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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 女의사, 10년 억울한 옥살이 곧 만기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헤이룽장(黑龍江) 솽야산시(雙鴨山市) 파룬궁수련생 왕위줘(王玉卓)는 2002년에 10년의 불법 판결을 받았고, 올해 5월 1일, 만기된다. 그러나 왕위줘의 친척과 친구는 현지 ‘610’, 파출소의 악행 기록에 근거해 악독한 경찰이 다시 한 번 그녀를 세뇌반으로 납치했을까 봐 걱정하고 있다. 외부에서 관심을 갖고 왕위줘가 하루빨리 가족과 단란히 한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

왕위줘는 원래 헤이룽장성 솽야산시 인민병원의 심전실의 주치의사로 2002년 5월 2일 납치당했다. 그 후 10년의 불법 판결을 받고 2003년 4월 3일, 하얼빈(哈爾濱)에 위치한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당했다. 당시 왕위줘는 자궁근종, 심각한 심장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여전히 불법으로 수감당했다.

불법 감금당한 10년 사이에 왕위줘는 심각한 박해를 당했다. 핍박을 받으며 매일 벽을 마주한 채 걸상에 앉아 허리를 곧게 펴고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악인(惡人)은 또 그녀의 두 팔에 수갑을 채워 장시간 가름대 위에 높이 매달아 발끝만 땅에 살짝 스치게 해두었다.

2005년 3월 21일, 여자감옥 9감구역에서는 파룬궁수련생 녜쉬메이(聶緒梅), 왕진판(王金范), 왕위줘, 장바오잉(張保英), 덩젠메이(鄧劍梅), 푸리화(付麗華)를 강제로 끌고 가서 피를 뽑으려 했으나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저지를 당했다. 교도관은 졸개에게 그들을 혹독하게 구타하라고 지시했다. 이 일로 왕진판, 왕위줘, 장바오잉, 덩젠메이 등은 걸을 수 없게 되어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2005년 4월 8일, 감옥에서는 또 이사한다는 명목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유인해 세뇌반에 넣으려고 시도했다가 역시 저지를 당했다. 9감구역의 전체 교도관과 사복차림 남자 4~5명 교도관들이 큰소리로 외치며 죄수에게 파룬궁수련생을 구타하도록 지시했다. 왕위줘는 당시 죄수 바이리쥔(柏麗君)에게 계속 욕을 먹고 구타당해 기절했다. 왕위줘는 강제로 위층의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왕위줘는 정신을 차린 뒤 5일 동안 단식을 하다가 죄수 자오쉐링(趙學玲)과 천쉐메이(陳學梅)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그 후에 위생소로 끌려가 강제로 주사를 맞는 과정에 왕위줘가 저항하자 자오쉐링이 혹독하게 구타했다.

2003년, 감옥에서는 포장작업실에 이른바 ‘전향기지’를 설립했다. 2005년 7월에 전문적으로 70여 명을 배양해 ‘전향’박해를 감행하는 졸개가 되게 했으며, 모든 파룬궁수련생들을 전향시키겠다고 큰소리쳤다. 대대장 류즈창(劉志強)은 무슨 수단을 사용하든지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악독한 교도관 장샤오잉(張曉影)은 죄수를 교사해 파룬궁수련생을 구타하게 했다. 단, 외상을 입히지 말고 보이지 않은 곳을 구타하라고 했다. 왕위줘는 악독한 교도관 완중리(萬忠利)에게 한 달 넘게 괴롭힘을 당했다. 이 한 달간 침대에 눕지 못하게 해 줄곧 시멘트바닥에 누웠다. 그는 왕위줘의 위독해지자 이 박해를 멈추었다. 왕위줘는 한때 마음을 어기고 ‘전향’한 적이 있었다. 그 후에 그녀가 이런 박해를 승인하지 않는다고 성명을 내자 또 악독한 교도관은 그녀를 ‘독방’에 가두고 박해했다.

10년의 박해 중에서 왕위줘의 가족도 극심한 고난을 감당했다. 그녀의 유일한, 사랑하는 아들은 핍박에 못 이겨 친척집에 얹혀살았고, 팔순이 되는 노 모친은 날마다 딸이 돌아오길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80여 세인 노 부친은 2년 사이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임종하는 순간에도 사랑하는 작은 딸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문장발표: 2012년 04월 2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4/22/2560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