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보도) 허베이성(河北省) 우안시(武安市) 버섯재배 일인자인 자오선싱(趙申興)은 세 차례나 불법 노동교양 박해를 당했다. 한단시(邯鄲市)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었는데, 결국 2011년 11월 20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66세였다.
자오선싱 노인은 우안시 청관진(城關鎮) 우제(五街) 사람이다. 그는 우안시에서 첫 번째로 버섯을 재배한 오래된 전문가로서 우안시에서는 그를 버섯재배 일인자로 칭했다. 그는 우제에서 면적이 2묘가 넘는 토지를 사용해 큰 버섯 천막 두 개를 쳐서 직접 세심하게 버섯을 재배하고 판매했다. 자오선싱이 판매한 버섯은 크고 건조 상태가 좋았다. 버섯에 물을 단 한 번도 섞지 않았으며, 모두 도매가로 판매했다. 자오선싱은 자신이 수련생임을 깨닫고 일마다 도처에서 모두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했으며, 버섯을 사러 온 고객에게 무게를 속인 적도 없다. 그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채소를 먹도록 해주려고 했다.
2001년 전 우안진 서기이자 현임 우안시 부시장 한바오쿠이와 우안진 부서기 양옌빈(楊延斌)은 2001년에 우안시 베이관가(北關街) 당원대회에서 파룬궁을 모독했고, 자오선싱에게 파룬궁을 욕하라고 핍박했다. 자오선싱은 그 자리에서 파룬궁은 좋다고 말했다가 한바오쿠이와 우안진 부서기 양옌빈 그리고 ‘610’악도에게 그 자리에서 붙잡혀 우안시구치소로 끌려갔고,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2004년 음력 4월 20일쯤, 우안시 공안국 1과 과장 장리화(張利華)는 부과장 장타이바오(張太保) 등과 결탁해 자오선싱의 집을 불법 수색하고 강제로 자오선싱을 우안시 구치소로 보냈다. 구치소에서 그는 광적인 박해를 당했다. 이 일로 자오선싱은 몸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정신이 이상해졌고 눈도 멍해졌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대로 다 먹었는데, 심지어 감방에서 다른 사람의 대변까지 먹었다.
자오선싱의 아들은 부친이 학대로 미쳤다는 소식을 듣고는 장리화의 집에 찾아가 석방을 요구했다. 장리화는 감히 문을 열어주지 못했고,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서 자오선싱의 아들을 붙잡게 했다. 동시에 악독한 경찰을 불러다가 더는 장리화의 집에 가지 못하도록 자오선싱의 가족을 위협했다.
2004년 9월, 자오선싱은 한단시 노동교양소로 납치당했다. 전문관리대에 도착하자마자 자오선싱은 곧 한 작업실에 갇혔다. 자오선싱은 대법에 대한 믿음을 견지한 것 때문에 흉악한 교도관 왕즈밍(王志明)에게 손으로 얼굴을 장시간 구타당했다. 왕즈밍은 연이어 손과 발로 자오선싱을 구타했다. 또 가죽 띠로 후려쳤다. 자오선싱은 구타를 당해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왕즈밍은 다른 사람에게 폭행 사실이 발각될까봐 자오선싱의 얼굴에 있는 혈흔을 물로 씻었다. 그 후에 또 작업실로 끌고 갔다. 왕즈밍, 유다(역주-수련을 포기하고 대법 사부님을 배반한 자를 비유) 류수민(劉書民, 정식이름), 장윈스(張雲士), 관타오(館陶), 첸궈닝(錢國寧), 한단(邯鄲), 왕하이린[汪海林, 싱타이(邢台)], 우즈쥔[吳志軍, 싱타이(邢台)] 등은 돌아가며 자오선싱을 지키면서 잠을 못 자게하고 세워두는 고문을 가했다.
이튿날, 610의 악도 가오페이(高飛), 악독한 교도관 싱옌성(邢延生)은 계속 자오선싱을 박해했다. 가오페이는 자오선싱의 두 팔을 당겨서 일자형으로 만들어 두 손을 따로따로 두 이층침대의 틀에 매달았다. 그런 다음 한 무리 공범자들이 전기충격을 가하고 고무몽둥이로 장시간 구타했다. 그 뒤에 또 자오선싱을 마구 학대했다. 그중 어느 한 공범자 궈페이[郭飛, 츠현(磁縣)]는 나무 몽둥이마저 부러질 정도로 구타했다.
자오선싱은 정신과 육체적으로 이중학대를 당해 결국 정신이 이상해졌다. 그러나 왕즈밍은 자오선싱이 미친 것처럼 꾸민 거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심지어 그가 파룬궁을 연마해 이렇게 된 거라고 말하면서 계속 자오선싱을 박해했다. 왕즈밍은 졸개 한 무리와 결탁해 짧은 끈으로 자오선싱의 머리, 손, 발을 함께 묶어서 계속 구타했다. 이 기간에 불법 인원들은 또 강제로 독극물을 주사했다.
자오선싱이 병보석을 받기 일주일 전에 노동교양소의 대대장이자 악독한 교도관인 야오젠밍(姚建明)이 노동교양소의 의사를 불러 자오선싱이 구타와 전기충격 부상을 입은 부위를 치료하게 했다. 그래도 상처는 여전히 남았다. 상처는 치료할 수 있었지만 구타당하다 부러진 치아는 원상회복될 수 없었다. 자오선싱은 돌아온 뒤에, 한단시 노동교양소의 악독한 교도관 싱옌성이 그를 구타해 바닥에 넘어뜨린 뒤에 머리를 발로 거칠게 걷어찬 것밖에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 후에 곧 정신이상이 되었다.
2008년 7월 13일, 우안시 청관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은 자오선싱을 집에서 다시 한 번 붙잡아갔다. 우안시 공안국 부국장 겸 청관 파출소 소장 허우샹첸(侯向前)은 자오선싱을 한단 노동교양소로 보내 3년의 불법 노동교양을 시켰다. 한단 노동교양소에 도착한 뒤에 정신이상 증세가 심해져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았다.
여러 해 계속 박해를 당한 탓에 자오선싱은 결국 2011년 11월 20일에 집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박해를 감행한 주요 책임자:
우안시 국가보안대대 대장 장리화, 두퉁인(杜同銀), 장타이바오(張太保)
우안시 공안국 부국장 겸 청관 파출소 소장 허우샹첸(侯向前)
우안시 610사무실 원래의 주임 한쥔이(韓俊義)
한단시 노동교양소 대대장 야오젠밍(姚建明), 왕즈밍, 싱옌성, 궈페이, 한단시 610의 가오페이
문장발표: 2012년 08월 06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8/6/2612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