 불법 체포, 감금과 판결을 선고받았다.

리훙쿠이는 다시 하얼빈시 다오리구(道裏區)법원에서 7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고 2007년 설 전인 2월 15일에 다칭감옥 4감구역으로 이감되어 박해를 당했다. 리훙쿠이는 사악을 저지해 종래로 수의를 입지 않아 여러 차례 다칭감옥의 박해를 당했다.

다칭감옥 4감구역의 부감옥장 주중신(褚忠信)은 2009년 2월 17일부터 이른바 ‘정돈’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그 예봉은 직접 불법 감금당한 이 감구역의 4명의 파룬궁수련생 디즈빈(翟志彬), 리차오(李超), 리훙쿠이, 류구이푸(劉貴福)를 겨냥했으며, 강제로 그들에게 매일 오전과 오후에 훈련을 나가도록 했다.(실제로는 체벌을 가했음) 대법수련생은 이런 박해 요구를 거부했다가 즉시 4감구역에서 박해를 책임진 주중신, 류궈창(劉國強), 리진하오(李金浩) 세 사람에 의해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이로 인해 수련생 디즈빈은 머리부위에 큰 혹이 자라났고 선혈이 줄줄 흘렀으며, 리훙쿠이 등 수련생 3명의 팔, 다리, 둔부 등의 부위는 부상 정도가 비교적 심각했다.

2009년의 근 1년 사이에, 감옥에서는 수의를 거부한 수련생에 대해 단식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박해를 감행했다. 리훙쿠이는 여러 차례 교도관에게 경찰봉으로 구타당해 몇 달 동안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극도로 병약한 리훙쿠이의 부인은 남편이 다칭감옥에서 3명의 경찰에게 5일째에 9차례나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허약한 몸을 이끌고 어렵게 아들과 함께 여러 차례 다칭 감옥, 다칭 사법국으로 가서 리훙쿠이의 면회신청을 제출하고 동시에 사람을 구타한 사건을 처리하도록 했다. 그러나 다칭감옥에서는 각종 구실을 들어 가족의 면회를 거부했다.

다칭감옥을 현지 사람은 속칭 ‘다칭지옥’이라고 한다. 좋은 사람을 나쁘게 만들고 나쁜 사람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장소이다. 사악한 공산당은 다칭 감옥에 성 문명단위라는 허울을 씌워 그것으로 전혀 거리낌 없이 인간세상의 각종 죄악을 만들어내게 했다. 겹겹의 봉쇄를 뚫고 민간의 경로에서 전해질 수 있는, 이름과 성명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다칭 감옥에 의해 잔혹한 학살을 당한 파룬궁수련생은 10명이다. 2005년 6월 7일에 대대장 리펑장(李鳳江), 지도원 장더즈(張德志)는 직접 죄수에게 지시해 41세인 쉬지산(許基善)을 널판 위에 묶어서 화장실로 들고 들어가서 박해를 가했는데 병원에 보내 응급처치를 받을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40세인 위안칭장(袁清江)은 다칭감옥 악독한 경찰에게 장기간 잔혹한 학대를 당해 피골이 상접하고 박해로 인해 복부가 이상하게 팽창했는데 결국 2005년 7월 23일 저녁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다칭 석유관리국 채유 7공장 파룬궁수련생 주훙빈(朱洪兵)은 7년의 억울한 판결을 받고 박해를 당해 다칭 훙웨이싱(紅衛星)감옥의 박해로 생명이 위독해졌다. 2008년 12월 29일에 감옥정문으로 들려 나갔으나 결국 2009년 6월 18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시신을 화장할 때, 두개골 겉면은 흰색이었으나 안은 오히려 검게 되었으며 뼈가 심각하게 푸석푸석했는데 무슨 약물로 인한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

문장발표: 2012년 09월 0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9/1/2622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