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푸젠보도) 푸젠성(福建省) 취안저우시(泉州市) 더화현(德化縣) 파룬궁수련생 린원후이(林文輝)가 중공(중국공산당) 당국에게 장기간 박해를 당했다. 베이징 올림픽 전에 네이멍구(內蒙古) 노동교양소(이하 노교소)로 납치돼 2년간 잔인한 박해를 당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다시 노교소로 납치당했다. 간복수란 진단이 내려져 이른바 ‘보석’을 받았으나 결국 2012년 3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다.
1999년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자마자 린원후이는 이른바 푸젠성의 중요 인물 6명 중 한 명이 되어 아주 오랜 시간 산에 갇힌 채, 세상과 동떨어진 환경에서 감시를 받으며 외부와의 접촉을 금지 당했다. 그 후, 2008년에야 자유를 회복했다.
린원후이는 이어서 베이징에 가서 작은 장사를 했다. 그러나 올림픽회의가 가까워지자 공안은 이른바 올림픽 안보 명목으로 린원후이를 푸젠으로 데려오려고 했다. 린원후이가 돌아오려 하지 않자 베이징 펑타이(豐台) 구치소에 가뒀다. 그리고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내려 베이징에서 네이멍구 싱안멍(興安盟) 투무지(圖牧吉)노교소로 이송했다.
2009년 2월 26일에 파룬궁수련생들은 투무지노교소에서 노역노동을 저지했다. 오후에 2대 소속의 간사 천창(陳強, 경찰번호:1519074)이 파룬궁수련생 쑹즈위(宋志宇)를 사무실로 불렀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마구 욕설을 퍼부으며 진상편지를 그의 얼굴에 내던지고 뺨을 두 대 때렸다. 그리고 수시로 폭력을 휘둘렀다. 2중 중대장(폐쇄대) 황쯔강(黃自剛)은 또 쑹즈위의 가슴을 주먹으로 몇 번이나 치면서 계속 특근을 하지 않는다면 또 구타하겠다고 큰소리쳤다. 27일 오전, 황쯔강은 작업실에서 양탄자를 짜던 쑹즈위를 천창의 사무실로 끌고 가 또 공갈협박과 구타를 했다. 그래도 쑹즈위가 순종하지 않자 천창은 그를 4층 대청의 동쪽 구석의 방열기 관에 뒷짐결박으로 채워놓았다. 점심에도 밥을 먹지 못하게 했다.
27일 점심, 파룬궁수련생 린원후이, 왕잔칭(王佔靑), 리젠칭(李建靑), 우난제(吳南傑) 등 파룬궁수련생 9명은 쑹즈위가 학대를 당한 소식을 알고 그를 만나려 했다. 당시 사무실에는 비궈룽(畢國榮), 황쯔강, 우(吳) 대장 등이 있었으나 합리적인 답변을 주지 않았다. 파룬궁수련생들은 곧 오후에 일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자 악독한 경찰(대장) 몇 명이 전기봉과 고무몽둥이 등 경찰공구로 파룬궁수련생들은 구타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왕리웨이(王利偉) 교도원도 참여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구타를 당해 대청 안으로 물러섰다.
악독한 경찰들(대장)은 여전히 추격하면서 구타했는데, 마치 미친 것처럼 혹독하게 구타하며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 후에 린원후이, 왕잔칭, 리젠칭, 우난제, 마유(馬友), 정쥔(鄭軍) 등 파룬궁수련생 6명을 1층에 있는 독방에 가뒀다. 두 사람을 독방 한 곳에 가뒀다. 악독한 경찰 천창은 독방에 들어서서 강제로 파룬궁수련생들의 옷을 벗기고 팬티만 입혔다. 2월의 투무지의 밖은 여전히 얼음과 눈으로 뒤덮혀 있었다. 이어서 며칠 동안 파룬궁수련생 왕잔칭, 리젠칭, 우난제는 악독한 경찰 천창과 대장 양 씨에게 잔인한 박해를 당해 문틀의 쇠막대에 매달려졌다. 당시 많은 다른 노동교양 인원들이 보았다. 어떤 이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악인은 독방에 갇힌 파룬궁수련생 모두 누워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대장이 출근하기만 하면 벽을 마주하고 서있게 했다. 만약 순종하지 않거나 혹은 왔다 갔다 하면 악독한 경찰 비궈룽(대장)이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했다.
네이멍구에서 2년 동안 박해를 당한 뒤, 린원후이는 고향 푸젠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간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그는 기차를 타고 외지로 갔다. 그러나 기차에서 철도 경찰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 서적이 발견되어 불법 체포를 당했다.
그는 다시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고, 그 기간에 간복수 진단이 내려졌다. 노교소에서는 책임을 물을까 두려워 병보석 수속을 밟아 현지 정부에서 집으로 데려가게 했다. 병원 검사 결과 간암말기였다. 결국 집으로 돌아간 지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2년 04월 1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4/11/255494.html