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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성 첸안시 구치소의 노예 노동제품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보도) 1999년 7월 20일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허베이성(河北省) 첸안시(遷安市)구치소는 줄곧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데 참여했고, 2007년 6월부터는 마오자와(毛家窪)의 새 주소로 옮겼다. 겉으로는 널찍하고 환한 장소지만 내부는 부패하고 비밀스러우며 잔혹함이 가득 찬 노예 노동제품의 가공지였다. 그들은 불법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과 다른 수감인원에게 강제로 노역 노동을 시켜 구치소를 위해 돈을 벌게 했으며, 개인적인 이익을 챙겨서 자신들의 사욕을 만족시켰다.

1. 강제로 친황다오시 창리현 모자공장을 위해 모자를 뜨다

모자공장에서 구치소로 보낸 원료는 모두 반제품이었다. 제품은 대략 6~7가지로, 질량에 대한 요구가 아주 엄해서 감방의 군대식 침상과 바닥에 앉아서 가공하도록 했다. 가공할 때, 쓸모없는 볼펜심으로 만든 큰 바늘을 사용해 비닐로 모자의 큰 변두리를 톱니형으로 떴다. 작은 변두리도 꽃모양으로 뜨고는 다시 큰 변두리, 작은 변두리와 모자 꼭대기를 한 데 봉합했다. 그리고 모자 끈과 고정 단추를 꿰맨 뒤, 질량 검사인원을 거쳐 합격을 받아야 했다. 어떤 때는 공장에서 또 다시 만들게 했다.

가공할 때, 노역 노동자들은 너무 오래 앉아있어 허리가 시큰거리고 등이 아팠다. 눈을 장시간 사용해 피곤해져 붓고 침침해졌으며 경추가 아팠다. 모자 원료는 털이 빠졌고 또 페인트 냄새가 아주 고약해 온 감방에 자욱했는데, 피부에 닿으면 너무 가렵고 몸에 상해가 있었다.

2. 강제로 통조림공장을 위해 산사 씨를 꿰찌르다

가을에 산사가 익으면, 또 시간을 짜내 첸안시 란뤄원(蘭若院)의 두 통조림공장에 산시 씨에 구멍을 내야 했다. 스테인리스관의 굵은 쪽에 산사의 머리 부분을 대고 구멍을 뚫고, 가는 쪽에는 산사의 꼬리를 대고 씨를 파냈다. 스테인리스관이 아주 예리한데다 산사 씨가 딱딱해 조금만 힘을 쓰면 손이 다쳤다. 상처를 입어도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했다. 노역 노동자들은 손에 늘 상처를 입은 채 일을 했으며, 손과 발에는 흙과 산사폐품이 가득 묻었다.

모든 노역 노동자는 이렇게 매일 한 광주리(대략 20~25kg)씩 구멍을 내야 했다. 장시간의 작업으로 손에는 물집 혹은 굳은살이 생겼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일감이 오면 즉시 일을 했다. 어떤 때는 임무를 서둘러야 해서 노역 노동자들은 새벽 5시 좀 넘어서 일어나 일을 했다. 작업 속도가 느리면 당직을 서는 교도관이 끊임없이 재촉했으며, 이 감방에 징벌을 내린다며 밥과 반찬을 절반이나 줄였다. 어떤 때는 심지어 밥을 주지 않았다. 감옥에 앉히기 고문, 텔레비전 시청을 취소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절반밖에 먹지 못하던 밥과 반찬을 또 절반 줄이는 바람에 일부 노역 노동자(다른 수감인원)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깨끗이 씻지 않은 산사를 훔쳐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설사를 했다.

이렇게 파룬궁수련생은 육체와 정신적인 박해를 감당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또 핍박에 못 이겨 노예가 되어 모두 지저분하고 힘든 일을 했다.

파룬궁은 1992년에 전해져서 1999년까지 짧은 7년 동안에, 1억 명이 넘는 수련생의 마음을 끌었다. 장 씨 집단이 전력투구해 무정하게 탄압했을지라도 파룬궁은 소멸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 세계에 널리 전해져 세계 민중 및 정계 요인에게 표창과 추대를 받았다. 이 사실들로 사람들은 파룬궁이 도대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신기한 효과가 있는지,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거대한 영향력이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냉정하게 사고할 수 있다.

문장발표: 2012년 07월 25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7/25/2607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