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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당국, 자오둥 친구의 변호사 선임을 고의로 저지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중국대륙보도) 베이징 외국어대학을 졸업한 파룬궁수련생 자오둥(曹東)은 출소한지 1년도 되지 않아, 2012년 6월 8일에 재차 베이징에서 납치 및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자오둥의 친구는 변호사를 선임해 그를 도와주다가 오히려 중공(중국공산당) 당국에게 각종 난처함을 당했다.

8월 24일 오전, 리슝빙(黎雄兵) 변호사는 자오둥을 대신해 쓴 행정심의서를 지니고 치허취(七里渠) 둥청(東城)분국 구치소로 가서 자오둥을 만나서 본인에게 서명시키겠다는 요구를 제출했다가 뜻밖에 경찰측에 거절을 당했다. 그들은 반드시 베이징시 노동위원회에서 비준해야만이 자오둥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자오둥의 행정심의권은 9월 7일까지 기한이었다. 둥청분국 법제사무실, 베이지이 노동교양위원회 등 부서에서는 이렇게 백방으로 난처하게 굴며 서로 책임을 미루었는데, 고의로 시간을 끌어 행정 심의기한을 넘겨 폐기시키려 했다.

자오둥을 도와준 이유로 납치당한 베이징 파룬궁수련생 장이쑤(張一粟)는 베이징 둥청구 구치소에 1개월 넘게 불법 감금당한 뒤 노동교양박해를 당했다. 소식에 따르면, 가족은 장이쑤를 위해 리둔융(李敦勇)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한다. 리 변호사는 예전에 두 차례 둥청분국 구치소로 가서 장이쑤를 만나려 요구했다가 모두 무리하게 거부당한 적이 있다.

6년 전, 자오둥은 유럽의회 부의장 웨드워드 멕밀란 스콧을 면담하여 자신과 아내 및 신변에 익숙한 파룬궁수련생들이 당한 잔혹한 박해를 진술했다. 그 후 중공 당국에 의해 납치돼 5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다. 그의 아내 양샤오징(楊小晶)은 여러 차례 노동교양소에 감금되어 장기간 고문 박해를 당하는 등 심신의 고통과 충격 속에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2009년 10월 1일 슬프게 세상을 떠났다.

자오둥은 2011년 9월 28일에야 석방됐다. 이번에 베이징으로 와서 아내 양샤오징을 안장하는 소원을 완수하고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는 한편 직업을 찾고 셋집을 구하려 했다.

2012년 6월 8일 저녁 8시쯤, 장이쑤 여사는 평소와 다름없이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집 입구에서 대기 중이던 7~8명의 경찰이 그녀를 따라 재빨리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들은 그녀 집을 세 준 자오둥을 향해 왔던 것이다.

중공 사악한 당(邪黨)은 노동교양을 당한 인원에 대해 노동교양 결정을 선포한 뒤에 그의 가족에게 통지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노동교양 결정서를 노동교양을 당한 인원이 거주한 곳의 파출소에 부치면 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또, 노동교양을 당한 사람이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반드시 감금 중인 본인이 직접 신청함에 제출해야 하며, 변호사는 반드시 노동교양결정서를 받은 뒤에야 수속을 밟고 정식으로 개입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서로 충돌되는 이 두 가지 결정은, 중공 깡패정부가 피박해인이 변호사를 선임함에 아주 큰 조작 공간을 남겼다. 그것들은 시간을 끌고 난처하게 굴며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등 무뢰한 수단을 사용해 박해를 당한 자가 법률을 이용해 자신의 천부적 인권을 수호함을 박탈함으로써, 그것들의 사악한 진상이 세상에 공개됨을 제지하려 시도했다.

중공 사악한 당의 규정에 따르면, 자오둥의 노동교양결정서는 고향인 간쑤(甘肅) 칭양(慶陽) 현지 파출소로 보내야 한다. 2012년 8월 1일, 자오둥의 가족은 베이징 싱푸다제(幸福大街)에 위치한 둥청 분국 민원사무실로 가서 자오둥에 대한 노동교양결정서를 조사해 부치라고 재촉했다. 그날 민원사무실에서 당직을 맡은 둥청분국 법제사무실 인원은 즉시 찾아냈으나, 자오둥의 노동교양결정서는 아직도 부치지 않았다. 해석해 말하기를, 먼저 베이징의 것을 부치고 다음에 외지의 것을 부친다며 모두에게 이틀을 더 기다리라고 했다.

8월 8일, 자오둥 가족은 또 둥청분국 민원사무실로 가서 노동교양결정서를 부쳤는지를 조사하여 따져 물었다. 그날에 법제사무실에는 사람이 없었고, 민원사무실에서 당직을 서는 한 과장 자오(趙)씨가 나서서 답변해 말했다. “이 일은 반드시 베이징 퇀허(團河)남자노동교양소의 법제사무실로 가서 문의해야 합니다.” 게다가 한 남자노동교양소의 전화번호를 주었다. 그날 가족은 이 전화를 걸었는데 걸리지 않았다. 이튿날, 남자노동교양소의 전화가 걸렸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교양결정서를 부치는 이 일을 관할하지 않는다며 가족에게 치리취에 위치한 둥청분국 구치소[북쪽 노동교양소(北所)]의 법제사무실로 가서 문의하라고 대답해 말했다.

자오둥의 가족은 또 둥청분국 법제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은 경찰도 역시 자오씨었다. 그는 지금 대답할 방법이 없다며 조사해 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음 주에 다시 문의하라고 했다.

일주일이 지난 뒤인 8월 16일, 자오둥의 가족은 직접 치리취 둥청분국 법제사무실로 찾아갔는데, 노동교양결정서는 이미 우정국으로 가서 부쳤다며 자오둥의 고향 현지 파출소에서 언제 받을지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가족이 변호사를 선임함에 노동교양결정서로 수속을 밟음이 급히 필요하다고 제출했을 때, 상대방은 자오둥 본인이 신청을 제출해야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은, 자오둥이 안에 갇혀 있는데 어떻게 변호사를 찾느냐고 질의를 던졌다. 경찰은 얼버무리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오둥의 불법 노동교양에 대한 결정은 2010년 7월 8일에 내린 것이다. 그러나 자오둥의 간쑤와 베이징 두 곳에 있는 가족은 정부측에서 보낸 어떠한 통지도 받지 못했다.

이 기간에 자오둥의 모친도 끊임없이 간쑤 칭양 현지파출소로 가서 문의했다. 8월 21일쯤에 이르러서야 현지 파출소에서 노동교양결정서를 보았다.

이 일체 수단의 배후는 중공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610 등 사악한 상부의 음모, 지시와 조종임을 간파하기 어렵지 않다. 그것들은 파룬궁수련생의 행정심의 등 권리를 박탈함은 이치에 맞지 않음을 스스로 알고, 곧 깡패와 무뢰한의 비열한 수단을 채취했다. 이렇게 하면 정의적인 역량이 그것들에 대해 법률적인 추궁과 질책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사실 역시 졸렬하고도 헛된 일을 한 것으로, 다만 더욱 중공 사악한 당이 인류의 문명과 역행한 사악의 본성을 폭로했을 뿐이다. 파룬궁수련생과 정의적인 역량은 꼭 중공 및 그 악인의 죄악에 대해 폭로하고 끝까지 추적 조사할 것이다.

둥청분국 법제사무실 전화: 84081774

문장발표: 2012년 09월 0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9/2/2622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